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컴포트 우먼'이 만들어진 배경은?

   
 

[문화뉴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요구하기 위해 1992년 1월부터 정기적으로 특정 요일에 집회가 열리고 있다. 이 집회는 매주 무슨 요일에 열리나? ①월요일 ②화요일 ③수요일 ④금요일 (정답은 아래에)

지난해 말 한일 위안부 문제 협상이 타결됐다. 외교적으로는 이 문제가 타협이 이뤄졌지만, 한평생 위안부 상처에 살아온 할머니들을 배제한 협상이었다는 점에서 아직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미국에서 연극을 공부하고 있던 25살 청년 김현준 연출은 정치가 해주지 못한 것을 예술로서 승화시키면서 할머니들과 당시 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픔을 위로하는 뮤지컬을 기획했다. 우리가 위안부라는 거대한 틀에 시선을 빼앗겨 그들의 눈망울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인 심달연 할머니를 주인공으로 한 권윤덕 작가의 그림책 '꽃할머니', 이를 다룬 다큐멘터리 '그리고 싶은 것', 변영주 감독의 '낮은 목소리'도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기억과 오늘의 삶, 그리고 그들의 내일을 향한 시선을 예술 속에 담았다.

아픈 과거를 기억하라는 것. 그리고 그들을 잊지 말라는 것. 뮤지컬 '컴포트우먼'은 지난해 3월 6일 브로드웨이 최고의 디너쇼 공연장으로 잘 알려진 '54 below'에서 첫 시사회를 한 후, 7월부터 오프브로드웨이 최대 규모인 '세인트 클레멘트'에서 공연을 진행했다. 현재까지 총 18회 공연을 성황리에 마쳤고, 10월에는 다시 한 번 '54 below'에서 특별 앙코르 공연을 올렸다.

줄거리는 이렇다. 1941년 일본군에게 잡혀간 오빠를 둔 소녀는 오빠를 되찾기 위해 높은 임금을 주는 직장에 취업시켜주겠다는 일본군의 말에 속아 도쿄로 간다. 그러나 그는 인도네시아로 끌려가고 그곳에서 또 다른 위안부들과 탈출을 계획한다. 세계에 우리의 아픈 역사를 알리고, 세계 최고의 무대 브로드웨이에 어린 나이에 도전장을 내민 김현준 연출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지난 연말에 많은 주목을 받았는데, 소감이 어떠한가?
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소재를 담으면 관심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몸소 실천돼서 좋다. 항상 쇼비즈니스를 하면서도 유희보다 사회적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는데,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것 같고, 많은 분의 관심도 받아서 감사하다.

 

오늘날 주목받은 것에 대해 예상한 적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ㄴ 처음에 예상하지는 못했다. 이 소재뿐만 아니라 다른 소재도 다루었는데 이 소재가 예상치 못한 속도로 관심을 받았다. 이러한 과정 중에 이 토픽이 관심을 더욱 끄는 것을 느꼈다.

한국에서 공연 끝나자마자 7월 말 오픈 8월 중순까지 첫 인터뷰를 한 거로 알고 있다. 당시 인터뷰를 보니까 첫날과 둘째 날 공연이 매진되고, 잠시의 힘든 기간이 있었다고 들었다.

ㄴ 1, 2회가 선매진이 됐다. 그리고 공연 초반에는 힘들었다가, 이후 16회까지 선매진이 됐다.

1, 2회 공연 매진은 사전 입소문이 빨리 퍼졌다는 걸 보여주는데, 적극적인 홍보를 했었나?

ㄴ 홍보 전략은 "철저하게 미국인들에게 홍보하자"고 세웠다. 한인타운에도 전혀 가지 않았고, 오히려 이 연극을 보다 현지화시키고자 했다. 그래서 철저히 미국언론과 미국 관객에게 접근했다. 그러한 측면에서 입소문이 빨랐다고 본다.

상업적인 측면에서 수완이 느껴진다. 따로 배운 것이 있는지. 계획이 있었나?

