[박근종 칼럼] 삼성전자가 지난 4월 5일 공시한 올해 1분기 매출액은 71조 원으로 전 년 동기 63조 7,454억 원 대비 11.37% 늘어났고 영업이익도 6조 6,000억 원으로 1년 전 동기 6,402억 원 대비 9.3배(931.25%↑) 뛰어오르며 반도체 업황 회복이 가시화되고 있다. 작년 한 해 연간 영업이익 6조 5,700억 원을 뛰어넘는 ‘깜짝 실적(어닝서프라이즈)’이다. ‘K-반도체의 춥고도 긴긴 겨울’을 지나 ‘K-반도체의 봄’이 돌아오고 있다. 반도체 시장에 훈풍이 불면서 수출과 연관 산업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이러한 이면에는 세계적인 인공지능(AI) 열풍으로 늘어난 반도체 수요가 훈풍을 타고 급속히 팽창한 데다 지난해 수요 부진을 고려해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이 돌입했던 감산 효과가 더해지면서 반등 계기를 마련했기 때문으로 읽힌다.

SK하이닉스도 이달 중 예상을 뛰어넘는 실적을 공개할 가능성이 커보인다. SK하이닉스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의 선두주자인 만큼 지난해 4분기 가장 먼저 흑자 전환에 성공한 데 이어, 올해 1분기에는 조 단위 영업이익 회복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DDR5와 HBM3 매출이 각각 4배, 5배 늘어났기 때문이다. 지난 4월 9일 금융 데이터 기업 에프앤가이드(FnGuide Inc)에 따르면 SK하이닉스의 1분기 실적 컨센서스(최근 3개월간 증권사 추정치 평균)는 매출액 11조 9,850억 원, 영업이익 1조 5,057억 원이다. 전 년 동기 대비 매출은 136% 급증하고 영업이익도 흑자로 전환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1년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한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 3,460억 원의 무려 4배를 훌쩍 넘길 전망이다. SK하이닉스 실적에 기대감을 크게 하는 또 다른 배경은 ‘낸드 플래시(NAND)’ 가격 상승이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낸드 범용 제품인 128Gb의 3월 말 가격 4.90달러는 지난해 9월 말 가격 3.82달러 대비 28.3% 올랐다.같은 기간 D램 PC향 범용 제품인 8Gb 가격은 1.30달러에서 1.80달러로 38.5% 상승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반도체 실적 호조의 가장 큰 배경은 감산 효과다. 무엇보다도 인공지능 칩에 들어가는 고대역폭메모리(HBM) 등의 수요 증가가 꼽힌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PC용 범용 D램 제품(DDR4 8Gb)의 고정거래가격은 지난해 9월 1.30달러로 바닥을 찍고 10월부터 반등을 시작해 올해 3월 기준 1.8달러로 회복했다. 이렇듯 D램이 먼저 회복세로 돌아선 데 이어 부진했던 낸드도 AI 관련 수요 증가에 따라 기지개를 켜고 있다. AI 서버용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수요 증가 등에 힘입어 낸드 가격 상승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일부 글로벌 투자은행은 업황 개선이 ‘반도체의 봄’을 넘어 ‘슈퍼 사이클’에 진입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런 반도체 훈풍에 편승하여 수출과 경상수지 등 경제지표도 청신호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올해 3월 수출액은 조업일수가 지난해보다 1.5일이 부족했음에도 565억 6,000만 달러로 작년보다 3.1% 증가했다. 반도체 수출이 117억 달러로, 21개월 만에 최대치를 기록한 덕이다. 2월 경상수지도 68억 달러가 넘는 흑자로 집계됐다. 반도체 수출이 63%나 늘어난 게 효자다. 3월 수입액은 522억 8,000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2.3% 줄었다. 무역수지는 42억 8,000만 달러 흑자로 10개월 연속 흑자를 기록했다. 이렇듯 반도체가 최대 주력 산업인 우리나라로서는 반가운 소식이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어만 보인다. 그동안 부동의 세계 1위를 지켜온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후발 주자들의 추격이 거세고, AI와 자율주행 등으로 수요가 폭발하는 ‘파운드리(Foundry │ 반도체 위탁생산)’에선 대만 TSMC에 크게 밀리고 있다. 게다가 인공지능(AI) 학습에 필수적인 그래픽처리장치(GPU) 분야에서는 절대강자인 엔비디아(NVIDIA)의 그늘에 가려 한국 기업들의 존재감이 미미하고 유약하다.

AI 열풍과 4차 산업혁명으로 ‘산업의 쌀’이라 불린 반도체는 이제 ‘핵심 전략자산’이자 ‘21세기의 석유’가 됐다. 우리나라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선 절대강자지만 메모리의 2배인 비메모리 시장에선 점유율이 3%에 불과하다. ‘파운드리(Foundry │ 반도체 위탁생산)’도 TSMC와의 격차가 더 벌어졌다. 이러한 와중에 반도체 종주국 미국이 “실리콘은 실리콘밸리로”를 선언하고, 일본이 대만과 반도체 동맹을 구축하고 나섰다. 막대한 보조금으로 사실상 국가대항전이 된 글로벌 반도체 전쟁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선도적 투자를 통해 혁신 기술들을 상용화하며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기업의 힘만으로는 역부족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의 인텔, 마이크론 등은 천문학적인 정부 보조금을 기반으로 첨단 제품의 양산을 앞당기며 도전해 오고 있다. 일본·유럽·중국 등도 대규모 보조금을 지원하며 반도체 산업 육성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이들 국가와는 달리 우리 정부의 지원이라고는 연말에 끝나는 투자 세액공제가 전부다.

다시 찾아온 ‘K-반도체의 봄’이다. 모처럼 활력을 찾은 반도체 상승 사이클은 K-반도체가 재도약하느냐, 도태하느냐의 갈림길이자 시험대에 서 있다. 국가 진운(進運)의 명운(命運)을 걸고 국가 역량(力量)을 총 집주(集注)하여 매진(邁進)해 나가야 한다. 반도체 패권 싸움이 이미 국가 대항전이 된 상황에서 우리 기업들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외롭게 홀로 뛰도록 방치하고 방기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도 규제를 풀어 우리 기업들이 마음껏 뛸 수 있도록 발목은 잡지 말아야 한다. 정부와 정치권은 보조금·세제 지원을 대폭 확대하는 한편 대기업부터 소부장(소재·부품·장비), 팹리스(Fabless │ 반도체 설계업체)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반도체 생태계를 서둘러 구축해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고 석권할 수 있도록 실효적인 지원책을 마련해 적극적으로 실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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