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서 무릎 꿇고 큰절하고 … 박진은 왜 광명역에서 내렸나

[글] 윤경민 칼럼니스트. 전 YTN도쿄지국장
[글] 윤경민 칼럼니스트. 전 YTN도쿄지국장

지난 2일 늦은 저녁 무거운 마음으로 KTX에 몸을 싣고 광주를 출발했던 박진 외교부 장관. 목적지는 서울역이었지만 광명역에서 내렸다. 그리고는 곧바로 인천시의료원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강제징용 피해자 전옥남 할머니의 별세 소식을 접하고 행선지를 바꾼 것이었다.

 

 전옥남 할머니는 꽃다운 나이 14살 때 일본 도야마의 후지코시 비행기 공장에 끌려가 강제노역에 시달렸던 근로정신대 징용 피해자였다. 베어링을 만드는 일을 하다 손가락을 크게 다쳤지만 보상은커녕 품삯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녀는 일본 군수기업인 후지코시를 상대로 일본에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지만 번번이 졌다. 이후 국내 소송에 기대를 걸었고 3년 전 이겼다. 하지만 끝내 사죄와 보상을 받지 못한 채 눈을 감고 말았다. 향년 92세. 

빈소를 찾은 박 장관은 유족들에게 사전 연락도 없이 찾아와 죄송하다며 고인께 절을 올려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고인의 아들 삼형제는 예상치 못했던 외교장관의 조문에 놀라며 "어머니께서 생전에 일본의 사죄와 보상을 기다리시다 세상을 떠나셨지만 이렇게 외교장관께서 찾아와 주셔서 그나마 위로가 되실 것 같다"라고 예의를 갖추어 말했다. 박 장관은 한을 풀지 못하고 타계한 전옥남 할머니의 영정 앞에 고개를 숙이고 큰절을 하며 고인의 평안한 영면을 빌었다.

 

박 장관은 앞서 이날 오후 광주광역시를 방문했다. 강제징용 피해자 이춘식 할아버지와 양금덕 할머니의 집을 각각 찾아가 무릎을 꿇고 큰절을 올렸다. “저는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셔서 인사드릴 어르신이 안 계십니다. 추석 명절을 앞두고 어르신께 인사드리러 왔습니다.” 

박 장관이 방문하기로 한 달력 날짜에 동그라미를 그려놓았던 102세 이춘식 할아버지는 "일본 외상이 와서 사죄를 해야 하는데 한국 외교장관이 오다니… 고맙소"라고 말했다. 갓 스무 살 넘은 청년 시절 일본 이와테현 일본제철의 가마이시 제철소에 동원돼 하루 12시간이나 노역에 시달렸다.

사진 = 박진 장관과 양금덕 할머니 ⓒ 외교부 제공 
사진 = 박진 장관과 양금덕 할머니 ⓒ 외교부 제공 

93세 양금덕 할머니는 하루 전날 미리 써놓은 손편지를 박 장관에게 쥐어주었다. 중학교에 보내준다는 말에 속아 일본에 가서 월급 한 푼 받지 못하고 중노동만 해야 했던 가슴 아픈 사연이 담겨 있었다. 겨우 13살 소녀 시절 미쓰비시 중공업의 나고야 항공기 제작소에 동원됐던 할머니는 서러웠던 세월을 회상하며 살아있을 때 사죄와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 할머니는 외교 장관에게 마음속 이야기를 털어내니 숨통이 트이는 것 같다고 했다. 박 장관은 문제가 조속히 합리적으로 해결될 수 있게 책임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찾은 박 장관은 강제징용 피해자이자 5·18 유공자이기도 한 김혜옥 할머니의 묘소 앞에 무릎을 꿇고 참배했다. 

나라를 빼앗기고 꽃다운 나이에 감언이설에 속거나 강제로 끌려가 죽도록 일하고도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했던 피해자들. 살아 있을 때 진정성 있는 사과와 보상을 받고 싶다는 그들의 외침에 박 장관은 이제는 국가가 서둘러 해결책을 찾아내겠다고 거듭 다짐했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직접 찾아가 손을 마주 잡고, 큰 절을 올리고, 끌어안고, 목소리를 들은 장관은 박 장관이 처음이다. 인간적 위로와 소통, 설득. 이전 정부에서는 보기 힘들었다.

오히려 사법부의 판결에 행정부가 관여할 수 없다며 손을 놓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한일관계는 벼랑 끝으로 몰렸다. 사실 매우 복잡하고 민감한 이 문제는 사법 영역만의 문제는 아니다. 오죽하면 강제징용 사건 주심을 맡았던 김재형 대법관이 퇴임하면서 “입법이나 정치의 영역에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한 사안인데도 법원의 문을 두드리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말했겠는가. 그는 “입법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를 사법부가 해결하려고 해서도 안 되고, 할 수도 없다”고 강조했다.

 

한일관계 악화로 인한 파국만은 피해야겠다고 판단한 윤석열 정부는 여러 차례 일본 측에 관계 개선 의지를 피력했다. 박 장관은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상을 네 차례 만나 일본의 올바른 역사관에 입각한 반성과 사과를 촉구하고 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광복절 기념사를 통해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담은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계승을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꿈쩍도 않던 일본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야시 외상은 윤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 메시지에 대해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하야시 외상은 박 장관이 광주를 방문한 날 기자회견에서  “윤 대통령의 발언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며 “한일 두 나라는 협력해야 할 중요한 이웃나라인 만큼 관계를 회복하고 더욱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고 화답했다.

