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타임댄스프로젝트, 윤민정무용단 등 6개팀 공연
지난 9월 6일 대구 달서아트센터 청룡홀

대구무용진흥회가 주최 및 주관한 2022 대구춤페스티벌이 지난 9월 6일 대구 달서아트센터 청룡홀에서 개최됐다. 대구춤페스티벌은 대구무용진흥회가 대구 무용의 발전을 도모하고, 무용인들의 화합과 후진 양성을 위해 개최하는 연중 행사다.

금년 행사에서는 기성과 신진의 주역들을 중심으로 총 여섯 팀의 춤이 무대에 올랐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을 춤으로써 다각도로 고찰해보는 시간, 우리의 현실에 기초한 일련의 모티프가 저마다의 독창성을 가지고 현대무용, 발레, 퍼포먼스 요소까지 가미되어 다채롭게 펼쳐졌다.

사진=쇼타임댄스프로젝트 'sequence' 공연 장면 /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제공
사진=쇼타임댄스프로젝트 'sequence' 공연 장면 /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제공

'sequence' - 쇼타임댄스프로젝트 / 안무 권승원

어쩌면 우리는 모두 '현대'라는 생업(生業)에 종사하는 현대인들, 저마다 다른 일을 하고 다른 취미를 갖고 살아가지만, 결국 현대라는 시류가 이끄는 틀 안에서 움직이게 된다. 그래서인지, 작업복 느낌의 의상을 입은 여섯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어찌 보면 다람쥐 쳇바퀴 돌 듯이 느껴지는 일사불란한 모습이다. 그러나 빠르지 않고 느린 리듬에 따라 움직이는 군무는, 이 땅 위에 서 있는 어떤 생물 또는 무생물의 존재 같기도 한 조형미를 느끼게 했다.

그러다 여섯 무용수가 사라지고, 한 무용수가 나타나 비보잉을 연상시키는 춤을 멋드러지게 춘다. 군무에서 느껴졌던 획일적인 움직임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그것은 평범함 속에서도 자신만의 믿음과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자신감의 몸짓 같아 보였다.

이후에 다시 볼 수 있었던 군무에서는, 마치 현대의 속박 속에서 자유를 갈망하거나 혹은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현대인들의 몸부림을 느낄 수 있었는데, 때로는 지하철 혹은 도로, 시끌벅적한 길거리 위에서의 배회와 같은 움직임들이, 비슷한 모양으로 이따금씩은 제각각의 모양으로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지르고 있는 듯했다. 

이러한 일련의 춤을 통해 쇼타임댄스프로젝트가 보여주고 싶었던 'sequence'란 결국, 우리의 삶 위에서 마주하게 되는 필연적 혹은 우연적 상황에서, 중심과 결정의 주체는 바로 우리 자신임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 게다.

사진=윤민정무용단 '뿌리에게' 공연 장면 /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제공
사진=윤민정무용단 '뿌리에게' 공연 장면 /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제공

'뿌리에게' – 윤민정무용단 / 안무 윤민정

음악 없이 시작된 1인무는 마치 무(無)에서 창조되는 유(有)의 유의미함을 시사하는 듯이 꿈틀거리는 생명력을 전한다. 언뜻 천연 물감으로 물들인 듯한 먹색의 배럴핏 바지가 대지의 흙내음을 연상시키는 가운데, 모던한 선의 짧은 민소매를 걸친 무용수의 움직임은 대지 위에서 숨 쉬고 생각하는 어떤 생물체의 존재를 나타내는 듯하다.

'뿌리에게' 이 작품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저마다 가지게 되는 가치관이 얼마나 올바르고, 그것을 지키고자 하는 신념은 또 얼마나 굳건한가에 대하여 생각케 한다.

1인무는 대자연의 숭고함이 느껴지는 음악과 함께 곧 군무로 연결되고, 선 채로 혹은 앉은 채로 작은 바람에도 이리 술렁 저리 술렁대는 대자연 속 작은 생명체들의 모습을 춤춘다. 그리고 그것은 마치, 바르다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쉬운 것을 당연하게 좇는 대중의 모습을 대변하는 듯이 매우 사실적이다.

