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서포터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희곡 작가전<불후의 명작> 작가 인터뷰② 30대 대표 김은성 작가

 
[글] 문화뉴스 아티스트에디터 이동완 pm@mhns.co.kr 다산 정약용과 그의 제자 황상의 이야기가 담긴 '삶을 바꾼 만남/정민 지음'이란 책에 빠져있다. 대화를 나누고, 글을 쓰는 일을 좋아한다. 연극 뿐만 아니라 관심 있는 직업군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한다. 공연기획사 <아이디서포터즈> 전문 인터뷰어

[문화뉴스] 작가 김은성을 따스한 봄과 어울리는 성북동 근처 조용한 카페에서 만났다. 

사실 웹진<연극in> '연극데이트' 코너에서 많은 연극인들을 인터뷰하고 글을 쓰는, '고수'를 상대로 인터뷰를 진행하려니 많이 떨렸다. 표정이 읽혔는지 "인터뷰란 게 쉬운 게 아니다. 이해한다. 편하게 이야기 나누자"며 그가 말했다. 여러모로 오가는 이야기가 많았던 좋았던 인터뷰, 제3회 아이디페스티벌 대한민국 희곡 작가전 <불후의 명작> '30대 대표작가'인 김은성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이번 페스티벌에 참여하는 이유는? 
ㄴ 이 프로젝트를 기획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굉장히 반갑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극계에 화젯거리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는 이야깃거리가 될만한 프로젝트라고 생각했다. 섭외 제의를 받았을 때, 영광스럽다고 생각도 했다. 자격이 될지 안 될지는 모르지만, 불러주었다는 것이 감사했다. 좋은 기획이라 생각했고, 함께 할 수 있게 되어 기분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 

신진 극단들에 작품을 무료로 사용하게 한 이유는 무엇인가? 
ㄴ 앞에서 말했듯이 좋은 기획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솔직히 말해서 신진 극단들이 돈이 어디 있겠는가. 또 낭독 공연 하루 해서 얼마의 수익이 생기겠는가. 같은 연극인으로서 다 알지 않는가. 몇 푼 되지도 않을 텐데…사실 이렇게 생각한다. 축제를 같이 만드는 것. 이 좋은 축제에서 내 작품을 갖고 친구들이 공연을 만들며 즐거운 하나의 축제를 만드는 것에 의미를 두었다.

 

지금이 아닌 예전 김은성에 대해서 알고 싶다. 청년도 아닌 청소년기의 김은성은 어떠했나? ㄴ어렸을 때 만화책을 좋아했다. <보물섬> 같은 잡지. 그리고 코난 도일 추리소설 셜롬홈즈 시리즈도 좋아했다. 그러다 사춘기를 거치면서 이상하게 한국 문학에 취미를 갖게 되었다. 그때부터 책을 좀 많이 읽고, 글을 좀 끄적였던 것들에 대해서 칭찬도 받곤 했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아니었는데, 쓰는 것 가지고 칭찬을 받다 보니 글이 좋아졌고, 구체적으로 이쪽 일에 관심을 끌게 된 것은 고등학교 때 방송반을 하면서다. 방송반에서 처음으로 라디오 대본을 써봤다. 재밌었고, 흥미로운 일이리라 느끼면 성장했다. 

