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까치동의 전춘근 제작 최 정 작 정경선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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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극은 무용가 최승희를 소재로 한 김경민의 모노드라마다.

최승희(崔承喜, 1911~ 1969)는 일제시대의 무용가이다. 본관은 해주(海州)이다.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1926년 일본에 유학하여 현대무용가 이시이 바쿠에게 사사했다.

두 차례 일본 유학 이후에 국내에서 독자적인 근대 무용 공연을 가지면서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모으게 되었고, 《반도의 무희》(1936)라는 영화에 출연하고, 자서전 <나의 자서전>(1936)을 출간할 정도로 유명해졌다. 1930년대 후반에는 수 년 동안 칠레 등에서의 해외 순회공연을 벌이면서 세계적인 명성도 얻었다.

광복 후 남편인 안막을 따라 월북해서 최승희 무용연구소를 평양에 세워 소장에 취임하고 공훈배우, 인민배우 칭호를 받은 뒤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되기도 했다. 1958년 안막이 숙청되면서 연금 당했다는 설이 나돈 이래, 행적이 거의 알려지지 않아 숙청되었다는 소문이 오랫동안 나돌았다. 그러나 한설야와 함께 사후 복권된 상태라는 것이 2003년에 확인되었고, 묘지는 애국렬사릉으로 이장되어 있다.

1936년 베를린 하계 올림픽 마라톤 우승 직후 한 음식점에서 최승희와 손기정이 찍은 사진이 공개되기도 했다.

최승희는 신무용의 창시자로서 한국 무용계에 끼친 영향이 지대하다. 작품으로는 〈영산춤〉, 〈에헤라 노아라〉, 〈달밤의 곡〉, 〈반야월성곡〉, 〈우조춤〉, 〈칼춤〉, 〈보살춤〉, 〈초립동〉, 〈고구려 무희〉, 〈광상곡〉, 〈가면의 춤〉, 〈승무〉, 〈인도인의 비애〉, 〈해방을 구하는 사람들〉, 〈방랑인의 설움〉, 〈봉산탈춤〉, 〈유격대의 아들〉 등이 있고, 북한에서 쓴 저서로 《조선민족무용기본》, 《조선아동무용기본》이 있다

무대에는 커다란 곽이 여기 저기 놓여있다. 그 안에는 편지다발과 조그만 주택모형과 두 개의 남녀인형이 서너 개의 곽 속에 들어있어, 최승희 역을 하는 배우가 곽을 열고 인형을 움직이며 해설을 한다. 인형극을 하면서 나비형태의 조형물이 날아들기도 한다. 춤은 고전무용과 현대무용을 기본으로 선 보이고, 최승희가 반라의 모습으로 추던 관세음보살 춤을 재현하기도 한다.

연극은 도입에 여주인공이 한 개의 곽 속에서 편지다발을 꺼내 그 내용을 소개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현해탄을 건너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인 선생 이시이 바쿠에게 무용을 배우게 되지만, 얼마 안 가 배우기를 중단하고 귀국을 한다. 그리고 안막이라고 하는 평론가와 결혼을 한다. 그러나 최승희는 오라버니라고 부르는 인형극 속에 등장하는 인물을 잊지 못하는 것으로 설정이 된다.

최승희의 춤도 일본에서 배운 춤뿐이 아니라 조선의 춤과 병용을 하고, 그러한 변화가 오라버니라는 인물의 영향이라는 것을 은연중 강조를 한다. 안막의 도움으로 유럽에서의 활동이 최승희를 세계적인 무용가로 발 돋음을 하도록 만들고,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오라버니라는 인물은 죽는 것으로 소개가 된다. 최승희는 공산주의자인 안막을 따라 월북을 하고, 그곳에서 활동을 벌인다.

그러나 최승희의 활동도 잠시일 뿐 안막이 정치적인 이유로 숙청을 당하자, 최승희의 활동도 막을 내리게 된다. 대단원에서 여주인공이 벌이는 인형극도 나비조형물과 함께 마무리를 하면서 한 다발의 편지를 다시 곽 속에 넣는 장면에서 연극은 끝이 난다.

최승희로 김경민이 출연해 호연과 열연, 그리고 독특한 춤사위로 관객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보살 춤을 출 때는 원래의 최승희처럼 반라의 모습으로 춤을 춘다.

안무 배승현, 음악 허귀행 등 스태프의 열정과 노력이 드러나, 극단 까치동의 전춘근 제작, 최 정 대본, 정경선 연출, 김경민의 모노드라마 <불꽃처럼 나비처럼>을 연출력이 감지되는 성공적인 공연으로 만들어 냈다.

 
[글] 문화뉴스 박정기 (한국희곡창작워크숍 대표) pjg5134@mhns.co.kr 한국을 대표하는 관록의 공연평론가이자 극작가·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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