ㄴ 한국작품들이 주로 미국에 와서 마케팅하면 한인 타운에서 한인들한테만 어필하고, 미국 사람들은 아무도 그 작품을 모르는 채 막이 내리는 걸 자주 봤다. 이러한 마케팅에 싫증을 느꼈다. 그래서 어떻게 현지화할까 고민했다. 그래서 스태프들도 다국적으로 뽑았고, 한국적인 소재지만 보편성을 가지고 세계인에게 담백하게 느껴지도록 하고자 했다. 그래서 애국주의와 같은 주관적인 요소를 제외하고 보편성에 따라서 현지화에 힘썼다. 사실 홍보에 힘썼다면 한인타운에 더 갔을 것이다. 단기적인 홍보 부분을 배제하고 현지화하고자 했다. 그래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두려움도 있었다.

 

   
▲ 뮤지컬 '컴포트 우먼'의 한 장면. ⓒ 김현준 연출

현지화 전략을 위해 자문을 구했을 것 같다.

ㄴ 오프 브로드웨이나 브로드웨이 프로듀서분들께 자문을 많이 구했다. 연극팬들이 어떤 매체와 일간지를 많이 보는지 알아봤다. 그래서 연극계에 저명한 잡지들에 우리 작품을 다뤄달라고 여러 차례 요구했다. 헝그리 정신을 가지고(웃음). 그래서 적은 예산으로 최대의 효과를 본 게 아닌가. 원래 가격보다 적게 일간지 전면에 실어달라고 부탁했다. 다들 홍보 대행사가 직접 와서 이러한 부탁을 하는데, 나의 경우 연출이 직접 찾아가서 부탁하니까 매체에서 진심을 알아봐 주시고 기사를 태우어주셨다.

200명한테 제안을 하고 18명한테 승낙을 받았다. 거절당할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ㄴ 200분께 제안을 했고, 그중 40명이 승낙했다. "일본인 바이어가 관련됐다. 아시안 이야기를 미국에서 누가 관심을 가지냐."며 투자금에 대한 환수에 의문을 많이 가지셨다. 또한, "신인이라서 위험이 크다. 아시안 배우에게 누가 관심을 가지냐" 는 등의 말들로 거절하셨다.

힘들 때, 어떤 피드백을 받고, 어떤 개선을 했는지 궁금하다.

ㄴ 언론을 찾아다녔다. 언론에 노출될 수 있는 그림으로 특파원이나 언론에 계속 노출했다. 갈라쇼, 배우 리딩과 같은. 따라서 기사가 계속 늘어났을 때, 거절했던 투자자들이 돌아오기도 했고, 투자 금액을 늘린 경우도 있었다. 나의 공신력을 증명하기 위해서 계속 우리 작품을 외부에 노출했다.

그러면 투자금은 어떻게 됐는가?

ㄴ 현재 원금으로만 하면 위험이 너무 컸다. 그래서 '컴포트우먼'이 나중에 장기공연화 돼서 투자금으로 이익을 얻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번 공연은 쇼케이스라고 생각하고, 수익을 장기적으로 봐달라고 요청했다. 그래서 모든 계약은 러닝계약으로 퍼센트로 이익을 분배하겠다고 계약했다. 그래서 원금의 몇 배를 드리도록. 다행히 이번에 가능성을 보인 것 같다. 앞으로 재공연이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따라 투자자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겠다.

미국 내 재공연 계획은 어떻게 되고 있는지 알고 싶다.

ㄴ 48개 극장이 항상 오픈런이기 때문에, 브로드웨이 공연은 계속 진행 중이다. 우리나라처럼 대관 신청이 아니라 극장은 극단에 아이템을 가지고 있을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앞의 팀 공연이 끝나고 아이템이 있어서 타이밍이 맞으면 올라간다. 현재는 그래서 공연을 올릴 자금만 준비하고 있다. 전문 법무법인이나 투자업체들에 연결해서 펀딩과 같은 방식으로 자금을 모으고 있다.

   
 

갑작스럽게 규모가 커져서 고민이 많을 것 같다.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인가?

