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사 잘 차려진 피아노 연주의 성찬

글: 여홍일(칼럼니스트)

건반 위의 검투사 이미지가 짙은 우크라이나 출신의 피아니스트 발렌티나 리시차의 리사이틀은 흡사 잘 차려진 피아노 연주의 성찬을 연상시킨다. 

메인 곡에 덤은 기본이고 앙코르곡을 7곡이나 선사한 지난 9월 11일 토요일 저녁의 올해 2011년 리시차의 리사이틀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발렌티나 리시차는 이날 전반부에 라흐마니노프의 코렐리 주제에 의한 변주곡을 메인 곡으로 연주한 후 덤으로 피아노 소나타 2번(1st Ver)을 연주했고 후반부에도 쇼팽의 스케르초 1~4번 연주에 이어 덤으로 환상 폴로네즈를 관객에게 선사했다.

 

사진=오푸스 제공
사진=오푸스 제공

 

2013년 11월 25일의 내한 무대에서 무려 3시간 30분에 가까운 피아노 성찬을 펼쳐 보였던 그녀였기에 올해의 내한 피아노 리사이틀에서도 얼마만큼의 피아노 성찬을 국내 관객에게 선보이게 될지는 코로나-19 상황이어서 미리 가늠할 수는 없었지만,내게도 발렌티나 리시차 피아노 리사이틀 참관 감상의 중요 관전 포인트의 하나이기도 했다. 

2015년 3월 21일에 있었던 발렌티나 리시차의 리사이틀 무대도 3시간이 넘는 괴력의 공연과 두 번의 중간휴식, 한 피아니스트가 이틀에 걸쳐 소화할 레퍼토리들을 하루에 해치우는 리사이틀로서

당시, 예프게닌 키신 못지않은 긴 사인을 받으려는 팬들의 행렬과 사진을 찍으려는 휴대폰이 사방에서 터지는 열기 등으로 토요일 오후 5시에 시작된 공연은 밤 10시 반이 지나서야 종료됐었다.

 

숨도 멎은 듯한 청중들이 나만을 바라보며 집중하는 이 순간을 위해

무대서 연주하는 진정한 여류 피아니스트

 

올해 발렌티나 리시차 피아노 리사이틀은 지난 9월 11일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같은 시각에 열린 선우예권X싱어송라이터 권진아의 CURTAIN CALL 공연이 겹쳤음에도 1, 2, 3층 객석과 합창석까지 고루 채우는 리시차의 만만치 않은 구매 파워를 보여주기도 했다.

‘숨도 멎은 듯한 청중들이 나만을 바라보며 집중하는 이 순간을 위해 무대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진정한 여류 피아니스트의 모습’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 

특히, 발렌티나 리시차의 트레이드 마크라 할 수 있을 앙코르의 성찬은 이날도 예외가 아니어서 Chopin: Waltz op.64 No.2, Chopin: F Liszt-Maikden's Wish, Chopin: Andante Spianto and Grand Polonaise Brilliante, Chopin-Fantasie-Impromptu Op.66, Chopin: Waltz Op.34 No. 1, Chopin: Waltz Op.42, 그리고 Chopin Waltz Op. 64 No.1의 코로나-19의 어려운 무대 여건임에도 무려 예기치 못한 일곱 곡의 앙코르곡을 관객에게 선사해 티켓값이 아깝지 않을 풍성한 포만함을 전달했다. 

리시차는 메인 곡들의 연주에서도 그녀의 베스트 레퍼토리들인 라흐마니노프와 쇼팽으로 구성된 연주곡들을 택해 그 어느 때보다도 피아니스트 발렌티나 리시차의 정수를 만끽할 수 있는 시간과 더욱 원숙해진 그녀의 피아니즘을 만나볼 수 있는 리사이틀이 되어 관객들의 반응도 예사롭지 않았던 듯하다. 

 

근원적 고독감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 작품 전반에 사무쳐

 

내게는 리시차의 첫 연주곡 라흐마니노프의 코렐리 주제에 의한 변주곡은 1917년에 러시아 혁명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라흐마니노프가 남은 생애 동안 고국에 대한 향수에 시달리면서 이 작품에 근원적 고독감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주제 선율로 흡사 사무치는 것이 오버랩됐다.

이어 연주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소나타 제2번(1st Ver.)이 음악적 깊이와 대가적 기교, 낭만성과 개성이 가득한 작품으로 리시차에 의해 연주되는 것과는 대비됐다. 주제는 17세기 이탈리아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아르칸젤로 코렐리의 바이올린 소나타 중 ‘라 폴리아’ 주제를 사용했고 작품은 주제와 20개의 변주로 구성되며 13곡과 14곡 사이에 간주곡인 인터메조와 마지막에 작품을 마무리하는 코다가 첨가돼있는 것이 이색적이었다.

공교롭게도 쇼팽의 스케르초 1번~4번의 연주는 지난 9월 7일 같은 장소에서 연주를 가진 조성진도 후반에 같은 곡을 연주했는데, 조성진이 야나체크의 피아노 소나타 죽음에서 죽음을 표현한 듯했다.

라벨의 가스파르 연주에선 물의 요정을 느끼게 하는 연주에 이어, 쇼팽 스케르초 1~4번 연주에서는 불꽃 튀는 젊은 거장적 입지를 굳힌 가운데 비루투오소적 면모로 참석 청중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반면, 발렌티나 리시차는 스케르초가 쇼팽 중기 이후에 작곡해 한결 원숙하고 세련된 작곡기법이 담겨있는 만큼 3부 형식을 기반으로 한 확장된 규모, 깊고 강한 감정의 표출, 급격하게 움직이는 선율과 격동적인 리듬으로 감상자를 처음부터 극적 현장의 한복판으로 데려가는 느낌이었다.

폭넓은 스케일과 환상적인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졌고, 피아노의 정열적인 소리가 정말 인상적이었다는 관객들의 평은 발렌티나 리시차의 건반 위의 검투사란 이미지가 투영된 까닭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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