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오혜재] 육서(六書)는 한자의 구조와 활용에 관한 6가지 원리다. 글자를 만드는 원리인 상형(象形), 지사(指事), 회의(會意), 형성(形聲)을 비롯해, 글자를 활용하는 원리인 전주(轉注)와 가차(假借)가 육서에 해당된다. 이중에서 형성문자는 기존의 글자들을 합친 것으로, 한 글자를 이루는 구성요소의 한쪽이 의미를, 다른 한쪽이 소리를 나타낸다.

글자의 생성에 있어 가장 손쉽고 효율적이기에, 한자의 대다수는 형성문자다. ‘홀로 독’(獨) 또한 의미부 ‘개사슴록변 견’(犭)과 소리부 ‘애벌레 촉’(蜀)이 결합된 형성문자다. 개가 무리지어 살기보다 혼자 살기를 좋아한다고 해서 ‘홀로’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현대사회로 와서는 단순히 ‘혼자’라는 뜻 외에도 자주적이고 진취적인 측면에서 그 의미가 다루어진다.

일본의 철학자이자 저술가인 시라토리 하루히코는 저서 『독학』에서 독학의 ‘독’(獨)이 ‘고독하다’는 뜻이 아닌, ‘특정한 스승을 두지 않는다’는 뜻임을 강조한다. 달리 말하면 ‘많은 것들을 스승으로 삼는다’는 것으로, 각 방면에서 최고 수준의 스승을 찾아간다는 의미다.

그는 독학을 기존의 지식이나 기술 등을 흉내내어 배우는 ‘학습’(學習)과 구분한다. 학습이 ‘learning’이라면 독학은 ‘studying’이다. 독학은 단순히 배우는 것을 넘어, 스스로 앎의 목적과 내용, 방법을 찾아내어 터득하는 과정이다. 붓글씨를 예로 들자면, 붓으로 글자를 흉내내며 쓰는 ‘습자’(習字)는 학습이고, 배우는 것을 넘어 자기 나름의 글씨를 쓰는 ‘서도’(書道)는 독학이다.

시라토리는 독학이 유연하고 현명하게 삶을 영위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우리가 사는 세상과 함께 우리의 관점과 지식, 세계관도 끊임없이 변화한다. 그 어떤 것도 고정되지 않는 현실 속에서 자기 혁신을 꾀하고, 변화에 걸맞은 새로운 생활방식과 삶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자발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하다. 독학의 최종 목적은 독자적으로 새롭게 생각하고, 지금까지 없던 견해나 추론을 산출해낼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데 있다.

또다른 일본의 저술가인 야마구치 슈는 저서 『독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에서 ‘독학의 기술’이 지금처럼 요구되는 시대가 없다고 말한다. 중세시대에는 ‘지식’이 교회 도서관에 보관된 책 속에 있었고, 이에 접근할 수 있는 소수의 사람들이 권력을 독차지했다. 그러나 오늘날 모든 지식은 인터넷상에 존재하며, 누구나 자유롭게 인터넷을 통해 이들 지식에 접근할 수 있다. 현시대에 독학이 필요한 이유를 야마구치는 다음의 4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학교에서 배운 지식이 급속히 시대에 뒤떨어지고 있다. 이전에는 학교에서 배운 지식이 전문가의 지적 기반이자 평생의 커리어를 지탱하는 무기가 되었지만, 이제는 이러한 지식이 잘 먹히는 ‘전성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다. 이런 세상에서는 독학을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지식을 주입해야 한다.

둘째, 지금의 구조를 근본부터 뒤집는 ‘혁신의 시대’가 도래했다. ‘산업 증발의 시대’에 있는 현대 사회는 기존의 가치 구조를 근본부터 뒤집는 변혁을 겪고 있다. 산업 구조가 급변함에 따라, 다수의 기존 산업 종사자들이 자신의 전문 영역이나 커리어를 변경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고 있다. 이때 독학의 기술을 익힌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간의 격차가 발생하게 된다.

셋째, 노동 기간은 길어지고 기업의 전성기는 짧아진다. 오늘날 은퇴 연령은 연장되고 있는 반면, 기업과 산업의 ‘전성기 수명’은 짧아지고 있다. 이러한 기업과 산업의 부침 속에서 지속가능하게 살아남아 물질적·심적 풍요로움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독학의 기술이 필요하다.