ㄴ 미국이나 중국에서 외국 공연이 긍정적으로 검토되고 있다. 오히려 한국공연에서는 정치적으로 휘말려서 어려운 상황이다. 내가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에서 위안부 문제가 타결돼서, 복잡해졌다. 도착한 날, 내가 생각한 그림과 다른 그림이 펼쳐졌다. 이전에는 모든 기획사가 우리랑 작업하자고 했는데, 와서 막상 만나보니 정치적으로 두려워서 기획사들이 말을 달리했다. 그래도 아직도 같이 작업하고 싶다는 기획사들이 있어서 다행이다. 대관문제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논란을 피해 2017년 초나 여름쯤에 공연을 진행하려고 한다.

수많은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가장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ㄴ '컴포트 우먼'은 정치적인 색채를 가지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할머니들'께 초점을 맞춘 작품이다. 일본을 욕하고 한국이 피해국이라는 정치적인 사안을 넘어서 고통받은 할머니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정치적인 논란으로만 이를 언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색깔론으로 보지 않더라도, 주변에 있는 일본인들이 불편하셨을 수도 있다.

ㄴ 그래서 전화나 이메일, 심지어 편지로 협박을 받은 적도 있다. "왜 있지도 않은 이야기를 만들어서 역사를 왜곡하느냐?", "죽여버리겠다." 등 협박 편지를 받은 적도 있다. 일본어 메일. 전화. 심지어 배우로 출연한 일본인 분들도 일본인들 사이 논란에 휘말렸다고 한다. 대략 일본인 7명 한국인 8명, 중국인, 대만인, 싱가포르 사람, 홍콩인, 멕시코인, 티베트 사람, 필리핀 사람, 인도네시아인 등 11개국 출신의 배우들이 참가했다.

나라구성원만 보아도 위안부 문제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상황이 아니다. 해외에서도 주목했을 것 같은데, 중국에서 진행은 어떻게 되고 있나?

ㄴ 중국 프로듀서분들은 모든 캐릭터를 중국인으로 바꾸고자 한다. 승낙했다. 피해국의 입장으로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좋다고 생각한다. 상관없다. 다만 중심 메시지만 전달됐으면 좋겠다.

 

   
▲ 뮤지컬 '컴포트 우먼'의 공연장 앞에서 김현준 연출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김현준 연출

뮤지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음악 넘버의 힘이라고 생각하는데, 넘버를 만들 때 에피소드가 있는가?

ㄴ 총 18곡이 있다. 작곡가 섭외가 힘들었다. 소재 때문에 작업하기 곤란하다는 작곡가들이 많았다. 지인분들께 부탁해서 한국인 한 명, 미국인 친구 한 명이 참가했다. 미국인 작곡가의 경우, 내가 오프 브로드웨이 조연출할 때 만났다. 그분 음악 샘플을 듣고 함께 작업하고 싶다고 했다. 내가 토픽을 던졌을 때, 강간에 관한 댄스시퀀스라면 어떤 멜로디인지 음악감독들과 이야기를 많이 했다. 더 쪼면 노래가 더 잘 나오더라(웃음).

예를 들어,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을 만났을 때 어느 정도 러브테마가 있다. 그런데 계속 아이러니한 상황으로 끌고 가야 했다. 너무 사랑에 초점을 맞춰서도 안 되고, 너무 아무 사이가 아닌 것도 아니고. 사랑이 행복하게 보여서만도 안됐다. 일부러 수위를 조절해서 중간 점을 맞추느라 이러한 균형을 주문하는 것이 어려웠다. 이 소재가 어려워서 이후 다른 소재들은 잘 다룰 수 있을 것 같다.

18개의 넘버 중 가장 애착이 가는 곡은?

ㄴ 세 개가 있다. 주제곡 'Silence'를 첫 번째로 꼽는다. 고아원을 떠올리고 태호 형이 쓴 곡인데, 뮤지컬로 내가 바꿔서 썼다. 위안부에 갇혀서 처음 겁탈을 당하고 내버려진 상황에서 부른 노래다. 이 뮤지컬의 주된 정서를 표현해준 곡이라고 생각한다. 'There You Go'에서 남자 주인공 민식은 고은이 위안소에 들어와서 여자를 안심시켜주는 캐릭터다. 내가 민식이한테 감정 이입해서 작업했다. 안심시켜주는 과정이 애틋하게 느껴졌다.

