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렇게 인기가 많은 걸까?

이것이 내가 독일에서 경험한 첫 팬덤 문화다.

 

더로즈. 내가 독일에서 케이팝 팬덤 문화를 처음 경험할 수 있게 해준 밴드다. 나는 케이팝 문화에 대해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경험해본 적은 없었다. 케이팝 가수의 노래가 국제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거나, 케이팝 밴드가 다른 나라에서 인기가 많다는 소식을 뉴스를 통해 전해 들었을 뿐이었다. 직접 경험한 케이팝 문화는 내가 생각한 것과 많이 달랐다.

 

케이팝이 자랑스러웠지만, 궁금했다. 왜 그렇게 인기가 많은 걸까? 전 세계 수많은 가수가 새로운 콘텐츠를 지속해 생산하고 있는데 왜 유독 케이팝이 요즘 주목을 받는 걸까? 독일에서 만난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느끼는 점은 노래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케이팝 문화는 하나의 커뮤니티, 특정 콘텐츠를 중심으로 모여 상호작용하는 공동체 문화다. 흥미로운 현상이다.

 

독일에서 생활하다 보면 한국인 커뮤니티를 알게 된다. 기업 관계자분들, 또는 행사 기획 등의 일을 하시는 분들이 통역원을 구하는 글을 올린다. 나는 우연히 케이팝 콘서트의 통역원을 구한다는 글을 보고 지원했다. 그 콘서트가 더 로즈의 콘서트라는 것도 모른 채로 뮌헨으로 향했다. 그때의 결정을 지금 생각해보면 행운이다. 재밌는 일이 일어날지 몰랐기 때문이다.

 

현장은 생각한 것과는 조금 달랐다. 나는 스태프로 고용된 것이었고, 통역보다는 단순노동을 해야 했다. 수백 개의 VIP 입장권을 분류하고 포장하는 일을 했고, 상자를 옮겼다. 나 통역은 언제 하는 거지. 그러다가 첫 번째 통역 업무를 받았다. 콘서트가 끝난 뒤 안내방송을 하는 것. 공연이 좋은 기억이 되기를 바라고, VIP관객만 현장에 남아달라는 공지였다.

 

“Wir wünschen uns, dass jeder von euch eine heilende Erfahrung mit the Rose gemacht hat…“ 다소 긴장한 상태에서 열심히 공지를 읽어내려갔는데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주위 관객들이 모두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공지가 끝나고 쏟아지는 박수갈채. 관객들은 내게 독일어 잘한다며 칭찬을 해줬다.

 

나는 팬들과 질의·응답 시간에도 통역을 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더로즈의 모든 멤버는 영어를 잘해서 영어통역은 필요 없지만, 혹여 관객 중 독일어가 더 편한 사람이 있으면 독일어 통역을 해달라는 말이었다. 독일어는 영어만큼 자신이 없었지만 알겠다고 했다. 그리고 드디어 질의·응답이 시작됐다. 나에게는 문제가 몇 개 있었다. 내가 지나치게 긴장한 이유였다.

 

기차를 타야 했기에, 오후 11시 30분까지는 뮌헨 중앙역에 도착해야 했다. 그런데 오후 10시 40분경에 질의·응답이 시작된 것이다. 콘서트장에서 중앙역까지는 35분가량 소요됐고, 조금만 늦는다면 기차를 놓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당시 뮌헨에 숙소도 예약하지 않았다. 점점 긴장되기 시작했다. 무대 위에서 긴장한 표정으로 빨리 이 시간이 끝나기를 바랐다.

 

“Kann jemand von The Rose auf meine Hände eine Blume aufzeichnen?“ 질문을 마지막 순서로 한 관객이 독일어로 말했다. 나는 긴장한 상태에서 질문을 듣다가 다시 말해달라고 요청했는데, 옆에 있던 친구분이 영어로 바로 통역하기 시작했다. 맙소사. 내 할 일을 내가 하지 못하고 다른 관객이 대신하게 된 것이다.

 

그 자리에서 얼어버렸다. 나는 당황스러웠다. 콘서트는 끝났고, 나는 서둘러 기차역으로 향했다. 터덜터덜 걸어서 기차를 타고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중이었다. 인스타그램 알람이 울렸다. 마지막 질문 했던 관객과 그분의 여자친구 분이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일을 가로채서 미안해요.” 나에게 사과하고 싶다고 했다. 이렇게나 친절한 사람들은 지금껏 만나보지 못했다.

 

가수뿐만 아니라 스태프들에게도 친절한 관객들. 신기한 경험이었다. 이것이 내가 독일에서 경험한 첫 팬덤 문화다. 이 경험이 팬덤문화를 대표할 수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적어도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이 케이팝에 열광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건 노래나 춤 하나의 요소가 아니라 같은 그룹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공동체 안에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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