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속 살인 소재, 다양한 철학적 담론 녹여낸 작품
대화가 유발하는 극적 서스펜스 돋보여
길은성 대사 소화력, 손우현 1인 2역 연기 눈길
9월 24일까지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

사진=연극 '테베랜드' 공연 장면 / 쇼노트 제공
사진=연극 '테베랜드' 공연 장면 / 쇼노트 제공

[문화뉴스 장민수 기자] 롤랑 바르트, 소포클레스, 도스토예프스키, 모차르트, 오이디푸스. 이들의 이야기를 하나의 작품에서 논하면 어떨까. 연극 '테베랜드'가 이를 실현했다. 폭넓은 주제를 날카롭게 파고들며 관객을 유혹하는, 지적이고 세련된 작품이다.

'테베랜드'는 우루과이 출신의 극작가 세르히오 블랑코가 테베의 왕 오이디푸스 신화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시킨 작품이다. 아버지를 죽이고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수감 중인 마르틴, 마르틴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의 이야기를 담은 연극을 준비하는 극작가 S, 그리고 마르틴 역으로 무대에 오르는 페데리코에 관한 이야기다. 

광범위한 분야에 철학적 담론을 녹여내 전달하다 보니 쉽지만은 않다. 그러나 극 안에 나름의 설명이 녹아있기에 마냥 불친절한 극도 아니다. 관객의 관심도와 취향 여부에 따라 기막히게 흥미롭거나 혹은 지루하거나, 만족도는 극과 극으로 갈릴 듯하다.

사진=연극 '테베랜드' 공연 장면 / 쇼노트 제공
사진=연극 '테베랜드' 공연 장면 / 쇼노트 제공

수많은 주제와 이야기로 채워졌지만 큰 축을 꼽자면 대화와 연극으로 볼 수 있겠다.

극에서 대화는 그 자체로 수단이며 목표다. 러닝타임 내내 S와 마르틴, 페데리코 사이 대화는 끊이질 않는다. 신화, 문학, 음악, 스포츠 등 다양한 주제를 바탕으로 질문과 대답, 논쟁이 펼쳐진다. 

특히 대학 교수인 S와 중학교도 마치지 못한 마르틴의 팽팽한 대립이 흥미롭다. 하나의 주제에 대해 갖는 관점과 해석의 차이가 긴장감을 만들어 낸다. 관객 입장에서는 해당 논점에 대해 자기 생각과 비교하며 듣는 재미도 있다.

사진=연극 '테베랜드' 공연 장면 / 쇼노트 제공
사진=연극 '테베랜드' 공연 장면 / 쇼노트 제공

존속 살인을 소재로 하는 만큼, 특히 가족에 대한 해석이 두드러진다. 혈연으로 이어진 가족과 사회적 의미의 가족을 논한다. 가족 간 범죄가 점차 늘어나고 있는 현시대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화 자체의 중요성도 강조된다. 극 중 마르틴이 살인을 저지른 이유도 결국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해해 주려는 이가 없었기 때문. 그런 그를 위로하고 보듬어 주는 건 S와의 진심 어린 대화다. 

대화의 단절과 이로 인한 관계의 뒤틀림, 그리고 회복의 과정까지. 결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나와 타자의 관계에 끊임없는 대화와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끼게 된다. 늘 5시였던 S와 마르틴의 시간에 1분이 지난 것 역시 이 같은 변화를 보여주는 건 아닐까 싶다.

사진=연극 '테베랜드' 공연 장면 / 쇼노트 제공
사진=연극 '테베랜드' 공연 장면 / 쇼노트 제공

'테베랜드'는 또한 연극에 대한 연극이기도 하다. S가 연극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연극에 대한 여러 이야기가 나오지만, 기본적으로는 삶의 복제 혹은 모방이라는 관점에서의 연극의 의미를 그려낸다.

연극은 현실을 어떻게 그려내는가. 있는 그대로 모사할 수도 있고, 변형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다. 무엇이 옳다 그르다 판단하기보다는, 각자의 경우에 관객에게 어떻게 느껴지는지 직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현실과 복제, 이미지와 실제에 대한 담론도 다뤄진다. 이에 눈앞에 실재하는 배우의 연기가 카메라와 스크린을 통해 이미지로 전달되는 연출적 시도가 흥미롭다. 그 자체로 현실과 복제의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요소다. 

사진=연극 '테베랜드' 공연 장면 / 쇼노트 제공
사진=연극 '테베랜드' 공연 장면 / 쇼노트 제공

인물을 통해서도 삶과 연극의 관계가 표현된다. 오이디푸스, 모차르트, 도스토예프스키 등 부모와의 갈등이 있었던 인물들의 부분적 조각들이 모여 재창조된 게 마르틴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 현실과 연극 속 인물 관계성에 대한 부분도 읽어낼 수 있다.

이 외에도 읽어내고 해석할 만한 부분은 무궁무진한 작품이다. 중요한 건 극을 통해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닌, 질문을 통해 사고하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는 것이다. 

S와 마르틴이 서로에게 질문을 던지면 많은 경우 처음 나오는 대사가 "모르겠어요"다. 생각해 보지 않았거나, 명확하지 않거나, 혼란스러울 때 나올 수 있는 반응이다. 이처럼 극은 혼란으로 가득 찬 '테베랜드'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사고하고 이해하자는 메시지를 던져주는 것은 아닐까 싶다.

사진=연극 '테베랜드' 공연 장면 / 쇼노트 제공
사진=연극 '테베랜드' 공연 장면 / 쇼노트 제공

이 방대하고 논쟁적인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배우들의 역량도 주목할 만하다. 이번 시즌 S 역은 이석준, 정희태, 길은성, 마르틴&페데리코 역은 이주승, 손우현, 정택운이 캐스팅됐다.

이 중 길은성은 서술자이자 관찰자인 동시에 마르틴에게는 아버지 같은 존재인 S를 그려낸다. 때론 온화함하게, 때론 날카롭게 다채로운 매력을 표현한다. 엄청난 대사량을 관객 귀에 쏙쏙 박히도록 소화하는 것 역시 박수를 보낼 만하다. 

손우현의 1인 2역 연기도 돋보인다. 말투와 행동 변화로 차이를 가져가면서도 두 인물이 겹쳐보이게 하는 뛰어난 캐릭터 소화력을 지녔다. 생생히 전달되는 극한의 감정 연기 역시 관객들의 시선을 붙들기에 충분하다. 

한편 '테베랜드'는 오는 9월 24일까지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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