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통해 새롭게 태어난 파리넬리와 헤드윅

   
 

[문화뉴스] 나를 울게 하소서/ 비참한 나의 운명! 나에게 자유를 주소서/ 이 슬픔으로 고통의 사슬을 끊게 하소서 - 헨델의 울게 하소서(파리넬리)

대중문화는 그 문화의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반영한다. 텔레비전에서 '힐링캠프'와 같은 힐링에 관한 프로그램을 발견할 수 있는 때가 있었다. 인기 도서로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이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린 적도 있었다. 우리가 가진 문제를 단순히 힐링이라는 낭만으로 접근한다고 한계점을 지적받기도 했지만, 분명 우리는 어딘가 아픈 구석을 안고 살고 있다.

요즘에는 서점에서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있다. 같은 맥락이지만 단순히 아픔을 누군가로부터 위로받기보다 스스로 위로하고 이겨낸다는 측면에서 좀 더 발전된 면이 있는 것 같다. 오늘은 이처럼 우리가 자신을 직면할 용기를 줄, 더욱 능동적인 힐링을 해줄 두 편의 음악 힐링 뮤지컬인 '파리넬리'와 '헤드윅'을 소개하려고 한다.

 
먼저 1994년 개봉한 영화로 유명한 '파리넬리'는 교회에서 성서에 따라 여성이 무대에서 노래를 할 수없던 시기에 카스트라토로 활동한 카를로 보르스키의 예명이다. 카스트라토는 변성기가 되기 전에 거세해 소년의 목소리를 유지하는 남자 가수를 뜻한다. 거세한 남성은 정상적인 남성보다 몸집이 크기 때문에 여성 소프라노보다 강한 소리를 낼 수 있었다고 한다. 
   
 ▲ 파리넬리 공연 장면 ⓒHJ컬쳐

이러한 장점 때문에 카스트라토는 바로크 시대의 오페라 무대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잘 나가는 카스트라토는 오늘날 스타처럼 부와 명예를 동시에 얻었고, 그래서 많은 소년이 카스트라토를 희망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 중 성공하는 이는 극소수였고, 나머지는 남자로서의 정상적인 삶과 목소리를 바꾼 채 그늘 속에서 일생을 보내야 했다. 그중 파리넬리는 유럽 전역을 뒤흔드는 최고의 인기를 누린 카스트라토라고 말할 수 있다.

   
  ▲ 파리넬리와 대립하게 되는 친형 리카르도. ⓒ 문화뉴스 서정준 기자
 
뮤지컬은 파리넬리의 거세 장면으로부터 시작한다. 이는 파리넬리에게 최고의 인기와 영예를 누릴 수 있는 목소리를 주었지만, 동시에 트라우마로 작용한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읜 파리넬리는 형 리카르도에게 의존한다. 형 리카르도와 파리넬리는 음악적 공생관계이자 앙숙이라고 할 수 있다. 형 아래서 성공한 파리넬리는 결국 형 아래에서 어떤 한계를 느낀다. 이 과정에서 파리넬리가 자신을 놓아두고 온전히 카를로 브로스키일 수 있는 사랑하는 사람도 등장한다. 트라우마와 형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은 파리넬리는 알을 깨고 나오는 데미안처럼 자신을 깨고 나와 '울게 하소서'를 노래한다.  

   
▲ 헤드윅의 캐스팅 왼쪽부터 변요한, 조승우, 윤도현, 조정석, 정문성 배우 ⓒ쇼노트
 
헤드윅 역시 제3의 성을 가진 존재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독일인인지 미국인인지, 가해자인지 피해자인지 무엇이라고 단정 짓기 어려운 존재다. 헤드윅은 자유를 위해 남성성을 포기하려 했지만, 싸구려 성전환 수술이 실패한 후 성난 1인치의 살덩이가 남은 이도 저도 아닌 몸으로 자기 존재 이유를 찾아서 떠돌고 있다.

