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여 홍일(음악칼럼니스트)

12월 초겨울 시즌의 오페라 하면 일반애호가들에겐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La Boheme)이 가장 먼저 연상되고 떠오른다.

라 보엠의 줄거리는 크리스마스이브가 모티브가 되기 때문에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 같은 오페라 무대를 포함, 주요 오페라 무대에는 매년 연말 빠지지 않고 무대에 오르는 연말 오페라의 대표상품이 되다시피 했다.

 

비올레타역 김순영의 다채로운 창법과 음색, 알프레도역의 신상근의 주옥같은 아리아들의 감미로운 성악들이 새삼 라 트라비아타 공연을 통해 아직도 뇌리에 남는다.
비올레타역 김순영의 다채로운 창법과 음색, 알프레도역의 신상근의 주옥같은 아리아들의 감미로운 성악들이 새삼 라 트라비아타 공연을 통해 아직도 뇌리에 남는다.

 

“파리의 라틴 지구 다락방에서 시인 로돌포와 그의 예술가 친구들은 가난하지만 즐겁게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크리스마스이브, 로돌포는 촛불을 빌리러 온 이웃집 미미와 우연히 만나 한눈에 사랑에 빠지고 마르첼로는 옛 연인이었던 무제타와 재회한다. 그러던 중 미미의 폐병 증상이 점점 악화되고 서로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어 괴로워하던 미미와 로돌포는 결국 헤어지게 되는데…”

반면 라 보엠과 달리 “라 트라비아타”의 시놉시스는 “비올렛타의 집에서 파티가 열리고 있다. 가스통 자작이 그녀에게 친구 알프레도를 소개해주고 알프레도는 오래전부터 그녀를 흠모해왔다며 사랑을 고백한다.

비올렛타는 알프레도에게 꽃을 선물로 건네며 그 꽃이 시들면 다시 만나러 오라고 한다. 알프레도의 아버지 제르몽이 사교계 여성 비올렛타를 찾아와 아들과 이별하기를 강요한다.

비올렛타는 눈물을 감추며 사랑하는 연인 알프레도 곁을 떠나가고, 어느 날 그녀를 우연히 마주친 알프레도는 감정이 격해져 사람들 앞에서 그녀를 모욕한다. 아버지 제르몽은 비올렛타가 떠난 건 자신 때문이었다고 아들에게 사실을 밝힌다. 알프레도는 그녀에게 찾아가 용서를 구하고 다시 사랑을 속삭이지만 이미 병든 비올렛타의 시간은 속절없이 흐른다.”

초겨울 오페라 무대의 작품으로 라 트라비아타가 라 보엠을 대체(?)한다.

지난 12월 초 3~5일(금-일)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국립오페라단의 2021년 올해 마지막 작품으로 올려진 “라 트라비아타”를 관람하면서 초겨울 오페라 무대의 작품으로 이제 매년 연말에는 라 트라비아타가 라 보엠을 대체할 수도 있겠다고 하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하게 됐다.

마치 베토벤 교향곡 제9번 합창교향곡이 연중 공연될 수 있는 레퍼토리임에도 불구, 연말이 돼서 연주돼야 제맛이 나는 것처럼 ‘라 트라비아타“도 연중 공연되는 오페라의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연말의 오페라로 정착돼야 할 당위성을 국립오페라단은 보여준 것이다.

 

연말의 떠들썩한 파티 분위기의 무대로 시작하는 라 트라비아타의 1막
연말의 떠들썩한 파티 분위기의 무대로 시작하는 라 트라비아타의 1막

전주곡에 이어 목각인형같이 박제되어 화려한 볼거리로 눈을 사로잡는 연말의 떠들썩한 파티 분위기의 무대로 시작하는 1막이나 눈발이 날리는 3막의 정취 등 연말 오페라로 손색없는 무대를 국립오페라단은 “라 트라비아타”를 통해 새로 보여주고 있었다.

사실 라 트라비아타는 세상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는 오페라 작품 중 하나. 초겨울 연말의 콘셉트에 맞게 무대연출이 이뤄져 그만큼 무대 각색이 각양각색으로 연출이 가능한 오페라의 하나가 라 트라비아타임을 국립오페라단은 보여줘 국립오페라단의 탄탄한 무대연출 실력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지휘의 세바스티안 랑 레싱이나 연출의 아흐노 베흐나흐 등 제작진의 면면에 신뢰

이런 면에서 올해도 개인적으로 국립오페라단의 <서부의 아가씨>나 <나부코>, <삼손과 데릴라> 등의 오페라 무대를 접하면서 느낀 바지만 지휘의 세바스티안 랑 레싱이나 연출의 아흐노 베흐나흐 등 제작진의 면면에 신뢰가 간다.

여기에 연출가 아흐노 베흐나흐와 <라 트라비아타>, <팔스타프>, <카르멘>, <스페이드의 여왕> 등 의상 작업을 함께 한 마리아 카를라 니코틴 등 무대 스태프진들의 면면도 신뢰를 보내고 싶다.

