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밥상 583회, 만추여정(晩秋旅程) 지리산을 만나다
3일 목요일 저녁 7시 40분 KBS1 방영

[문화뉴스 조아현 기자] '한국인의 밥상' 583회에서는 가을을 맞은 지리산의 풍성한 밥상을 소개한다.

그 풍경도, 맛도 최고의 빛깔로 무르익는다는 만추(晩秋)의 지리산. 장대한 백두대간의 끝자락인 지리산의 너른 품에는 황금빛으로 타오르는 다랑이논과 주황빛 곱게 물든 감, 그리고 궁극의 고소함을 품고 나타난다는 참게까지, 1년 중 딱 이맘때만 맛볼 수 있는 풍성함이 넘쳐흐른다. 울긋불긋 맛있게 물든 지리산의 가을걷이 밥상을 찾아 만추의 여정을 떠난다. 

지리산 다랑이논, 첫 나락 베는 날!
- 경남 함양 

사진 = KBS 한국인의 밥상
사진 = KBS 한국인의 밥상

황금빛 물결이 일렁이는 지리산 산비탈, 층층의 다랑이논으로 향한다. 함양 도마마을의 첫 나락 베는 날이다. 벼를 척척 베어내는 농기계 뒤에 낫을 들고 동분서주 쫓아다니는 농부들이 눈에 띈다. 반듯한 평지의 논들과 달리, 울퉁불퉁 가파른 산세를 살려 맨손으로 일궈낸 계단식 논에서는 가장자리를 하나하나 손으로 베어줘야 한다. 평생 다랑이논 농사를 지어온 김오묵 어르신에게는 쏟아붓는 정성만큼이나 추수의 보람도 크다. 피땀 흘려 지은 1년 농사의 결실을 마치 쏟아지는 황금처럼 귀하게 받아내는 지리산의 농부들이다.  

첫 수확의 기쁨은 으레 잔칫상으로 이어진다. 일교차 큰 해발 500미터의 산자락에서 키워낸 무와 배추는 맛도 옹골차다. 매콤하고 뚝딱 버무려낸 알타리 무김치. 산비탈을 오르내리며 추수 새참을 챙겼던 지리산 농부들의 고단함도 사르르 녹여주는 시원한 맛이다. 오늘의 주인공인 햅쌀에는 고기만큼 귀하고 쫄깃쫄깃하다는 꽃버섯을 더해 풍성하게 지어낸다. 가을볕과 지리산 바람이 바삭하게 맛을 낸 김부각과 고추부각은 추수 때 빠질 수 없는 새참이라는데. 배고픈 시절에 만추의 지리산이 내어줬던 선물, 상수리나무의 열매로는 탱글탱글한 묵을 쑨다. 그 옛날 지리산 어머니들의 정성과 인내가 다랑이논처럼 층층이 쌓인 푸근한 맛이다. 잔칫상의 화룡점정, 소고기 버섯전골까지, 가을걷이의 벅찬 감동이 가득 담긴 지리산 농부들의 황금빛 밥상을 만난다. 

하늘 아래 첫 동네의 월동준비
– 전북 남원
 

사진 = KBS 한국인의 밥상
사진 = KBS 한국인의 밥상

지리산, 그 하늘 아래 첫 동네로 높이 올라간다. 5미터는 족히 돼 보이는 커다란 감나무 위에서 주황빛으로 여문 감 따기가 한창이다. 아슬아슬한 감 따기 모습을 아래서 지켜보며 잔뜩 긴장한 공안수 씨. 10년째 함께 하는 일이지만 여전히 아버지 공안수 씨는 아들 공성훈 씨가 걱정스럽기만 하다. 대대로 이 일은 공안수 씨가 아버지와 그 아버지의 아버지가 함께 2인 1조로 해왔던 일이다. 철마다 지리산을 누비며 버섯과 감을 따고 산다는 아버지와 아들. 10년 전, 도시를 떠나 고향으로 다시 돌아온 성훈 씨를 아무런 조건 없이 따스하게 품어준 것도 바로 지리산이었다. 

산 아래보다 계절이 앞선다는 해발 800미터의 와운마을. 성훈 씨 가족은 가을걷이와 함께 월동준비를 서두른다. 삭힌 보리를 메주 대신 넣고 지리산 표고버섯 가루를 듬뿍 더한 보리된장은 돼지고기 수육 할 때 양념으로도 제격이다. 지리산이 대신 농사 지어준 고들빼기와 쪽파로는 짭조름한 장아찌를, 산바람이 구수하게 말려낸 시래기는 된장에 자작자작 졸여내 다가올 겨울을 대비한다. 성훈 씨가 지리산 깊은 곳에서 힘겹게 따온 싸리버섯. 어머니는 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바삭바삭 탕수이에 지리산의 풍미를 가득 더 한다. 지리산이 거저 내어준 가을 맛이 한상에 가득, 대대로 지리산에 기대 살아온 이 가족은 오늘도 너른 품 안에서 든든하게 살아간다. 

