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 편지 속 '소통' 의미 전하는 작품
배종옥·장현성, 목소리만으로 몰입도 높이는 연기
'러브레터', 오는 11월 13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사진=파크컴퍼니 제공
사진=연극 '러브레터' 공연 장면 / 파크컴퍼니 제공

[문화뉴스 장민수 기자] 메신저 옆에 떠 있는 숫자 '1', 혹은 보낸 메일함에 적힌 '읽지 않음'. 지금은 수신 여부라도 알 수 있지만, 손편지를 주고받던 시절에는 그 조차 알기 어려웠다. 답답함이 주는 묘한 설렘이 있던 순간. 연극 '러브레터'는 그 시절, 그 감정을 다시금 되살려준다.

'러브레터'는 멜리사와 앤디가 주고받은 333통의 편지를 읽어 나가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50여 편의 희곡을 쓴 미국 극작가 A.R. 거니(A.R. Gurney)의 대표작이다. 두 사람의 우정과 사랑, 삶이 진심 어린 편지 속에 녹아든 작품이다.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고, 내 이야기를 전하며 위로를 주고받는 소통의 의미를 전한다.

특별한 서사가 있는 건 아니다. 멜리사와 앤디가 어린 시절부터 생을 마감하기 직전까지, 일생 동안 주고받은 편지를 읽는 것이 전부다. 그러나 그 편지들을 듣다 보면 그들의 만남과 헤어짐, 기쁨과 분노가 머릿속에 생생히 그려진다. 관객들이 직접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셈이다.

사진=파크컴퍼니 제공
사진=연극 '러브레터' 공연 장면, 배우 배종옥 / 파크컴퍼니 제공

편지에는 그 순간의 감정이 깃든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에 고민을 거듭하고, 답장에 적힐 내용을 상상하며 설레던 그 시절. 편지를 써본 적이 있는 관객이라면 그때의 향수를 진하게 느낄 수 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객석에는 중장년층 관객들이 다수를 차지하기도 했다. 

배우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을 마주 보고 앉아 편지만 한 장 한 장 읽는다. 하지만 앉아서도 충분히 많은 액션을 소화하며 지루함을 달랜다. 술잔을 기울이거나, 머리를 쥐어뜯거나, 분노해 편지지를 찢기도 한다. 여기에 동화책 속 그림들이 무대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방식의 연출이 다채로움을 더해준다.

연극을 흔히 배우의 예술이라고 표현한다. 이 작품은 특히 그렇다. 목소리만으로, 대사만으로 캐릭터를 보여주고 관객을 몰입시키는 건 결코 쉽지 않다. 게다가 10대부터 50대까지의 변화도 가져가야 하니 말이다. 

당연히 '러브레터' 무대에 오르는 배우들의 실력은 최정상급이어야 할 터. 배종옥과 장현성은 그들이 왜 오랜 시간 연기자로 활동할 수 있었는지를 입증한다.

사진=연극 '러브레터' 공연 장면, 배우 장현성 / 파크컴퍼니 제공
사진=연극 '러브레터' 공연 장면, 배우 장현성 / 파크컴퍼니 제공

배종옥은 솔직하고 적극적이며 자유분방한 화가 멜리사를 연기한다. 어린 시절은 다소 얄미우면서도 사랑스럽게, 중년에는 우여곡절 많은 인생 속 불안을 표현한다. 오로지 목소리와 제스처만으로 말이다.

장현성은 앤디 역을 맡았다. 변호사를 거쳐 국회의원의 자리까지 오른 모범적인 캐릭터다. 그의 연기도 참 모범적이다. 코믹과 진지함을 오가는 완급조절이 특히 돋보인다.

러닝타임 약 90분 동안 한순간도 집중을 놓지 않았느냐 물으면 그렇다고는 못하겠다. 그러나 놓쳤던 그 찰나가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을 정도로 '러브레터'는 재밌는, 좋은 작품이다. 편지와 아날로그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 있다면 '러브레터' 속으로 들어가 보길.

한편 '러브레터'는 오는 11월 13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된다. 오영수, 박정자, 배종옥, 장현성이 출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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