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목화의 오태석 작 연출의 도토리

 

[글] 문화뉴스 박정기 (한국희곡창작워크숍 대표)
pjg5134@mhns.co.kr 한국을 대표하는 관록의 공연평론가이자 극작가·연출가.

[문화뉴스] 오태석은 1940년 충남 서천에서 출생해 연세대학교 철학과 재학 시절 그의 첫 희곡 「영광」이 시민예술제 희곡 공모에 당선되어 국립극장 무대에서 공연되면서 연극계와 인연을 맺게 된다. 그러나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는 것은 196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웨딩드레스」가 당선되면서부터이다. 그는 초기에 서구의 모더니즘 희곡 형식을 실험하다가 1970년대 이후로는 전통극적 요소를 작품에 수용하면서 작가 고유의 희곡 세계를 구축하게 된다.

오태석의 희곡은 현대인의 내면세계를 다룬 부조리극 계열의 작품들과, 한국의 전통과 역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들로 분류될 수 있다. 논리적인 인과 법칙보다는 자유로운 연상의 흐름에 따라 극적 서사를 전개시키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기발한 발상과 유희적인 상상력이 넘쳐흐른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바로 이 때문에 비논리적이며 난해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오태석은 1960년대 후반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이고도 왕성한 극작 활동과 연출 활동을 전개해 왔을 뿐만 아니라 그가 발표한 대부분의 작품이 관객으로부터 높은 호응을 받아왔다는 점에서 그는 한국 현대 연극을 대표하는 극작가 겸 연출가로서 평가받을 만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오태석이 한국 현대 희곡사에서 높게 평가받을 수 있는 것은 그가 사실주의 희곡의 전통을 거부하고 새로운 극 형식을 실험하였기 때문이다.

오태석은 현재 목화레퍼토리 컴퍼니의 대표 겸 상임 연출가로서 활동하고 있으며, 대표작으로는 <육교 위의 유모차>, <유다여 닭이 울기 전에>, <교행>, <초분>, <태>, <춘풍의 처>, <사추기>, <자전거>, <부자유친>, <비닐하우스>, <심청이는 왜 두 번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 <백마강 달밤에>, <여우와 사랑을>, <천 년의 수인>, <코소보 그리고 유랑>, <잃어버린 강>, <지네와 지렁이>, <내 사랑 DMZ>, <앞산아 당겨라 오금아 밀어라>, <만파식적>, <양화진 사랑>, <분장실> 그 외의 다수 작품을 발표 공연했다.

무대는 벤치 형의 칸칸이 손잡이가 달린 긴 나무의자가 배경 막 앞에 가로 놓여있다. 무대 중앙에는 멍석 크기의 커다란 소쿠리에 수박덩이 만한 도토리가 잔뜩 들어있다. 객석에서 바라보이는 무대 왼쪽에 커다란 휴대폰이 세워져 있고, 전광판에 문자와 수자가 차례로 표시된다. 무대 오른쪽에는 공중전화박스 같은 구조물이 있다.

   
 

사회자의 해설로 연극이 시작되면 감옥에서 수형자들 중 모범수가 석방되는 장면이 펼쳐지고, 두 명의 석방된 죄수가 춤을 추며 퇴장한다. 죄수 한명이 누님 집에서 간병인 노릇을 하는 로봇과 마주한다. 또 한명의 죄수의 여자 친구 가족의 생활모습이 펼쳐진다. 회전하는 날개가 붙은 장난감이 배달되고, 그 날개를 돌리면 경을 읊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딸의 남자친구가 전과자가 되어 들이닥치니 비록 부처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어머니의 심정이 어떠하랴?

장면이 바뀌면 석방된 인물 중 한명이 멧돼지 먹이인 도토리를 주워가지 말라고 설명을 한다. 그런데 설명이 어눌하고 서툴기 그지없다. 척수장애인이라는 설정이다. 그러니 그 말이 제대로 전달될 리가 없다. 그러나 인물은 열심히 설명을 반복한다. 멧돼지 탈을 쓴 출연자들이 등장해 도토리를 하나하나 집어간다. 장면이 바뀌면 지적장애가 있는 인물 앞세워 장애인의 공생마을을 만들겠다고 선전하며 금품을 요구하는 사회복지과 팀장, 이를 수상하게 여겨 지켜보는 경찰, 그리고 무대에 세워둔 휴대폰에 경적 음이 들리면서 전광이 반짝거린다.

여자 친구 집은 이사를 하기로 했는데 이사를 하기도 전에 이사 올 사람의 짐이 먼저 도착을 한다. 그런데 그 이삿짐 속에 개와 고양이의 시체 그리고 오소리 너구리가 들어있다. 복덕방이 등장하고 노인이 등장해 전에 이 집에 살던 사람임을 알린다. 그러면서 티벳의 극락 같은 고장으로 가려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장면이 바뀌면 장애인인 인물이 호박장사를 한다. 호박잎도 따서 모은다. 생활이 어려운 사람을 위해 호박과 호박잎을 판다고 어눌하게 외친다.

