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음악씬 내 성폭력 사례의 공론화

[문화뉴스]

   
 

'OO_내_성폭력' 해시태그를 통해 성폭력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성폭력 피해사례가 공론화된 것은 지난 17일 트위터에서 '오타쿠_내_성폭력'이라는 해시태그를 통해 동인 계열에서 발생한 성폭력 피해사례가 올라오면서부터다. 이때 웹툰작가 이자혜가 웹디자이너 이익의 미성년자 대상 성폭력을 방조했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그 결과, 이자혜가 활동을 전면 중단하게 됐고 이슈에 대한 관심은 커져가기 시작했다.

이어, '#문단_내_성폭력', '#영화계_성폭력', '#직장_내_성폭력', '#스포츠계_내_성폭력', '#대학_내_성폭력', '#교회_내_성폭력', '#가정_내_성폭력', '#운동권_내_성폭력' 등 다양한 부문과 업계에 걸쳐 발생한 성폭력 피해사례가 잇달아 업로드되고 있다. 음악계에서는 '한국 인디밴드의 공연을 안 가는 이유들'이라는 제목의 구글 독스 문서를 통해, 밴드씬에서 발생했던 미소지니, 성범죄 피해가 계속해서 제보되고 있다. 26일 현재는 덧글을 제외하면 총 173건이 게시됐다.

문서에는 '자궁냄새'라는 단어를 만들어낸 밴드의 사례, 밴드맨과의 강의 프로그램에서 흑심을 품지 말아달라는 모 회사의 발언과 같이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던 사건부터 밴드 멤버나 관계자에게서 당한 플러팅(가벼운 관계를 목적으로 집적거리는 행위), 성희롱, 데이트 폭력, 성폭력 사례들이 담겨있다.

사례 속 가해자는 인디밴드 멤버부터 소속사 관계자, 인디씬 커뮤니티 회원, 남성 관객까지 다양하다. 공연 중 갑자기 바지를 벗거나 여성 관객에게 성적 발언을 하는 경우는 물론, 공연 후 뒤풀이 때에 플러팅부터 시작해서 강제로 성폭력을 가하는 경우도 있다. 공연 중 슬램을 하다가 남성 관객에게 성추행을 당한 사례에 대한 제보도 많았다.

 

   
▲ 문서 중간 미소지니/성범죄 사례 일부분 캡처.

한 작성자는 "악수회에서 모 밴드의 보컬이 악수를 하면서 내 손바닥을 긁었다. 그때는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알고보니 그 밴드맨은 관객 중에서 성관계를 가질 사람을 물색하고 있었더라"고 말했다. 또 다른 게시자는 "단체 술자리에서 한 드러머가 즉흥 퍼커션을 치게 됐는데 그 사람이 퍼커션을 치면서 내 허벅지를 중간중간 쳤다. 다들 유머러스하다고 생각하는 분위기였지만 굉장히 불쾌했다"고 밝혔다.

여성 밴드멤버 역시 성폭력 피해에 노출되어 있기는 마찬가지다. 한 글의 작성자는 "모 밴드 여성 멤버가 레슨을 핑계로 플러팅을 요구받는 것이 잦아져서 결국 SNS를 탈퇴했다"며, "관객은 물론 음악하는 여성에 대한 플러팅을 그만하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모 밴드는 여성멤버가 꽤 자주 바뀌었는데, 한 멤버가 새로 들어온 멤버를 건드리기 때문이라더라"는 덧글도 게시됐다.

음악계 중에서도 특히 인디씬에서 활발한 공론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은 인디씬 뮤지션들과 팬들은 큰 제약 없이 서로 교류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어, 그만큼 피해가 발생할 여지도 많기 때문이다. 또한, 인디밴드의 멤버들은 대부분 남성인데 비해 팬들은 여성이 많은 것도 또 다른 원인이다. 본 문서에서는 "인디씬의 여성팬은 남성팬에 비해 '그루피(음악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가와 성교 등 친밀한 관계를 목적으로 접근하는 팬)'로 인식되는 분위기 역시 만연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가장 많은 덧글이 달린 글을 쓴 한 작성자는 "고작 텍스트라고 여길 수 있지만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은 이런 글의 존재를 아는 것만으로도 앞으로 주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에 다른 작성자들은 "성폭력 피해사례가 많은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심한 줄은 몰랐다", "성폭력 피해사례가 수면 위로 올라와 이에 대해 인식하고 조심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피해자가 다시 숨는 일이 발생해서는 안 될 것" 등의 의견을 밝혔다.

놀라운 것은 문서 속 사례들이 전에 없던 일이 아니며,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미 구설수에 오르던 사건이라는 것이다. 성폭력 피해자가 숨어서 주위에만 하소연하던 것을 넘어, 조금씩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은 긍정적인 징조다. 이러한 성폭력 피해사례 공론화를 통해,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사회 전반에 만연한 성폭력 피해를 해결할 수 있도록 모든 이들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문화뉴스 김소이 기자 lemipasolla@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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