 

일본 내부에서도 일본 정부의 태도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외무성 사무차관 출신으로 국제법 전문가이자 일본 천황의 장인이기도 한 오와다 히사시 전 국제사법 재판소장은 지난달 25일 도쿄에서 한일포럼상을 받는 자리에서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해 뼈 있는 이야기를 꺼냈다. "외무성 사무차관 때 제기된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일본 정부는 청구권 협정을 들어 법적으로 모두 해결됐다는 입장을 정리했지만 그걸로 끝인가, 법적으로 끝났다고 해서 인간적으로도 끝난 것인가, 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인간과 민족의 관계는 법으로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봤다"고 회상했다. 이 발언이 징용자 문제에도 해당되느냐는 중앙일보 기자 질문에 그는 머뭇거림 없이 “물론이다, 그래서 말한 것"이라고 답했다.

 

박진 장관은 정치권과 언론 일각에서 저자세 외교라고 비난하지만 무엇이 과연 진정한 국익인지를 잘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대법원의 판결대로 일본 기업의 자산을 매각해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을 지급할 경우 우리 국민의 속은 시원할지 몰라도 한일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고 국익은 저해된다는 것이다. 핵개발과 미사일 도발을 멈추지 않는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특수한 상황, 흔들리는 글로벌 공급망으로 인한 경제 위기, 미중과 미러 갈등으로 인한 세계 안보질서의 급변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냉철한 전략적인 외교가 필요하고 그렇게 해서 국익을 지켜내야 한다는 소신을 가지고 있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이웃 국가로서 한일 협력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다. 일본이 2011년 대지진의 재앙에 휩싸였을 때 우리는 정부와 기업 국민이 나서서 일본에 도움의 손길을 주었다. 박진 장관도 당시 여야 국회의원 대표단을 만들어서 후쿠시마 사고 지역을 찾아 희생자들의 영령을 추모하고 한국에서 가져간 구호품을 나눠주며 학교 체육관에 긴급 수용된 이재민들을 위로했다. 피폭 위험에도 불구하고 방사능에 오염된 후쿠시마 원전 인근 지역까지 찾아갔던 그다. 도쿄에서 일본 국회의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후쿠시마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더니 일본 측 의원들은 일제히 고개를 숙이며 사의를 표명했다. 자신들도 가보지 않은 위험 지역에 한국 국회의원들이 다녀왔다는 말에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경의를 나타낸 것이었다.

 

1965년 청구권 협정으로 모든 게 끝났으니 징용자가 제기한 손배 소송에 대한 한국 대법원의 판결은 국제법 위반이다, 한국 정부가 해결책을 마련하라는 게 일본 측 주장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오와다 히사시 전 국제사법 재판소장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법적으로 끝났다고 인간적으로도 끝난 것인가라는 무게 있는 물음을 가슴으로 들어야 한다.

고령의 징용 피해자들과 한을 미처 풀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피해자들을 일일이 찾아 머리를 조아린 박진 장관. 정치적 이해타산을 위해서라면 차라리 일본을 성토하고 죽창가를 부르면 될 일이다. 국민감정, 반일 감정을 부추기는 게 국내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훨씬 쉬운 방법이다. 하지만 쉬운 길을 택하지 않은 이유는 그게 스스로 자존심에 상처를 줄 뿐 아니라 결국은 국가적 손해를 초래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사익이 아닌 국익이 우선이란 얘기다. 그래서 그는 피해자들을 찾아 무릎을 꿇는다. 일본을 향해서는 죽창가 대신 화합의 연주를 하자고 신호를 보낸다.

 

퇴임한 김재형 대법관의 말처럼 이제 입법과 정치의 영역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한국과 일본의 정치인, 외교 당국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미래지향적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 꼬인 매듭을 풀어야 하는 건 책임 있는 양국 정치인들의 몫이다.

 

피해자들에게 고통과 손해를 끼친 일본 피고 기업과 1965년 일본이 제공한 경제협력자금으로 혜택을 받은 한국의 수혜기업, 그리고 양국 정부와 국민의 자발적 참여로 문제를 푸는 방안을 비롯해 이미 여러 가지 해결방안들이 제시된 바 있다.

 

이제 공은 일본의 기시다 정부에 넘어가 있다. 일본은 과거 불행한 역사의 가해자였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1965년 협정으로 모든 게 끝났다며 팔짱만 끼고 있어서는 안 된다. 후생연금 탈퇴수당 99엔 지급과 같은 모욕적 행위는 없어야 한다. 일제 강점 하 불법행위에 대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죄와 함께 피해자에 대한 합당한 보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강제징용 소송 원고 중 이미 5명이 한을 풀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 이제 남은 생존자는 8명이다. 피해자들에게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성숙한 민주국가이자 이웃국가로서 일본은 과거를 직시하며 성의 있게 호응해야 한다. 진심 어린 반성과 사과, 피해자의 70여 년 맺힌 응어리를 풀어주는 것이 전후 달라진 책임 있는 국가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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