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연기와 소리 사이에서 서성이다

작지만 점점 색채가 짙어지다

춘천인형극축제의 반짝이는 보석

기세등등했던 여름도 슬슬 꼬리를 내리더니 왈칵 가을이 왔다. 나의 가을은 춘천인형극축제에서 시작됐다. 서울 도심을 벗어나 춘천으로 가는 내내,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며 멋지다, 좋다를 연신 내뱉다보니 어느새 춘천인형극축제의 장에 와 있었다.그곳을 간 이유는 동화를 쓰는 동화작가이기에 평소 인형극에 대한 관심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안연주 배우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였다.

안연주 배우는 춘천인형극축제에서 두 작품 <개굴개굴 고래고래> <호랑이와 곶감>에 참여하고 있었다.

춘천인형극축제에서 참여한 작품 좀 소개 부탁해요. 어린이극에 참여하게 된 계기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작년 2021년 춘천인형극축제에서 이도윤 연출, 구선진 안무의 <개굴개굴 고래고래>라는 작품으로 대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번 2022년에 초청이 되어 무대에 올라간 거고요. 그리고 올해는 <호랑이와 곶감>이란 작품도 참여하게 되었는데 이 작품은 학교 선배님이자 졸업동기인 추현종 (창작집단 깍두기) 대표님의 작품인데 같이 여럿 작품을 한 동료여서 너무나도 편하게 공연에 임할 수 있었습니다. 공교롭게 올해 인형극 축제에서 두 작품에 참여하게 되었네요. 그리고 아동극의 시작은 대학교 졸업하기 전, 정준태 선배가 만든 <아기돼지 꼼꼼이>라는 작품을 계기로 여러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호랑이와 곶감> 공연을 봤는데 연기도 연기이지만 소리를 아주 구성지게 잘하시던데 그 소리는 어떻게 만들어진 건가요

소리의 원천은 아무래도 부모님께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두 분 다 노래를 잘하시고 어머니는 웅변대회 나가시기도 했고, 요들송을 잘 하셨어요. 아버지는 성량이 워낙 크시고 기타 잡고 노래 하시기를 좋아하는 멋진 분이셨습니다. 친언니도 밴드에서 보컬을 했을 정도로 노래를 잘했습니다. 저희 가족 모두 일주일에 7일이 멀다하고 늘 노래방을 갔던 기억이 있고 그때마다 노래방 주인이 넋 놓고 우리 가족들의 노래를 들었을 정도였죠. 집안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그렇다면 국악은 언제부터 시작했나요

중학교 때, 사물놀이수업이 있었는데 그때 장구를 처음 잡았습니다. 그때가 국악과의 인연의 시작이었죠. 중2때 판소리반도 개설이 되었는데 저는 흥미롭게 수업에 임했지만 많은 친구들이 참여하지 않아서 한 달 만에 폐강이 되었어요. 그런데 마지막 수업 때 선생님이 국악예고 가볼 생각 없느냐며 저희 집까지 찾아오셔서 “연주는 소리를 해야 합니다.”라며 부모님을 설득했죠. 저희 형편이 좋지 않아 포기 하려던 차에 아는 지인분 통해 소리전수관이란 곳에 가게 되었어요. 그곳에서 판소리를 하시는 할아버지 선생님과 대면했고 저는 학교에서 배웠던 민요 ‘남한산성’을 불렀죠. 저의 민요를 듣더니 할아버지 선생님께서 “쓰것다! 소리 배우러 와라.” 하셔서 그때부터 지인분의 지원을 받아 소리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이후의 행보가 궁금합니다 어떻게 전개가 되었나요

네. 판소리로 국악예고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어릴 적부터 꿈이었던 연기는 포기 못하겠더라고요. 음악연극과로 전과를 하려했는데 돈이 든다는 말을 듣고 그냥 3년 동안 소리만 전공했죠. 하지만 연기의 욕심은 포기하지 않았어요. 학교 예술제에서 사회자를 보기도 하고 나름 연기도 했죠. 그 모습을 보고 알아주신 전공레슨 김수미 선생님의 소개로 윤충일(창극단)선생님께 각설이를 하사받고 각설이로 극을 짜서 중앙대 국악대학 음악극과 노래연기 전공에 시험을 봐 합격을 했습니다. 결국 국악과 연기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셈이죠. 너무나 감사한 일이에요.

대학 생활은 어땠나요

연습과 합숙의 반복이었죠. 한국무용, 현대무용, 째즈댄스, 탈춤, 판소리, 민요, 가야금, 화술, 마당극 등 많은 장르를 배웠고 국악과 총무, 음향 담당을 맡아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습니다. 힘든 나날이었지만 되돌아보면 그 시기가 내 안의 열정과 실력과 미래를 채우는 가장 알찬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물론 아쉬운 점도 있긴 했어요. 그만큼 시간이 없어서 미팅이나 축제를 즐기지 못했다는 점.

졸업 후, 어떤 작품에 참여했고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이윤택 연출님의 <길 떠나는 가족> <궁리> 박근형 연출님의 <마라사드>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임창빈 연출님의 <각시품바> <숨비소리> 문경태 연출님의 <맥베스> 등 여러 작품에 참여했습니다. 다들 너무나 좋은 작품이라 참여하는 내내, 너무나 가슴이 뛰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뭐니 뭐니 해도 2020년 임창빈 작/연출, 박문정 음악감독의 ‘극단 고리 20주년 창단공연’ <장정일의 어머니>라는 작품입니다. 이유는 처음으로 연극작품에서 주인공을 맡았고 짧은 시간 안에 해내야 하는 만큼 부담감과 희열을 동시에 느낀 뜻 깊은 작품이었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나의 소울메이트인 박문정 음악감독님이 음악은 물론 나에게 많은 도움과 힘을 주었고 임창빈 연출님 역시 막역한 사이로 믿고 작업할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이 작품을 계기로 배우로서의 욕심과 의욕과 발전 가능성을 느꼈던 것 같아요.

