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팩토리소극장 무대에 오른 한국창작무용 작품 두 편 리뷰
사도세자의 한을 달래는 '무덤방', 독백과 오브제로 상(像)을 만든 '방’

사진='무덤방' 공연 장면 /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사진='무덤방' 공연 장면 /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지난 9월 17일. 대구 퍼팩토리소극장에서 제31회 퍼팩토리2030예술극장, 황지희의 첫 번째 춤 ‘내딛다’ 공연이 열렸다. 퍼팩토리2030예술극장은 20~30대 젊은 춤꾼들을 발굴하고 창작 의욕을 고취시키고자 2017년부터 대구문화창작소에서 꾸준히 이어가고 있는 기획이다.

이번 공연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황지희’의 이름을 걸고 내딛는 첫 번째 춤판이다. 공연은 1, 2부로 나누어 1부에서는 전통무용과 창작무용, 2부에서는 안무가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실험적인 무대로 진행되었다.

사진='무덤방' 공연 장면 /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사진='무덤방' 공연 장면 /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1. 무덤방 – 안무/출연 황지희

“어찌하여 너와 나는 이승과 저승의 갈림길에 와서야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느냐.” 프로그램북에 한 줄로 짧게 소개된 <무덤방>은 아버지 영조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젊은 나이에 죽임을 당한 사도세자의 한(恨)을 달래는 메시지를 담은 작품이다.

무대 가운데, 사각 조명으로 표현한 뒤주가 놓였다. 울분에 찬 사도세자가 뒤주를 긁는 소리가 효과음으로 들린다. 검붉은 옷에 유건(儒巾)을 쓴 무용수가 등장한다. 굵은 막대에 의지해 무릎으로 바닥을 긁으며.

북소리, 온몸에 전율이 오른 듯 몸통을 좌우로 어르며 땅을 지르밟는다. 징소리, 무용수의 움직임이 증폭된다. 접신(接神)한 무당의 모습처럼 무대를 휘젓는다.

잠시 후 서정적이고 슬픈 선율이 흘러나온다. 무용수가 하수 뒤쪽에 눕는다. 굵은 막대를 풀어 이불처럼 몸을 덮는다. 무덤의 형상이 되었다. 사도세자가 누운 무덤방. 

거친 숨소리를 내며 돗자리를 끌어안았다 내려놓은 무용수는 공간에 자신의 몸을 맡긴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손끝의 느낌, 휘몰아치는 치맛자락 사이로 어디론가 내몰리는 치열한 발의 움직임 그리고 음악을 타며 온몸을 일렁인다. 

운명을 거스를 수 없는 사도세자의 ‘한’을 몸짓으로 그려내고 있었다. 호흡을 가다듬고 바닥에 있던 돗자리를 다시 끌어안으며 작품은 마무리된다.

아버지의 사랑이 고팠던 슬픈 사연의 주인공을 무대 위에서 만날 수 있었다. 영화 <사도세자>에 나오는 유아인의 대사가 떠오른다. “내가 바라던 것은 아버지의 따뜻한 눈길 한 번, 다정한 말 한마디였소.”

사진='방' 공연 장면 /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사진='방' 공연 장면 /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2. 방 - 안무 황지희 / 출연 황지희, 신민진

조명이 켜지고 무용수가 관객에게 말을 걸어온다. “저는 이미지 변신을 하고 싶은 황지희입니다.” 뜬금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무용수. 

이 작품의 구성 중 절반은 무용수의 독백이다. 꽤 긴 시간 동안 연극의 독백(獨白)처럼 내면의 생각을 혼잣말로 풀어낸다. 자신이 느끼는 나, 친구들이 보는 나 그리고 믿었던 친구들로 인한 배신과 상처에 대한 과거 이야기였다. 

바닥에 놓여있는 방석. 무대를 크게 돌며 방석을 무심히 밀쳐낸다. 같은 행위가 한동안 계속되며 궁금증을 유발했으나 그것의 의미는 아직 불분명하다. 

독백이 이어진다. “나는 유머러스하고 귀여운 면도 있으나 타인은 나를 냉정하고 까다로운 이미지로 본다.”라는 이야기와 함께 방석을 강하게 밀쳐내거나 발로 찬다. 

가장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들이 자신을 싫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경험을 고백한다. 조금 전과 다르게 방석을 질질 끌고 다니고, 지근지근 밟기도 했다. 무대 위를 달리고, 바닥이 울릴 정도로 ‘쿵쿵’ 소리를 내며 양발로 강하게 짓눌렀다. 

