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주년 기념 특별공연 OB팀과 YB팀의 두 가지 색깔

   
▲ 연극 '날 보러와요'의 김광림, 변정주 연출을 비롯한 배우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문화뉴스]"시대의 따뜻함이 잘 묻어난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같은 해엔 화성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을 잡자는 목표라든지 국가시스템의 문제를 드러내는 것은 부차적인 것이고, 기본적인 것은 범인을 잡지 못했다. 진실을 찾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리스 고르기아스라는 철학자의 말처럼 '진실은 찾기 어렵다.'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 연출 김광림

영구미제사건으로 남은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소재로 1996년 2월에 초연된 연극 '날 보러와요'가 2016년 만 20년을 맞이한다. 이는 1986년부터 1991년까지 10여 차례에 이르는 잔인한 연쇄 강간살인 사건을 바탕으로 하며, 김광림 연출은 작업 당시 보도자료부터 당시 수사담당 형사를 만나고 현장을 방문하는 등 사건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에 힘썼다. 이는 2003년 봉준호 감독에 의해서 '살인의 추억'이라는 영화로 제작되어 더욱 알려진 바 있다. 특히나 당시 잡히지 않은 범인이 어느 날 공연을 보러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지은 제목 '날 보러와요'와 함께 실제로 2006년 당시에는 용의자 석을 만들어 공연 내내 비워둔 적도 있다.

이야기는 이렇다. 비가 내리는 날 밤, 라디오에서 모차르트의 레퀴엠이 흘러나오면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수개월째 이어지는 동일수법의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네 명의 형사가 있다. 서울에서 자원한 김 반장, 엘리트 시인 지망생 김 형사, 지역 토박이이자 부호인 박 형사, 무술 9단의 조 형사. 네 명의 형사가 쫓는 세 명의 용의자는 쟁쟁하다. 범인은 밝혀질 것인가.

지난 20년 동안 지속해서 관객들의 사랑을 받아와서 15차례에 걸쳐 이 공연은 꾸준히 올라갈 수 있었다. 이를 기념하여 20년 전 초연에 참여했던 배우들과 연출이 다시 한 번 의기투합해 변정주 연출과 지난 10년간 공연에 오른 YB팀이 한 무대에 오른다. OB팀의 주름살이 보여주듯 20년이라는 시간이 야속하게도 사실 오늘날과 당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20년 전 작품이 쓰이기 시작한 때를 아프게 추억하며 그동안 더욱 깊어진 이야기와 연륜으로 관객들을 다시 찾아온다.

28일 명동예술극장에서 연극 '날 보러와요'의 OB팀 공연과 YB팀 공연이 프레스콜을 통해 동시에 진행됐다. 김광림, 변정주 두 명의 연출과 OB, YB의 배우들이 한자리에 모여 진행한 작품과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김광림 작·연출이 1996년 초연에 이은 20주년 공연을 맞이한 소감을 전하고 있다.

두 연출의 소감이 궁금하다.
ㄴ 김광림 : 한마디로 행복하다. 20년 전에 참여했던 배우와 다시 모여서 한마음으로 공연을 열심히 준비해줘서 고맙고 행복하다.

변정주 : 아마 재작년쯤, 김광림 선생님과 홍유경 대표님과 같은 자리에 있다가, 이런 기획이 있으면 재밌겠다고 장난스레 언급한 적 있다. 20주년을 기념하여 20년 전 초반 배우 한팀, 2006년부터 10년간 공연해온 배우들 한 팀을 구성해서, OB팀은 대극장, YB팀은 소극장. 생각 없이 이런 기획을 했는데 실현이 돼서 재미있고, 앞에 10년 하셨던 선배님들께 누를 끼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작업을 해왔는데, 20주년 특별공연에 참여하게 돼서 영광이고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

다시 무대에 오른 소감은?
ㄴ 류태호 : 20년 전 연극을 다시 하려니 감개무량하다, 연출님의 말처럼 행복하고 MT 가는 마음으로 즐겁게 시작했다. 그러나 관객을 만나는 일이라 간단한 MT는 아니었다. 20년 전 같이한 사람과 10년 동안 함께 한 사람과 공연을 올려 행복하다.

