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강인 ]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194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미국 출신의 영국 시인 '엘리엇(Thomas Stearns Eliot, 1888~1965)'의 시(詩) <황무지(The Waste Land)>'에 나오는 첫 구절입니다.

어느새 우리는 1년 중 가장 잔인한 달인 4월의 날들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4월이 진정 '잔인한 달'일까요?

엘리엇은 자신의 시 <황무지>를 통해 4월의 계절적 역할 즉,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우는 것”을 꽤나 잔인한 행동으로 본 것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그러나 이는 잔인하기보다는 마치 다음 달인 5월을 ‘계절의 여왕’으로 등극시키기 위한 각고의 노력 같아 보여 저으기 숭고하기까지 합니다.

더욱이 '4월'이라는 영어 '에이프릴(April)'의 어원(語源)이 '(꽃이)열린다'라는 뜻의 라틴어인 '아페리레(Aperire-To Open)'와 '사랑과 미(美)의 여신'으로 불리는 고대 '에트루리아(Etruria)' 언어인 '아프로디테(Aphrodite)'에서 유래된 것을 보면 그 어원에서부터 잔인함이란 전혀 느낄 수 없습니다. 

오히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시를 읽노라..." 로 시작되는 '박목월'의 <4월의 노래>는 엘리엇의 시 구절처럼 잔인하기보다는 오히려 부드러움과 평안함을 느끼게 해 줍니다.

목련꽃
목련꽃

특히 재미있는 것은​ 4월의 첫날이 장난기 어린 거짓말 뒤에 찾아든 즐거움을 공감할 수 있는 '만우절(萬愚節)'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불현듯  'April fools'라는 옛 영화가 생각납니다. 

주인공 '잭 레몬'은 어릴 적 연극에서 본 개구리로 변한 왕자의 꿈을 가지고, 자신을 왕자로 불러줄 연인을 찾으며 맘에 없는 고달픈 결혼생활을 유지해 갑니다. 역시 '잭 레몬'의 상사의 부인인 '까뜨린느 드뇌브‘도 사업밖에 모르는 남편에게 애정이 없습니다.

그들은 4월의 첫날 파티 석상에서 순진한 아이들처럼 만납니다. 그리고 결국은 푸른 개구리를 품에 안고 빠리로 사랑의 도피를 합니다.

상영 중 음악이 등장하는데 그 가사가 참 어리광스러웠습니다.

"우리는 4월 만우절의 연인/ 다가올 막막한 앞날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지금은 즐거운 것/ 진실한 사랑을 발견했네."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바보가 되는 날'이라는 뜻의 '만우절'을 영어로는 '바보의 날(April Fools Day)'이라 합니다. 이는 16세기에 처음 프랑스어로 지칭했던 '4월의 물고기'라는 뜻의 '쁘와송 다브릴(Poissons d'Avril)'에서 유래된 말로 '갓 부화된 물고기처럼 아무것도 모른 채 바보같이 쉽게 낚였기 때문'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만우절 거짓말에 속아 넘어간 사람을 '4월의 바보' 또는 '쁘와송 다브릴'이라 놀려댔습니다.

한편 동양에서도 만우절의 유래를 찾아볼 수 있는데, 고대 인도에서 불교의 설법(說法)이 끝나는 3월 31일이 지나면 신자들이 수행의 보람도 없이 원래의 상태로 돌아갔다고 해서 '야유절(揶揄節)'이라 부르며 장난을 치던 데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아무튼 이 만우절은 모든 사람이 즐겁게 거짓말하고, 또한 그 거짓말에 속아주며 즐기는 날로서 거짓말로 사람들을 놀라게 해도 나무라지 않는다는 풍습이 있는 날입니다.

이렇듯 4월의 이미지는 숭고하고, 아름답고, 평안하고, 즐거우며, 심지어 희망을 느끼게 하지만 우리가 앞서, 엘리어트가 명명(命名)한 ‘잔인함’의 그늘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은 과거 3백여 명의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앗아가고 온 국민을 비탄 속에 몰아넣은 세월호 참사를 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내일(4월 16일)로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이합니다. 이 세월호 참사는 ​무책임, 비리, 미개, 부패 등 눈 가리고 아웅 하던 대한민국의 총체적 병폐가 한꺼번에 노출된 부끄러운 사건입니다. 그 이면에는 정경유착으로 인한 낙하산 인사, 뇌물수수 등, 표현을 조금 과장하면 대한민국 정치인과 관료가 모두 연루된 사건입니다. 오죽하면 ‘관피아’라는 신조어가 생겨났겠습니까?

그러나 단 한 사람도 이를 시인하기보다는 모두가 ‘나와는 관계없다’는 듯 침묵과 거짓말로 일관해왔습니다. 결국 세월호의 선체(船體)는 인양되었지만 이들의 비리(非理)는 아직까지도 바닷물 속에 깊이 가라앉은 채 영원히 떠오르지 않을 듯합니다. 이는 세월호라는 배 한 척의 침몰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침몰을 보는 것 같아 더욱 안타깝습니다.

이렇듯 그들의 거짓된 모습을 보노라니 문득 어린 시절 읽었던 이탈리아 피렌체 출신 작가 '카를로 콜로디(Carlo Collodi)'의 '피노키오(Pinocchio)'라는 동화가 생각납니다. 이 동화의 주인공인 '피노키오'는 거짓말을 하면 할수록 코가 길어졌다죠? 과연 앞으로 누구의 코가 가장 길어질지 지켜보는 것도 매우 흥미있는 일일 것입니다. 

혹, 이 시대의 피노키오들은 4월의 첫날뿐 아니라 이 잔인한 4월 한 달이, 아니 1년 전체가 거짓말이 허용되는 '만우절'이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살고 있지는 않을까요?

지난 4월 10일은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총선일이었습니다. 자정(子正)이 훨씬 넘은 시간 TV 앞에 앉아 개표 실황을 지켜보는 나의 마음은 실로 참담했습니다. 차라리 오늘이 만우절이었으면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그러나 “민심(民心)이 천심(天心)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이 모두가 하늘의 뜻이 아니겠느냐 하며 스스로 마음을 다독였습니다. 그런 중에도 한가지 떨쳐버릴 수 없는 느낌은 글머리에 소개한 시인 엘리엇의 말대로 역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선자 중에는 도저히 국민의 대표가 되어서는 안 될 인물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이 또 다른 관피아를 만들어 대한민국호(號)를 ‘투기(投機)의 바다‘, ’뇌물의 바다’, ‘배임(背任)의 바다’, ‘성적(性的) 타락의 바다’, ‘불법대출의 바다’, ‘쎄쎄의 바다’, ‘새빨간 바다’ 등 총체적 비리(非理)와 부정(不正)과 매국(賣國)의 바다에 빠뜨리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를 신앙으로 외치는 대한민국의 4월은 결코 더 이상 잔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으며 희망의 노래 한 곡 띄웁니다. 

박목월 작시, 김순애 작곡 <4월의 노래> 메조 소프라노 강화자의 노래입니다.

 

"돌아온 4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 어린 무지개 계절아."

박목월 시인의 고백과 같이 눈물 어린 무지개의 계절 4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 채 꿈과 희망으로 우리 앞에 다시 펼쳐질 것입니다.

 

강인

 

 

예술비평가
사단법인 카프코리아 대표 
국민의힘 국가정책 자문위원(문화)

문화뉴스 / 강인 colin15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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