사진='방' 공연 장면 /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사진='방' 공연 장면 /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황지희는 방석에 감정을 이입하고 있었다. 점차 강해지는 동작을 통해 그녀의 감정을 읽을 수 있었으며 그것은 상처와 배신감, 충격, 분노의 절정 등 고조되어가는 감정을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좁은 조명 안. 방석을 베개 삼아 누우면서 기계음이 흘러나온다. 좁은 방석 안에서 일상적인 동작을 나열한다. 꿇어앉고, 턱을 괴고 엎드리거나 방석 안에서 모서리를 따라 돌기 시작했다. 혼자만의 공간이었다. 잠시 후 공간에서 빠져나와 방석을 응시하며 주변을 맴돈다.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집착하듯 맴돈다. 

방석은 ‘마음의 방’을 의미하고 있었다. 무대로 시작된 ‘방’이 방석으로 바뀐 것은 상처로 인해 더욱 좁아진 그녀의 인간관계를 의미했다. 그리고 방석 주변을 반복적으로 맴돌면서 점점 더 높이 쌓아 올린 마음의 벽을 응축시켜 보여주었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고립을 선택한 것일까? 몸 하나 제대로 가눌 수 없는 좁은 공간에 의탁한다. 

황지희에게 집중하고 있을 때 등장하는 다른 무용수. 황지희의 머리 위에 방석을 올려놓는다. 두 사람은 서로를 경계하듯 응시하며 대립된 분위기를 연출했다. 

사진='방' 공연 장면 /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사진='방' 공연 장면 /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긴장감을 조성하는 음악이 흘러나오자, 황지희의 주변을 돌며 위협하듯 발바닥으로 땅을 구른다. 방석을 머리로 누른 채 힘겹게 바닥을 기어 다니는 황지희를 무심히 쳐다볼 뿐 허우적대는 상황에도 아무 반응이 없다. 소통의 부재.

두 무용수가 방석을 사이에 두고 등을 맞댄다. 황지희는 돌아앉아 다른 무용수의 등에 귀를 대고 신호를 보내듯 손바닥으로 노크한다. 손바닥의 움직임은 더욱 강해졌으며 곧 분노로 바뀌어 바닥을 강하게 타격하기 시작했다. 

비로소 반응하는 상대. 깜짝 놀란 듯 일어섰다가 다시 몸을 움츠렸다. 황지희는 괴로움의 절정을 보여주듯 방석 위에서 강하게 발버둥 쳤으며 상대 무용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손가락으로 조종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숨을 내몰아 쉰 황지희가 차분히 다른 무용수 옆에 선다. 두 사람은 방석을 조용히 바라보다 그 위에 함께 올라선다. 헝클어진 머리, 무념(無念)의 표정으로 쪼그려 앉는 황지희. 그 무릎 위에 다른 무용수가 앉아 같은 곳을 바라보며 작품은 마무리된다.

사진='방' 공연 장면 /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사진='방' 공연 장면 /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맺으며

작품 '방'은 주제를 표현하는 방식에서 독특한 점을 찾을 수 있었다. 전반부, 무음의 상태에서 무용수의 육성에 의존한 가운데 무대를 연출한 점이다. 연극에서 배우 한 사람이 모든 배역을 맡아 독백으로 이끌어가는 모노드라마와 같았으며 새로운 시도로 관객을 집중시켰다.

그리고 한국창작춤의 추상적 이미지에서 벗어나 안무가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적이고 사실적인 안무 작업을 통해 관객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서고 있었다. 

추상적인 몸짓을 대신한 독백과 방을 의미하는 오브제(방석)로 무대에서의 뚜렷한 상(像)을 만들어낸 작품이었다. 오늘 함께 한 관객은 시간이 흘러도 무용수의 독백과 오브제를 통한 심상(心像)을 기억할 것이다.

어떤 예술 장르든 관념을 형상화하는 고통이 따른다. 안무가와 무용수는 춤으로, 몸짓으로 관객을 만난다. 이번에 안무가는 몸에 익은 방식이 아닌 다른 길을 선택했다. 

“춤은 사상과 감정을 움직임과 몸짓으로 표현해야 한다.”라는 상식과 달리했다. 그것은 표현의 자유와 사고의 전환이라는 측면에서 나름의 생각과 고민을 거쳐 융통성을 발휘한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안무자를 고무시키고 싶다. 앞으로 안무가가 시도할 새로운 도전을 기대해 본다.

글=김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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