끝으로 'Quintet: Escape'는 많은 역사적 사실을 압축시킨 곡이다. 예를 들어, 위안부 할머니들께서 처형당하기 전 단체 사진이 찍히는 것과 일본 군부가 어떻게 사설 모집업체랑 계약을 맺었는지를 복합적으로 표현하는 곡이다. 총살까지. 특히, 총연습을 하면서 많은 점을 한 장면에 넣고 음악적으로 풀어가는 것이 연출적으로 흥미로운 시도였다. 그러나 내용은 심각하다.

▲ 김현준 연출이 추천한 넘버 중 하나인 'There You Go' ⓒ 김현준 연출 유튜브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한 만큼 고증이나 실제 피해자분들을 만나는 과정이 필요했을 것 같다.

ㄴ 위안부에 관련된 한국 책 미국 책을 다 읽어봤다. 미국도서관에는 필리핀 피해자, 네덜란드 피해자 등등 세계 각국의 위안부 피해자들에 관한 책들이 있었다. 이러한 상황들을 극적이게 엮어서 소설화시켰다. 대본들은 이러한 것에 베이스가 돼서 나왔다. 김복동 할머니께서 워싱턴에 오셨을 때 공연 시작 3주 전 배우들과 함께 할머니를 뵈러 갔다. 공연배우와 할머니가 손잡고 노래를 불렀는데, 그 이후에 배우들의 연기가 확연히 달라졌다. 내가 연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배우가 통한 어떤 정서가 있었던 것 같다. 내면적인 집중을 할 수 있었고, 그 캐릭터에 대해 더 애착이 가게 된 것 같다. 미국에 있다 보니 할머니들을 실제로 뵙는데 제한이 있었다. 한국 공연을 준비할 때는 할머니들을 계속 만나면서 작업하고 싶다.

공연을 보신 할머니들이 계신가?

ㄴ 뉴욕 브로드웨이로 보러 오시기로 한 분이 계셨는데, 건강상 문제가 생겨 힘드셨다.

다음에 할머니들을 위한 초대공연도 염두에 두고 있나?

ㄴ 항상 할머니들이 보실 것을 염두에 두고 연출한다. 고문 장면이나 강간장면과 같은 폭력적인 장면을 제한했다. 할머니들께서 공연을 보셨을 때 놀라지 않게 하고 싶다. 특히, 미국에는 이러한 성폭력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으므로, 다시 이런 트라우마를 떠올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법률적인 자문 외에 어떠한 자문을 구했는지 궁금하다.

ㄴ 역사적인 고증은 드라마터그가 알아서 한다. 내가 모든 과정에 포함되어있다. 라이센스 팀에서는 나만 한국인이라서 미국인한테 맡겨도 내가 다 개입해서 마지막에 최종 작업을 했다. 미국에서 성폭력 피해자 단체 오셔서, 문제가 될만한 영상들에 대한 소감을 여쭤봐서 수위를 조절했다. 실제 작가진들에게서도 성폭력 피해자가 있었다. 주연배우도 그러한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피해자 친구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염두에 두면서 작업을 진행했다. 내가 판단할 수 있는 것을 넘어선 분야였다.

   
 

역사 고증과정에서 가장 큰 애로사항은 무엇인가?

ㄴ 일본인들이 2차 대전에 했던 자료가 많이 남지 않아서 고증하는 부분이 힘들었다. 예를 들어 거수문화가 있겠다. 무대 디자인의 경우, 단가를 싸게 해서 비용을 줄이고 싶은데, 배경이 인도네시아라고 보니까 비싼 고목으로 가야 하는 것이 애로사항이었다. 이러한 세세한 부분도 제대로 전달하고 싶었다.

그렇다면 총 작품 준비기간은 얼마나 걸렸는지 알고 싶다.

ㄴ 총 3년 동안 '컴포트 우먼'을 준비했다. 대본은 1년 반 정도. 공연하는 동안에도 계속 대본을 수정했다. 소재가 어려우니까 지루함을 최대한 경계하려고 노력했다. 밝은 소재가 아니므로 조금이라도 지루하면 그 이후 박자가 쳐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를 주의하며 공연을 준비해나갔다.

