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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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이웃집 남자」는 부동산업을 하는 중년인 상수가 돈과 여자라는 욕망을 쫓으며 삶에 찌든 채 살아가는 이야기다.

이 영화에 대한 평은 호불호가 갈리지만 배우 윤제문의 능청스러우면서도 정교한 연기를 보고자 한다면 추천할 만한 작품이다. 이 영화 얘기를 꺼낸 이유는 기억에 남는 장면이 하나 있어서다.

어느 날, 상수는 부하 직원에게 이렇게 업무지시를 내린다.

“순댓국밥집 월세 70만원에 내놓아.”

“70만원이나요? 사장님, 너무 비싼 거 아니에요?”

토를 다는 부하직원을 째려보더니 상수는 자신의 사업관에 대해 가르친다.

“이리 와 앉아서 잘 봐. 여기 바둑돌 다섯 개가 있지. 이게 다 네 몫이야. 그런데 내가 두 개를 빼앗아 오면 너는 세 개가 남지. 또 내가 하나 더 빼앗아 오면 넌 두 개 남지. 너는 가만히 있는데 바둑돌 다섯 개 중 세 개를 빼앗겨 두 개만 갖게 되는 거야. 다시 말해서 남의 것을 빼앗아가지 않으면 결국 내 것을 빼앗기는 것, 그게 바로 자본주의라는 거야. 알았어? 얼른 가서 월세 70만원으로 올려!”

돈과 물질만 있으면 이 세상에서 안 되는 게 없다고 믿는다. 그래서 다들 돈과 물질을 쫓아 하나라도 더 획득하고자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사실 돈과 물질이 주는 혜택은 많다. 사는데 덜 불편하고 주변에 사람들을 끌어 모을 힘도 생기고 남보다 더 많은 것을 가졌다는 자부심 내지 성취감도 높다.

그런데 뭐든지 적당한 선을 넘으면 꼭 좋지 않는 일이 발생한다. 적당히 갖고 있어야 더 많은 걸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낚시꾼이 신비의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소원을 이뤄주는 물고기였다.

“당신의 소원을 한 가지 들어주겠습니다.”

“네 목숨은 지금 내 손에 달렸는데 소원 한 가지로는 부족하지.”

“그럼, 두 가지를 들어드릴게요. 제발 살려주세요.”

“두 가지는 적고 세 가지는 어때? 아니 다섯 가지 정도는 돼야지.”

낚시꾼은 모처럼 잡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 자꾸 욕심을 냈다. 결국 아무 소원을 이룰 수 없었다. 물 밖으로 나온 물고기가 그만 죽고 말았기 때문이다.

욕망의 끝이란 있을 수 없다. 한 번 갖고 싶으면 더 많은 걸 갖고 싶은 게 인간의 욕망이다. 그렇게 갖다보면 처음의 만족감이 계속 유지될까? 그렇지 않다. 만족을 느끼는 감각이 점점 무뎌져 더 많고 더 자극적인 걸 원하게 된다.

한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첫 번째 입맞춤은 황홀하다. 두 번째는 친숙한 것이 되고, 세 번째는 일상이 되어 버린다, 그러고 나면 이제 옷을 벗기는 일만 남게 된다.”

또한 지나친 탐심은 고스란히 타인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아홉 개를 가졌음에도 열 개를 마저 채우고자 자기보다 힘없는 사람들에게서 하나를 강탈하려고 한다.

남을 울린 사람의 말년이 행복할까? 언젠가는 그 눈물의 몇 배는 자신이 흘리게 되어 있다.

다시 영화 「이웃집 남자」로 돌아오자.

어느 날, 부하직원이 야무진 표정을 하고 사장인 상수 앞에 선다.

“무슨 일이야?”

“사장님, 저 일 그만두겠습니다.”

불쑥 퇴사의사를 밝힌 부하직원을 상수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쳐다본다.

“도대체 왜? 앞으로 뭐하려고?”

“공무원 시험 준비하려고요.”

“공무원, 그거 재미없을 텐데?”

“뭐 그렇겠죠. 근데 저 그냥 두 개만 갖고 살기로 했어요.”

“두 개?”

“사장님께서 전에 말씀하셨잖아요. 바둑돌 두 개.”

상수는 부하직원을 한심하다는 듯 본다. 그리고 그 후로도 그는 계속해서 돈과 물질을 쫓는다.

그의 인생은 어떻게 되었을까?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바둑돌 다섯 개를 다 채우지 않았다면, 세 개 정도에서 멈췄다면 마무리가 그리 불행하지만은 않았을 거다.

더 많이 갖고 싶겠지만 그 욕망을 억제하고, 갖지 못한 자들의 심정을 이해하고, 자신에게 불필요한 것을 내줄 수 있는 것, 그게 자본주의의 참가치가 아닐까. 지금 당신의 손 위엔 몇 개의 바둑돌이 놓여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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