작품마다 표현 방식이 다르게 나타나는 것 같다 배우로서 캐릭터 설정을 어떻게 하나요

먼저 전체적인 대본의 구성과 그림을 보고 거기에서 맡은 인물의 관계와 전사(그 배역의 삶)등등을 파악하고 대사를 외우는 식으로 합니다. 그리고 캐릭터는 인물간의 관계에서 많이 찾는 것 같고 대본에 나와 있는 것을 토대로 인물을 그려낸 후 제가 잘 할 수 있는 특기나 장점을 살려서 대본에 녹이기도 하고 연출이 원하는 선과 배우로서 제가 연구한 바를 소통하면서 만드는 것 같습니다.

연기자로서의 고민은 무엇인가요

일단 첫 번째 고민은 배우로서 내가 얼마나 나아갈 수 있는가에 가능성 부분입니다. 제가 피지컬적으로 키가 작아서 배역적인 부분에서 한계가 있습니다. 실력으로는 연기 스펙트럼이 넓지는 않은 것 같아서 고민이기도 합니다. 물론 앞으로 더 많은 경험과 노력과 연습으로 극복을 해야죠. 그리고 여러 다양한 분야 (영화, 광고 등등 매체)도 경험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모든 배우들이 그러하듯 저도 미래가 불투명하지만 그래도 묵묵히 꾸준히 열심히 걷다보면 뭔가를 만나겠죠. 사실 고민하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연극은 현장 예술이잖아요 그래서 실수도 있었을 텐데 실수 에피소드 있나요

맞습니다. 연극은 관객 눈앞에서,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실시간 예술입니다. 그런 특성상 실수나 변수가 많은데 이런 적이 있었습니다. 대학교 때 <오장군의 발톱>이란 작품을 올린 적이 있는데 그때 서사극 형태의 극이어서 양쪽에 긴 의자를 놓고 자신의 배역 때 나왔다가 다시 들어와 앉는 건데 공연 중에 다른 학우가 볼펜을 떨어트려서 암전이 되자마자 제가 볼펜을 줍고 잽싸게 앉았는데, 하필이면 선배의 무릎에 앉았던 거예요. 건너편과 양쪽에 있던 선후배들이 웃음을 참느라 혼났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서울시립극단에서 <겨울이야기>라는 작품을 하는데 제가 메밀리어스 왕자 역을 했는데 화장실이 너무 급해서 뛰쳐나갔죠. 화장실 갔다 온 사이에 제 차례가 되어서 화장실에서부터 바지를 치켜 올리면서 미친 듯이 무대로 바로 들어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마침 뛰어 들어오는 아이의 모습이라 조금이나마 나았습니다. 선배님들이 앞에 대사를 끌어주시면서 기다리셔서... 그땐 정말 식은땀이 철철 났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인정 받을 때 

가장 큰 기쁨이죠

살면서 가장 기뻤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가장 기뻤던 순간이라... 매순간 감사하고 기쁘지만 지금 딱 떠오른 생각은 프로로 활동하면서 여러 작품 연습으로 바쁠 때인 것 같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와 통화 하면서 “김밥을 먹는다는 둥 이렇게 연기하면서 바빠 사는 게 행복하다”라고 말했는데 어머니가 화를 내시며 “그렇게 하면 몸 상해. 작품 여러 개 하면 뭐하냐? 지금 하고 있는 분야에서 네가 두각이 나타나는 게 뭐가 있냐!” 등등으로 노발대발 하시며 연기 그만하라고 하시는 거예요. 나도 모르게 속상하고 화가 나서 처음으로 어머니에게 큰소리치며 “나 잘 하고 있고 인정받고 있다고!” 이번 작품 보러 와서 아니다 싶으면 그만두겠다고 선전포고를 했는데 그 작품이 <각시품바>라는 작품 이었고 이재은 선배님의 모노극에 저는 장단이라는 배역(고수)으로 나왔어요. 어머니가 그 작품을 보시고 딱 한마디 하셨어요. “그 선배도 잘 했지만 너 없으면 안 되겠더라. 계속 해.” 하고는 쿨하게 가셨지요. 그때 뭔가 인정받은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너무 기뻤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인정을 받는 때 그때가 가장 기쁜 순간인 것 같아요.

앞으로 어떤 작품, 어떤 무대를 서고 싶나요

일단 내가 안 해본 역할이나 장르(정극 주인공)에 도전하고 싶고 또 한 가지는 나만의 이야기를 올리는 모노드라마를 하고 싶은 게 꿈이에요. 몇 년 전부터 조금씩 시놉시스를 써내려가 보는데 쉽지가 않네요, 그래서 조심스럽지만 김이율 작가님이 저에 대한 글을 써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진심으로 해보고 싶습니다. (하하하) 그리고 만일 영화를 하게 된다면 대부분 꿈꾸겠지만 디테일이 살아있다는 봉준호 감독님하고 해보고 싶습니다. 이 글을 보고 계신다면 연락주세요. (하하하) 제 번호는 010.....

작지만 당찬 배우, 능청스러운 연기에 울림통까지 좋은 배우, 그리고 무엇보다도 함께 있으면 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에너지 넘치는 배우. 그게 안연주 배우다. 비가 오는 날 혹은 술 한 잔 거하게 걸친 날, 안 배우의 구성진 노랫가락이 생각날지도 모른다. 그의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 그나저나 춘천에 또 한 번 가봐야겠다. 춘천의 겨울도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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