한 공연이 20년간 지속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20년간 공연된 것이 아직 미제사건이라 씁쓸하기도 하다. 20주년 공연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설명해달라.
ㄴ 김광림 : 여러 의미 중 하나만 뽑자면, 이 작품을 취재하고 현장 조사할 때 늘 가졌던 생각이 억울하게 죽은 희생자들과 그 주변의 많은 피해자, 그리고 형사들을 고려하겠다는 것이다. 한 사건 안에 피해자가 매우 많다. 이런 억울한 죽음과 희생들. 이런 것이 어떻게 하면 개선될까 하는 생각을 늘 해왔고, 그 당시 우리 취재에 응해줬던 형사도 억울하게 죽은 사람에 대해서 묵념하고 기도하고 수사하고 그랬다. 20년이 지났는데 이러한 상황이 별로 개선되지 않아서 가슴이 아프다. 이런 희생에 누가 책임을 져야 할 것인가. 기본적으로는 국가 시스템이라고 생각을 한다. 사실 20년 전과 현재가 별반 다르지 않다.

OB 팀과 YB 팀의 서로 다른 특징은?
ㄴ 변정주 : 10년 동안 공연을 해오셨던 선배님들이 계셔서 부담이 있었다기보다는, 우리 YB 팀이 몰래 OB팀 연습실에 가서 커닝도 하고 참고도 했다. 뜻밖에 선배님들도 우리 연습실에 오셔서 우리 것을 보고 갔다. 그래도 선배님들이 만들어 놓으신 10년의 무대에 우리 나름대로 열심히 작업했다.

   
▲ 배우 권해효(왼쪽에서 두 번째)를 비롯한 OB 팀 배우들이 한 장면을 시연하고 있다.

권해효 배우는 20년 전 맡은 30대 김 형사 역할을 이번에는 50대에 다시 해서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ㄴ 권해효 : 20년 전 30대 초반이었는데, 현재 OB팀 평균 연령이 50대다. 박 형사가 참고로 막내다. 김광림 선생님 전화 받고 처음에는 당황했다. 30대 초 역할을 50대에 다시 할 수 있을까. 그리고서 연극을 처음 할 때를 생각해보았다. 외국 무대에서 나이가 든 노년 배우들의 무대를 보러오는 노년 관객층들이 인상적이었다. 관객과 배우가 함께 늙는달까. 나도 저래 봐야지 생각이 들었을 때를 떠올렸다. 같이 대학로에서 20년을 넘게 지내온 사람들이 함께 무대 위에서 나이 들어가고 있고, 관객들도 이를 따뜻하게 받아들여 줄 것이라는 생각에 용기를 냈다.

권해효 배우와 같은 김 형사 역할을 맡은 김준원 배우에게 선배와 하게 된 소감을 듣고 싶다.
ㄴ 김준원 : 20년 전부터 시작해서, 선배님들의 '날 보러와요'를 네번 쯤 본 거 같은데, 그때 봤을 때 연극이라는 것을 잘 몰랐는데 이 작품을 처음 접하고 엄청나게 충격을 받았고, 선배님들도 참 크게 보였다. 10년 후, 나에게 이런 배역이 올지 전혀 생각을 못 했고, 영광스러웠다. 선배님들을 보는 느낌은 그라운드에 있는 메시나 호날두를 보는 느낌이다. 나는 이승우 같이 성장해야 하는 선수다. 지금은 뒤섞여서 연기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선배님들과 같은 공연에서 호흡을 나누며 무대에 계시는 것을 지켜보는 모습으로도 영광스럽다.

