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서울시향 텅취 촹과 브람스 교향곡 3번

글: 여홍일(음악칼럼니스트)

피아니스트 박재홍과 대만 출신 지휘자 텅취 촹

알반 베르크의 ‘서정 모음곡’ 중 3개의 곡과 저명한 스웨덴 출신의 트럼펫 연주가 호칸 하르덴베이에르가 트럼펫 연주를 하는 오스트리아 작곡가 올가 노이비르트(Olga Neuwirth) 작곡 트럼펫 협주곡 ‘미라몬도 물티플로’(Olga Neuwirth, ...miramondo multiplo... for solo trumpet and Orchestra)가 취소된 지난 2월 25일의 서울시향 연주를 접한 관객 중에서 어떤 음악애호가들은 다소 김빠질 법한 연주회장의 분위기를 우려했을지도 모르겠다. 

서울시향의 ‘올해의 음악가’ 호칸 하르덴베리에르의 ‘격리 면제’ 불가로 그의 내한 불발로 해서 2월 24~25일 호칸 하르덴베리에르가 출연키로 예정되어 있던 ‘미라몬도 물리풀로’ 트럼펫 연주가 취소되고,

이어지는 2월 27일의 실내악 시리즈 및 3월 4일 예정돼있던 호칸 하르덴베이에르의 오네게르 교향곡 2번의 연쇄 취소라는 악재가 그의 공연을 내심 고대하던 서울시향의 클래식 고어 음악애호가들을 다소 아쉽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피아니스트 박재홍과 대만 출신 지휘자 텅취 촹은 김빠질 법한 연주회를 전후반 연주에서 구해낸 피아니스트와 지휘자로 각인된다. (사진 서울시향)
피아니스트 박재홍과 대만 출신 지휘자 텅취 촹은 김빠질 법한 연주회를 전후반 연주에서 구해낸 피아니스트와 지휘자로 각인된다. (사진 서울시향)

호칸 하르덴베이에르가 지난해 2021년 3월 6일 NDR 엘프필하모니 오케스트라와 함부르크 엘프필하모니홀에서 앨런 길버트와 협연한 ‘미라몬도 물티플로’ 의 연주 영상 동영상 유튜브를 들으니 전체 다섯 악장 헨델의 ‘라르고’와 마일스 데이비스, 그리고 자신의 작품을 인용하는 등 서로 다른 ‘아리아’, 즉 서로 다른 ‘노래’ 혹은 ‘분위기’를 가진 다섯 개의 세계를 여행하는 연주를 실연 연주로 듣지 못한 아쉬움이 내게도 크기는 하다.

칸 하르덴베이에르의 설명에 따르면 제목 중 ‘미라몬도 miramondo'라는 단어는 ’세계를 바라보다‘라는 의미인데 각각의 아리아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상당히 넓은 스펙트럼의 감정을 소화하고 오케스트레이션에서도 풍부한 상상력을 느낄 수 있을 연주곡이어서 많은 서울시향 연주회 애호가들이 큰 기대를 하고 있었을 텐데 호칸 하르덴베이에르의 서울시향 공연 불발 소식에 적잖이 아쉬움이 컸을 것 같다. 

서울시향, 더블베이스 좌측에 배치하며 무대 분위기 신선함으로 바꿔

이어 3월 4일 호칸 하르덴베이에르가 지휘 예정이던 오네게르의 교향곡 2번도 2차 세계대전 중에 작곡된 곡으로 굉장히 어두운 면을 품고 있지만, 마지막 순간 코랄이 연주될 때 트럼펫이 개입하면서 곡의 분위기가 밝고 희망차게 바뀐다는 하르덴베이에르의 코멘트에 주목하고 유튜브 동영상을 들어봤다.

암흑의 중심부에 트럼펫 소리가 뚫고 들어가 빛을 비추는 곡을 들을 수 없게 됨에 또 아쉬움을 삼킬 수밖에 없지만 그런데도 지난 2월 25일 자가격리 요건을 충족지 못해 내한공연이 불발된 서울시향 연주회 호칸 하르덴베이에르를 대신해 대타로 출연한 피아니스트 박재홍과 대만 출신 지휘자 텅취 촹은 이런 김빠질 법한 연주회를 전후반 연주에서 구해낸 피아니스트/지휘자라 할 만했다.

 

작곡가가 숨겨둔 메시지를 오롯이 전달하려는 연주에 역점을 두려하는 피아니스트 박재홍.
작곡가가 숨겨둔 메시지를 오롯이 전달하려는 연주에 역점을 두려하는 피아니스트 박재홍.

 

이날 서울시향은 변경된 연주 서곡인 요하네스 브람스의 ‘대학축전’ 서곡부터 기존의 더블베이스가 우측에 위치하던 ‘미국형’ 오케스트라 편성을 ‘유럽형’ 좌측에 배치하는 것으로 관객의 신선한 시선을 끌며 이런 김빠질 연주회의 분위기를 신선함으로 바꿨다.

사진상의 얼굴로는 다소 똥똥하게 비치던 대만 출신 지휘자 텅취 촹은 생각보다 마른 체격으로 디테일을 살리는 지휘를 이끌면서 풍성한 음향을 만들어내며 관악기의 총주와 현악기의 빠른 패시지가 작품의 열기를 화려하면서도 낙천적인 기분으로 끌어올리는 브람스의 ‘대학축전’ 서곡을 기분 좋게 마무리했다.