헤드윅은 미군과 동베를린 여성 헤드비히 슈미츠 사이에서 태어난 소년 한셀이었다. 그는 어린 아들의 몸에 손을 대는 고약한 아버지가 사닌 집에서 쫓겨난 후 냉정한 어머니와 단둘이서 숨 막히는 침묵 속에서 성장한다. 고독한 소년의 유일한 활력소는 데이비드 보위와 이기 팝과 같은 록커들의 음악이었다. 그는 달콤한 사탕과 초콜릿으로 유혹하는 미군 루터와 합법적인 부부가 되어 미국으로 간다. 이 과정에서 성전환 수술이 필요했고, '자유에는 희생이 따르는 법'이라는 어머니의 조언에 따라, 한셀은 여자로 다시 태어난다. 하지만 성전환 수술은 1인치의 살덩이를 남긴 채 끝이 나고, 그는 남자도 여자도 아닌 애매한 몸으로 미국으로 떠난다. 

 

   
▲ 조승우 배우 ⓒ창작컴퍼니다
그토록 바란 록 가수들의 땅이자 자유의 땅인 미국에서 헤드윅은 루터에게 버림받고, 매춘이나 보모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한다. 보모로 일하던 중 스펙 장군의 별난 아들인 토미를 만나고 어린 시절 록스타를 보고 꿈을 키우는 한셀의 모습을 발견한다. 헤드윅은 토미에게 록을 알려주고, 음악으로 서로가 만났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토미는 헤드윅의 본모습을 보고 그를 떠나고, 가수가 된 토미를 비판하며 극이 시작된다. 극은 회상하는 방식이며, 관객들은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차츰 꽤 독특한 의상과 성격을 지닌 헤드윅을 이해하게 된다. 

헤드윅과 파리넬리 모두 성적인 정체성이 모호한 인물이며 이를 받아들이기 힘든 사회에 살고 있다. 이 둘 다 거세 수술을 했으며, 이를 통해 음악적 예술성을 얻었으나 트라우마와 모호한 정체성이라는 그늘에 갇힌 채 살아가게 된다. 외적으로는 남성성과 여성성이 섞인 다소 독특한 인물이며, 록을 하는 헤드윅의 경우 더 그렇다. 즉, 보수적인 사회 가치관에 의해 비정상으로 분류될 수 있는 두 인물은 이러한 세상에서 많이 다친다. 그래서 이들은 유약한 면을 가지고 있으며, 파리넬리가 매사에 형에게 의존하는 모습을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 파리넬리와 리카르도 ⓒHJ컬쳐
그러나 사실 헤드윅과 파리넬리는 더 강인하다. 엄마 뱃속에서 한 번 태어나고, 수술을 통해 다시 태어난 이들은 자신들이 가진 두 가지 모습 때문에 많은 혼란을 겪을 뿐 사실 내적으로 단단하고, 두 번 생명을 받은 덕에 누구보다 순수한 영혼을 가진다. 그래서 관객들은 헤드윅의 록에 내 고민이 날아가는 듯한 시원함을 느끼고, 파리넬리의 오페라에 영혼이 치유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비정상으로 분류 받고 차별받지만, 그렇기에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게 되고, 듣게 된다.

 

   
▲ 조정석이 요염하게 헤드윅을 연기하고 있다.
'헤드윅'의 경우 윤도현, 조승우, 조정석, 정문성, 변요한 캐스팅 중 조정석 캐스팅을 보았다. 조정석을 좋아하는 기존의 관객들이 자리에 앉았겠지만, 필자처럼 조정석이라는 배우에게 별다른 감흥을 못 느낀 채 헤드윅을 보기 위해 이번 캐스팅을 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공연 이후 본인에게 조정석은 호감형에 앞으로 눈여겨볼 배우라는 인상으로 남았다. 즉, 헤드윅의 공연 특성상 헤드윅 인물이 관객과 콘서트 식으로 직접 말하고, 대화하고, 노래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기존의 뮤지컬과 다르게 관객과 무대의 거리는 가깝다. 이에 관객과 인물의 거리 또한 가깝게 된다.

또한, 헤드윅이라는 역할의 특성상 관객들은 남성적인 헤드윅, 여성스러운 헤드윅, 록하는 헤드윅, 상처받은 헤드윅 등등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게 된다. 예를 들면, '건축학 개론'의 납득이같은 조정석도 보였다가, '오 나의 귀신님'의 쉐프 조정석도 보였다가, '꽃보다 청춘 아이슬란드'의 조정석도 보인다. 따라서 관객과 배우 사이가 가까운 공연을 보고 싶은 관객들에게 추천하는 작품이다.