세바스티안 랑 레싱이나 아흐노 베흐나흐 정도의 레벨이라면 이미 국내 오페라계에 깊숙이 익숙하게 발을 들여놓은 것이나 다름없게 느껴진다.

국립오페라단 2020 하반기 시즌 음악감독을 역임한 세바스티안 랑 레싱은 낭시 오페라 및 낭시 심포니 리릭 오케스트라 예술감독, 로렌 오케스트라 예술감독을 역임하며 세계무대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지휘자로 KBS교향악단의 교향곡 연주 무대에 서서 지휘봉을 잡은 인물로도 국내 팬들에겐 이미 친숙한 인물이다.

미국 시카고 리릭 오페라, 이탈리아 마르티나 서머 페스티벌, 네덜란드 국립오페라극장, 핀란드 헬싱키 국립극장 등 세계 유수의 오페라극장에서 연출가로 활동 중인 연출 아흐노 베흐나흐 역시 국내 오페라 팬들에겐 이미 낯이 익은 인물이다.

그의 주요 작품들로 <세빌리아의 이발사>, <일 트리티코>, <위그노 교도>, <라크메>, 베르테르, <윈저의 유쾌한 아낙네들>, <루이자 밀러>, <라호르의 왕>, <스페이드의 여왕>등등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상당수의 오페라 연출을 맡아와 오페라 팬들이라면 이러한 아흐노 베흐나흐의 연출실력이 국립오페라단의 무대에 농축돼있는 것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초겨울 오페라 무대의 작품으로 라 트라비아타가 라 보엠을 대체할 수 있음을 보여준 국립오페라단의 라 트라비아타 무대. (사진 국립오페라단)
초겨울 오페라 무대의 작품으로 라 트라비아타가 라 보엠을 대체할 수 있음을 보여준 국립오페라단의 라 트라비아타 무대. (사진 국립오페라단)

 

“주옥같은 아리아들의 감미로운 성악들이 아직도 뇌리에 남는다”

올해 국립오페라단의 라 트라비아타 오페라 무대를 연말에 접하면서 또 한 번 휩싸이게 된 것은 1막부터 장식한 알프레도 역의 신상근의 그 유명한 ‘축배의 노래“나 두 주역이 아니면서도 관객의 많은 박수갈채를 받은 알프레도의 아버지 제르몽이 부르는 ’프로방스의 바다와 대지”, 라 트라비아타의 여주인공 비올레타가 부르는 ‘이상해’와 ‘파리를 떠나며’ 등의 주옥같은 아리아들의 향연에 관객들이 새롭게 감싸일 수 있었다는 점일 것이다.

“축배를 듭시다, 오가는 잔 가운데. 사랑은 뜨거운 입맞춤을 얻으리!(축배의 노래)”, “프로방스의 바다와 대지를 누가 네 마음에서 지웠느냐? 네 고향의 빛나는 태양으로부터 어떤 운명이 널 훔쳐 갔느냐? (프로방스의 바다와 대지)”,

그리고 “아, 내 사랑, 우린 파리를 떠나 함께 생을 보낼 거예요. 당신은 내 호흡이자 빛이 될 거예요. 미래는 모든 것에 미소 짓겠죠(파리를 떠나며” 등의 가사는 놓쳐서는 안 될 최고의 선율들로서 라 트라비아타를 오페라로써 더욱 빛나게 해주는 성악들이었다.

라 트라비아타가 이렇게 아름다운 아리아들의 향연으로 채워져 있는지 새삼 다시 일깨워준 키가 작고 가녀린 특히 비올레타 역 김순영의 다채로운 창법과 음색, 알프레도 역의 신상근의 주옥같은 아리아들의 감미로운 성악들이 아직도 뇌리에 남는다.

이와 더불어 “화려한 겉보기와 달리 내면은 피폐함으로 가득 차 있는 양면성을 지닌 여자가 비올레타에요. 알프레도로 인해 그녀의 마지막 순간은 행복했을 거라고 믿어요”라는 비올레타 역의 김순영의 코멘트나 “젊은 날의 열정은 양날의 검과 같죠. 알프레도의 뜨거웠던 사랑이 꺼져가던 비올레타의 삶을 슬프게도 더 환히 밝혀주었으니까요”라는 알프레도 역의 신상근의 코멘트들이 가슴에 와 공감을 낳는다. 

곧 다가올 2022년은 국립오페라단으로선 창단 60주년을 맞는 해로서 그 여느 해 못지않게 뜻이 깊을 것 같다.

내년에 국립오페라단이 펼치게 될 베르디의 ‘아틸라’, 역시 베르디의 ‘시칠리아섬의 저녁기도’, 오펜바흐의 ‘호프만의 이야기’, 푸치니의 ‘라 보엠’은 어떻게 60년을 자축하게 될지 오페라 팬들은 사뭇 큰 기대로 내년도 국립오페라단의 무대를 고대하고 있다. 


※ 외부 기고 및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주요기사

 
저작권자 © 문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