넷째, 지금은 여러 영역을 아우르고 결합할 수 있는 지식과 역량을 보유한 ‘파이(π)형 인재를 요구하는 시대다. 파이형 인재는 복수 영역에 대한 ‘스페셜리스트’(specialist)로서의 깊은 전문성이 ‘제너럴리스트’(generalist)로서의 폭넓은 지식을 떠받치고 있는 인재다. 대다수 고등교육기관들의 커리큘럼이 ‘전문가 육성’을 목표로 하는 현실에서 광범위한 지식과 견문을 신속하게 습득하려면 독학을 해야 한다.

영국의 저술가 와카스 아메드가 명명한 ‘폴리매스’(polymath)는 ‘파이(π)형 인재’의 다른 말이다. 그는 저서 『폴리매스』에서 인류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폴리매스들을 조명한다. 예컨대 고대 그리스에서는 여러 분야와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자유롭게 연구하는 철학자들을 ‘아토포스’(atopos)라 칭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모두 아토포스였다. 15 세기 르네상스 예술의 거장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폴리매스 예술가의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조각가인 동시에 화가, 건축가, 수학자, 음악가, 엔지니어, 발명가, 해부학자, 식물학자, 지질학자, 지도 제작자, 작가였다.

이 책에서도 폴리매스적 역량을 증진하는 데 있어 독학을 바람직한 이행도구로 본다. 역사적으로 위인들이 달성한 업적의 중요도와 다양성은 이들이 습득한 역량의 범위에 비례해왔다. 개인이 보유한 지식과 기술이 다채로울수록, 이를 융합해 창의적이고 유용한 결과물을 도출할 가능성 또한 높아짐을 역사 속 폴리매스들이 증명하고 있다.

아메드는 폴리매스를 보는 사회의 인식을 그 사회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제도와 기관이 결정짓는다고 지적한다. 기실 사회 구성원들이 무지하고 체제에 순응할 때 기존 질서가 유지될 수 있기에, 정부나 군대, 기업, 정보기관, 종교단체에서는 인지혁명을 꾀하고자 하는 폴리매스를 위험하게 여기곤 한다. 다시 말해 폴리매스는 전문화 시스템을 강화하고, 사회 및 학계에서 분과별로 사람들을 격리·구속하려는 기존 체제에 저항하는 데 있어 강력한 구심점이 된다. 

‘우물을 파도 한 우물을 파라’는 옛 속담이 ‘우물을 파려면 여러 우물을 제대로 파라’로 바뀌어야 할 시대가 도래했다. 초연결성, 초지능화, 융합화에 기반해 전례없는 속도로 변화하는 현재, 나아가 미래에는 독학으로 창출된 폴리매스적 역량과 이에 대한 개방적 태도가 더욱 절실하다. 그 어떤 분야보다 독창성과 개성을 요하는 예술에서도 말이다.

사진=오혜재 독학예술가
사진=오혜재 독학예술가

필자 소개

한국의 독학 예술가(self-taught artist)인 오혜재는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영어영문학 학사(언론정보학 부전공)와 다문화‧상호문화 협동과정 석사 학위를 받았다.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고 2014년부터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려왔다.

2019년 홍콩 아시아 컨템퍼러리 아트쇼를 통해 해외에도 작품을 선보이면서, 국내외 다양한 예술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한국을 비롯해 홍콩, 싱가포르, 이탈리아, 독일 등지의 공모전에서 입상한 바 있으며, 2024년에는 영국의 문화예술 분야 글로벌 구인/구직 사이트인 아트잡스 주최 ‘2024년 2월 이달의 아티스트’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직장인이자 저술가이기도 한 오혜재는 2007년부터 유네스코한국위원회에서 근무하고 있다. 예술서로는 『저는 독학 예술가입니다』(2021), 『독학 예술가의 관점 있는 서가: 아웃사이더 아트를 읽다』(2022), 『아르 브뤼와 아웃사이더 아트: 그렇게 외부자들은 예술가가 되었다』(2024)가 있으며, 예술 비평문과 칼럼도 꾸준히 기고하고 있다. 다년간의 국제 업무 경험과 석사 전공을 토대로, 예술을 통해 다양한 문화 간 이해와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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