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설동 유령역 내부 영상 사진전

[문화뉴스 MHN 양미르 기자] 서울시가 그동안 굳게 닫혀있던 비밀스러운 지하 공간 3곳을 시민들에게 개방한다. 여의도 지하 비밀벙커, 경희궁 방공호, 신설동 유령역이다.

'여의도 지하 비밀벙커'는 1970년대 만들어져 당시 대통령 경호용 비밀시설로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공간으로, 냉전 시대 산물이란 역사적 의미가 있다. 정밀점검, 안전조치, 2015년 한시적 개방, 시민·전문가 의견 수렴을 거쳐 40여 년만의 공간의 역사적 배경과 동시대적 맥락을 결합한 전시문화공간으로 19일 정식 개관한다.

'경희궁 방공호'는 일제 말기 비행기 공습에 대비해 통신시설(경성중앙전신국 별관 지하전신국)을 갖춰 만든 방공호로 추정된다. 일제강점기 침략과 아픈 과거의 역사, 암울했던 당시의 상황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신설동 유령역'은 1974년 지하철 1호선 건설 당시 만들어진 역사지만 노선이 조정되면서 폐 역사가 됐다. 43년간 일반인 출입이 금지됐고 지도에도 나오지 않아 유령역으로 불렸지만 1970년대 역사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엑소(EXO)의 뮤직비디오, 드라마 '스파이', 영화 '감시자들' 같은 촬영 장소로 일부 활용됐다. 일반 시민에게 공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시는 과거 필요 때문에 만들어졌지만, 지금은 사람들에게 잊힌, 방치돼 있던 지하 공간을 열린 공간으로 만들어가는 도시재생 사업을 통해 이처럼 3개 공간을 시민들에게 개방한다고 밝혔다. 다만 경희궁 방공호와 신설동 유령역은 우선 21일부터 11월 26일까지 주말에 한시적으로 사전 신청을 받아,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1일 4회 오후 12시부터 4시까지 시간대별로 회별 20명을 대상으로 체험을 하고 내년 중장기 활용방안을 세운다는 계획이다.

▲ 여의도 지하 비밀벙커 역사갤러리 내 키박스

여의도 지하 비밀벙커는 전체면적 871㎡ 규모의 공간을 최대한 원형 그대로 보존했다. 특히 VIP가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방은 소파와 화장실, 샤워장이 있는데, 소파는 비슷하게 복원해 시민들이 직접 앉아볼 수 있게 했고 화장실 변기 등은 그대로 둔 상태다. 이외 내부 공간은 예술품을 설치하고 전시 등을 기획할 수 있는 공간으로 새 단장을 마쳤다. 서울시는 2015년 10월 시민들에게 첫 공개 이후 사전예약제로 11월 1일까지 임시개방했다. 이후 구체적인 활용 방안에 대한 시민 의견을 수렴한 결과 63%가 열린 전시문화공간으로 조성하자는 의견을 제시함에 따라 이 방향으로 새 단장을 진행해왔다.

또 벙커의 두께를 가늠해볼 수 있는 50cm 코어 조각도 전시했다. 당시 벙커가 어떤 폭격에도 견딜 수 있게 얼마나 치밀하고 틈 없이 만들어졌는지 코어 조각을 통해 가늠해 볼 수 있다. 발견 당시 나온 열쇠박스도 복원해 전시했다. 

전시장 안쪽에 있는 역사갤러리(VIP공간)는 처음 발견 당시로 복원해 아카이브 사진과 영상 자료 전을 함께 공개한 바 있는데 역사적 공간에 대한 원형 보존을 요구하는 시민 의견을 반영해 현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되 아카이브 프로젝트 영상을 기획해 역사갤러리 내에 추가로 설치했다. 작은 타일 형태의 바닥도 그대로 두고 낮은 천장을 보완하기 위해 천장은 노출 형태로 바꿨다. 또 공간확보를 위해 내벽을 덧대고 소방, 냉·난방시설과 환기시설도 갖췄다. IFC몰 앞 보도에 출입구를 추가로 설치하고 보행 약자를 위해 승강기도 새로이 설치하는 등 접근성도 높였다.  

