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무용이 제시하는 생각에 관한 생각

가족 동반으로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가족 동반으로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문화뉴스 김창일 기자] 국립현대무용단 어린이·청소년 창작 무용 <구두점의 나라에서>가 지난 12월 10일부터 12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관객들을 만났습니다. <구두점의 나라에서>는 ‘크리스티안 모르겐슈테른 글·라트나 라마나탄 그림’의 동명 그림책을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마침표, 쉼표, 괄호, 물음표 등 여러 구두점들이 주인공이 되어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구두점의 조형 요소를 활용한 독창적인 그래픽 디자인과 시적 표현으로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펼쳐지는 책입니다. 

‘구두점들로 어떻게 이야기가 될까?’라는 생각이 있었지만, 페이지를 넘길수록 작가의 상상력에 감탄을 받은 책이었습니다. 

 

무용수가 나오지 않고 피아노 연주만 흐르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피아노 연주가 쉼표 역할을 했던 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진=국립현대무용단 제공)
무용수가 나오지 않고 피아노 연주만 흐르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피아노 연주가 쉼표 역할을 했던 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진=국립현대무용단 제공)

 

그림책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이번 공연은 안무가 정영두의 해석으로 무용수들의 몸과 움직임을 통해 무대 위에서 구두점들의 이야기를 펼칩니다. 디자이너 정민선의 감각적인 미술과 의상, 피아노 두 대로 연주되는 작곡가 신동일의 음악은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현대무용입니다.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 대부분은 어린이와 동반한 가족이었습니다. 

구두점은 글을 쓸 때 필요한 문장 기호입니다. 대화할 때는 음성의 높낮이, 속도, 강약에 구두점이 내포돼 있습니다. 하지만 글은 음성이 아니기에 구두점이 필요하며, 음성보다 더 강력하게 문장의 의미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글과 음성이 아닌 오롯이 몸짓으로 구두점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궁금했습니다. 공연 시작 전, 무용수들이 나와서 연습을 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공연이 끝난 후 다시 생각해보니 공연은 이미 시작됐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구두점의 의미는 독립적이어야 명확하지만 마침표(.), 쉼표(,), 소괄호(()), 물음표(?), 느낌표(!), 대괄호([])를 하나로 합쳐봤습니다.
구두점의 의미는 독립적이어야 명확하지만 마침표(.), 쉼표(,), 소괄호(()), 물음표(?), 느낌표(!), 대괄호([])를 하나로 합쳐봤습니다.

 

공연 전 중괄호‘{ }’가 있었는데, 무용수들이 나와 중괄호를 무대 밖으로 꺼냈습니다. 중괄호는 수학에서 수열을 나타내는 기호이기도 합니다. 수열은 ‘특정한 규칙에 따라 나열된 수의 열’을 말합니다. 구두점의 역할을 하는 무용수들이 중괄호 또는 수열 기호를 제거했다는 건, 공간을 한정시키지 않고 확장하자는 의미였던 거 같았습니다.

무용수들의 몸짓 중, 모스 부호를 그리는 듯한 장면이 있었습니다. 모스 부호, 음악 기호, 수학 기호, 교통 표지판 등 문자 이외의 다양한 방법으로 의미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언어가 포함되지 않은 기호는 언어보다 더 명료하게 의사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구두점들(무용수들)은 말을 하지 않았지만 말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원통을 보고 구두점 마침표가 떠올랐습니다 (사진=국립현대무용단 제공)
원통을 보고 구두점 마침표가 떠올랐습니다 (사진=국립현대무용단 제공)

 

언어는 감정의 소비를 부추기죠. 구두점들은 언어라는 기호 소비사회에 흔들리지 말라는 것 같았습니다. 큰 원통, 작은 원통은 마침표 같았습니다. ‘마침표에도 크기가 있을까?’, ‘마침표의 크기는 문장을 끝내기 위한 고심의 크기인가?’ 등 원통을 보며 다양한 생각을 펼칠 수 있었습니다.

모든 도형 중, 자기 자신을 통과할 수 없는 도형이 원형입니다. 그래서 도로 맨홀도 원형으로 설계됐죠. 문장이 끝나는 마침표는 자기 자신을 통과할 수 없는 자아의 단면이란 느낌도 들었습니다. 

 

'구두점의 나라에서' 커튼콜
'구두점의 나라에서' 커튼콜

 

언어를 사용할 때는 사회적으로 약속된 언어의 체계를 사용하게 되고, 구성원은 이를 바탕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언어는 생각을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매개체이지만 오해의 소지도 있습니다. 반면 구두점은 정확하게 자신의 의미를 전달하는 기호입니다. 공연을 본 후, 마침표를 크게 찍고 기분 좋게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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