20 년 전 '날 보러와요'와 현재의 작품이 어떻게 변화해왔는가?
ㄴ 김광림 : 20년 전 초연 이후 반응을 기억한다. 당시 관객들의 공연 반응을 기다리며 사실 두려웠다. 끝나고 관객들의 뜨거운 열기를 아직 잊지 못한다. 그 후 공연을 하면서 버전이 10개 정도 생긴 거 같다. 공연하면서 배우들이 대본의 허점을 찾아내고 찾아내고 해서 지금의 공연까지 왔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이번 공연이 최종본이 되었으면 좋겠다. 모르겠다 이건. 다른 점은 OB 팀의 경우 20년 전보다 배우들의 연기력이 훨씬 향상됐고 서로 호흡도 잘 맞는다. 대본에 빈 구석도 채우면서 초연보다는 훨씬 더 원숙한 그런 공연이라고 생각한다.
 

   
▲ 변정주 연출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YB 배우들의 '날 보러와요'를 OB팀의 공연과 어떻게 다르게 만들려고 했나?
ㄴ 변정주 : OB팀과 무언가 다르려고 억지로 노력하지 않았다. 우리 배우와 스태프들과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회의를 하면서 어떻게 하면 이 대본의 본질에 가까운 공연을 보여줄 수 있을지 고민했고, 무대는 하나지만 음향 디자인도 두 가지, 조명도 두 가지라서 스태프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 YB의 리듬과 에너지가 OB와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다른 공연이 올려진다고 생각한다. 극장에 와서 OB팀 공연을 전체 다 봤는데 다른 색을 가진 두 개의 공연이다. 하나의 공연을 두 가지 버전으로 보는 기회가 드물 것으로 생각하고, 두 공연 모두를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용의자 세 역할을 한 배우가 연기하는데 특별한 의미가 있는가?
ㄴ 변정주 : 대본 초기 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에 이 작품의 조연출로 첫 참여를 했는데, 당시 대본에는 이 부분이 명확히 명시가 돼 있었다. 세 명의 용의자를 한 배우가 하고 형사들은 이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다. 같은 배우가 나오지만, 법인이 누군지 구분하지 못하는 형사들에 대한 풍자의 의미가 있지 않았나. 이런 부분이 연극에서만 보여줄 수 있는 연극적인 모티브가 아닌가 생각한다.

과거에 '남 씨 부인'이 사라진 적도 있었지만, 지금 다시 이 역할이 있다. 왜 그때 당시에 뺐었나?
ㄴ 변정주 : 2006년부터 2009년까지는 내부적인 일로 이 역할을 뺐었다. 2009년부터 본인이 연출을 맡았는데 이런 큰 무대보다 소극장에서 공연을 올리고 싶었고, 소극장 프로덕션 조건도 있고, 이야기의 길을 잃지 않는 범위내에서 각색을 했다. 그러나 이전 세 번의 프로덕션을 보고 작가가 남 씨 부인이 꼭 있어야 한다고 의견을 내서 이를 수긍하고 이후부터 남 씨 부인을 다시 출연시켰다.

요즘 대중문화에서 기자가 '기레기' 이미지로 많이 비친다. 나쁜 기자 모습으로 많이 묘사된다. 이 연극에서 기자 캐릭터는 착하지도 나쁘지도 않은 둘 사이 어느 지점에 있는 것 같은데 어떤 기자로 표현하고 싶었나?
ㄴ 이항나 : 범인을 잡고 싶어하는 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대본 안에서는 박 기자가 거짓말을 하는 것인지 진실을 말하는 것인지 모호하게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러나 스스로는 범인을 잡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피해자와 형사와 같이 미치도록 범인을 잡고 싶은 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이 역할을 연기했다.

우미화 : 비슷하다. 본질은 같다. 형사와 더불어 제5의 형사라고 생각하고 뛰고 있다.
 

   
▲ 배우 이항나(왼쪽)와 이대연(오른쪽)이 작품의 한 장면을 선보이고 있다.

