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 범접할 수 없는 높은 천재성을 가진 예프게니 키신

키신공연 포스터 (사진 롯데콘서트홀)
키신공연 포스터 (사진 롯데콘서트홀)

 

글: 여홍일(음악칼럼니스트)

우리 시대의 슈퍼스타 세계적 피아니스트 예프게니 키신의 신화는 한국 무대에서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자신의 내한 다섯 번째 2021 키신의 피아노 리사이틀 국내 무대가 지난 11월 22일 월요일 저녁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렸다.

지난해의 백건우 슈만 피아노 리사이틀, 클라라 주미강의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 전곡 연주회의 만석의 열기를 훨씬 뛰어넘는 엄청난 관객의 열기에 놀랐다. 팬데믹 시대 이후에 롯데콘서트홀을 찾은 최다 관객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공연장의 열기가 상상 이상으로 매우 뜨거웠다. 공연 관람을 마치고 에스컬레이터를 내려오는 관객의 줄이 끝이 없는 것 같았다. 

무엇이 이토록 국내 관객들에게 키신의 피아니즘에 열광케 만드는 것일까. 답은 현장에 있었다. 예프게니 키신의 음악성, 깊고 시적인 해석과 비범한 기교 그리고 범접할 수 없이 높은 천재성 그 자체라는 느낌이 들게 만드는 연주의 연속.

점점 가슴에 와 박히는 바흐/타우지히 토카타와 푸가 d단조

올해 키신의 내한 피아노 리사이틀도 그가 이제 50대에 들어섰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변화는 어쩔 수 없이 감지될 수 있었다.

한 작곡가에 관한 집중적인 탐구나 전곡 연주 등의 기획보다 오랜 고민을 거쳐 선택된 작곡가의 대표 레퍼토리들만이 엄선되는 키신 무대의 통상 재현이나 예전 본 무대의 메인 곡들의 레퍼토리 연주들 외에도 새로운 3부 타임을 연 1시간 30분에 걸쳐 10개 곡에 이르는 앙코르곡들을 풍성히 쏟아냈던 예전과는 달리 체력상의 문제인지 네 곡의 앙코르에 그친 점들이 다분히 그러하다.

 

점점히 가슴에 와 박히는 바흐 타우지히 토카타와 푸가 d단조로 스타트를 끊은 예프게닌 키신.
점점히 가슴에 와 박히는 바흐 타우지히 토카타와 푸가 d단조로 스타트를 끊은 예프게닌 키신.

 

1부는 좀 재미없었다는 일부 관객의 평이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점점히 가슴에 와 박히는 바흐/타우지히 토카타와 푸가 d단조, 한음 한음 또렷이 귀에 박히는 모차르트 아다지오 b단조,

꾹꾹 눌러가며 전력을 다하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제31번의 연주로 롯데콘서트홀 무대가 오케스트라 연주를 위해 마련돼있는 무대 위의 연주대 설치들이 없어지며, 흰 백지 위에 덩그러니 피아노 한 대만 중앙에 놓여 이를 다루는 키신의 아우라와 장악력이 가히 세계적 피아니스트라 할 만했다. 

고교 시절부터 스타니슬라프 부닌과 예프게니 키신이 자신의 마음속에 차지하고 있던 대표적 두 러시아 피아니스트라고 술회한 국내의 대표적 러시아학파 피아니스트 김주영은 preview를 통해 오르간 작품을 원곡으로 한 토카타와 푸가 BWV 545에서 키신이 표출할 섬세하게 연주된 멜로디 흐름의 굴곡과 질감, 모차르트의 아다지오 b단조에선 작품으로서는 매우 드문, 장중한 파토스에 주목할 것을 권했다.

이어 베토벤 소나타 제31번 연주에서 타건의 무게감이나 템포, 페달링 등을 변화무쌍하게 조절한 흥미로운 연출, 밀도 짙은 음상이 빚어내는 쇼팽의 마주르카, 그리고 키신 독주회의 대미를 장식한 안단테 스피아나토와 화려한 폴로네즈 Op.22에서 비르투오시티를 통해 작품의 윤곽을 화려한 색채로 마무리하는 데 유의해 들을 것을 관객에게 권했다.

이런 권고들은 올해 피아노 리사이틀로서는 최고의 무대로 꼽을 수 있을 연주 현장을 관객이 직접 확인하게 된 결과, 예프게닌 키신의 가치가 전곡 연주 내내 국내 클래식 팬들에게 다시 한번 부각되면서 타당한 것으로 증명되었다.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피아니즘이 빚어진 쇼팽의 안단테 스피아나토와 화려한 대 폴로네즈

키신이 후반부 연주곡 중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피아니즘이 빚어진 쇼팽의 안단테 스피아나토와 화려한 대 폴로네즈 Op.22는 말 그대로 이날 독주회의 백미였다. 후반부 첫 곡인 쇼팽의 마주르카는 쇼팽의 음악에 핵심에 있으며 그의 민족주의적 성향을 대표하는데 키신은 비교적 초기에 작곡된 일곱 곡의 연주로 세련되게 탈바꿈한 멜로디로 다양한 감성을 불어넣었다는 평을 받았다.

키신은 탁 트인 어깨에다 진중한 무게로 전체적 곡 운영을 이끌어간 것 같은데 현재는 물론 과거의 가장 재능있는 클래식 피아니스트 한 명만이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존경과 찬사를 국내는 물론 전 세계 클래식 팬들에게 받는 것 같다. 

키신의 손으로 만들어내는 음악에는 우리가 지닌 청각 세포 전체를 끌어당기는 묘한 힘이 있다는 게 다수 클래식 팬들의 공감인 것 같다.

 

네곡의 앵콜곡에 키신이 그친 것은 역대 전례에 비춰보면 의외로 적은 앵콜곡이기도 해서 50대에 들어선 키신이 체력안배 차원이 아닌가 여겨지기도 한다.
네곡의 앵콜곡에 키신이 그친 것은 역대 전례에 비춰보면 의외로 적은 앵콜곡이기도 해서 50대에 들어선 키신이 체력안배 차원이 아닌가 여겨지기도 한다.

 

이런 까닭에 키신의 연주회는 전날 일요일 오후 5시에 같은 롯데콘서트홀에서 있었던 바흐의 음악에 입혀진 안데르제프스키의 상상력으로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2곡의 연주회를 가졌던 표트르 안데르제프스키의 관객 객석이 의외의 낮은 점유율로 대조를 보인 사실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 같다.

2021년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의 24곡 중 12곡을 발췌하고 재구성한 음반을 통해 “바로크 카니발의 느낌”이라는 호평을 받은 표트르 안데르제프스키도 21세기형 바흐 스페셜리스트로 많은 환호를 받을 요건은 갖췄지만, 키신의 연주회 전날이라는 악재를 본인으로선 만난 느낌이다. 

국내 관객의 키신에 대한 열화와 같은 환호와 박수갈채는 앙코르곡들에서도 여지없이 쏟아졌다.

워낙 앙코르곡 연주에 후한 이미지의 키신이긴 하지만 바흐의 코랄 프렐류드, 모차르트의 론도1번, 쇼팽의 스케르초 2번과 쇼팽의 왈츠 12번의 네 곡의 앙코르곡에 그친 것은 역대 전례에 비춰보면 의외로 적은 앙코르곡이기도 해서 50대에 들어선 키신이 체력안배 차원이 아닌가 여겨지기도 한다.

그런데도 지칠 줄 모르는 키신의 이미지에 관객의 환호성은 더 커지는 진풍경이 롯데콘서트홀 무대에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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