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강백 작가가 연극 '여우인간'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문화가 있는 날·예술이 있는 삶을 빛냅니다…문화뉴스] "사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을 공개적으로 말할 필요가 있느냐 하겠지만, 보면서 불만스러웠던 부분이 있다."

지난 27일 오후 서울시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열린 연극 '여우인간'의 프레스 리허설이 끝나고 진행된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이강백(68) 작가가 김광보(51) 연출에게 한 말이었다. 언론이 많은 자리에서 선배 극작가가 자신의 첫 작품을 연출한 후배 연출가에게 "엉성하다" 등의 지적을 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먼저 연극 '여우인간'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연극 '여우인간'은 2008년부터 현재까지 우리의 정치 사회적 현상을 다룬 블랙코미디다. 이 작품엔 2008년 광우병 파동으로 생겨난 촛불집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 국정원 댓글 사건, 최근 열린 총선과 대선, 세월호 사고 등이 담겨 있다. 이 작품은 현실을 그대로 구성하지 않고 여우가 등장하는 '우화'로 꾸며 만들었다.

이강백 작가는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이 여우한테 홀렸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홀린 상태에서 미래로 가지 못하고, 뫼비우스의 띠처럼 반복되는 구조 속에 우리가 갇혀있다는 개인적인 생각 만이 아니라, 우리가 모두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이 작품으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구상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국민 화합이라는 부분을 꼬집기 위해 작품을 만들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그는 "그 부분에선 전혀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며 "다만 극작가는 작품을 쓸 때, 개인보다 우리가 지금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우리가 지금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지를 더 강조한다"고 답했다.

그는 "기억이 미화가 돼서 그런지 몰라도, 젊은 시절엔 우리끼리도 미래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며 "우리가 이런 세상으로 나아가고 싶다는 미래에 대해 함석헌 선생님 같은 어르신 분들이 미래 담론에 관해 이야기를 했었다. 최근에 와서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모르겠으나 미래에 대한 이야기가 주변에서 끊겼다. 미래에 관해 이야기하는 어르신들도 없는 것 같다. 이게 안타까웠다. 그래서 국민 화합이라기보단 연극이란 장치가 우리 모습을 무대 위에서 한 번 돌이켜보는 역할도 해서, 그런 점에 주안점을 두고 썼다"고 설명했다.

"좋은 작품이 나올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첫인상을 밝힌 이강백 작가는 "솔직히 일반 극단이나 국공립 극단에선 하기 쉬운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여장부처럼 배짱이 있고, 방패막이 같은 서울시극단 김혜련 예술감독님께 작품을 드렸다. 흔쾌히 받아주셔서 오늘 공연하게 된 것에 감사하다"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 (왼쪽부터) 김광보 연출, 김혜련 예술감독, 이강백 작가가 연극 '여우인간' 기자간담회에 참석했다.

김혜련 서울시극단 예술감독도 "우리 한국 문제 뿐 아니라 21세기 자본주의라는 형태를 보이고 있는 모든 국가들에 공통으로 나오는 이야기"라며 "미국, 유럽 관계없이 어느 나라던 번역이 되고, 책이 출판되어 알려져 요청이 오면 시극단에서 가게 된다면 어디든지 달려가려 한다. 전 세계가 여우놀음에 놀아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해외 진출 계획에 대한 질문에 답변했다.

이강백 작가는 이번 프레스 리허설을 본 소감을 "요즘 열 명 이상 출연하는 것 자체가 어렵고, 메시지를 까칠하게 전달하지 말자고 무언의 약속들이 이뤄지는 연극 환경 속에서 이 공연을 무대에서 조명과 의상을 갖춰서 보니 마음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복받쳐 오르는 것을 감출 수 없다"며 입을 열었다.

그는 "서른 몇 개의 모자이크로 이뤄진 극을 조각조각 맞춰가는 과정을 놀이 형식으로 풀었다는 것에 역시 천재적인 연출 김광보라고 하는 이유를 확인할 수 있었다"며 김광보 연출에 대해 칭찬을 시작했다. "놀이 형식으로 푸니까 난잡해질 수도 있는 것이 정돈되며 재밌게 풀어나갔다"고 감상 소감을 남겼다. 또한 "이 부분은 후생에게 선생이 감사하다고 해야 할 것 같다"며 감사의 뜻을 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강백 작가는 김광보 연출에 대해 쓴소리도 남겼다. 그가 지적한 부분은 극 중 연결 고리인 노래에 관한 부분이었다. 배우들이 합창하는 '애도의 노래'에선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세월의 노래'에선 지난해 4월 세월호 참사에 대한 내용을 담아냈다.

