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백년의 신화: 한국근대미술 거장전' 변월룡 展 3일부터 열려

   
▲ 변월룡 화가의 장녀 펜 올가(오른쪽)와 차남 펜 세르게이(왼쪽)가 그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문화뉴스] "마지막 황제가 기거한 아름다운 장소에서 아버지의 전시가 열려 감사하다."

러시아 연해주에서 태어난 고려인 화가 변월룡(러시아 명 : 펜 봐를렌, Пен Варлен)의 드라마 같은 삶과 예술을 한국 최초 대규모 회고전을 통해 만날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근대미술 거장 탄생 100주년을 기리는 '백년의 신화: 한국근대미술 거장전' 시리즈의 첫 전시로 '변월룡 1916~1990' 전을 3일부터 5월 8일까지 덕수궁관에서 연다.

변월룡은 1916년 연해주에서 태어나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미술교육을 받았고, 상트페레르부르크 레핀 예술아카데미 교수를 역임해, 화가이자 교육자로 일생을 보낸 고려인이다. 그의 삶과 예술은 일제강점, 분단, 전쟁, 이념대립이 이어진 한국 근현대사뿐 아니라 공산주의 혁명과 제1차·제2차 세계대전, 전체주의, 냉전, 개혁과 개방을 겪은 러시아의 근현대사를 모두 관통했다.

국립현대미술관 관계자는 "이번 전시는 냉전 종식 후에도 한반도에만 여전히 존재하는 철의 장막 때문에 오랫동안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변월룡'이라는 작가를 소개하는 데 가장 큰 의미가 있다"며 "역사의 사각지대에 있었던 변월룡의 디아스포라(본토를 떠나 타지에서 자신들의 규범과 관습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민족 집단이나 거주지)적 삶과 예술은 민족, 국민 등 20세기 근대의 화두와 함께 한국 근대미술의 다층적 측면을 드러낸다"고 밝혔다.
 

   
▲ 변월룡 화가 ⓒ 국립현대미술관

이어 "북한미술의 토대를 구축한 그의 존재는 해방 후 단절된 한국 미술사를 복원하는 데 중요한 계기를 제공하리라 기대된다"며 "관람객은 낯선 러시아 사회주의 리얼리즘 미술 속에서 작가의 고국에 대한 애정과 향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번 전시는 1990년 세상을 떠난 변월룡의 삶과 예술을 입체적으로 조망한 200여 점의 회화, 판화, 드로잉과 70여 점의 사진, 도록, 잡지 등 관련 자료를 접할 수 있다. 그리고 1950년대 초 북한의 풍경과 예술가 초상을 통해 분단을 재고하며, 러시아, 중앙아시아, 북한을 관통하는 변월룡의 예술을 통해 한국 미술의 경계를 확장하려 했다.

2일 오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회의실에서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이날 기자간담회엔 바르토메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변월룡 작가의 장녀 펜 올가, 차남 펜 세르게이, 박혜성 큐레이터, 문영대 박사 등 관계자가 참석했다.
 

   
▲ '반월룡 1916~1990' 전시가 오는 5월 8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린다.

바르토메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은 취재진이 있는 자리서 "한국의 모던 회화, 근대성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좋은 전시"라며 "이번 전시는 근대 미술사에서 아주 중요한 맥락을 보여주는 전시이며, 동시에 한국 미술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전시다. 넓게 보면 전 세계 영토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유라시아 미술의 큰 부분을 보여준다"고 입을 열었다.

마리 관장은 "특히 사실주의 회화가 근대성에 있어서 어떤 역할을 차지하는지 이번 전시를 통해 볼 수 있다"며 "무엇보다 이번 전시를 위해 갖은 노력을 주신 유족분들께 감사드리며, (18년간 전시를 준비한) 문영대 박사님께 깊은 감사 인사를 드린다. 또한, 아름다운 전시를 실현한 큐레이터 박혜성 학예연구사에게도 감사드린다"고 인사말을 남겼다.
 

   
▲ 바르토메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이 인사말을 남기고 있다.

변월룡 화가의 차남인 펜 세르게이는 "서울의 한복판, 조선의 마지막 황제가 기거한 곳으로 알고 있는 아름다운 장소에서 아버지의 전시가 열려 감사하다"며 "18년 동안 끊임없이 전시를 위해 애써오신 문영대 선생님이 있다. 18년 전, 문영대 선생님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아버지의 작품에 대해 알게 되어 전시하겠다는 일념이 이번 전시를 낳게 했다"고 전했다.

