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날 보러와요' 리뷰

   
 


[문화뉴스]
마지막 사건 이후 25년이 지났다.

1986년부터 1991년까지 경기도 화성시 태안읍 일대에서 10명의 여성들이 차례로 잔인하게 살해됐다. 우리는 이 사건을 '화성연쇄살인사건'이라 부르며, 한국에서 발생한 최초의 연쇄살인사건이라 부른다. 이 사건은 전 국민의 공분을 산 '미제' 사건이다. 사건 수사에 투입된 인원만 해도 총 180만 명의 경찰, 3,000여 명의 용의자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차 사건을 제외하고는 어떤 사건의 범인도 잡히지 않았다.

 

   
 

김광림이 작, 연출한 연극 '날 보러 와요'는 화성연쇄살인사건을 다룬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영화 '살인의 추억'의 원작이라 불리는 이 연극은 벌써 초연 20주년을 맞이했다. '날 보러 와요'라는 제목에 대해 김 연출은 "공연이 흥행을 해서 여러 매스컴에 소개가 되고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회자가 되면, 어느 날 범인이 이 공연을 보러 오지 않을까"하는 생각에서 제목을 지었다고 한다. 실제로 2006년 '날 보러 와요'의 10주년 기념공연을 올렸던 당시에는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에서 '용의자석'을 상징적으로 만들어 공연 기간 내내 비워두기도 했다.

 

   
 

연극의 느낌은 영화와 사뭇 다르다. 영화가 비교적 멜랑콜리한 분위기라면, 연극에서는 보다 친근한 분위기다. 무대는 화성연쇄살인사건을 맡고 있는 수사팀에 집중돼있고, 주요 인물들이 대화를 나누는 공간적 배경 또한 경찰서 내부인데, 이곳에서 형사들의 시시콜콜한 개개의 이야기들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연극은 사건 현장을 직접적, 혹은 구체적으로 다루지 않기에 우리는 잔인하고 극악무도한 범행 장면을 목격할 수 없다. 대신 형사들에게 맞춰진 포커스에 따라가며, 관객들은 사건을 추적하는 형사들의 시선으로 사건을 짐작하며, 그들이 원만한 수사를 할 수 없던 당시 환경을 인지하게 된다.

 

   
 

이번 20주년 기념공연은 이대연, 권해효, 유연수, 김뢰하, 류태호, 이항나, 황석정, 공상아, 차순배가 연기하는 OB팀과 손종학, 김준원, 김대종, 이원재, 이현철, 우미화, 이봉련, 임소라, 양택호가 연기하는 YB팀으로 나뉘어 공연이 진행된다. 노련한 OB팀은 각각의 캐릭터들이 자신만의 개성을 가지고 무르익은 연기를 보여주는 반면, 열정적인 YB팀은 보다 연극의 생기를 불어넣어준다. 연극의 '20주년'이라는 기념적인 숫자는 매우 중요하다. 1996년 2월 문예회관소극장에서부터 시작한 공연은 올해 명동예술극장에서의 공연이 이뤄지기까지 20년 동안 16번의 탈바꿈을 통해 명맥이 유지됐다. 사건의 구체성을 드러내거나, 사회적인 큰 이슈로 많은 이들의 뇌리에 박히게 만든 것은 영화라는 장르를 통해서 이뤄졌다. 그러나 연극은 20년 동안 꾸준히 이 사건을 지속적으로 공연함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매번 잊지 않고 그 사건을 기억하게 만든다.

 

   
 

연극이 공연되는 20년 동안 범인이 잡히지 않고, 이 사건이 영구미제사건으로 남았다는 사실은 피해자 유족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이자, 평생 잊을 수 없는 한이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끔찍한 슬픔이다. 우리는 첫 사건이 발생한 86년부터 30여 년간 사건의 범인을 잡지 못했다. 그러나 연극의 의의는 범인을 잡을 수 없다는 사실로 끝을 맺는 것을 느끼는 허무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 기억하고 회자한다는 사실에 있다. 이런 애통한 미제사건들이 다시는 우리 사회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도록, 우리가 두 눈을 부릅뜨며 이 사건을 계속 기억해야 하지는 않을까. 올해도 우리는 이 사건들을 기억하고 되뇐다. 연극 '날 보러 와요'를 통해.

[글] 문화뉴스 장기영 기자 key000@mhns.co.kr
[사진] 프로스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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