그는 "단순히 이 노래가 소리뿐 아니라 전체적으로 작품의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가 영향을 미치는데 무성의했다. 아무리 2~3일 전에 곡이 나왔다고 했지만, 노래가 너무 엉성하다. 곡을 여러 번 김광보 연출이 검증했겠지만, 전체적인 콘셉트와 잘 안 맞는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작품을 쓰는 사람도 요즘 부끄러울 때가 많다"며 "뭔가 프로답지 않다. 농구, 야구, 배구 같은 프로 스포츠 구단도 못하면 야단을 맞는다"고 이야기했다.

   
▲ 연극 '여우인간' 중 '애도의 노래' 장면

이에 김광보 연출은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충언으로 받아들인다"고 답했다. "다만 두 가지 입장이 부닥치는 것 같다"며 "선생님께서 직설적으로 말씀하셨는데, 공연을 준비한 저희는 무성의하게 한 것이 하나도 없다. 비교적 건조하게 이 노래를 부른 것은 객관적으로 생각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격한 감정에서 폭발하는 현상으로 드러내기보단 쉬워가는 시간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여유롭게 노래를 들으면서 이 시점에 노래는 이런 의미였다고 표현하려 했다"고 노래에 대한 연출 의도를 밝혔다.

"격분하게 말씀하셔서 저도 연출인지라 변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그는 "배우들이나 제가 아마추어처럼 한 생각은 없다. 어제도 새벽 2시까지 어떤 것이 좋을까 관련해 연습했다. 녹음도 해보고, 별 준비를 다 했다. 결과로는 안 좋아 보일 것이라곤 인정하겠으나 무성의하게 한 것은 없다고 본다"며 밝혔다.

오후 첫 공연 연습 준비로 기자간담회는 김광보 연출의 답변으로 마무리됐다. 이후 이강백 작가는 바깥에서 취재진들과 간단한 인터뷰를 했다. 그는 "'레고' 같은 조각들로 만들어진 작품이기 때문에 연출이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을 꺼냈다.

음악에 대해 따로 주문한 것은 있었는지에 대한 질문엔 "작가는 문자로 쓰는 사람이다. 연출도 작가"라며 "배우의 살아있는 몸과 조명, 의상, 분위기를 쓰는 사람인데 누가 문자로 워드를 치고 있는데, 슬쩍 보더니 이걸 대사라고 썼냐고 하면 기분이 어떻겠나. 작가는 연출이 무엇을 하든 존중을 한다. 그래서 이렇게 하라 혹은 저렇게 하라는 것을 지금까진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그 노래 부분을 강조한 것은 있다. 연출로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처음 작곡된 음악을 들어봤었는데, 그것이 너무 장중해서 극의 진행과 맞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연출도 작곡가에게 새로운 작곡을 의뢰했었다. 그 곡이 늦게 나와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고 생각했다.

   
▲ 연극 '여우인간' 중 '세월의 노래' 장면

여기에 그는 기자간담회에서 까칠한 소리를 한 부분에 대해 "사실은 오늘 첫 공연인데 고생도 많이 하고 최선을 다했지만, 보러 오는 사람에겐 아직 발효가 덜 된 작품으로 볼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라고 말을 꺼냈다. "첫 작품이 발효된 술처럼 올라갈 순 없다. 닷새나 엿새 지나야 비로소 발효된다. 여기 출연한 배우들이 탁월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객석을 즉각 즉각 밀고 당기고 함께 놀 것으로 보인다"고 작품이 잘 되었으면 하는 걱정에서 나온 말이라고 밝혔다.

연극이 잘 되기 위한 과정에서 나온 의견 충돌, 그 결과물은 4월 12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창직, 강신구, 김신기, 주성환, 한동규, 이철희, 박세기, 박진호, 김유민, 유연수, 문경희, 김정환, 문호진, 유영욱, 하인환, 조용진, 김근영, 허재용, 신해은, 장석환, 한정훈, 이지연, 유미선, 정예림, 김동석, 정상기 등 20명이 넘는 출연진들의 호흡이 '꾀 많은 여우'처럼 올랐을 것으로 보인다.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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