연주 내내 오른발 페달을 적절히 밟으며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3번을 협연한 피아니스트 박재홍은 지난 1월 말 오스모 벤스케의 모차르트 레퀴엠에 소프라노 임선혜 대신 대타 출연한 소프라노 서선영의 대타 히로인을 내 심중에 연상시켰다.

지난해 2021 부조니 콩쿠르의 결선 우승 곡이기도 한 이 곡의 연주를 통해 박재홍은 자신의 부조니 콩쿠르 우승 자축무대 격 연주에서 역시 지난해 쇼팽콩쿠르 우승자 내한공연 브루스 류 못지않은 또 하나의 핫(hot)한 피아니스트의 존재감을 이날 연주회를 찾은 클래식 팬들에게 알린 듯했다. 

이날도 피아니스트 박재홍은 내게는 자신의 연주 기량을 드러내려 하기보다 작곡가의 숨겨진 메시지를 잘 전달하려는 스타일에 방점을 찍은 것으로 보였다.

지난 2월 8일 금호연세아트홀에서 있었던 자신의 리사이틀에서도 박재홍은 슈만의 ‘피아노를 위한 아라베스크’가 따뜻하게 감싸는 것으로 시작된 첫 연주곡을 제외하면, 슈만의 피아나 소나타 제1번, 스크랴빈의 피아노 소나타 제3번, 세자르 프랑크의 피아노를 위한 전주, 코랄과 푸가 등 자신이 아끼는 작품을 소중히 꺼내어놓는 무대이자 밀도 높은 피아노 연주곡들로 채워져 비중 있는 곡들을 통해 ‘작곡가가 들리는 연주’를 들려줬었다. 

작곡가가 숨겨둔 메시지를 오롯이 전달하려는 연주에 역점을 두려워한다는 이런 그의 연주 스타일은 2019 부소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피아니스트 박재홍이 솔로 세미파이널에서 연주한 F. J. Haydn, Andante mit Variationen F-moll hob. XVII/6, F. Busoni, 10 Variationen über den Präeludium von Chopin BV 213a, I. Albéniz, Almeria from Iberia (book 2), F. Liszt, Après une Lecture de Dante. Fantasia quasi Sonata에서도 관객은 유튜브 동영상을 통해 발견할 수 있다.

이런 느낌은 피아니스트 박재홍이 부조니 콩쿠르 솔로 파이널들에서 연주한 D. Scarlatti: Sonata in si minore, K. 27, É. Tanguy: Passacaille, J.S. Bach/F. Busoni: Choralvorspiel "Wachet auf, ruft uns die Stimme", BWV 645 - BV B 27 n.2, 그리고 L.v. Beethoven: Sonate n. 29, op. 106에서도 마찬가지의 연주 감상의 생각을 하게 됐다.

 

디테일을 잘 살리는 지휘스타일을 선보인 텅취 촹의 지휘.
디테일을 잘 살리는 지휘스타일을 선보인 텅취 촹의 지휘.

 

텅취 촹의 지휘, 디테일을 잘 살리는 지휘 스타일

대만 출신의 보훔 심포니 음악감독의 객원지휘를 이끈 텅취 촹의 지휘는 디테일을 잘 살리는 지휘 스타일을 보여줬다는 느낌인데 스트라빈스키 'The Firebird suite'와 림스키 코르사코프 “The Tsar's Bride overture", 라벨의 음악 "Daphnis et chloe suite 2" 리허설을 통해 “How do you prepare for a rehearsal?", 'The greatest thrills of conducting", "The importance of silence"를 강조하는 텅취 촹의 유튜브 리허설 장면 동영상 등에서도 텅취 촹이 이런 디테일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리허설 장면들이 많이 나온다. 

2015년 코펜하겐에서 진행된 말코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국제적인 활동의 기반을 마련한 텅취 촹은 역시 동영상 유튜브로도 올라와 있는 2015년 4월 30일의 러시아 피아니스트 Lukas Genuisas와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제3번 1악장의 리허설과 연주에서도 이런 디테일을 중시하는 지휘를 보여주는데,

보훔 심포니 음악감독으로서 첫 시즌에서 그가 개인적으로 가깝게 느끼는 교향곡 명곡들을 선보이는 “마음으로부터(Von Herzen)" 시리즈가 보훔 심포니의 마스터시리즈 못지않게 텅취 촹의 이런 디테일 지휘의 정점이 됐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직업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난 텅취 촹은 어려서 호른과 피아노를 배웠다고 하며, 커티스 음악원과 프란츠 리스트 음악대학에서 공부해 2021/22 시즌부터 독일 보훔 심포니 음악감독과 아넬리제 브로스트 무지크포럼 공연장의 예술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텅취 촹에 러브콜을 보내는 악단들은 많아 객원지휘자로 그는 도이체 심포니, 서독일방송 교향악단, 남독일 방송교향악단, 드레스덴 필하모닉, 덴마크 국립교향악단, 헬싱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오슬로 필하모닉, BBC심포니 오케스트라, 타이완 필하모닉, 상하이 심포니, 오클랜드 필하모니아 등을 지휘했고 라이프치히 방송교향악단, 브레멘 도이체 카머필 하모니, 트론헤임 심포니 오케스트라, 탐페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같은 교향악단들과 정기적으로 일하고 있다. 

대타 출연이 히어로가 되고 자칫 김빠질 법한 연주가 될 수도 있을 연주회를 피아니스트 박재홍과 대만지휘자 텅취 촹이 연주회 분위기를 끌어올린 연주회를 보고 온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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