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무라카미 하루키는 '장편을 쓰는 것도 지쳤으니 이제 슬슬 단편들을 써보는 게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어 펜을 들었다고 한다. 
 
그의 단편집은 2005년 '도쿄 기담집' 이후 9년 만이다.
 
'여자 없는 남자들'이라니 일곱 글자의 제목에서 쓸쓸함과 애잔함이 묻어나온다. 책의 주인공들은 책의 제목과 같이 여자를 잃어버린 남자들이다. 책의 남자들은 어떤 이유에서든지 진실로 사랑했던 여자들을 떠나보낸다. 남자들은 사랑해 마지않았던 여자들을 이해하려하지만 그를 떠나보낸 그녀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결말이 내려진다. 사내들의 뒷모습이 아련하기만 하다.  
 
"우리가 누군가를 완전히 이해한다는 게 과연 가능할까요? 설령 그 사람을 깊이 사랑한다 해도"라는 작가 말이 참 씁쓸하다. 마음 깊이 사랑을 하고 몸으로 대화를 나누어도 소설 속 인물인 서로의 깊은 곳까지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그런 사람의 마음 한구석에 있는 빈 공간을 보는 것도, 이해하는 것조차도 힘든 것이다.
 
그것이 책의 표지그림이자 '예스터데이'에서 묘사되는 '얼음 달'의 느낌일 것이다. 두께는 언제나 이십 센키미터, 반쯤 물에 잠겨 있는 차갑고 밝은 달을 보고 있는 풍경이 머릿속에서 그려진다.
 
그 안에는 무엇이 담겼는지, 뒷면에는 무엇이 있는지, 물속에 잠긴 부분은 어떤 모양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달의 수려한 모습을 보며 감탄하고, 동경하고, 사랑에 빠지지만, 그 달이 보여주지 않는 면에는 어떤 모습이 있는지 알 길이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달과 사랑에 빠진다.  
 
작가는 아마도 내가 사랑을 느끼지만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다는 걸 말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한국어판에 특별 추가된 카프카 소설 '변신' 속 무대에서 이야기가 시작되는 '사랑하는 잠자'의 주인공도 마찬가지다. 
 
   
▲ 무라카미 하루키 ⓒELENA SEJBERT. 문학동네 제공
 
자기가 언제 어떻게 태어났고, 부모님이 누구이고, 이 동네가 어디인지, 이 시대는 어디인지, 사회적 규범은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 그저 본능적인 식욕에 이끌리고, 낯선 이성에게 사랑을 느낀다. 자기는 누구인지 모르지만, 사랑을 위해 하나씩 살아가는 법을 배우기로 한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 체 상대방을 사랑한다. 그러고서는 상대방을 이해할 수 없어 떠나보낸다. 이별의 아픔을 짊어지고 언젠가 다시 찾아올 사랑을 기다리며 여자 없는 남자들은 살아간다. 
 
일본어판 서문에서 작가는 소설 속 세계는 자기의 무의식이라고 주장하지만, 일부러 밝힌 것을 보면 아무래도 수상하다. 하지만 상관없다 현실적인 세계관을 그려낸 하루키는 이번에도 실망하게 하지 않았다.  
 
문화뉴스 신일섭 기자 invuni1u@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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