지리산 고택의 가을 손님맞이
– 경남 함양 

사진 = KBS 한국인의 밥상
사진 = KBS 한국인의 밥상

수백 년간 지리산을 지켜온 유서 깊은 곳. 60여 채의 고택들이 옹기종기 모인 개평마을을 찾았다. 예부터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는 ‘노 참판 댁’은 이곳의 터줏대감. 고택의 너른 텃밭에서는 종부 이지현 씨와 종갓집 아낙들이 새빨갛게 여문 고추며 버섯이며, 가을걷이하느라 분주하다. 향나무 응달에서 영지버섯과 표고버섯이, 가을볕에 고추와 쑥갓이 쑥쑥 자라난다. 여기가 집 마당인지 지리산 속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풍성한 이 댁의 가을 수확물은 대부분이 손님 대접을 위한 것이다. 호조 참판을 지낸 이 댁의 조상, 노광두는 백성들의 세금 감면을 위해 애쓴 인물이다. 백성들이 손수 지어준 참판 댁의 사랑채는 언제나 문이 활짝 열려있었다고. 하루에도 수십 명씩 드나드는 손님들을 대접하기 위해 곳간에 가득 쟁여두곤 했다는 귀한 먹거리들.

특히 이맘때면 말린 피문어와 소고기, 가을무까지 푹 끓여내 귀한 손님에게 경상도식 탕국을 끓여내곤 한다. 삭힌 보리로 감칠맛과 쫄깃함을 살린 보리고추장은 참판댁을 대표하는 오랜 지혜의 맛이다. 종부 이지현 씨는 시어머니가 밤새 졸이고 빚어 가족과 손님들에게 나눠주곤 했던 고추장을 빚으며 베풂의 미덕까지 내려받았다. ‘사초국수’는 바둑 명인이던 이 댁의 선조, 사초 노근영이 바둑 손님에게 대접하던 음식이다. 양지 육수에 지리산의 진귀한 맛, 석이버섯까지 더한 한 그릇. 세상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지리산 고택의 국수다. 여기에 향긋한 쑥갓 수란과 가을걷이한 재료들로 수없이 손을 보태 빚은 다과들까지, 지리산 고택의 가을 손님상에서 더없이 풍성한 지혜와 베풂의 미덕을 맛본다.  

가을이 살찌운 섬진강 참게와 재첩
- 경남 하동 

사진 = KBS 한국인의 밥상
사진 = KBS 한국인의 밥상

지리산의 골짜기 물이 흘러 흘러 도달하는 곳. 섬진강으로 가본다. 바다처럼 물이 들고 나는 이곳에선 물때만 되면 부리나케 강으로 나서는 어부들이 있다. 추워져 땅속 깊이 숨어버리기 전에 섬진강의 보물, 재첩을 얻기 위해서다. 쉬는 시간도 없이 6시간을 꼬박, 물이 가슴에 차오를 때까지도 작업을 멈추지 않는다는 조상재 씨. 대대로 섬진강에 기대 살아온 하동 토박이다. 하지만 예부터 섬진강 어부들이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가을 진객은 따로 있다는데. ‘서리 내릴 무렵 살이 오르면 소 한 마리와도 안 바꾼다’던 가을 참게가 바로 그것이다. 요즘에는 보기 드물어 더 귀해졌다는 섬진강의 가을 맛이 밥상을 물들인다. 

첫 번째 요리는 하동에서 김장한 듯 연례행사로 매년 담근다는 참게장이다. 살이 꽉 차오른 고소한 가을 참게에 채소로 감칠맛을 낸 간장을 부었다가 3~4일마다 따라내 다시 끓이고 붓기를 다섯 차례나 반복해야 완성되는 정성의 음식이다. '자산어보'에서도 게 중에 가장 맛있다고 했다 것이 참게다. 알고 보면 진하게 곰삭은 이 참게장이야말로 원조 밥도둑이다. 가을이면 살이 통통해지는 메기로는 하동에서 즐겨 먹는 방앗잎으로 풍미를 가득 더 해 매콤한 찜을 만든다. 봄 못지않게 쫄깃하고 맛나다는 재첩. 데친 다음 새콤달콤하게 무쳐낸 초무침은 거센 강물도 이겨내게 하는 섬진강 어부들의 원동력이 된다. 만추의 지리산과 섬진강이 한데 어우러진 밥상. 이 풍요로움을 맛보며 한결같이 넉넉한 지리산의 만추를 만끽한다.

한편 '한국인의 밥상'은 KBS에서 매주 목요일 저녁 7시 40분에 방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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