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자-눈을뜨다' 행사 사진 ⓒ 정정호

[문화뉴스 MHN 김민경 기자] 지난 9월 17일 저녁 8시 '윤슬'에서 고은(시인)과 정현기(시인/문학평론가), 유경숙(소설가)과 박초이(소설가/문학나무편집장) 그리고 200여 명의 서울시민들이 함께 펼쳤던 '작가와의 대화'를 끝으로 세계문자심포지아2017(위원장 임옥상)의 모든 행사가 마무리됐다. 

이번 행사는 '문자-잇다'라는 주제에 걸맞게 세계문자가 불러일으켜 주는 다양한 기억들을 소재로 4일 동안 '서울로7017'과 그 주변을 무대로 예술행사와 학술행사 그리고 시민 참여행사로 다채롭게 진행됐다. 행사장을 찾은 시민 10만여 명은 문자가 이어주는 '기억 속'의 공간들과 사람들 그리고 추억들과 예술 향연과 학술 토론에 깊이 매료되었고, 5천 명이 넘는 시민이 행사에 직접 참여해 주었으며, 내년에는 더욱 새로운 문자축제가 되기를 희망했다.

올해 4회째가 되는 이번 행사는 그 기획부터 참신했다. 개막식 '초대의 정원-우리 만리동 윤슬에서 만날까요?'는 초청받은 사람들이 음식과 꽃 그리고 바이올린(김민희)과 피아노(김진겸)로 꾸며진 저녁 식탁(홈그라운드)에서 함께 이야기꽃을 피우는 가운데 연극배우 한필수와 황정윤이 선보인 단막극에 몰입하는 '멀티플 초대 행사장'으로 각광을 받았다. 특히 이창현(국민대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초대의 인사 나누기 행사는 세계 모든 문자가 평등하듯 참여자 모두에게 동등한 발언 기회를 제공하는 평화의 메시지를 담았다.

예술행사의 지도리 노릇을 한 '놀공'의 게임전시 '서울:역-당신의 종착역은 어디인가요?'는 남북 분단의 철도역이자 서울의 중심을 상징하는 서울역을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세계의 중심으로 새롭게 이미지화했을 뿐 아니라 모든 세계문자가 서로 자유롭고 즐겁게 소통되기를 바라는 꿈을 '게임'의 형식으로 구체화했다. 시민들 3천여 명이 게임에 참여해 티켓을 발권 받고, 휴대폰 링크를 통해 문자여행을 떠나는 방식으로 서울로 산책을 즐기면서 서울로 곳곳에 설치된 단어들을 휴대폰에 기입하고 문장들을 선택하여 여행의 종착점에서 한 편의 완성된 글을 받았다. 이런 식으로 1,000여 명의 시민이 그들의 여행 기록을 남겼다.

또 다른 예술행사로 진행된 소리전시 '낭독산책-다섯 목소리 그리고 다섯 장면'('리사운드컴퍼니'와 '커뮤니케이션북스'), 낭독공연'이태준의 '달밤''(좋은희곡읽기) 등은 세계문자의 이미지를 구술성과 음성성으로 전환하여 문자의 표피 저편에 깊이 저장된 삶의 기억들을 회상해 내는 신비로운 체험의 장을 제공해 주었고, 시민 참여형 전시'기억의 집-문자가 구름이 될 때'(코우너스)와 온라인으로 발표 및 배포된 영상'모든 것의 이름-짓다, 부르다, 듣다'(비주얼스프럼)은 문자의 시각성에 입체성과 색채성, 나아가 이야기성을 입힘으로써 시민들이 문자에 대한 포괄적 상상력을 발휘하는 큰 자극을 주었다.

