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장우재 작가, 유성주, 백지원, 고수희, 이창훈 배우, 김광보 연출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문화뉴스 MHN 양미르 기자] "내가 전에 살던 연립빌라 옥상에서 실제 있던 일을 바탕으로 했다."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연습동에서 서울시극단 연극 '옥상 밭 고추는 왜'의 제작발표회가 열렸다. 10월 13일부터 29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열리는 연극 '옥상 밭 고추는 왜'는 단독빌라 옥상 텃밭 고추 때문에 일어나는 사건을 중심으로, '현태'를 비롯한 주변 인물들을 통해 개인과 집단의 도덕(Moral)과 윤리(Ethic) 사이에서 격렬하게 부딪히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투영한다. 

하반기 기대작으로 꼽히고 있는 이 연극은 통찰력 있는 해석으로 모던하고 감각적인 연출을 보여준 '미니멀리즘의 대가' 김광보 연출과 '여기가 집이다', '환도열차', '햇빛샤워' 등 한국적 정서의 탐구를 끊임없이 이어가고 있는 타고난 이야기꾼 장우재 작가가 2006년 '악당의 조건' 이후 11년 만에 재회하는 작품이다.

이날 기자간담회엔 김광보 연출, 장우재 작가를 비롯해 지극히 평범한 서른세 살의 주인공 '현태' 역의 이창훈, 전화국을 정년퇴직한 후 부동산 사업으로 제2의 인생을 설계 중인 '현자' 역의 고수희, '현태'의 엄마인 '재란' 역의 백지원, '현태'와 함께 나서는 303호 '동교' 역의 유성주가 참여했다. 사회는 대학교 시간 강사인 '지영' 역의 최나라가 맡았다.

▲ 김광보 연출이 기자간담회에 참석했다.

서울시극단 단장인 김광보 연출은 "부임 이후 5번째 작품"이라면서, "3년 동안 어떤 작품을 하겠다 밝힌 바 있었는데, 이번 가을에 올리는 '옥상 밭 고추는 왜'가 그 작품이다. 서울시극단이 공공극단이기 때문에, 그 역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울시극단은 시민연극교실, 창작플랫폼 창작극 개발 사업 등을 통해 정기공연으로 창작극을 올리고자 한다"라고 입을 열었다. 지난해 5월 김 연출은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3년 임기 동안 국내 작가의 창작극을 두 편 정도 할 수 있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장우재 작가도 "김광보 연출과 오랜만에 작품을 하는데, 나 역시 몇 년 전에 서울시극단 작품을 했다"라면서, "같이 작품을 하면서, 이곳이 상당히 중요한 곳이라는 생각을 했다. 지리적으로도 중요한데, 이번 작품을 서울시극단과 함께 광화문 옆에서 하게 된 것이 너무나 영광스럽다. 조심스럽게 이 작품이 여기에 걸맞은 작품이면 좋겠다. 단장님 말씀처럼 공공성 있고, 연극 특유의 재미와 생각할 거리를 잃지 않는 작품이 됐으면 한다"라고 전했다.

김광보 연출은 "장우재 작가와의 인연은 1994년에 처음 만나서 '지상으로부터 20미터'를 대학로에서 연출로 데뷔할 때부터 시작됐다"라면서, "장우재 작가는 이 작품으로 작가로 데뷔했다. 그 이후 '숨바꼭질 여행'(1998년), '악당의 조건'(2006년) 등을 같이 했다. 장우재 작가는 표피적으로 거대담론을 보여주는 작가가 아니고, 일상을 보여주면서 그 안에 담론을 이야기하는 작가라고 생각했다. 그 작품이 '옥상 밭 고추는 왜'다. 오랜만에 작업하면서 그렇게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특별히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았고, 전해 받은 대로 공연했다. 나중에 어떤 평가를 받을지 떨리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하다"라고 이야기했다.

▲ 장우재 작가가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왜 이 작품을 쓰게 됐는지를 묻자 장우재 작가는 "내가 전에 살던 연립빌라 옥상에서 실제 있던 일"이라면서, "아주머니 한 분이 절반 이상의 고추를 따간 일이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바깥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들이 우리 안에 스며들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했다. 사과하라지만, '현자'는 죽어도 사과를 못하겠다고 한다. '현태'는 이 일을 끝내 사과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재란'은 '현태'에게 고추가 왜 네 삶에서 중요한 일이냐고 묻는다. '동교'는 여기에 돕겠다고 말한다. 이 부분은 픽션이다"라고 밝혔다.

이어 장우재 작가는 "현재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것은 거대담론이 아니라, 현재 제기되고 있는 여러 문제가 우리 일상 안에서 어떻게 다뤄지고 있는지를 이야기해보는 점"이라면서, "'가장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페트라 켈리의 말을 계속 염두에 두면서 이런 것을 나눠봐야 하는 시대가 아니냐는 생각으로 임했다"라고 언급했다.

