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뮤지컬 '상자 속 흡혈귀' 출연 배우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문화가 있는 날·예술이 있는 삶을 빛냅니다…문화뉴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불멸의 존재, 흡혈귀. 이들이 한국에서 비정규직으로 살면 어떻게 될까?

창작뮤지컬 '상자 속 흡혈귀'는 이러한 가정을 무대로 옮겨놨다. 루마니아의 로열패밀리였던 흡혈귀 가족이 생계를 위해 한국의 어느 유원지 '드림월드'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며 겪는 에피소드를 담아냈다. 불사의 몸을 가진 흡혈귀 가족에게도 인간 세상에서의 삶과 사랑은 힘겨움의 연속이다.

살기 위해 인간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흡혈귀들이지만, 거꾸로 인간들의 탐욕으로 인해 고혈을 빨아 먹히며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사회에 대한 묵직한 메시지를 무대에서 유쾌하고 간결하게 풀어낸다. 23일부터 12월 31일까지 대학로 SH아트홀에서 공연되는 가운데, 22일 오후 프레스콜이 열렸다.

이날 프레스콜엔 '사장'을 맡은 박태성이 사회를 맡았고, 이용균 연출, 김혜영 작곡, 김나정 작가를 비롯해 TV에 빠져 사는 비현실적인 흡혈귀 '쏘냐'의 진아라, 문혜원, 인간 여자 '미봉'을 사랑하는 흡혈귀 '바냐' 역에 김도빈, 이지호, 현실적이고 인내심 강한 생계형 흡혈귀 '아냐'에 한수림, 유원지의 안주인 '미봉'을 맡은 박혜미, '꽃사장' 등 다양한 역할을 맡은 최연동, 김대곤 등 배우들이 참석했다.

2010년 동명의 연극 작품으로 공연된 바 있는 이 작품이 뮤지컬로 옮겨진 이유와 이 작품을 통해 관객이 어떠한 점을 얻고 갔으면 좋은지, 캐릭터의 매력 포인트는 무엇인지 들어본다.
 

   
▲ 뮤지컬 '상자 속 흡혈귀'에서 '아냐'(왼쪽, 한수림)가 집을 알아보려 부동산에 가는 장면이 그려진다.

안톤 체홉의 작품 세계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 같다. '쏘냐'와 '바냐'는 '바냐 아저씨'에서, '아냐'는 '벚꽃동산'에서 등장하는 배역 이름이기도 하다.
ㄴ 김나정 : 안톤 체홉의 작품을 좋아했다. 읽으면서 느낀 생각이 작품에 녹아진 건 맞다. 체홉 작품을 읽으며 가장 많이 느낀 것은 작품 속 등장인물들이 마치 죽어있는 사람이었다. 시간의 흐름에 적극적으로 올라타지 못하고, 지나간 시간을 그리워하고, 불안해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모티브로 했다. 막막한 긴 시간을 어떻게 견뎌낼까에 대한 생각도 체홉의 작품에 영향을 받았다.

왜 '상자 속 흡혈귀'라는 제목인가?
ㄴ 김나정 : 공간의 의미도 있을 것이다. 관부터 시작해, 관을 둘러싼 유령의 집, 유령의 집을 둘러싼 '드림월드'도 상자다. 겹겹의 상자는 단순히 구속이 아니라 사람을 보호해주는 가족의 의미도 된다고 봤다.  흡혈귀 이야기지만, 동시에 인간과 생물이라는 존재의 시간도 갇혀있다는 의미도 들어있다.

연극의 인상을 강렬하게 받아 뮤지컬을 제작했다고 했다. 뮤지컬로 만든 이유와 이 작품으로 무엇을 바랐나?
ㄴ 이용균 : 공연을 본 건 아니고, 2년 전 대본을 어떻게 보게 됐다. 아주 좋은 작품이라 연극으로 그냥 올리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뮤지컬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봤다. 그러다 작년에 다시 꺼내 읽어보니 음악을 입히면 다른 색깔이 나올 것 같아 작가님을 만나 부탁했다. 작가님께 작품에 대한 주제를 여쭤봤는데, "연출님이 생각하는 대로 만드시면 됩니다"라고 답이 왔다. 프로그램 북을 만들다 보니 연출과 작가의 글이 들어가는데, 제작과 연출을 같이 맡다 보니 한편은 지킬 박사이고, 한편은 하이드의 상황이다. 여러 메시지가 있는데 그중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내용을 말씀드리고 싶다.

'우리가 머물 곳' 넘버를 보면, '아냐'가 아파트를 사기 위해 37년의 돈을 모아야 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는 일반 서민의 모습을 풍자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ㄴ 김나정 : 작품에 그 메시지가 들어 있는 것은 맞다. 시간은 흡혈귀에겐 무한한 자원이고, 인간에겐 한정되어 있다. 처음엔 흡혈귀는 피만 빨고 오래 살 것으로 생각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 땅에서 살기 위해 치러야 할 몫이 있다고 봤다. 흡혈귀는 피만 있으면 불멸이지만, 그것은 의식주 중 '식'에 불과하다. 옷도 필요하고, 핸드폰 요금도 내야 하고, 집도 필요하다. 이런 점은 인간과 흡혈귀가 다르지 않다고 봤다. 그런 아이러니함이 인간이 지니고 있는 팍팍한 삶의 조건을 흡혈귀를 통해 잘 보여줄 것이라 봤다. 아파트를 사기 위해 37년이면 된다는 것은 흡혈귀에겐 별 시간도 아니라는 농담처럼 들리지만, 인간에겐 인생의 절반 이상이라는 것을 담으려는 메시지가 맞다.