대본 쓰는 일 중 '희곡작가'로 정한 이유가 무엇인가 
ㄴ사람 운명이 희한하다. 대학교 2학년 때, 문예창작과 연극 관련 수업을 하나 듣게 되었다. 과제로 '햄릿'을 읽어봤는데, 처음 읽어보니 잘 이해도 안 되고 어려웠다. 내가 잘 모르는 세계지만 뭔가 더 깊은 걸 이야기하고 있다고 느꼈다. 이후 다른 희곡들을 찾아 읽어보면서, 이강백 선생님 희곡도 읽으면서 전혀 다른 세상을 만날 수 있었다. 대본이란 게 굉장히 사실적인 장면을 텍스트화하는 것으로 생각하던 게 이때부터는 조금씩 깨져갔다. 전혀 개연성이 무관한 모호한시적인 대화가 어떤 메시지를 만들고, 인물 관계를 만들어 내는 것들을 보면서 연극 쪽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다니던 대학을 자퇴하고 새롭게 들어간 '한국예술종합학교' 생활은?
ㄴ학교에 가기 전까지 제대로 된 연극은 한 편 정도 밖에 안 봤었다. 연극 관련해서 정말 셰익스피어나 입센 정도만 알았다. 그래도 나름 소설도 읽고 그랬으니 어울릴만하겠지 하고 들어갔는데, 전혀 아니었다. 동기들은 다 연극에 미친 친구들이어서 내가 이야기에 쉽게 낄 수가 없었다. 내가 아는 게 별로 없었던 것이다. 또 학교생활이 정말 바빴다. 이것저것 배우느라 시간에 쫓겼다. 탈춤도 배우고, 연기도 하며, 매주 연극 2편 보고 리포트를 제출해야 했다. 선배들과 동기들과 연극 이야기를 나눌 때 낄 수가 없던 게 콤플렉스였다. 그래서 처음에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 했다. 열등생이었다. 졸업도 되게 아슬아슬하게 했다. 성격도 내성적인 편이어서 예술 학교 분위기와는 좀 안 맞는 부분들도 있었다. 그래서 동기들 중 술꾼들하고 술이나 엄청 먹었다. 그냥 술 먹고 반쯤 취해있거나 이상한 소리 하는 이상한 애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졸업하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힘들었던 학교생활이 좀 편해지며 연극에 집중할 수 있었던 계기가 궁금하다.
ㄴ군대 가서 고생을 좀 했다. 군대 가서 사람 되었다가 아니라 군대 가서 그냥 공부만 하는 게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군대 제대하면 '그냥 도서관에서 뭘 많이 읽자'라고 결심하고, 제대 후 공부를 정말 많이 했다. 그냥 많이 읽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글을 쓰게 되었다. 원래 전공이던 연출과 수업에서는 교수님들한테 인정도 못 받고, 혼나고 그랬는데 희곡 쓰는 극작 수업 가서는 처음으로 칭찬받고 그랬다. 그때부터 글 쓰는데 더 관심을 갖고 그랬던 것 같다. 연출과 같지 않던 연출과 학생이었다. 지금도 동기들 중 몇몇은 나를 극작과로 착각하는 친구들이 많다.

'20대' 김은성은 연극 이외에 하고 싶은 것은 없었는가? 
ㄴ학교에서 연극에 대한 뛰어난 자질과 연극에 대한 재능을 가지고 두각을 드러내는 동기, 선배들을 보면서 의심을 많이 했다. 내가 연극을 잘하며 살 수 있을까? 그랬던 시기가 29살까지 계속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뾰족한 방법이 찾아지는 것도 아니고, 어휴. 하는 거나 제대로 하자 해서 졸업이나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하면서 연극을 해왔다…만약에 내가 29살 때, 아프신 홀어머니를 둔 외아들이었거나, 아버지가 회사가 망해 가세가 기울었던 청년이었다면 지금과는 다른 인생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데 지금도 못 사는 집안이지만, 그래도 일찍 시집을 가서 자리를 잡은 누나가 도움을 많이 줬었다. 그래서 누나랑 한 약속이 29살까지는 해보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했던 약속으로 버텼다. 20대는, 30살이 되고 나서도 지난 10년간 1~2년 그렇게 버티고 있다. 뭔가를 핑계 삼아서. 29살 때 신춘문예가 되고 나서 제일 좋았던 건 '아, 이 핑계로 나와 내 가족들에 2년은 더 버틸 수 있겠다'라는 것이었다. 일종의 '까방권'이라 해야 하나? 그렇게 20대 때부터 지금까지 버티고 있다. 그런 까방권을 하나하나 만들고 하나하나 써 가며 말이다. 

