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아띠에터 박정기] 동숭교회 엘림홀에서 극단 창파의 한스 팔라다(Hans Fallada) 원작, 염정용 번역, 채승훈 각색 연출의 <홀로 맞는 죽음(Jeder stirbt für sich allein)>을 관극했다.

한스 팔라다(Hans Fallada)는 본명은 루돌프 디첸Rudolf Wilhelm Friedrich Ditzen)으로 1893년에 독일 북동부 그라이프스발트에서 법관의 아들로 태어났다. 첫 소설을 발표할 때 아버지의 반대로 그림 형제의 동화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이름에서 따온 한스 팔라다(Hans Fallada)를 필명으로 사용해야 했다.

한스 팔라다 연구에 있어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은 아일랜드의 전기 작가 제니 윌리엄스는 그의 전기 제목을 <하나 이상의 삶<More Lives than One)>으로 붙였다. 이토록 다양한 삶을 산 팔라다는 모르핀, 코카인, 술과 담배, 수면제를 달고 살았다.

그는 일생의 상당 부분을 정신병원과 감옥과 요양소에서 보내지만 작가가 되려는 꿈만은 결코 접지 않았다. 결국 1932년 네 번째 소설 <소시민은 이제 어쩌지?>로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는 나치체제 하에서도 해외로 망명하지 않고 국내에 남아 집필을 계속했으며, 당시에 최고 인기작가들 중 한 사람이었다.

그 외의 대표작으로는 <늑대들 틈바구니에서>, <강인한 구스타프>, <술꾼> 등이 있다. 함펠 부부의 나치 저항 활동에 대한 소송 기록을 바탕으로 한 마지막 작품 <홀로 맞는 죽음>은 국내에서 나치체제를 비판한 최초의 책으로 기록되어 있다. 광적으로 글쓰기에 매달리는 저자는 4주 만에 집필을 마쳤지만 이 책의 출간을 보지 못하고 석 달 후인 1947년 2월에 베를린에서 심부전으로 사망했다.

원작 소설을 번역한 염정용은 서울대학교 독어교육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독일 마르부르크 대학에서 독문학을 공부했으며, 서울대 강사 등을 거쳐 전문번역가로 활동하며 개인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허풍선이 남작 뮌히하우젠>, <독일인의 사랑>, <정보왜곡 경제>, <슈바이처> 등 30여 권이 있다.

채승훈 연출가는 동국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출신으로 극단 창파 대표이자 초대 서울연극협회 회장 역임하고 현재 수원대 연극영화학부 학부장이다.

<쌍시>, <일가일구>, <햄릿머신>, <꽃 잎 같은 여자 물 위에 지고>, <푸른 관 속에 잠긴 붉은 여인숙> 등의 실험극들로 8, 90년대 연극계에 충격을 준 연출가다. 2000년대에 들어서도 <마의태자>, <햄릿>, <문 빌리지> <이 웬수> 등으로 이어지는 그의 실험극에 대한 열정은 계속된다.

그의 <두드리 두드리>에 대한 열정은 독특하면서도 진지한 역사인식의 태도, 가장 진보적이면서도 실험적인 연극표현의 장을 통한 관극체험을 제공하고, 동아연극상 , 영희연극상 , 평론가협회상 , 백상예술대상 외의 많은 수상을 했다.

연출작으로는 <출구와 입구> <한스와 그레텔> <옥수수 밭에 누워있는 연인> <검둥이들> <네온 속으로> <죽음의 집 2> <래디칼> <누가 우리의 광기를 멈추게 하라> <우리는 영원한 챔피언> <한여름 밤의 로미오와 줄리엣> 그 외의 다수 작을 연출했다.

히틀러가 일으킨 전쟁에서 아들이 무의미한 죽음을 맞자, 노동자 부부 오토와 안나 크방엘은 나치에 맞서 싸우기로 결심한다. 그들이 선택한 방법은 엽서에 반(反)히틀러 메시지를 적어 통행인이 많은 건물에 놓아두는 것이다.

그러나 2년 동안 뿌린 276통의 엽서는 18통을 제외하고 고스란히 게슈타포의 손으로 들어갔고, 크방엘 부부는 투옥됐다. <홀로 맞는 죽음극단 창파의 한스 팔라다(Hans Fallada) 원작, 염정용 번역, 채승훈 각색 연출의 <홀로 맞는 죽음(Jeder stirbt für sich allein)>은 베를린의 한 노동자 부부가 1940년부터 1942년까지 저질렀던 불법 행위에 관한 게슈타포의 실제 기록을 바탕으로 각색한 연극이다.

이 연극은 나치에 저항한 인물들에게로 향해 있지만, 실제로 이 작품의 심층에 숨어 있는 내용은 엽서와 경마라는 주인공의 두 가지집착에서 출발한다.

이것은 나치 통치하의 사회에서 거의 모든 사람이 잔뜩 웅크린 채 썩어가고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경마에 몰입해 승부에 따른 일확천금을 꿈꾸며 일상을 잊으려고 했다는 당시의 풍조다.

그렇다고 해서 오토와 안나 부부의 이른바 나치의 대한 저항이 전혀 무의미하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그런데 그들이 빠져들었던 것은 나치라기보다는 경마 쪽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 그들 스스로는 몰랐지만, 그들이 쓴 엽서는 경마에 대한 사형선고다.