▲ 방공호 입구 전경

개관식은 19일 오전 11시 20분 박원순 서울시장, 문화예술계 인사, 시민 등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다. 시설 운영은 서울시립미술관이 맡고 명칭도 'SeMA벙커'(Seoul Museum of Art)로 바뀐다.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되며(매주 월, 1월 1일 휴관) 관람료는 무료다. 개관 기획 전시전으로 '역사갤러리 특별전'과 '여의도 모더니티'가 19일부터 11월 26일까지 열린다. 여의도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한국 근현대화 과정을 강예린 등 10명의 작가가 참여해 다양한 장면으로 구성했다.  

한편, 여의도 지하비밀벙커는 2005년 시가 버스환승센터 건립 공사 시 발견했다. 1970년대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것 외에 누가, 언제, 왜 만들었는지 소관부처와 관련 자료도 전혀 기록이 없는 상태였다. 이에 서울시는 벙커가 언제 생긴 건지 알아보기 위해 항공사진을 찾아봤고 1976년 11월 사진엔 벙커 지역에 공사 흔적이 없었지만, 이듬해 11월 항공사진엔 벙커 출입구가 보여 이 시기에 공사가 이뤄졌을 것으로 추측. 특히 벙커 위치가 당시 국군의 날 사열식 때 단상이 있던 곳과 일치해 1977년 국군의 날 행사에 당시 대통령 경호용 비밀시설로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서울역사박물관 주차장 한구석엔 콘크리트 구조물로 설치되어 그 위로는 수풀이 우거져있는 정체 모를 철문이 하나 있다. '경희궁 방공호'다. 전체 면적 1,378㎡(1층 1,120㎡, 2층 258㎡) 규모로 (내부 폭 9.16m, 연장 104.2m, 높이 5.6m~5.8m) 10여 개의 작은 방이 있고, 폭격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성토 높이는 8.5m, 외벽은 약 3.0m 두께다. 지하 직선거리는 약 100m에 이른다. 

▲ 방공호 내부 전시 체험공간

서울시는 식민지 말기 암울했던 당시 상황과 방공호의 느낌을 되살리기 위해 조명과 음향을 설치했다. 방공호 1층 천장에 3D로 재현된 폭격기 영상과 서치라이트를 이용한 대공관제를 연출했다. 2만여 장의 일제강점기 관련 사진으로 실시간 포토 모자이크 미디어아트를 재현했다. 2층 계단엔 방공호 내부 전체를 조망할 수 있도록 조성했다. 서울시는 지난 2014년 11월 전기·통신시설 개선과 전시, 체험 미디어 콘텐츠 제작 등의 정비를 마친 후 그동안 이곳을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특별활동 프로그램으로 방문할 수 있는 공간으로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제한적으로만 운영해왔다.

한편, 성수역에서 갈라져 나온 2호선 전동차가 도착하는 승강장 지상으로 통하는 계단과 승강기 사이 좁은 공간의 보라색 철문을 통해 지하 3층으로 내려가면 일명 '신설동 유령역'이 있다. 승강장에는 노란색 안전선이 희미하게 보이고 '11-3 신설동'이란 낡은 표지판 하나가 벽에 붙어 있을 뿐 지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 신설동 유령역 내부

이 역은 지하철 1호선 건설 당시 5호선(연희동∼종각∼동대문∼천호동) 일부가 될 신설동역을 1972년 9월부터 1974년 8월까지 동시 건설했으나 노선이 변경(왕십리∼청구∼현 동대문역사문화공원)되면서 기능이 상실된 곳이다. 군자차량기지 완공 시점인 1977년 8월까지 차량 정비작업장으로 활용하다 현재는 1호선 동묘앞역 행 종료 후 군자차량기지 입고 열차가 통과하는 선로로 평일 14회, 휴일 12회 활용 중이다.

한편, 두 곳에 대한 사전예약은 19일 오후 2시부터 11월 22일 오후 6시까지 홈페이지에서 하면 된다. '경희궁 방공호'는 서울역사박물관 홈페이지, '신설동 유령역'은 서울시 홈페이지에서 신청 가능하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도시재생을 통해 사람들의 발길이 닿기 어렵고 잊혔지만 우리의 역사와 기억을 간직한 공간을 시민에게 개방하게 됐다"라며, "특히 여의도 지하벙커는 역사적 의미가 있는 장소가 문화공간으로 거듭난 만큼 많은 사람이 즐겨찾길 바란다. 경희궁 방공호나 신설동 유령역 역시 새로운 시민 공간으로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mir@mhne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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