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한국여성극작가전 나혜석 작 백은아 각색 연출의 경희 원한 현숙

 

[글] 문화뉴스 박정기 (한국희곡창작워크숍 대표)
pjg5134@mhns.co.kr 한국을 대표하는 관록의 공연평론가이자 극작가·연출가.

[문화뉴스] 나혜석(羅蕙錫, 1896~1948)의 본관은 나주(羅州)이고 아호는 정월(晶月)이다. 일본 동경 미술학교 유화과에서 서양화를 공부한 뒤 1918 귀국하여 화가, 작가로 활동하였으며 여성운동가, 사회운동가로도 활동하였다. 1918년에 미술학교를 졸업하고 경성부로 돌아와 잠시 정신여학교 미술교사를 지냈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이후 1918년 12월부터 박인덕 등과 함께 만세 운동을 준비, 1919년 3 1 만세운동에 참가하여 5개월간 투옥되었다가 풀려났다.

그 뒤 1920년 김우영과 결혼, 그를 따라 만주와 프랑스 등을 여행하였으며 그림, 조각, 언론, 문필, 시 등에서 활동했다. 1927년 유럽과 미국 시찰을 가게 된 남편을 따라 여행길에 올라 '조선 최초로 구미 여행에 오른 여성'이라는 칭호를 얻게 됐다. 프랑스에 체류하던 중 야수파 인상주의 표현파 등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 한때 여러 남성들과의 연애로 문제가 되었으나 곧 그림활동에 매진하던 중, 외교관 최린과의 염문으로 이혼하게 된다. 그러나 뒤에 최린으로부터도 버림받게 된다.

1935년 정조 취미론을 발표, 순결과 정조(貞操)는 '도덕도 법률도 아닌 취미'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자신의 아내, 어머니, 누이, 딸에게는 순결함을 요구하면서 다른 사람의 아내나 어머니, 누이, 딸에게는 성욕을 품는 한국 남자들의 위선적인 행동에 대한 비판과 자유연애론을 주장하였고, 당사자들의 의견이 존중되지 않고 집안의 뜻에 따라 결혼하는 것에 대한 비판, 가정폭력을 일삼는 남성들에 대한 비판 등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일제강점기의 유명한 신여성으로, 뛰어난 미모와 함께 그림, 글, 시 등 다방면에 재주를 갖춘 근대 여성이었으며, 여성 해방, 여성의 사회 참여 등을 주장하였다. 김일엽 강인덕 허정숙 등과 함께 이혼 후 사회생활을 하는 여성으로 유명하였다.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의 한사람으로 꼽힌다. 문재(文才)도 뛰어났으며, 일본 유학 때부터 여권신장의 글을 발표한 여권운동의 선구자이기도 하였다. 원로 여배우 나문희의 고모할머니이기도 하다.

   
 

연출가 백은아는 용인 송담대 뮤지컬 연기과 교수로, 독일 베를린 홈볼트 대학교 연극학과에서 학사·석사학위를 받은 재원이자, 극단 거울의 대표이고, 현 용인문화재단 이사 겸 연출가다.

<독신여성과 정조론> <수인의 몸 이야기> <당신의 왕국> <스페인 연극> <미망인들> <보이첵-마리를 죽인 남자> <피그말리온 사랑> <찬란한 오후> <건축사 아씨리 황제> <평강의 푸른 피리> 그 외의 다수 작품을 연출하고, 2008년 <건축사 아씨리 황제>로 2인극 페스티벌 작품상을 수상한 발전적인 장래가 예측되는 연출가다.

1918년에 발표된 나혜석의 단편 <경희>는 나혜석의 대표작이다. 이 소설의 서사적 갈등 구조는 '신여성' '구여성'의 대비를 통해 긍정적인 신여성상을 제시함으로써 남성이 지배하는 가부장적 사회질서에 도전하는 데 있다. 긍정적인 신여성을 대표하는 경희를 통해 구여성들인 사돈마님, 어머니, 올케, 시월이 등의 생활스타일과 고정관념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나혜석은 같은 시대의 작가인 이광수의 <무정> 김동인의 <약한 자의 슬픔>과 비교된다.

나혜석의 소설 <경희>, <원한>, <현숙>에서 소설 속 여성 주인공들이 자신이 각자 처한 현실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경희>는 일본에 유학중인 여학생으로 기존의 남존여비, 여필종부라는 사고에서 벗어나려 한다. 경희는 가부장의 권력을 넘어서기 위하여 여성이 겪어야 하는 남성본위의 사회에서 혁명적 변환을 시도한다.

<원한>의 이 소저는 과부가 된 여인이다. 과부, 첩, 벌거숭이 몸으로 수식되는 이소저의 정체는 남성의 사망으로 인한 현실을 통해, 미망인의 본의와는 상관없이 비참한 패배자처럼 인식되는 것에 대한 역설적 표현이다.

<현숙>의 현숙은 카페여급으로 다면적인 주체이다. 현숙은 기만적인 남성들의 논리를 비판하고, 남녀 따로따로의 고유한 도덕적, 성적영역은 없다는 진실을 우회적으로 폭로한다. 나혜석은 <현숙>을 통하여 근대적 여성상을 제시하고 성차별에 대한 혁신적 전환을 도모하고자 한다.

<경희> <이 소저> <현숙>은 그녀들이 처한 열악한 현실 속에서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이 땅에서 태어난 세 여인의 삶을 통해, 남녀 성차별에 대한 혁명적 쇄신을 적나라하게 그려낸 나혜석의 걸작단편소설이다.

무대는 연립주택이나, 아파트의 같은 층에 거주하는 세 여인의 방문을 문틀 같은 조형물 세 개를 세우고, 의자 너덧 개를 배치해 의자 위에 유성기를 놓거나 의자 주위에 바구니, 대야 등을 놓아두었다. 부분 조명으로 여인들의 동태를 강조하고, 한복과 양장으로 세 여인의 의상을 구분시켰다. 세 여인의 생존 당시의 유행하던 일제치하 당시 음악 대신, 해방 전후의 가요가 배경음악으로 사용된다.

연극은 <경희> <이 소저> <현숙>의 삶이 하나하나 차례로 묘사가 되고, 마치 이웃 집 여인들처럼 보이는데다가, 세 여인과 등장인물 전원이 함께 길거리를 활보하듯 무대를 좌우로 걷고 또 스쳐 지나가기도 하지만, 세 여인이 함께 어우러지거나 만나는 일은 결코 없다. 세 여인의 현실과 고락, 그리고 애정이 세밀하게 펼쳐지고, 당대의 남성들의 성품이 고스란히 드러나도록 연출되어 관객은 도입부터 대단원까지 극 속에 몰입하게 되고, 남성관객은 그간의 여성에 고정관념과 편견에서 벗어나 반성까지 하게 되는 느낌이다.

   
 

차영욱, 이자경, 권혁미, 오화라, 이동경 등 출연자 전원의 성격창출과 호연으로 관객을 극에 몰입시키고, 대단원에서 우레와 같은 갈채를 받는다.

예술감독 김중권, 드라마투르기 강수진, 무대디자인 김혜지, 조명디자인 강소진, 의상디자인 김경인, 음악 제갈윤, 안문 조하영, 조연출 신락훈, 분장 김종숙, 조명오퍼 김우현, 음향오퍼 김만중 등 스텝 모두의 열정과 노력이 조화를 이루어, 한국여성연극협회<회장 류근혜>의 제4회 한국여성극작가전 나혜석 작, 백은아 각색 연출의 <경희 원한 현숙>을 연출가와 연기자의 기량이 돋보인 한편의 걸작연극으로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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