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있는 날·예술이 있는 삶을 빛냅니다…문화뉴스] "이 동네, 여름만 좋은 게 아니래요. 살아보면 알 거래요."

강원도 강릉의 작은 해수욕장이 있는 마을엔 작은 카페가 있다. 저녁이 되자 동네엔 노총각들이 모여 주저리 인생 이야기를 나눈다. 이들 틈에 서울에서 이사 온 사연 있는 젊고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난다. 우연히 이들은 귀신 이야기를 하게 된다. 귀신 다니는 길에 사는 식구들 사연부터 아이를 찾아온 아줌마 귀신, 죽어서도 여자 무덤에 들어가겠다고 나타나는 변태 귀신 등 다양하다. 그리고 노총각의 밤은 취기와 함께 깊어만 간다.

아일랜드 작가 코너 맥퍼슨의 '둑'을 원작으로 한 극단 차이무의 '거기'가 다시 돌아왔다. '둑'은 1999년 영국 런던에서 초연됐다. 그리고 그해 올리비에상 최우수 희곡상, 평론가협회상 등을 받는 등 찬사를 받았고 지금도 영국, 아일랜드, 호주 등에서 공연되고 있는 작품이다.

연극 '거기'는 원작 무대인 아일랜드 해안 마을 레이트림을 강원도의 바닷가 작은 부채끝 마을로 공간을 옮겼다. 2002년 한국에서 자연스러운 강원도 사투리 번안으로 초연하면서 그해 한국연극 베스트 7, 올해의 연극 베스트 3에 선정되기도 했다. 인간관계가 형성되고 공감대의 정서가 흐르는 허름한 술집에서, 구수한 사투리 속에 담긴 각자의 인생 이야기가 배우들의 노련한 연기와 이들의 이야기를 몰입해 들어주는 관객까지 3박자가 어우러진 '거기'는 많은 사랑을 받았다.

   
 

당시 초연의 연출과 번안을 맡은 이상우는 "시골에는 늙은 총각들도 많고, 마을마다 귀신 이야기도 많다"며 "개인적으로도 너무 기분이 좋았던 작품이다. 결국, 우리 고향과 친구들 이야기가 됐다. 쓸쓸하기도 따뜻하기도, 떠나고 싶기도 돌아가고 싶기도 한 '거기' 때문에 제목도 '거기'라고 붙였다"고 전했다.

이번 작품은 문성근, 명계남, 송강호, 유오성 등 스타 배우들을 배출한 극단 차이무의 20주년 기념 공연이기도 하다. 연극 '늙은 도둑 이야기'부터 뮤지컬 '달빛요정과 소녀'까지 다양한 작품을 만들어 온 극단 차이무는 "현 사회문제에 대해 예리한 감수성과 비판의식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관객들이 유쾌하게 사회를 돌아볼 수 있게 한다"며 "너무 무겁거나 진지한 이야기 방식으로 관객에게 현실을 당면하는 일이 괴롭거나 고통스럽게 느껴지지 않도록 극 곳곳에 웃음 코드를 사용한다. 남이 아닌 내가 사는 세상의 이야기, 과거나 미래가 아닌 지금 이 순간에 대한 이야기를 보여주려 한다"고 이야기했다.

2012년 이후 3년 만에 선보이는 '거기'의 연출을 맡은 민복기는 "이번 '거기'는 연출이라기보다 정말 대표관객으로 '거기'를 한 번 지켜보려고 한다"며 "이상우 선생님과 '거기'라는 작품을 처음 접하며 느꼈던 느낌. 연습과정에서 느꼈던 '과연 이 연극이 관객에게 어떻게 보일까?' 고민했던 시간을 배우들과 다시 한 번 느껴보는 시간을 가져 보려 한다. 인연이 오래되면, 처음 만난 그 순간, 그 처음의 살 떨리던 순간을 잊기 쉽다. 물론 그때의 기억으로 사는 것은 아니지만 '거기'를 처음 만났던 순간을 한 번 다시 추억해 보려고 한다"며 연출 의도를 밝혔다.

연극 '거기'는 독백을 중심으로 대사가 이어진다. 하지만 배우들의 호흡이 쌓이지 않으면 극이 이뤄지지 않는 독특한 구조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 이 연극은 배우들에게 새로운 연기 세계를 경험할 기회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이번에 '춘발' 역할을 맡은 배우 오용은 2002년 초연 당시엔 '병도'를 연기했고, 2012년엔 '진수'를 맡았다. 이렇듯 같은 공연에서도 여러 배역을 소화한 연기를 펼친다. 이대연, 김승욱도 공연마다 '춘발'과 '장우'를 오가며 연기의 스펙트럼을 넓히고 있다.

   
 

한편, 이 작품은 귀신 이야기를 다루지만, 무대에 귀신을 등장시키거나 특별한 무대 장치로 공포심을 자극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귀신 이야기 속에 숨겨진 인생 이야기는 관객들에게 있을 것 같은 이야기이기에 무서울 수 있다.

김승욱, 김중기, 이대연, 오용이 부채끝 토박이인 자동차 정비소 주인 '장우'를 연기하고, 역시 부채끝 토박이이자 설비보수 가게 주인인 '진수' 역엔 정석용, 송재룡, 류제승, 김훈만이 맡았다. 그리고 사연이 있는 서울 여자 '정' 역엔 김소진과 오유진이 출연한다. '거기'는 오는 8월 18일부터 30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열리며, 평일 오후 8시(월요일 쉼), 토요일 오후 3시와 7시, 일요일 오후 3시에 막이 오른다.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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