▲ '문자-눈을뜨다' 행사 사진 ⓒ 정정호

이번 학술행사의 주제를 '문자와 기억'으로 내건 구연상 학술감독(숙명여대교수)은 "세계문자심포지아가 문자 평등과 다양성 보존을 외치는 나팔수가 될 뿐 아니라 문자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표하는 실험 무대가 되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이번 학술행사는 학술전문코디네이터(박지미)가 발탁되어 '혁신적인 프로그램들'로 구성됐는데,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학술발표가 토론 형식으로 진행되어 일반 시민의 질문이 많았다는 점이고, 다음으로는 학술 담론이 예술과 융합되어 시민참여행사로 발전했다는 점이다. 그로써 시민의 학술행사 참여가 5천 명을 넘어서는 경이로운 기록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아울러 학술과 예술의 융합 행사에 참여한 김용희(한국의정신과문화알리기회)는 고운 한복을 차려입고 등장해 한글과 세종의 위대함을 한 편의 감동 콘텐츠로 발표해 청중의 박수를 받았고, 이돈규(한글로망대표)는 전 세계의 말소리를 '하나의 문자 체계(한글로망)'로 기록할 수 있는 문자 프로그램을 소개해 신선한 충격을 주었으며, 이주영(어린이문화연대 대표)은 '손바닥 헌법책'을 출판한 뒷이야기에 얽힌 사연들을 전해 주었고, 봄로야(디자이너)는 세계문자 인포그래픽스의 신 지평을 열었던 '유럽의 경계어 사방세계'의 제작 과정을 소개했다.이번 학술행사 내용은 하나같이 새로운 것들이었다. 구연상(학술감독)은 기조강연을 통해 기존의 문자관이 말과 글을 적기 위한 것이라는 편협한 틀에 갇혀 있었다고 비판하면서 문자의 본질은 '사람의 기억을 담기 위한 수단'이라는 새 이론을 내세웠고, 이도흠(한양대 교수)은 신라 시대 비문자 해독 사례를 통해 '비문자의 의미 작용 체계'를 규범화할 수 있다는 획기적인 기획을 발표했으며, 전병권(건국대 교수)는 숭배의 대상으로 여겨져 온 천부경(天符經)이 종교적 내용을 담고 있는 게 아니라 당시 우리 민족이 발견한 별자리에 대한 과학적 기록이었다는 논쟁적 해석을 제시해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 서울역 전경 ⓒ정정호

끝으로 시민참여 행사로 기획된 프로그램들은 시민의 관심을 크게 이끌어냈다. 가장 먼저 '세계문자서울선언'의 의미를 '천천히 걷기'라는 침묵 외침으로 되새긴 김종구(이화여대 교수)와 김원명(한국외대교수)의 '문자-길을 걷다'는 수많은 시민들의 사진 세례와 질문을 이끌어냈다. 특히 팻말에 쇳가루로 쓰인 "1011 녹슨 녹슬 문자들"이라는 표어는 이미 사라진 문자에 대한 애도와 현재 사라져 가고 있는 문자들에 대한 보호를 촉구하는 세계문자연구소의 비전을 나타냈다. 

다음으로 허휘수(안무가)의 '세계문자춤2.0'은 문자의 점선면을 몸으로 표현하는 두 차례 공연을 통해 시민의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8백여 명의 관객을 유치했고, 배인숙(사운드아티스트)의 'AI만담'은 작가와 인공지능 사이의 열띤 토론과 시민들의 적극적 질의응답을 통해 새로운 '문자 예술 장르'로 자리잡을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또 정진호(그림책작가)의 '문자-눈을 뜨다 "문자 캐릭터"'는 8천 장의 세계문자카드 가운데 한 장을 뽑아 자기만의 문자 캐릭터를 만들어 행사장에 직접 전시하는 참여 행사로 약 4,500여 명의 어린이를 비롯한 성인들이 참여했다. 마지막으로 특별학술행사로 열렸던 '되돌미루 기록 토론회'는 임나래(큐레이터)의 기획과 사회로 신정아(방송작가), 이원호(작가), 한재준(서울여대교수), 권두영(서울미디어대학원대학교 교수), 이광기(작가) 등의 '되돌아보기 발표'와 '미루어보기 토론회'로 꾸려졌고, 모두 100여 명의 청중이 참여해 좋은 반향을 보여 주었다.

'세계문자심포지아2017'의 축제는 끝났다. (사)세계문자연구소는 이제부터 그 행사의 모든 기록물들(사진, 문서, 발표집, 동영상, 인터뷰, 작품들)을 세계문자연구소 누리집을 통해 서울 시민에게 되돌려 주기 위한 '아카이빙(기록관만들기)'으로 또 다른 시작을 향해 나아간다.

▲ 서울로 전경 ⓒ정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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