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도 높은 작품과 수준급 실력을 갖춘 국내외 무용수들이 수놓은 무대
제24회 대구국제무용제 둘째 날, 대구문화예술회관 비슬홀

글 : 김윤정
사진 :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지난 11월 8일. 대구무용협회가 주최, 주관하는 대구국제무용제 둘째 날 공연이 대구문화예술회관 비슬홀에서 열렸다. 대구국제무용제는 세계무용인들과 지역 예술인들이 교류하고 소통하며 국내외 우수한 콘텐츠를 선보이는 행사로 올해 24회째를 맞이한다. 

2일에서 4일까지 열릴 예정이었으나 이태원 참사로 인한 국가애도기간으로 연기되어, 6일 개막공연에 이은 둘째 날이었다. 일정이 조정되어 불참한 일본과 베트남은 영상으로 대체하였으며, 나이지리아를 포함해 국내 4팀을 초청하여 개성 있는 춤 빛깔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무대로 꾸며졌다. 

 

척Project '꽃은 지지만 그 향기는 오랫동안 자리에 머문다' / 안무 최재호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척Project '꽃은 지지만 그 향기는 오랫동안 자리에 머문다' / 안무 최재호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1. 꽃은 지지만 그 향기는 오랫동안 자리에 머문다 / 안무 최재호

이 작품은 ‘그때가 좋았지’, ‘지금이 좋을 때야’라는 말처럼 지나간 과거와 추억에 대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텅 비어있는 무대. 잠시 후 ‘탁탁’ 소리가 들린다. 상수에서 연한 핑크빛 댄디한 옷차림의 세 명의 남자 무용수가 지팡이를 짚고 걸어 나온다, 상투 머리에 구부정한 자세로 지팡이로 땅을 찍으며. 옷차림과는 다른 노인의 모습이다. 

지팡이와 발 스텝으로 다양한 리듬을 만들며 느리거나 빠르게, 정박과 엇박, 규칙과 불규칙을 넘나든다. 난도를 높여가며 다양하게 구성한 발동작은 리듬의 속도와 강약에 따라 조율되는 분위기다. 무용수들은 느려진 리듬에 힘없이 축 늘어진 노인이 되었다가 빠른 템포에 펄쩍 뛰거나 깨방정을 떠는 젊은이가 되기도 한다. 

특히 과장된 표정과 이탈하는 무용수를 끌고 오거나 약을 올리는 일행의 따귀를 때리는 장면은 슬랩스틱 코미디와 흡사한 분위기로 관객에게 큰 웃음을 선사하기도 했다. 한국창작무용은 ‘모호하고 어렵다’라는 인식을 허물고 관객과 무용수의 소통의 간극을 줄이려는 노력이 보였다. 관객은 문제의식에 대한 고민과 진지함이 묻어나는 공연만큼 유쾌함을 안겨주는 무대에 목말라 있기에 반길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후반부는 피아노로 연주된 밀양아리랑에 맞춰 한국춤의 호흡과 흥으로 무대를 이끌었다. 언제 들어도 아름다운 선율 ‘아리랑’. 땅에 털썩 주저앉은 무용수들은 힘겹게 일어나 사지를 벌벌 떨거나 중심이 흐트러지며 불안정한 모습이다. 작품 사이사이 한 손으로 먼 곳을 가리키고 공간을 응시하며 젊은 날을 회상하기도 한다. 

그것도 잠시.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경쾌한 멜로디에 흥겹게 춤추기 시작한다. 막걸리 한 잔을 들이키고 흥이 제대로 올라온 노인의 모습처럼.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는 무용수들. 땅을 다지고 몸통을 좌우로 어른다. 땅을 힘차게 밟아 솟구치는 힘에 팔사위가 펄럭일 때 자연스러움과 흥은 넘쳐나고 필자도 그 분위기에 합류하게 된다.
한바탕 놀아나는 춤사위 속에서 흘러가는 세월에 슬퍼하지 않고 오랫동안 머무르는 추억만으로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보았다.

 

Nelson Miracie Chinonso '고독한 생활' / 안무 Nelson Miracie Chinonso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Nelson Miracie Chinonso '고독한 생활' / 안무 Nelson Miracie Chinonso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2. 고독한 생활 / 안무 Nelson Miracie Chinonso 

<고독한 생활>은 인간의 삶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고독의 의미에 대해 표현하는 작품이다.
안무가는 프로그램북을 통해 고독을 ‘건강한 배고픔’이라 하며 그것을 부정적 의미가 아닌 형이상학적, 영적인 의미로 해석했다. 

핀 스포트(spot) 조명 아래 고독하게 의자에 앉은 흑인 남자 무용수. 내레이션 속에 진행되는 무용수의 움직임은 빠르고 단절되며 추상적인 형태감이 부각된다. 영어 내레이션이기에 의미 파악은 불가능했으나 들려오는 말투와 무용수의 표정에서 불만과 긴장감이 느껴졌다. 

무대 전체에 조명이 들어오자 리드미컬한 음악이 객석까지 전해져 몸을 들썩이게 만든다. 아프리카 타악기 젬베의 경쾌한 소리에 맞춰 춤추는 그는 서서히 몸안에 시동을 건다. 대지를 뜻하는 발동작은 힘껏 바닥을 누르고 양팔은 원을 그리며 하늘을 향해 크게 뻗어나간다. 