부제를 'Ethics(윤리) Vs. Morals(도덕)'로 한 것에 대해 장우재 작가는 "윤리와 도덕을 구별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라면서, "도덕은 아시다시피 사회 전체가 유지되기 위해 지켜야 하는 커다란 옳은 것에 대한 이야기라면, 윤리는 스스로 뭘 지키면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기준을 꺼내는 태도다. 사회에서 어쩔 수 없이 당신은 어느 편인가, 편 가르기를 하게 된다. 서서히 그걸 만들어내야 하는 시기고, 우리나라는 그런 사회나 삶의 기준이 혼재되고, 많이 충돌하는 상황이라 그걸 이야기해 보자는 식으로 부제를 제안했다"라고 말했다.

▲ (왼쪽부터) 장우재 작가, 유성주, 백지원, 고수희, 이창훈 배우, 김광보 연출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배우들의 소감도 이어졌다. '현태' 역의 이창훈은 "'현태'는 어떤 문제는 외부에 있다고 생각하고, 거기에서 오는 자격지심으로 인해 대상을 포착하면 확 들어가게 되는 캐릭터라고만 생각했다"라면서, "김광보 연출님한테 이야기 듣고 연습하는 과정에서 '현태'에게 애정이 갔다.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어떻게 보면 노무현 전 대통령 같아 보였다"라고 언급했다.

이창훈은 "'현태'는 무언가를 얻어내는 인물도 아니면서, 현실적인 것에 맞춰 살면서 경제적 부분을 충족할 수 있다고 하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라면서, "자신의 기준에 맞춰 세상과 싸우는 '현태'는 어찌 보면 계속 실패를 할 수밖에 없는 싸움을 한다. 그런 면에서 얘를 잘 못 보고 있었구나 싶어, 마음을 바꿔 마지막까지 '현태'로 밀착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현자' 역할의 고수희는 "'현자'는 주변에서 볼 수 없는 센 캐릭터의 아주머니 역할"이라면서, "연습이 회를 거듭하면서, 결국 내 어머니의 모습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가 나쁘거나 독하기만 한 사람은 아닌데, 모두에게 공감되고, 모두의 엄마이거나 이모 같은 모습으로 비쳤으면 하는 마음으로 연습에 임하고 있다. 서울에서 태어나 계속 서울에서 살다가, 지난해에 경기도로 이사했다. 그런데 서울시극단과 첫 작업을 하게 됐다. 좋은 환경에서 작업하는 것을 보며 한편으로 부럽기도 했고, 이 기회가 대학로에 있는 많은 배우에게 주어졌으면 좋겠다"라고 전했다.

▲ 고수희 배우가 '현자'를 맡았다.

이에 김광보 연출은 "고수희 배우와 작업하게 된 에피소드가 있다"라면서, "고수희 배우와는 어릴 적부터 작업을 해오고 싶었다. 몇 번 기회가 있었음에도 번번이 빗나갔다. 2013년에 도쿄에서 고수희 배우를 만났다. 고수희 배우는 여행을, 나는 연수를 간 상황이었다. 신주쿠에 있는 유명 커피숍에서 한 7잔 정도 마시면서, 조만간 작업을 같이하자고 의기투합했었다. 대본을 보고 고수희 배우가 이 배역을 맡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흔쾌히 해주셨다"라고 회상했다.

백지원 배우는 "서울시극단에서 작업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면서, "장우재 작가님, 김광보 연출님과 작업한 경험이 있다. 이번 작품을 제안해 주셨을 때, 다른 생각을 많이 하지 않았다. 내가 이 인물의 삶을 잘 살 수 있을까만 생각하며 작업에 임했다. 서울시극단과 작업하면서 좋은 연습실 환경을 봤고, 성실하고 열심히 하는 단원 배우분들을 봤다. 어떤 작품을 작업할 때마다 느꼈지만, '재란'이 나한테 들어왔으니, 사랑으로 배우들을 대하면서 작업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요새 많이 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끝으로 유성주 배우는 "지난봄에 한 '왕위 주장자들'처럼 최나라 배우와 부부 역할"이라면서, "평탄한 부부 역할은 아니어서,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동교'는 무대에 오랜 시간에 나와 있지만, 말은 거의 없다. 사건이 진행되는 것을 바라보고, 또 바라본다. 거기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다. 말이 많은 역할도 쉽지 않지만, 이번엔 어떻게 무대에서 존재할 것인가 애를 먹고 있다. 지금도 그 과정 중이다. 처음엔 잡기 힘들었다. 인물의 본질에 들어가지 못해서, 연출님께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3주 정도 남았는데, 어떻게 '동교'라는 인물이 저렇게 말없이 나와있을까라는 답을 찾아보겠다"라고 밝혔다.

mir@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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