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여홍일(음악칼럼니스트)

국내 관객이 일본의 여류 피아니스트 하면 미츠코 우치다(73)를 많이 떠올린다. 모차르트의 포로를 자처한 비할 데 없는 통역사 우치다가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No.9이나 소나타 545, 570, 576, 533/494를 녹음한 것을 들어보면 1984년 영국 실내관현악단과의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전곡 연주를 통해 영국 런던에서 우치다의 이름을 다시 높였다는 그녀의 진가가 실감 난다.

지난 11월 19일 금요일 저녁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KBS교향악단과 협연을 한 알리스 사라 오트(33)는 일본계 독일 피아니스트로 최근 성가가 높다. 자신의 세대 여류 피아니스트들 가운데서도 가장 섬세한 여류 피아니스트의 한 명으로 꼽히는 미츠코 우치다도 1948년생이므로 이미 70대 초반임을 고려하면,

사라 오트와 40년 차이의 나이 터울이어서 일본 출신 여류 피아니스트의 두어 세대 세대교체를 염두에 두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을 만큼 내게는 꿈결같이 흐른 라벨의 ‘왼손을 위한 피아노협주곡 D장조, 작품82’의 사라 오트 피아노 연주였다.

마치 양손으로 연주되는 듯한 마법을 부렸다.

라벨의 왼손을 위한 피아노협주곡은 1929년 1차 세계대전에서 자신의 오른팔을 잃은 오스트리아 피아노 연주자 파울 비트켄슈타인으로부터 왼손으로만 연주하는 피아노협주곡을 작곡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라벨이 쓰게 된 곡.

2019년 2월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다발성 경화증 진단을 받았다고 발표한 사라 오트가 이 때문에 지난 11월 19일 KBS교향악단과의 협연 무대에서 라벨의 왼손을 위한 피아노협주곡을 연주한 것은 비단 나뿐만 아니라 공연 현장에 참석한 클래식 애호가들 다수에게 상당히 의미심장하게 느껴졌으리라.

 

크리스토프 에센바흐와 알리스 사라 오트의 KBS교향악단과의 리허설 장면. (사진 KBS교향악단)
크리스토프 에센바흐와 알리스 사라 오트의 KBS교향악단과의 리허설 장면. (사진 KBS교향악단)

 

그랬다. 실제 연주는 한 손을 사용하지만, 눈을 감고 있으면 마치 양손으로 연주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마법을 사라 오트는 부렸다. 왼손 한 손으로 가능한 한 많은 음표를 연주하거나 다채로운 음색을 표현하지 못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나는 사라 오토의 연주에서 전혀 가질 수 없었다. 

지난 주말 내게는 사라 오트의 KBS교향악단 정기연주회, 기괴함의 대명사 임윤찬의 경기필과의 성남아트센터에서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제3번, 그리고 표트르 안데르제프스키의 평균율 클라비어 2권 연주, 그리고 우리 시대의 슈퍼스타 세계적 피아니스트로 꼽히는 에브게닌 키신등의 피아니스트들의 연쇄 공연에 참석했다. 

뒤따른 세 명의 남성 피아니스트들의 아우라 못지않았던 사라 오트의 KBS교향악단과의 연주회가 끝난 주말 나는 사라 오트가 연주한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1번, 베토벤 코랄 판타지, 리스트의 피아노협주곡 2번, 그리그의 피아노협주곡 등의 유튜브 동영상을 찾아 들어봤는데 명료한 타건이 사라 오트 피아니즘으로 특징 지워도 좋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특히 라벨의 두 개의 피아노 협주곡들 가운데 사라 오트가 연주한 라벨의 피아노협주곡 G장조는 라벨의 작품의 깊이를 새롭게 보게 된 곡으로서 무반주 피아노 솔로가 우아하게 시작하며 고요히 진행되는 그 감수성이 최고조로 고양되는 것이 인상 깊었고 왼손을 위한 피아노협주곡은 반짝이는 듯한 세련된 색채의 오케스트레이션에 사라 오트의 다채로운 음악들의 조합이 돋보이는 연주를 했다는 생각이 든다. 

KBS교향악단은 투박하지만 서울시향은 섬세하다.

전날 11월 18일 KBS교향악단은 송도 소재 인천글로벌캠퍼스에서 동아시아축제의 하나로 이 캠퍼스 대강당에서 한차례 연주회를 더 열기도 했는데 이날은 떠오르는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이 생상스의 바이올린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를 연주, 특히 열정과 화려함이 증폭되는 Allegro ma non troppo의 론도 카프리치오소에서 한수진은 연주자의 화려한 기교가 펼쳐지는 것이 돋보이는 연주를 해 자신의 이름값을 했다.

에센바흐가 KBS교향악단과 후반부 연주곡으로 선곡한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5번 연주는 지난달 하순 10월 28일 서울시향 오스모 벤스케의 연주곡과 같은 곡이었는데 에센바흐 역시 벤스케처럼 사운드의 음량을 풍성히 살려주는 지휘로 이끌었으나 예전 서울시향의 늘어짐이 없이 아기자기한 섬세한 연주가 대비되듯 KBS교향악단은 투박하지만 서울시향은 섬세한 연주에서 강점을 보이는 것 같다. 

10월 29일에 있었던 뉴욕필 상임지휘자 얍 판 츠베덴 지휘의 제771회 정기연주회 베토벤 교향곡 제5번과 프로코피예프의 교향곡 제5번, 이번 11월 19일의 크리스토프 에센바흐 지휘의 차이콥스키 교향곡 제5번과 알리스 사라 오트 피아노 협연의 라벨의 왼손을 위한 피아노협주곡 연주회 등 

KBS교향악단 2021년 4분기 연주회들에 관객들의 전례 없는 티켓 매진이 이어지며 관심이 쏠린 이유는 2022년부터 시작될 핀란드 지휘자 피에타리 잉키넨 상임지휘자의 본격 취임에 앞서 다시 한번 KBS교향악단의 연주력을 평가할 시금석이 될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거의 1년 9개월여의 팬데믹이 지속돼오면서 KBS교향악단도 외국의 유명 교향악단들이 내한할 수 없는 반사효과를 어느 정도 누리면서 그동안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이나 롯데콘서트홀 등 자신의 연주회에 국내 관객들을 흡수한 측면들도 없지 않아 있어 보인다.

이런 면들은 피에타리 잉키넨 상임지휘자의 본격 취임 이후에 더욱 잘해달라는 관객들의 질책을 상당수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2022년 KBS교향악단에 거는 일반 클래식 팬들의 기대도 그 어느 때보다도 높다고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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