그런 와중, 가끔씩 한 명의 무용수는 깊은 고민에 빠진 몸짓으로 관객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중요한 것은, 뿌리 깊은 나무가 흔들림이 없듯이, 우리도 각자가 뿌리를 둔 대지에서 평화를 찾게 된다는 사실일 터, 마음의 뿌리 역시 양심이라는 안정된 토양 위에서 자랄 때 흔들림 없이 뻗어 나갈 것이다.

사진= 클라인플라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공연 장면/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제공
사진= 클라인플라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공연 장면/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제공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 클라인플라츠 / 안무 조혜원

빨강과 초록색의 큐브가 춤을 춘다. 엄밀히 말해 정육면체는 아니지만, 큐브는 무용수의 얼굴도 됐다가, 가방도 됐다가, 의자도 됐다가, 때로는 테이블, 자동차, 정거장처럼 보이기도 한다.

퍼포먼스적인 요소가 다분했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는 두 명의 무용수가 각자 하나의 큐브 소품을 통해 다소는 기계적인 느낌의 춤을 선보였다. 둘은 같은 모양의 소품을 이용하면서 때로는 같은 춤을, 때로는 다른 춤으로 교감하고 서로 소통해 나아간다. 

'다 똑같이 살아야 해? 좀 다르게 놀면 안돼?'라고 화두를 던지는 듯한 두 무용수의 역동적인 춤, 어디로 튈 지 짐작할 수 없는 움직임이 제목 그대로 이상 야릇한 듯하면서도 시종일관 자존감 넘치는 모습을 보여준다. 큐브의 용도가 시시각각 변하면서 다양한 페르소나를 연기하는 듯하지만, 결국 연기를 하는 나 자신은 '나'라는 주체성을 공고히 하고 싶은 듯하다.

변화무쌍한 세상 속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 하나의 모습, 한 가지 희망으로만 살아갈 수 없는 현대인들의 모습. 급기야, 세 가지 야광색으로 몸을 밝히고 아이언 마스크까지 뒤집어쓴 두 앨리스는, 결코 멈추지 않을 것 같은 디스코 리듬에 몸을 내맡기면서 관객들의 고정관념을 흔들어 놓는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상한 나라의 탈사회적 분위기의 무대가, 오히려 결속력이 느껴지는 디스코 리듬과 함께했다는 것인데, '레이저' '레이저' 하는 배경음악의 후렴구를 계속해서 듣다 보면, 그마저도 나의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에 슬그머니 미소 짓게 된다. 

사진=모음발레단 'I, MY, ME' 공연 장면 /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제공
사진=모음발레단 'I, MY, ME' 공연 장면 /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제공

'I, MY, ME' – 모음발레단 / 안무 지혜림

하얀 백스크린에 검은 먹물이 번진다. 그러한 배경과 비슷한 느낌으로, 먹물 색상에 스커트 부분에만 핑크빛이 도는 수채화적인 의상을 입은 다섯 무용수가 토슈즈를 신고 그윽한 몸짓으로 발레를 선보인다. 그것은 마치 과거의 좋았던 한 때를 회상하는 움직임처럼 사랑스럽다가도, 슬프고 고통스러웠던 기억처럼 지우고 싶은 몸부림이기도 하다.

곧 비둘기색 의상을 입은 무용수가 등장해 다섯 기억들과 마주한다. 그 모습은 마치 자신의 과거 어느 한 때와 조우한 것처럼 익숙하고 반갑기도 하지만, 어떤 때엔 부끄럽거나 화가 나기도 한다. '나'는 그렇게 과거의 '나'와 길게 또는 짧게, 쉽게, 어렵게 조우하면서 더 성숙한 '나'로 거듭나는 듯하다.

설령 잊고 싶었던 과오까지도 과감히 들추어내어 자신의 모습을 재평가할 수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면, 그것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위안이 될 수 있는 것. 과거와 현재를 통해 스스로를 일깨우는 일련의 과정은 더 나은 나를 향한 도약에 밑거름이 된다.