시간을 24시간 거의 풀로 다 썼을 것 같다.

ㄴ 낮에는 학교에 가고, 저녁에는 일했다. 그리고 교수님들과 합의를 했다. 공연 준비를 할 테니, 'INDEPENDENCE 학점'으로 인정해달라고 요구했다. 다행히 교수님 재량으로 학점을 줬다. 학생이 이 분야에서 혼자 연구할 수 있겠다 싶으면 교수님께서 인정해주셨다.

연출적으로 중점을 둔 것은 무엇인가. 무대 디자인을 중심으로 설명해 달라.

ㄴ 연출한다는 것이 안 보이는 것이 목표였다. 안 꾸민 듯 꾸민 것. 이야기로만 진심을 전달하고 싶었다. 연극적인 요소로 꾸며서 이야기가 방해받는 게 싫었다. 연출자로서 스스로 타협을 했다. 좋은 선택은 아니지만, 노래도 좋고 이야기도 좋은데 연출이 밋밋하다는 평을 각오하고 작업했다. 연출적으로 기획된 게 싫었다. 잔잔하지만 그 파장이 오래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너무 세지도 낮지도 않고 중간 점을 지켜가는 작업에 중점을 두었다.

 

   
▲ 뮤지컬 '컴포트 우먼'의 한 장면. ⓒ 김현준 연출

'컴포트 우먼'을 한국에서 연출할 예정이다. 미국과 다르게 한국 연출에서 바꾸고 싶은 것은?

ㄴ미국에서는 이야기만으로 극적으로 전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다 알고 있는 역사를 반복하면 한계가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 현재도 고민하고 있다. 아마 인물들의 내적 갈등과 캐릭터 구도를 더욱 복잡하게 하지 않을까. 그리고 미국 공연보다 장면이 더욱 추가될 것 같다.

앞으로 어떤 연출가, 예술인이 되고 싶은가?

ㄴ 우리 메시지를 다룰 수 있는 연출이고자 한다. 쇼비즈니스가 아니라, 진짜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 브로드웨이다움이 묻어나는 브로드웨이 쇼. 현실을 반영한 극. 끊임없이 성찰하는 작품. 개인적으로 'FUN HOME'이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레즈비언 만화가가 게이 아버지의 자살을 마주하는 이야기였다. 어마어마한 연출력을 경험했다. 콘텐츠가 이길 수가 있다는 것을 목격했다. 미국에서는 스타마케팅과 더블캐스트가 없다. 모두가 한 명의 배우로 진행된다. 그래서 미국인들이 한국의 더블캐스트를 비판하더라.

또 다른 비판점은 한국만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야기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상업화가 잘 안 된 거 같다. 기존 라이센스 시장을 비판하는 게 아니라 시장에 다양성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가면 스타마케팅과 라이센스에 허덕이게 돼서, 뮤지컬의 가격이 상향될 것이다. 뮤지컬이 어느 순간 오페라처럼 가격이 상향 고공행진 할 수 있다. 미국도 언제까지나 우리에게 싼 가격의 라이센스를 주지 않을 것이다. 우리만의 준비를 해나가야 하지 않을까.

빨리 한국에 돌아오고 싶지만, 미국에서 고생하는 아시아 배우들이 걸린다. 미국 작품에는 아시아인으로서 역할이 한정된다. 미국에서 아시아 배우들의 시장을 열어주고 싶다. 메인 프로듀서들이 아시안 배우들을 뽑을 이유가 없다. 백인 프로듀서를 욕할 것이 아니라, 아시안 창작진 들이 해결해야 할 분야라고 생각한다. 그나마 아시아인들이 출연한 '미스사이공', '왕과 나'는 사실 백인의 눈으로 본 우리 이야기다. 아시아 눈으로 본 아시아 색이 묻어나는 예술이 나왔으면 좋겠다. 힘이 닿는 한 아시아 소재로 한 작품을 만들고자 한다.

  (정답은 3번 수요집회)

[글] 문화뉴스 김진영·이우람 기자 cindy@mhns.co.kr

[사진] 문화뉴스 서정준 기자 some@mhns.co.kr

[영상]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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