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댄 외롭고 쓸쓸한 여인 끝이 없는 방황을 하는 
밤에는 별 따라 낮에는 꽃 따라 먼 길을 떠나가네 
<중략>
집시 집시 집시 집시여인/ 끝이없는 방랑을 하는 
밤에는 별 따라 낮에는 꽃 따라 외로운 집시여인"

[집시여인 -  이치현과 벗님들] 

이 노래가 유행할 당시 필자는 미국에 있어서 잘 몰랐지만 한동안 가요계 인기 챠트 1위에 올랐던  히트곡이었습니다. 보통 집시라 하면 남성보다는 여성이 먼저 생각나기에 노래의 제목을 '집시여인'이라 정한 것일까요? 아무튼 이치현이 직접 쓴 노랫말과 음악의 발상이 참으로 독특합니다. 

 

네델란드 화가 프란스 할스(Frans Hals) 작 '집시여인(Gypsy Girl)', 집시여인의 미묘하고도 유혹적인 미소의 순간을 포착하여 그려낸 작품.
네델란드 화가 프란스 할스(Frans Hals) 작 '집시여인(Gypsy Girl)', 집시여인의 미묘하고도 유혹적인 미소의 순간을 포착하여 그려낸 작품.

'집시'라는 족속이 있습니다. 집시는 꼭 인류학적으로 족(族)을 거론하기보다는 필요한 곳에 적(籍)을 두거나 붙 박혀 있지 못하고 그야말로 역마살(驛馬煞)이 온몸에 붙은, 방랑하며 살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그런 종족입니다. 

집시(Gypsy) 라는 말은 영어권에서 부르는 말입니다. 이는 더 정확히 말하면 일찍이  영국에서,  이들을 이집트에서 온 사람들인 줄 알고 Egyptian이라고 부르다가 'E'자(字)가 떨어져 나간 것이라는 유력한 설(說)을 근거로 하고 있습니다. 

또한 다른 말로는 '로마니' 라고도 하는데 정작 집시 자신들은 '롬(Roms)'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로마'에서 유래된 인간이라는 뜻의 '롬'을 선호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불어권에서는 집시를 일컬어 '찌간느(Tzigane)'라 하는데 이는 라벨이 작곡한 동양적 환상곡의 제목인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찌간느>와 동일한 말입니다. 그리고 프랑스 남부의 카마르그 지역 집시는 '지탄(Gitans)'.스페인어로는 '히따노(Gitano)'라 하고  그 밖에 출신지에 따라 보헤미아 출신은 '보히민스', 이집트 출신은 영어권과 마찬가지로 '집시'라고 부릅니다. 

이 집시의 기원은 확실하지 않지만 그들의 언어가 인도의 '산스크릿어'나 '캐시미르어'와 유사한 데가 있어 인도 남부에 살던 '아리안족'이 아닌가 보고 있습니다. 그들은 역사의 흐름에 따라 독일과 프랑스를 거쳐 피레네산맥을 넘어 스페인의 안달루시아까지 진출했고 북미와 남미까지 이르러 그들이 미치지 않은 영역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가는 곳마다 적응하지 못한채 학대와 배척을 당하는 불행을 겪어왔습니다.

실제로 세계 제2차 대전 당시 독일 나치는 유대인과 함께 집시족들을 약 50만 명 가까이 학살했다고 전해지는데 그것은 집시들의 무절제하고 무책임한 생활 방식과 모호한 국적 등이 독일 게르만 민족의 정신적 통일 정책에 방해가 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또한 지금으로부터 약 10여 년 전 프랑스의 '사르코지(Nicolas Sarkozy)' 대통령은 국내 치안의 명목으로 집시들에 대한 강제 추방을 추진함으로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이러한 강제 추방 정책을 무조건 비난만 할 수 없는 것이, 집시 들은 열심히 살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거지 행세와 소매치기, 도둑질 등의 범죄 행위로 프랑스 국민들에게 많은 피해를 주었으며 외국에서 모여드는 관광객들에게도 프랑스에 대한 나쁜 이미지를 심어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집시들의 고유한 음악과 춤은 많은 작곡가들의 창작에 좋은 소재가 되어 그 나라의 예술을 재탄생시키기도 했습니다. 프란츠 리스트의 <헝가리 광시곡>은 헝가리 집시들의 음악인 '차르다시'를 모태로, 그리고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도 그러하며, 드보르작이 보헤미안들의 선율을 채택한 <슬라브 무곡>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그들의 음악이 원형대로 보존된 곳은 스페인으로 예컨대 '플라멩코'는 거의 변형되지 않고 이어져 내려와 스페인의 문화유산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여러 작곡가들이 집시에 관련된 주옥과 같은 음악들을 남겼는데 앞서 언급한 몇몇 작품들 외에도'사라사테'가 작곡한 '집시의 노래'라는 뜻의 <찌고이네르바이젠>을 비롯해 '리스트'의 <헝가리안 랩소디>, '비제'의 <카르멘>, '브람스'의 <집시의 노래> 등 많은 곡들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오늘은 루마니아 출신 작곡가 '죠르쥬 에네스쿠'의  집시음악을 한 곡 선곡했습니다.