먹색으로 얼룩지던 백스크린도 어느덧 정열과 희망으로 설레는 내일을 예고하는 듯 알록달록한 색상들로 물들여진다. 성숙한 나 하나의 꽃 'I, MY, ME'. 금번 대구춤페스티벌 작품들 가운데 가장 전달력이 좋았던 무대였다고 본다.

사진= 율동무용단 '청산靑山' 공연 장면 /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제공
사진= 율동무용단 '청산靑山' 공연 장면 /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제공

'청산(靑山)' - 율:동무용단 / 안무 이유리

우리 전통적인 것에서 모티프를 찾은 '청산(靑山)'은 고려가요 '청산별곡'을 재해석한 작품이었다. 

'한이 원통한가' '서산에 지는 해는...' 
무대를 여는 노랫가락에는 현실에 대한 비애가 그득히 묻어난다.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를 노래하는 '청산별곡'의 완곡한 표현에 비하면, 그 소리에는 훨씬 더 애통한 기운이 흘러 보인다.

무대는 자기 키보다 큰 야광색 사다리를 하나씩 짊어진 네 명의 무용수들로 가득 찼다. 어두운 무대에서 시선을 압도하는 야광빛 사다리들은 때론 무겁게 느껴지고 때론 위험하거나 그 끝이 아득해 보인다.

오르려 하면 사다리는 어느새 훌쩍 길어져, 여기 이곳을 벗어나기란 만만치 않고, 이상은 저만치 더 멀어져 있다. 사다리 너머로 향하는 길, 내가 좇는 그 길이 옳은 길인지 잠시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급기야 저마다의 사다리는 서로 엉켜 점점 더 오르기가 어려워지고, 엉킨 사다리를 풀어보려는 움직임이 무색하게 마지막 한 다리까지 꼬이고 만다.

결국 꼬인 사다리의 주변을 맴돌기만 할 뿐인 사람들. 저마다의 청산을 찾아가고자 각자가 벗어나려 하는 현실은 그토록 혼란스럽고 버거워 보였지만, 사다리끼리 얽혀 어느새 새로이 형성된 구조물은, 비록 시원스럽게 쭉 뻗은 사다리 형태는 아닐지언정 무너지지 않는 새로운 청산이 여기 있노라 보여주는 듯했다. 

어쩌면 우리는 눈앞에 있을 청산을 굳이 외면하면서, 먼 곳 만을 바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사진= CDS프로젝트 'Cul de Sac' 공연 장면 /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제공
사진= CDS프로젝트 'Cul de Sac' 공연 장면 /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제공

'Cul de Sac' – CDS프로젝트 / 안무 문진학

지금까지 무대에 오른 다섯 작품이 저마다 삶에 대한 철학을 춤추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Cul de Sac'는 가장 불확실한 것에 대한 고민을 표현한 작품이었다.

불확실함이란 그저 불확실한 채로 하나의 기준이 될 때 다른 제(諸)요소들과 동등한 위치에 둘 수 있는 것.

그러나 '막다른 길(Cul de Sac)'에서는 끊임없이 궁지에 몰리고 모호함에 괴로워하는 몸짓이 무대 한편을 계속해서 잠식하고 있고, 다른 두 명의 남녀 무용수가 마치 아이 잃은 부모처럼 어찌할 줄 모르는 고통을 안은 듯이 제각각 몸서리치고 있었다.

특히 본 작품의 안무가이기도 한 무용수 문진학의 춤은 동작 하나하나에 표현력이 상당히 세련되어 눈길을 끌었는데, 그의 춤에는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위기감과, 혹은 혼자서는 완성되지 않을 듯한 불안감이 서려 있었고, 그러한 춤은 마치 태풍 전의 잔잔한 물결침을 보는 듯한 위태로운 평화로움을 품고 있었다.

이렇게 2022 대구춤페스티벌에서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을 이야기하고 표현하는 데 있어, 다양성이 얼마나 무궁무진한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아울러 아무리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는 불투명한 심상이라도, 그것을 감싸 안고 있는 몸은 그것에 생명력을 담아 표현해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결국 춤이 가진 아름다움으로 우리를 매료시킨다는 것이다.

글=서경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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