원작 <홀로 맞는 죽음극단 창파의 한스 팔라다(Hans Fallada) 원작, 염정용 번역, 채승훈 각색 연출의 <홀로 맞는 죽음(Jeder stirbt für sich allein)>에서 경마의 권력은 에노 클루게라는 인물을 통해 거의 완전한 형태로 구현되고 있다. 다시 말해 경마에 대한 그의 집착은 가히 초월적이라 할 만하다.

에노는 이 세상이 악으로서 존재한다는 사실과 그 악이 가진 무서운 권력에 대해 완벽하게 무지한 상태로 삶을 살아가는 인물이다. 나치와 게슈타포가 주변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잔인하게 찢고 뭉개는 상황에서도, 나치가 일으킨 전쟁으로 인해 제 아들이 괴물로 변하는 것을 보고도, 심지어 한때 사랑했던 아내에게 죽은 개 취급을 당해도, 그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그의 관심은 오로지 경마뿐이다. 경마를 할 수만 있다면, 그에게는 괜찮은 세상인 것이다.

"에노 클루게는 너무나 경솔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 경솔함은 생각이 없어서라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운명에 대해 너무나 무관심한 결과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

경마는 히틀러의 통치가 악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게 만드는 힘, 즉 근본악의 알레고리이다.

따라서 이 작품의 프로타고니스트(protagonist)가 오토와 안나 부부의 엽서라고 한다면, 그들의 안타고니스트(antagonist)는 그들을 추적, 체포, 억압한 나치 체제와 게슈타포가 아니라 바로 에노 클루게의 경마이다.

극단 창파의 연극에서는 에노 클루게의 경마부분은 제외하고 오토와 안나 크방엘 부부의 엽서 쪽에 비중을 두고 구성했다.

무대는 커다란 흑색바탕에 나치의 기치 형태의 중간 막을 사용해 출연자들이 열고 닫음으로써 장면전환에 대비한다. 배경 가까이 탁자와 의자를 배치해 역시 출연자들이 장면전환에 대비한다. 객석 뒤 계단이 등퇴장 로가 되고, 무대 좌우에도 등퇴장 로가 있다. 배경에는 히틀러의 영상과 당시 학살당한 600만의 유태인의 시신을 매장하는 장면이 영상으로 투사된다. 나치병사들의 의상에 공을 들인 것이 기억에 남는다.

연극에서는 크방엘 부부가 외아들의 전사를 통지 받는다. 죽은 아들은 백색의상을 착용하고 음악연주에 맞춰 춤을 추듯 몸을 흔들며 등장해 부모 곁을 배회한다, 오토는 나치에 저항하는 문구가 적힌 엽서를 만들어 이웃 부락에 배포한다.

이 엽서가 게슈타포의 손에 들어가고 범인추적에 나선다. 많은 게슈타포 대원들이 오토 크방엘이 작성한 나치저항 엽서를 무대에 흩날리는 장면, 먼저 안나 크방엘이 게슈타포에게 끌려가 고문을 당하는 모습, 오토 크방엘도 끌려가 끌려가 심문 당하는 광경이 차례로 펼쳐진다.

심문과 자백강요에 따른 무자비한 고문, 그리고 유도심문에 의한 범행간주로 이어진다. 그러나 오토와 안나 부부는 비록 비명은 지르고 바닥에 나둥글지만 의연하고 당당한 자세로 임한다. 결국 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부부가 각자 죽음을 맞게 되고, 담당 검찰 격의 에셔리히도 부부의 사형선고에 대해 양심의 갈등을 드러내고 스스로 총구를 머리에 겨누고 자살하는 장면, 부부의 죽은 아들이 연극의 도입에서처럼 춤을 추듯 몸을 흔들며 배회하는 장면에서 연극은 끝이 난다.

나치나, 일제치하나, 현재나, 범행을 자백 받기 위해 자행되는 담당 기관의 행태에 비견되는 연극이다.

맹봉학이 오토 크방엘, 오민애가 안나 크방엘, 박정근이 에셔리히, 하경화, 한형민, 박정호, 김크도, 김영훈, 김한아, 이진철, 박빛재환, 김두호, 신서호, 김광래, 이채원 등 출연자 전원의 인물성격설정에서부터 호연과 열연이 기억에 남는다.

 

무대미술 표종현, 조명디자인 신 호, 무대감독 박정호, 음향 김영훈, 영상 이재성, 그래픽디자인 이혜경, 의상제작 김주영 김지인 이혜주, 조연출 한형민 김영훈, 기획 김한아 나수아 등 스텝진의 열정과 기량이 드러나, 극단 창파의 한스 팔라다(Hans Fallada) 원작, 염정용 번역, 채승훈 각색 연출의 <홀로 맞는 죽음(Jeder stirbt für sich allein)>을 연출가가 선호하는 기억에 길이 남는 한편의 잔혹극(Theater der Grausamkeit)으로 창출시켰다.

 

▶공연메모
극단 창파의 한스 팔라다 원작 채승훈 각색 연출의 홀로 맞는 죽음
- 공연명 홀로 맞는 죽음
- 공연단체 극단 창파
- 원작 한스 팔라다
- 번역 염정용
- 각색 연출 채승훈
- 공연기간 2017년 11월 22일~30일
- 공연장소 엘림홀
- 관람일시 11월 30일 오후 8시

 

[글] 아티스트에디터 박정기(한국희곡창작워크숍 대표).
한국을 대표하는 관록의 공연평론가이자 극작가·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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