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청 “법령개정… 세계유산영향평가·조정회 구성하자”
서울시 “유산청 과도한 주장… 세계 유산 가치에 부정적”

서울시 고시 내용을 바탕으로 만든 세운4구역 건물 가상도. 종묘 상공에서 바라본 모습을 가상으로 제작한 도식도./국가유산청 제공
서울시 고시 내용을 바탕으로 만든 세운4구역 건물 가상도. 종묘 상공에서 바라본 모습을 가상으로 제작한 도식도./국가유산청 제공

(문화뉴스 김영욱 기자) 서울 종묘(宗廟) 앞 재개발 사업을 둘러싼 논란을 두고 국가유산청과 서울특별시가 정면충돌 양상을 보이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유산청은 17일 종묘 인근 재개발 계획을 놓고 갈등을 빚고 있는 서울시에 세계유산영향평가의 시행 및 조정회 구성을 제안했다. 유네스코와의 국제 협력, 관련 법령 개정 등 강경 조치를 지속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세계유산영향평가를 받는 데 부정적 입장을 고수했다.

허민 유산청장은 이날 서울 종로구 고궁박물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서울시의 '세운 4구역이 종묘와 180미터 떨어져 있어 세계유산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며 "서울시가 주장하는 '그늘'은 유산청이 말하는 종묘의 경관 훼손과는 다른 개념이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지난달 30일 종로변의 건물 최고 높이를 55미터(m)에서 98.7m로, 청계천변은 71.9m에서 141.9m로 상향하는 내용의 '세운재정비촉진지구 및 4구역 재정비촉진계획 결정'을 고시했다. 고시에 따르면 세운4구역에 약 40층 높이의 고층 빌딩이 들어설 수 있게 된다. 서울시는 모의 실험(시뮬레이션) 결과 고층 건물이 들어서도 종묘에 그늘이 지지 않아 경관을 훼손하지 않는다고 주장해 왔다.

유산청은 종묘의 세계유산영향평가도 반드시 시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영향평가는 특정 사업이 세계유산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줄이기 위해 실시하는 평가다.

유산청이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조치 중 하나로 유네스코 지침과 세계유산 특별법에 따라 시행된다. 만일 이 평가에서 재개발 계획이 부적절한 것으로 결론나면 완화 조치를 시행하거나 사업이 중단될 수 있다.

허 청장은 "유산청이 서울시의 세운4구역 재개발을 반대하는 입장은 아니다"면서도 "세계유산 가치가 보호되는 선에서 공존 가능한 개발이 이뤄질 수 있도록 영향평가를 조속히 시행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유네스코도 서울시가 유산영향평가를 받도록 하고 검토가 끝날 때까지 사업 승인을 중단하라고 강력하게 권고했다"고 강조했다.

다른 조치도 지속 시행한다. 유산청은 지난주 종묘를 세계유산지구로 지정하였으며 문화유산 보호 규정을 적극 적용하기 위해 법률 검토 중이다. 하위 법령도 개정한다. 세계유산지구로 지정되면 인근을 '유산 보호를 위한 완충구역'으로 지정해 관리할 수 있으며 유산영향평가를 시행할 의무도 부과된다.

허 청장은 "서울시가 종묘의 유산적 가치를 보존하면서도 주민 불편을 조속히 해소할 수 있는 현실적 해법을 유산청과 함께 도모하기를 강력하게 희망한다"며 "빠른 시일 내에 서울시와 문체부, 유산청 등 기관이 참여하는 조정회의 구성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한편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이날 종묘 앞 고층 빌딩 개발계획과 관련해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현행법이 허용한 모든 조치를 다 해 막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 장관은 "(지난 6일 선고된) 대법원 판결의 핵심은 여전히 문화유산의 보호는 현행법으로도 가능하다는 점"이라며 "국가유산청은 법에 정해진 대로 적법한 행정조치들을 취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세계유산영향평가 압박 유감…관계기관 회의는 환영"

반면 서울시는 유산청이 제안한 관계기관 회의를 환영한다면서 관련 논의에 지역주민들을 참여시켜달라고 요구했다.

서울시는 이민경 대변인 명의 입장문을 내고 "국가유산청장이 세운4구역 재정비촉진사업과 관련해 종묘 경관 훼손 가능성을 반복 제기하며 세계유산영향평가를 지속 압박하는 데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시는 세운4구역 재개발이 쟁점화된 이후에야 유산청이 세계유산영향평가 시행의 법적 전제가 되는 세계유산지구 지정을 뒤늦게 했다면서 "서울시의 특정 사업을 겨냥하기 위해 행동에 나섰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라고 주장했다.

또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후 30년이 지났음에도 유산청이 종묘 보호의 기준선이 되는 '완충구역'을 확정하지 않은 것이 문제라며 "이러한 상황에서 서울시에만 세계유산영향평가 이행을 반복 요구하는 것은 종묘 보존에 대한 유산청의 진정성마저 의심케 하는 행태"라고 반발했다.

시는 세운4구역 재개발 사업에 대해선 "남산에서 종묘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녹지축과 좌우로 형성되는 입체적인 도심은 지금의 폐허와 같은 판자 건물이 가로막고 있는 종묘 주변을 더욱 돋보이게 할 것"이라며 "정밀한 시뮬레이션과 종묘와 조화되는 건축 디자인 도입을 통해 경관 훼손이 없음을 이미 검증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유산청장은 서울시 계획의 구체적인 내용을 정확히 확인하고 협의하는 과정 없이 마치 종묘가 세계문화유산 지위를 잃을 것처럼 호도해서는 안 될 것"이라며 "유산청장의 과도한 주장이 오히려 대외적으로 종묘의 세계유산적 가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신중한 언행을 당부한다"고 했다.

시는 "유산청장이 제안한 관계기관 회의를 적극 환영한다"면서도 "수십년간 개발 지연으로 피해를 겪어 온 종로 지역 주민 대표들도 함께 참여해 특정 기관의 일방적 입장이 아닌 민·관·전문가가 함께하는 균형 잡힌 논의 구조가 마련돼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러면서 "서울시는 문화유산 보존과 도시 미래 경쟁력 확보는 어느 하나를 선택할 문제가 아니라 동시에 추구해야 할 두 축임을 분명히 밝힌다. 유산청의 책임 있는 협조를 강력히 요청한다"고 덧붙였다.

국가유산청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종묘 인근 세운4구역 재개발 사업에 문제를 제기한 데 대해 이 일대 토지주들이 "국가유산청이 재개발을 불가능하게 한다면 부당한 행정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물어 손해배상·직권남용 등 민형사상의 책임을 물을 것"이라며 반발했다. 사진은 11일 서울 종묘와 세운4구역 모습./연합뉴스
국가유산청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종묘 인근 세운4구역 재개발 사업에 문제를 제기한 데 대해 이 일대 토지주들이 "국가유산청이 재개발을 불가능하게 한다면 부당한 행정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물어 손해배상·직권남용 등 민형사상의 책임을 물을 것"이라며 반발했다. 사진은 11일 서울 종묘와 세운4구역 모습./연합뉴스

문화뉴스 / 김영욱 기자 brod7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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