'파리넬리'는 파리넬리 역에 루이스 초이, 형 리카르도 역에 김경수 배우 캐스팅을 감상했다. 작품의 하이라이트는 '파리넬리'가 헨델의 '울게 하소서'를 부르며 자신의 상처와 용기 있게 정면대결하는 부분이다. 관객들은 차츰 루이스 초이의 맑은 음색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며, 점점 무대 쪽으로 몸을 기울여 하나둘 온 신체의 신경을 곤두세운다. 어떤 이는 눈물을 흘리고, 어떤 이는 목이 메는 경험을 하게 된다. 과찬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루이스 초이의 약력을 살펴보면 이를 이해할 수 있다.

   
 ▲ 루이스 초이. ⓒ 문화뉴스 서정준 기자
루이스 초이는 독일의 뒤셀도르프 슈만 국립 음악대학의 대학원 최고 연주자 과정을 마친 전문 성악인이며, 국내 단 한 명뿐인 소프라노 음역의 카운터테너다. 그래서 관객들은 진짜 오페라와 뮤지컬의 만남을 볼 수 있으며, 바로크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진짜 파리넬리를 만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초연에도 참여한 루이스 초이가 추천한 파리넬리 더블 캐스팅에 이주광 배우가 있다. 이주광 배우는 뮤지컬 배우 출신이지만, 루이스 초이와 다른 음색으로 편곡하여 또 다른 매력과 감동을 선사한다고 한다. 

   
 ▲ 이주광 배우. ⓒ 문화뉴스 서정준 기자
실제 카스트라토가 활동하던 시절에는 그들의 음악을 우울증 치료에 활용했다고 한다. 높은 음역의 맑은 음색은 우울한 부분을 씻겨주는 효과가 있으며, 이번 공연에서도 관객들은 이와 유사한 치유와 힐링의 경험을 할 수 있다.

형 리카르도 역의 김경수 배우는 2002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은상을 받았으며, 뮤지컬 '위대한 캣츠비', '마리아 마리아', '리틀 잭'으로 관객들과 만났다. 김경수 배우 역시 파리넬리에 뒤지지 않는 실력자이며, 소프라노 음역의 파리넬리와 대조되어 남성적이고 낮은 톤의 강인한 노래를 부른다. 엄기준과 유준상을 섞어놓은 준수한 외모에 노래 역시 빠지지 않는다.

 
   
 ▲ 파리넬리(우)와 그가 사랑하는 여자 안젤로(좌) ⓒHJ컬쳐
'파리넬리'와 '헤드윅'에는 공통으로 남장 여자 한 인물이 등장한다. 파리넬리에서는 그가 사랑하는 여자로, 헤드윅에서는 그와 결혼했지만 어딘지 불편한 관계로 그려진다. 파리넬리에서는 무대에서 노래하기 위한 목적이므로 소프라노 음색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나, 헤드윅에서는 보이쉬한 락을 부르는 인물로 등장한다. 이들 역시 어떠한 사회적 이유로 본인의 정체성을 바로 가지지 못한 채 그늘 속에 사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알을 깨고 나오는 헤드윅과 파리넬리와 함께, 이들 역시 스스로 알을 깨어 병아리로 탈바꿈한다. 자기 자신의 모습과 본성이 어떻든 온전히 그것이 자신의 모습으로 받아들이며, 이로써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이렇게 이 두 작품은 오늘날 헤매고 있는 우리에게 사회가 정상이라고 규정지어온 것과 맞서서 우리 자신 그 자체를 사랑할 용기를 준다.

 
   
▲ 헤드윅에서 공연하는 조승우 배우 ⓒ창작컴퍼니다
3월부터 공연한 헤드윅은 이번 달 29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한다. 뜨거운 캐스팅으로 화제를 받은 헤드윅 역에는 윤도현, 조승우, 조정석, 정문성, 변요한 배우가 함께한다. 여장 남자인 이츠학 역에는 서문탁, 임진아, 제이민이 캐스팅되었다.

다음으로 4월 26일을 초연으로 관객과 만난 '파리넬리'는 이번 달 15일까지 광림아트센터 BBCH 홀에서 만나볼 수 있다. 파리넬리 역에는 루이스 초이, 이주광 배우가, 형 리카르도 역에는 이준혁, 김경수 배우가 안젤로 역에는 박소연 배우가 캐스팅되었다. 탄탄한 스토리와 뮤지컬 넘버를 가진 두 작품으로 자신을 돌아볼 용기로 힐링해보는 것은 어떨까.

 
문화뉴스 김진영 기자 cindy@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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