과거 '러시아 한인 화가 변월룡과 북한에서 온 편지'(2004년), '우리가 잃어버린 천재화가 변월룡'(2012년) 등을 쓴 미술평론가이자 변월룡 미술연구소를 설립한 문영대 경남대 교수의 공이 컸다. 이번 전시 작품의 약 70%는 10년 전부터 전시를 기획한 문영대 교수가 가져온 작품들이다. 그리고 올해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30주년과 탄생 100주년을 맞이한 작가를 기념하기 위해 지난해 9월부터 본격적인 전시 준비가 이뤄졌다.

변월룡은 과거 북한에서 1953년 6월부터 1954년 9월까지 소련 문화성의 지시에 따라 북한을 방문해 그곳에서 전쟁으로 평안북도 용천에 피난 온 평양미술대학 교수들을 지도했고, 평양미술대학 학장과 고문을 역임했다. 그는 그 기간 북한 현대미술의 토대를 '러시아 리얼리즘 미술'로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변월룡은 이후 북한 입국이 금지됐다.

문영대 교수는 "변월룡 선생이 북한에서 3년 정도 '소련 미술'을 알려주면 틀이 잡힐 줄 알았다고 생각했다"며 "급성 이질이 걸려 1년 3개월 정도 하다가 부인이 간호했지만, 북한의 사정이 너무나 열악해서 치료가 어려워져 러시아로 돌아가게 됐다. 가기 전에 북한 당국에선 그의 귀화를 이야기했지만, 부인이 거부했다. 그 이후 북한에 돌아온다고는 했지만, 길이 막혔고 편지 왕래 정도만 진행됐다"고 이야기했다.
 

   
▲ 박혜성 큐레이터가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박혜성 큐레이터도 1953년 스탈린의 사망 후 흐루쇼프가 소련 서기장이 됐다. 흐루쇼프는 스탈린의 개인 우상화를 반대했는데, 당시 중국의 모택동과 북한의 김일성은 개인 우상화를 진행했다. 그러다 보니 점차 양국의 관계가 점차 멀어지게 됐다. 귀화를 거부한 괘씸죄라기보단, 시대적 상황이 원인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변월룡이 고려인이지만, 한국 사람은 아니므로 한국 근·현대 미술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를 묻는 취재진도 있었다. 이에 대해 국립현대미술관 측은 "지금까지 몰랐다가 고려인이 이렇게 잘 그렸구나를 설명하기 위해 연 것이 아니다"라며 1953년 무렵 김용준, 배운성, 정종여 등 납북·월북한 화가들이 있다. 이들은 일본을 통해 서양미술을 배워오고, 한국화의 근대화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를 논의했는데, 변월룡 선생의 도움도 컸다. 이번 전시를 계기로 많은 연구자가 관심을 두기 바란다"고 밝혔다.

박혜성 큐레이터도 "15개월 북한에 있으면서 그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소련 당국에 제출한 보고서 초안으로 볼 수 있다"며 "보고서를 100% 믿을 수는 없지만, 물질적으로 폐허인 상태에서 이젤과 물감을 만드는 것부터, 소련이 아닌 북한이라는 사회주의 국가에선 어떤 작품이 나올지 고심을 했다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조선화과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미 많은 이들이 조선화과를 만들자고 제안을 했는데, 그 부분이 편지에 애절하게 잘 남아있다. 이데올로기 논쟁을 떠나 예술가로 많은 고민을 한 것을 감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 변월룡 화가의 장녀 펜 올가(오른쪽)와 차남 펜 세르게이(왼쪽)가 전시를 살펴보고 있다. 오른쪽 그림은 '닥터 지바고'를 쓴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초상'.

한편, 펜 세르게이는 "18년이라는 긴 세월 전시를 준비했다. 이번 한 전시를 위해서 하는 것 외에 작품들을 가지고 한국 각 도시 순회 전시를 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국립현대미술관 관계자는 아직 순회공연 계획은 잡힌 것이 없지만, 많은 기회가 있을 것이라 본다고 전망했다.

변월룡의 장녀 펜 올가와 차남 펜 세르게이는 현재 화가로 활동 중이다. 펜 세르게이는 "우리가 화가가 된 이유는 오로지 아버지 덕분이었다"며 입을 열었다. 그는 "아버지가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자주 봐왔고, 우리를 야외로 데리고 나가며 그림 그리도록 인도를 해줬다. 자라오면서 화가 외의 다른 직업을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이어 "아버지가 어떤 분이었는가?"라는 질문에 펜 세르게이는 "침착하고 인자한 분이었다"며 "그 성격을 닮지 못한 나는 아버지에게 많은 야단을 받아야 했다"며 회상하며 미소를 지었다.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주요기사

 
저작권자 © 문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