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임으로 읽어주는 햄릿' 공연 리뷰
8월 31일(수) 오후 7시 30분, 달서아트센터 와룡홀

사진='움직임으로 읽어주는 햄릿' 공연 장면 /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제공
사진='움직임으로 읽어주는 햄릿' 공연 장면 /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제공

카이로스(KAIROS)의 '움직임으로 읽어주는 햄릿' 공연이 지난 8월 31일, 대구 달서아트센터에서 열렸다. 

'햄릿'이란 작품, 책으로 읽은 사람이 더 많을까, 공연으로 본 사람이 더 많을까?

아마도 후자이지 않을까 싶은 성급한 판단이 쉬운 것도, 그만큼 대중에게 친숙한 작품이기 때문일 것이다. 친숙하다는 것은 한편으론 따분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법한데, 제목에 붙은 '움직임으로 읽는다'는 수식어가 예사롭지 않다.

안무자 김영남의 내레이션을 시작으로, 죽은 선왕의 귀신이 아들에게 억울함을 하소연하는 장면이 길게 펼쳐진다. 때는 칠흑같이 어두운 새벽 시간이니, 혼령의 바수어진 하얀 뼈들이 이리 절뚝 저리 절뚝거리며 흐느끼는 표현이, 마치 한 편의 얼굴 없는 마임을 보는 듯한 환상감으로 관객을 압도한다.

사진='움직임으로 읽어주는 햄릿' 공연 장면 /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제공
사진='움직임으로 읽어주는 햄릿' 공연 장면 /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제공

오호라! 이 무용극, 사람의 생각이나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것은 비단 머리만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가 죽고 숙부가 왕이 되어 있는 상황, 아버지의 죽음이 숙부에 의한 타살로 의심되는 상황, 그러한 와중에 어머니가 숙부와 결혼한 상황, 실수로 사랑하는 사람의 아버지를 죽이게 된 상황, 그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마저 잃게 된 상황 등.

원작에서 주인공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엄청난 번민과 고뇌의 과정은 비극 '햄릿'을 400년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세계적인 문학 작품이라 불리게 한다. 하지만 본 공연에서는 그러한 심리적 진통에 대하여 일절 말이나 글로 언급하지 않고 오로지 몸으로 표현함으로써 그 사유의 깊이를 오롯이 관객의 몫으로 돌린다.

사진='움직임으로 읽어주는 햄릿' 공연 장면 /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제공
사진='움직임으로 읽어주는 햄릿' 공연 장면 /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제공

심장의 박동소리가 쿵덕쿵덕 무대를 울리는 가운데 'TO BE'와 'NOT TO BE', 백과 흑, 양면의 얼굴을 지닌 햄릿이 고뇌의 몸부림을 춤출 때 이 무용극의 재기 발랄함은 절정을 이룬다. 

봉춤이라 하면 '아하!' 할 폴댄스가 부추기는 감각적 심상은 내면이라는 추상을 몸이라는 형상으로 감각화시킨다. 

폴댄스가 오필리어의 죽음에 대한 씬에서 더욱 화려하게 연출된다. 무용수의 부드러운 피부 표면에서 일정치 않은 모양으로 새끈새끈 솟아오르는 근육의 움직임은, 삶의 순간순간에 꿈틀거리게 되는 인간 내면의 오묘한 아름다움과 닮아 있다. 

사진='움직임으로 읽어주는 햄릿' 공연 장면 /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제공
사진='움직임으로 읽어주는 햄릿' 공연 장면 /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제공

객석에선 박수로 대신한 환성이 쏟아졌다. 기다랗고 미끄럽기만 한 봉 하나에 매달려 있는 몸 전체, 어쩌면 우리의 삶 전체, 그 얼마나 위태로운 아름다움인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햄릿이 이 무용극을 보았어야 좋지 않나 싶은 순간이었다.

생을 사유하는 모든 방식이 담겨 있는 문학 작품, 그 추상적인 것을 물리적인 몸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상당히 돋보였던 작품이다.

'사느냐 죽느냐' 번민에 찬 햄릿, 흑백의 두 얼굴이 끊임없이 교차하면서 관객 혹은 허공을 향해 일렁이던 와중, 무용수는 잠시 가면을 벗고 제 얼굴을 드러낸다. 무슨 의미였을까?

'그대 이름은 연약한 자'라는 환청이 무대를 가득 메운다. 사람들은 햄릿을 '우유부단함의 상징이다', '결정 장애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우리 각자의 내면의 모습임을 직시하라고 조용히 경고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사진='움직임으로 읽어주는 햄릿' 공연 장면 /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제공
사진='움직임으로 읽어주는 햄릿' 공연 장면 /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제공

결정이란 최종적으로 감정의 결재를 받아야 이루어질 수 있는 것. 마지막 햄릿과 레어티즈의 결투 직전, 마치 모든 것은 하늘에 달려 있다는 듯이 단호한 목소리의 햄릿에게는 그 어떠한 우유부단함이나 결정 장애 따위 엿보이지 않았다. 

아버지들의 잘못으로 인해 각자가 복수의 화신이 될 수밖에 없었던 햄릿과 레어티즈, 그리고 이들 죽음의 화근이 된 클로디어스 왕, 거트루드 왕비, 모두가 피로 쓰러진 엔딩 씬에서 '반역이다'하고 외치는 소리들이 사방을 시끄럽게 울리는 가운데, 어둠을 물들이는 붉은 조명과 사방에 휘날리는 종잇조각들은 핏빛 세례 같기도 하고, 경악한 사람들의 수군거림 같기도 하고, 욕망과 복수라는 광기가 어린 불꽃놀이처럼 보이기도 했다. 

나른한 수요일 저녁에 춤으로 읽어보는 햄릿에 대한 단상, 공연 시간이 짧은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이 정도면 대구가 자랑할 만한 독창적인 극무용단이라 할 만하지 않을까? KAIROS!

글=서경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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