인권단체 직원이 등장해 지적장애인을 돕자는 명목으로 예금통장에 입금을 시키라며 계좌번호를 알린다. 로봇 간병인이 등장해 직원의 머리채를 잡는다. 직원이 냅다 도망을 한다. 호박들도 벌떡 일어나 도망치듯 퇴장한다. 이런 광경을 계속 지켜보는 경찰. 인권단체 직원이 입금된 돈을 계산하며 앞으로 입금될 금액을 예측한다. 게다가 장애인의 여자 친구를 납치해 차에 번개탄을 넣고 불을 붙인 후 승용차 문을 닫으면, 여친의 아버지가 거금을 입금시킬 것이라며 흉계를 꾸민다.

직원이 식당으로 향하면 로봇 간병인이 그의 뒤를 따른다. 잠시 후 식당 쪽에서 물건 부서지는 소리가 들린다. 총성과 함께 멧돼지 떼가 등장한다. 포수와 마을 청년들이 뒤따른다. 석방된 죄수 중 한명이 포수들의 멧돼지 사냥을 막아선다. 청년이 구원을 요청한다. 바로 그때 낙타형태의 조형물이 썰매를 끌고 등장한다. 포수들이 도망을 친다. 사람들이 낙타를 반기고 선녀들이 도토리를 들고 춤을 추며 들어온다. 장면이 바뀌면 여자 친구의 집에 불이 났다고 경보와 함께 휴대폰이 울린다.

그런데 집은 멀쩡하다. 위층에서 불이 난 것으로 정정 보도된다. 왁자지껄하는 소리와 함께 위층 소녀가 베란다에서 아래층으로 투신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 원인이 자살사이트에 가입을 해서 그런 일이 생겼다고 알려진다. 붉은색 승용차가 등장을 하고 번개탄을 피우려 한다. 장애인의 여자 친구와 인권단체 팀장이 함께 동승하려 한다. 승용차 화재를 빌미로 거액을 챙기려는 일당을 체포하기 위한 계략이다. 그러나 장애인의 여친이 반대를 하니, 형사들이 여친을 커다란 포대자루에 넣어 묶는다. 그러나 여친은 구멍으로 빠져나오고 팀장이 대신 들어가 묶인다. 형사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차문을 닫는다. 돌연 번개탄이 연기를 뿜으니 형사들이 놀라 차문을 다시 열려고 하지만 차문을 굳게 닫혀 열리지 않는다. 차안에서 경찰이 쓰러지는 모습이 보인다. 거액을 챙기려던 인권회사 직원이나 이를 알고 찾아온 여론사의 카메라맨이나 경찰이나 모두 달아나듯 퇴장하면 차문이 열리고 장애인과 여친이 차 밖으로 나온다.

마지막 장면은 재판정이다. 멧돼지들이 긴 벤치에 앉아있다. 판사가 선고를 하려다 펼쳐진 법전 종이위로 기어가는 자 벌레를 발견한다. 판사는 자 벌레가 기어갈 때까지 선고를 보류한다며 휴정을 선언하면 멧돼지들의 박수소리와 함께 연극은 끝이 난다. 17년 전에 오태석이 집필을 하고 이번에 수정보완을 해 완성시킨 작품이라는 설명이다. 어린이들이 많이 관람을 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와 함께.

   
 

송영광, 정지영, 유재연, 조원준, 김봉현, 배건일, 조유진, 임주은, 이신호, 장원준, 이병용, 이근환, 손현우, 박현정, 장햇님, 김자연, 최광원, 홍성환, 윤정욱, 황보연, 서수민, 나진수, 임정민 등 출연자 전원의 성격창출과 호연 그리고 열연은 물론 열창과 무용에 이르기까지 혼연 일체된 모습에서 극단 목화의 열정을 다한 연습장면이 떠오른다.

의상 이승무, 조명 이경천, 안무 강은지, 시진 이도희 신귀만, 컴퍼니매니저 오준현, 기획 정지영 이병용, 그래픽디자인 박현정, 인물 포트레이트 최재원, 음향오퍼 및 글 박소연, 조명오퍼 신지은, 프로듀서 이혜정, 라인프로듀서 이경빈 강유진, 홍보 김수정 양은지 등 스태프 모두의 기량과 노력이 드러나, 극단 목화의 오태석 작 연출의 <도토리>를 동화나 우화 같은 느낌의 친 대중적 표현에 실험성까지 곁들인 걸작공연으로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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