 

인생이란 게 줄타기 아닌가. 1~2년 그렇게 버티는 것으로 생각한다. 신작이 안 나온 지 2년이 되었다. 사실 작년 겨울에 위기가 왔었다. 슬럼프가 너무 길어졌었다. 그래도 꾹꾹 버티며 또 한 편 썼다. 그래도 이 한 편 때문에 다시 1~2년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우리가 가진 건 내 작품으로, 관객과 만나는 것밖에 없는데…

좋아하는 말 중에, 소설가 김훈이 '칼의 노래'에서 쓴 글이 있다. '지나간 모든 끼니는 닥쳐올 단 한 끼니 앞에서 무력하다'라고 하는 말이 있다. 내가 39년 밥을 먹었지만, 내일 배고플 한 끼 앞에서는 무력하지 않나란 생각을 한다.

아무리 지금까지 썼지만, 내일 올릴 한 작품 앞에서는 무력하다. 그리고 사실 써놓은 작품으로 어떤 권력을 누리고 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런데, 김은성은 왜 글을 쓰는가? 
ㄴ사실 희곡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이후에 왜 글을 쓰고 있고, 왜 하는 것인지 계속 생각해오고 있다. 나중에 바뀔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나를 즐겁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일이 글 쓰는 것 밖에 없는 것 같다. 이게 나한테 잘 맞는 일이고, 또 이렇게 잘 맞는 여가 생활이 직업까지 될 수 있는 게 행복한 것이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나 자신을 많이 미워하는 게 좀 있다. 그런데 글을 쓰고 있을 때는 모든 것이 좋아진다. 내 자신과 글로 만나는 시간이 좋기도 하고, 글을 쓰고 작품을 만들면서 조금이라도 나은 사회를 만드는 직업이 아닌가 한다. 

희곡 작가를 꿈꾸는 청년들이 많지가 않다. 
ㄴ그건 당연하다. 비인기 장르다. 명백히 비주류다. 스포츠로 치면 축구, 야구 같은 대중적인 스포츠 외 다른 종목 같은? 대중들의 보편적인 시선으로 돌려봤을 때, 연극이라는 것은 대중들의 큰 관심을 받지 못한다. 다음이나 네이버에 들어가 보면 알 수 있는 것처럼, 그렇기 때문에…연극을 매니아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10대 후반, 20대 초반 친구들에게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이런 꿈을 꾸는 게 절대 못난 것이 아니다. 비주류라고 해서 못난 것이 아니다. 한국 연극의 위치가 이렇다고 '아니야. 이건 의미가 있어. 이건 중요한 거야'라고 강요하는 말을 하긴 싫다. 그럼 초라하니까.

"비주류로 조금 물러나 있는 게 어떠하냐. 그래도 이 안에서 조금씩 조금씩 넓혀가면 되지 않을까. 요즘 모든 게 한쪽으로 다 쏠리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조금 다른 것들, 지금은 인기 없는 것들이 제 자리에서 잘 해나가면 언젠가 우리들의 영역도 함께 관심을 받게 되지 않을까 한다. "

주류/비주류가 아닌 다양한 영역이 골고루 관심을 받고 건강해질 때가 바로 우리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고 생각한다. 모처럼 연극 한 편 보러 온 관객들에게 좋은 연극 한 편 보여줬을 때, '세상에 이런 연극을 하는 사람들도 있구나'하고 생각하게 해주는 것도 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청년들이 연극에 관심을 끌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확실한 건 우리가 더 열심히 해야 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관심이 더 많아질 것으로 생각한다.