루마니아 출신 작곡가 [죠르쥬 에네스쿠]
루마니아 출신 작곡가 [죠르쥬 에네스쿠]

작곡가 '죠르쥬 에네스쿠'는 평생 프랑스에서 활동하면서 루마니아 음악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린 인물로, 문학에 있어서 후기 낭만파 시인인 '미하이 에미네스쿠(Mihai Eminescu)'와 미술에 있어서는 현대 추상파 조각가인 '콘스탄틴 브랑쿠쉬(Constantin Brancusi)'와 함께 루마니아 예술계의 중심인물이기도 합니다.

그가 남긴 집시음악인 루마니아 광시곡 제1번은 루마니아 농민들이 즐기는 그들의 전통 민속무용에 들어있는 빠르고 격렬함(실새)과 느릿하게 풀리며(호리) 소박한 맛을 풍기는 루마니아 민속 무곡의 특징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특히 마지막 부분에 나타나는 현란한 선율은 루마니아 민족의 열정적 색채감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여기서 '광시곡'으로 번역되는 '랩소디(Rapsodie)'는 격한 감정의 기복을 드러내는 열정적인 집시음악의 한 장르로서 집시음악의 대표곡이라 할 수 있는 '사라사테(Pablo de Sarasate)'의 '찌고이네르바이젠(Zigeunerweisen)'도 음악적 성격으로는 일종의 랩소디라 할 수 있습니다.

루마니아 출신 작곡가 '죠르쥬 에네스쿠'의 [루마니아 광시곡 제1번 A장조, 작품번호 11]을역시 루마니아 출신 '세르주 첼리비다케'가 지휘하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들으시겠습니다. 

지난 1996년에 타계한 루마니아 출신의 세계적 지휘자 세르주 첼리비다케는 그 누구보다 완벽한 음악을 추구했던 이 시대의 마지막 장인(匠人)이었습니다.  그런 만큼 연습의 양이 많기로도 유명합니다. 이 때문에 단원들과 자주 마찰을 빚었으며 결국 배척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라이브(Live) 공연만이 진정한 음악이라고 주장하며 심지어 "레코드로 음악을 듣는 것은 '브리지트 바르도'의 사진을 들고 잠자리에 드는 것과 같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연주는 '그 순간만이 살아있는 것'인데 어떻게 생명력을 복제해 둘 수 있겠는가? 레코딩은 음악가에게 선전효과와 돈은 가져다주겠지만 그것은 진짜 음악이 아니다. 모름지기 음악에는 작곡자와 연주자의 혼이 살아 숨쉬어야 한다"는 철저한 현장주의적 음악철학에서 그가 진정한 음악의 수호자였음을 다시 느끼게 합니다. 그러나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여러 음반사에서 그의 연주 실황을 음반으로 제작해 발표하고 있습니다.

George Enesco, [Rumanische Rapsodie No.1, Op.11] Sergiu Celibidache, Cond./ Philharmonic Orchestra(1978, Live Recording)

이 '루마니아 광시곡 제1번'은 루마니아 지방의 민속 선율을 채택했지만 실은 그 지방의 집시들이 즐겨 사용한 선율이고 보면 그들이 음악사에 미친 영향은 가히 크다 아니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음악적인 면을 떠나 인간적인 측면에서 볼 때  옛부터 지니고 있는 그들의 속성인 방랑벽과 자유분방함을 넘어 무분별하고, 무책임하며, 무절제한 삶의 모습이 이 시대에 이르러서는 온갖 범죄 행위로까지 발전해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줌으로 인해 지구촌 국가 공동체들로부터 추방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집시 여인]을 주제로 이야기하다 보니 문득, 최근 우리 사회에 등장한 소위 '개딸'이라 불리는 여인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결국 이들은 오늘날 역사 앞에서 스스로 변화되어야 할 '개혁의 딸'들이 아닐런지요?

"집시 집시 집시 집시여인/ 끝이없는 방랑을 하는 
밤에는 별 따라 낮에는 꽃 따라 외로운 집시여인....."

이들은 언제까지 삶의 모습은 변화되지 못하고 이 슬픈 집시의 노래 만을 부르고 있을것인지.....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강인

예술비평가
사단법인 카프코리아 대표 
국민의힘 국가정책 자문위원(문화)

 

문화뉴스 / 강인 colin15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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