이 작품의 매력은 무엇이라 보는가?
ㄴ 이용균 : 훌륭한 뮤지컬 배우들과 작업할 수 있는 것이 매력이다. (웃음)
 

   
▲ (왼쪽부터) 김도빈, 문혜원, 한수림, 진아라, 이지호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쏘냐'를 연기하게 된 소감을 듣고 싶다.
ㄴ 진아라 : 항상 선택되는 입장인데, 세월 때문에 '쏘냐'를 하게 됐다. 마음 만은 '아냐'를 하고 싶다. (웃음) '쏘냐'가 '상자 속 흡혈귀'의 중추적인 역할을 해야 해서 매력 있었다. 연기가 항상 고픈 저에겐 잘됐다 싶어서 이 작품을 하게 됐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마음은 아니다. (웃음)

더블 캐스트인 문혜원과 호흡은 어떠했나?
ㄴ 진아라 : 2009년 뮤지컬 '아킬라'를 통해 제 딸로 나온 적이 있는데, 이젠 저랑 더블을 하게 되니 아이러니다. (웃음) 굉장히 배울 게 많은 친구다. 자기 자신의 싸움에서 항상 승리하는 이 친구를 보며 앞으로 저 먼 훗날까지 좋은 배우로 남기 위해 노력해야겠다고 봤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ㄴ 김혜영 : '어디에서 어디로' 넘버는 리딩 때 없었고, 수정 후에 마지막으로 들어가게 됐다. 흡혈귀와 사람들에게 가장 어울리고, 그들을 대변할 수 있는 곡이어서 제일 좋아하고 있다.

'바냐' 캐릭터의 매력은?
ㄴ 김도빈 : 제가 이 친구 거까지 다 이야기하겠다. 간단히 말하면 느끼함과 담백함이다. (웃음) 이게 끝이다.

이지호 : 느끼함, 담백함은 그럴 수 있는데, 좀 더 제가 활기차다. 도빈 형보다 밝은 에너지가 있어서, (웃음) 긍정적으로 임하고 있다. 도빈이 형이 여러 공연에 출연해 굉장히 바빠서 항상 쳐져 있다. (웃음)
 

   
▲ 김도빈(왼쪽)과 이지호(오른쪽)가 '바냐'를 연기한다.

'꽃사장' 역할을 맡은 서로에게 덕담을 해달라.
ㄴ 최연동 : 지난해 배성우 배우와 연극 '복서와 소년'에서 더블 캐스트로 공연을 했다. 그러더니 올해 갑자기 TV에 형님이 많이 나오셨다. 그 이야기 즉슨 올해 저와 더블캐스트 하는 김대범 배우도 내년에 그대로 잘 될 것이라는 의미다. 앞으로 기대되는 배우이니 많이 사랑해달라. 저는 곁다리로 껴있는 배우다. 에너지가 넘쳐나서 술을 한 잔 안 마셨는데 항상 마신 것 같고, 담배를 안 피우는데 말을 많이 해서 목 상태가 항상 걸걸하다. (웃음)

김대곤 : 평소에도 작품을 같이 하고 싶은 친구였다. 이번에 더블 캐스트를 해서 혹시나 두 번 보신다면 둘이 같은 스타일이겠지만 다른 점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연기 스타일과 육성 등이 다 달라서 서로 같이 영차영차 하며 네 것 내 것 서로 좋은 거 가져가자는 식으로 연습해서 이 작품의 좋은 양념이 되려 한다. 앞으로 많이 지켜봐 주시옵소서. (웃음) 최근에 사극을 찍어서 습관이 나왔다. (웃음)

'꽃사장'은 어떤 역할인가?
ㄴ 김대곤 : 단순히 재미만 가지고 하는 역할은 아니다. 이 공연을 연습하면서, 보고 있자면 먹먹함이 묻어나고 분위기가 있다. 악해야 할 때는 악하고, 재밌게 해야 할 때는 재밌게 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는데 연습 중 상당히 진이 빠졌다. 이 작품의 양념이자, 악의 축인 역할을 진지하고 담백하게 잘 표현하려 한다. 멀티 역할인데 주 배역이 '꽃사장'이다.
 

   
▲ 김대곤이 '꽃사장'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최연동 : 일반 사람이다. '꽃사장'이 의미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 줄 아실 것 같다. 성매매 포주 역할이다. 그 장면을 통해 여러 부정적 직업과 흡혈귀가 나쁜 존재일 수도 있는데 그 안에 치열하게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도 담은 것 같다. 여자를 무슨 꽃, 무슨 꽃으로 비유하지만, 누군가의 엄마고, 딸이라는 표현을 하고 싶었다.

어떤 작품으로 관객들에게 새겨지길 바라나?
ㄴ 김나정 : 망연자실한 작품이었으면 좋겠다. 작품을 보고 나온 뒤, 달을 한 번 쳐다보고 "하 사는 게 뭘까?"라는 생각을 하게 해주는 작품이면 좋겠다. 물론 기운이 빠지거나 삶이 싫어진다는 의미가 아니라 서로 다른 사랑하는 존재들에 대해 애잔함 같은 것을 느꼈으면 좋겠다.

끝으로 작품에 대한 PR을 해달라.
ㄴ 한수림 : 아름다운 여배우 선배님들과 멋진 남자배우 선배님들, 그리고 막내인 저가 두 달 동안 열심히 연습한 작품입니다. 훌륭한 대본, 좋은 음악, 멋진 연출력으로 내일 올라갑니다. 제가 더 잘하겠습니다. 파이팅!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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