'응답하라 1988'과 같은 시기에 있던 일이다. 드라마는 쾌활하고 유쾌했는데, 20년이 지났는데도 이 작품은 보고 나면 유쾌하기보다는 그 시대의 잔학함과 무능함이 드러난다. 처음 이 작품을 만들려고 했을 때, 엄청난 사회적 사건이 극화되면 좋겠다고 생각했겠지만, 가장 크게 다가온 것은 무엇이었는가?
ㄴ 김광림 :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종종 보았다. 시대의 따뜻함이 잘 묻어났다. 이 작품은 소재 자체가 어둡다. 형사들끼리 따뜻함이 묻어나지만 이를 보여주려는 것은 아니다. 범인을 잡자는 목표라든지 국가시스템의 문제를 드러내는 것은 부차적인 것이고, 기본적인 것은 범인을 잡지 못한 것이다. 진실을 찾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리스 고르기아스라는 철학자가 "진실은 찾기 어렵다"라는 말을 하는데 이러한 점을 말하고 싶었다.

연극 '날 보러와요'가 많은 극장에서 공연했는데, 현재 가장 큰 극장으로 왔다. '레퀴엠'의 노래가 나올 때 OB 공연과 YB 공연에서 다른 느낌이 느껴진다. 음악을 삽입하는데 어떤 신경을 썼나?
ㄴ 변정주 : OB팀과 무대디자인을 제외한 음악 선곡과 음향 디자인에 관한 부분은 일부러 논의를 안 해서, 아예 다른 두 개의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두 버전을 따로 만들었기 때문에, 레퀴엠이라는 중요 요소를 제외하고 사실 음향적 디자인이 다르다. 조명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선곡이 다르다.

두 반장님은 수사과정에서 고생은 제일 많이 하고 결국 옷을 벗는다. 이 작품을 보면서 작가가 심어놓은 두 개의 러브라인 보다는 반장들이 가지고 있는 위로부터의 압박과 같은 것이 더 인상적이었다. 당시 별의별 일이 다 있었다. 과학수사를 위해 서울에서 특별수사대를 내려보내는 일도 있었다. 두 배우는 비슷한 연기를 했는데, 반장을 어떻게 연기할 것인지 상의했나?
ㄴ 이대연 : 당시는 김 형사를 연기했다. 20년 만에 공연에 서면서 다른 배역을 맡게 됐다. 감회는 20년 만에 하는 동창회 같다는 느낌이 들고, 같이 연극을 처음 시작했는데 나이 들어가는 동지들이 연기하며 나이를 잘 먹어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반장으로서 역할은 형사들이 이쪽으로 저쪽으로 튀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가운데서 무게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이다. 그런 중간 조율자 내지는 조종자의 역할을 기능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했고, 그런데도 형사들 간의 끈끈함과 범인을 잡아야 한다는 의지를 보여주고자 했다.
 

   
▲ 손종학 배우가 YB 팀의 '김 반장'을 연기한다.

손종학 : 이 공연을 2006년부터 했다. 10년 됐다. 40 대 초반에 시작해서 50이 됐다. 그 당시에 초연했던 형님들과 스탭들과 재작년에 공연하고 이렇게 20 주년 공연하는데 여기 참여할지 생각조차 못했다. 공연을 2달 하니까 몸에 이상이 왔다. 계속 시달리는 역할을 하다 보니. 이 나이에 맞는 좋은 배우 있으면 반장 자리를 물려주고 싶다. (웃음) 초연 멤버들과 10년간 만난 멤버들과 다시 연습실에서 만나서 좋고 반가웠다. 언제 또 이런 무대에서 만날까 싶다. 연습하는 과정 동안 행복했다. 반장 역할은 범인을 잡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한 명의 가장 노릇을 하고 싶다는 일념으로 작업에 임했다.

20주년 기념 특별공연을 올리는 연극 '날 보러와요'는 22일부터 내달 21까지 명동예술극장에 올려진다. 김광림 연출과 함께 20년 전 초연 배우들이 함께한 OB 팀과 변정주 연출과 함께 공연을 올리는 YB팀이 다른 색깔 같은 무대를 올려서 더욱 인상적이다. 시간을 초월해 사랑받는 연극 '날 보러와요'를 보러와요.

[글] 문화뉴스 김진영 기자 cindy@mhns.co.kr
[사진]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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