요즘 청년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ㄴ 청년들 이야기를 하자면 그냥 하고 싶은 거 먼저 하고 살라고 말하고 싶다. 그게 훨씬 더 남은 장사다. 어차피 이 헬조선에서... 한달에 300 정도 버는 직장 다녀봐야, 간만 점점 나빠지고…. 조금 덜 벌더라도 그냥 좀 덜 쓰면 된다. 돈은 잘 못 벌 구조를 만들어 놓고, 소비는 잔뜩 하게 만들어진 이 구조 안에서 주체성 있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이야말로 훌륭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작품에 담고자 하는 가치는? 
ㄴ희곡 쓸 때, 내가 재미를 느끼는 것은 여기저기 눈치 보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내가 던지고 싶은 주제 의식을 가지고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무엇을 쓰든 대놓고 비판하고 싶은 거 다 비판할 수 있어서 좋다. 그 점이 되게 좋고……. 이걸로 정리하겠다.

미국의 여류작가가 한 말인데, 이십 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내게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인류가 원자폭탄을 이겨낼 수 있는 길은 더 강한 원자폭탄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세부 묘사를 하는 일이다." 이 말이 되게 좋다. 원자폭탄을 떨어뜨리라고 했던 지도자가, 지도를 보고 원자폭탄을 떨어뜨린 게 아니라, 원자폭탄을 떨어뜨리는 지역의 어느 초등학교에 진행되는 학예회나, 유치원 아이들이 노는 놀이터 등을 바라보았다면 원자폭탄을 떨어뜨리지 못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나는 그것이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가 꿈꾸는 것을 정성스럽게 묘사하고 싶다. 그게 내가 추구하는 것이다. 

김은성의 꿈은 무엇인가? 어떤 작가로 기억에 남을까
ㄴ 작년까지 만 해도 구체적인 욕망이 있었지만, 올해 들어 그것을 버리게 되었다. 지금부터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1년에 스스로에게부끄럽지 않은 작품 딱 1편만 제대로 썼으면 좋겠다. 사실 그렇게 하는 게 제일 힘든 일이다. 1년에 1편 계속 써야 한다는 건데, 그게 희곡으로써는 만만치 않은 일이다. 그래도 나는 말한 것을 계속해내고싶다. 나이를 먹고 좀 늙게 되었을 때 '김은성 작품은 아직 젊다. 아직 감이 살아있네'라는 소리를 듣고 싶다. 나는 관객이 내 작품을 보고 웃을 때 제일 행복하다. '어휴. 김은성도 꼰대 되었네'는 소리는 안 듣고 싶다. 정리하자면 1년에 1편 정성스럽게 쓰는 것과 늙어서도 꼰대가 안 되는 것이 내 바람이다. 

불후의명작 페스티벌에 참여하는 극단들(배우), 관객들에게 한마디 
ㄴ반갑다. 희곡 작가는 결국 작품을 해야 할 사람인데 반갑고, 고맙다. 

 

김은성은? 
"극단 달나라 동백꽃 대표,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출과 졸업. 근래의 왕성한 활동으로 자기 존재감이 뚜렷한 김은성은 순수 창작물도 발표했지만, 최근 몇 년 간 수 많은 '원전의 한국적 재구성' 작품을 잇달아 발표해왔다. 그의 작품 창작의 원동력은 탄탄한 구성을 가진 위대한 극작가의 이야기 구성 및 인물설정을 수용하여 작가만이 바라보는 동시대의 문제의식과 연극 근원에 관한 질문을 우리에게 끊임없이 던지고 있다. 김은성은 고전 원작으로부터 시작하여 자본주의사회의 문제점을 비판적 사실주의로 주제의식을 적절하게 표현하는 기대되는 작가다. 김은성은 무엇보다 시대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건강하고 진실하다. (두산연강예술상 수상자 소개에서…)" 

김은성 작가는 오는 6월, 공연기획사 '아이디서포터즈'가 주최하는 제3회 아이디페스티벌<불후의 명작>에 30대 대표 작가로 참여한다. 이번 페스티벌엔 20대부터 70대를 대표하는 6명의 희곡작가가 참여한다. 대표작가로는 김세한, 김은성, 최치언, 김명화, 이윤택, 오태석 작가들이 참여해 대학로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3월 31일까지 참여할 극단을 모집했고, 사전 섭외팀을 포함하여 약 80개 팀이 모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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