이 낯선 리듬의 춤은 현대무용과 아프리카 춤을 접목한 아프로(Afro) 컨템포러리이다. 무용수는 리듬에 집중하여 몸의 중심을 크게 이동시키고 다양한 관절을 사용하며 그루브한다. 전반적으로 일률적이지 않으며 즉흥성과 자유로움이 발휘되는 춤이다.

암전, ‘삐익 삐익’ 경보음이 울리며 ‘help me’를 외치는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조명이 켜지고 무대 위 두 무용수의 퍼포먼스가 시작된다. 

리듬과 흥이 고조되는 가운데. 각자의 공간에 위치한 두 무용수의 움직임은 대조된다. 건장한 체구의 나이지리아 무용수는 유연하면서 아크로바틱해 그 자체만으로 인상적이었으며 한국의 추임새처럼 ‘핫’ 소리를 내며 몸의 기운과 움직임을 힘 있게 끌어낸다. 

동양의 무용수는 음악과 대조된 분위기로 묶여 있는 공간에서 억눌리거나 탈출하려는 몸짓이다. 고독을 벗어나려는 것일까. 부드러운 손끝, 닿지 않는 공간까지 에너지를 전달하는 모습은 슬프지만 아름답다. 두 무용수가 풍기는 에너지와 오라(Aura)는 다르지만 조화롭다.

흐밍의 노랫소리가 흘러나오고 보는 이의 마음을 진정시킨다. 마지막은 두 무용수가 함께 춤추는 장면으로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따라주거나 서로 주고받는다. 손끝으로, 손바닥으로 소통하다가 상대를 뿌리치는 움직임은 하나가 되었다가 경계하는 모습이다. 무대는 긴 빛을 따라 한 사람은 떠나고 한 사람은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마무리된다.

타악기를 두들겨 내는 소리와 박자를 밀고 당겨쓰는 리듬과 춤은 한국춤의 ‘엇박’, ‘흥’과 유사해 관객도 저절로 호응하게 된다. 작품 <고독한 생활>은 쉽게 접할 수 없는 아프리카 춤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신선한 경험이었으며 다른 환경에서 움직임을 체득한 무용수들의 매력을 함께 감상할 수 있어 귀한 무대였다. 

 

김용걸댄스시어터 '바람 Wind' / 안무 김용걸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김용걸댄스시어터 '바람 Wind' / 안무 김용걸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3. 바람 Wind / 안무 김용걸

김용걸댄스시어터는 발레가 가질 수 있는 제한적 움직임과 표현의 한계를 확장하며 발레 무브먼트 자체에 주목한다. 과감하고 실험적인 작품들을 통해 발레 대중화에 힘쓰는 단체이다. <바람>은 우연히 들렀던 깊은 산속 산사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주제로 음악과 움직임만으로 무대를 채우는 작품이다.

옅은 조명 속, 스산한 바람 소리. 푸른 빛의 하늘거리는 의상을 입은 남녀 무용수가 시원한 팔의 움직임과 손끝으로 공간을 지휘한다. 

공간을 울리는 현(絃)의 소리, 가야금 산조이다. 작품 <바람>은 느린 진양조에서 빠른 휘모리까지 쉬지 않고 연주되는 가야금 소리에 몸을 맡기는 참신한 작품이다. 장단의 변화와 기복이 있고 복잡한 선율을 베이스로 하는 가야금 산조에 어떤 그림이 그려질까 궁금한 가운데, 두 무용수는 현을 뜯고, 퉁기고, 집고, 잡아채는 역동적인 소리에 온전히 몸으로 반응하며 움직임을 구사한다. 

몸통을 일렁인다. 팔, 다리의 관절을 분절하며 줄을 여러 번 흔드는 가야금의 연주기법인 농현(弄絃)을 그려낸다. 맺고 풀어지는 장구 소리는 정확한 타이밍에 끊어지고 이어주는 움직임으로 기가 막히게 소화한다. 인간의 신체가 악기가 되어 가야금이 춤을 추는 상상을 하게 하는 순간이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움직임. 상체를 노출한 채 무대를 횡단하는 임재운은 잔근육으로 다져진 피지컬과 탄력 넘치는 점프, 파워풀한 동작으로 남성미를 풍겼다. 탁월한 유연성과 밸런스 감각, 에너지를 두루 갖춘 최목린은 매 순간 관객의 시선을 압도한다.

9분 동안의 파드되는 불규칙 속에 멋진 하모니를 보여준다. 클래식 발레에서 볼 수 있는 정형화된 테크닉의 반복은 보기 드물다. 다양한 장단과 흐트러진 가락에 물 흐르는 듯한 움직임은 자연스러우며 의도적으로 끼워 맞추지 않는다. 어디선가 불어오고 떠나가는 바람처럼 자유로울 뿐.

전통음악에 맞춰 재해석된 한국창작무용보다 신선하고 의외의 어울림이다. 탄탄한 실력을 갖춘 무용수들의 역할과 더불어 음악에 대한 탁월한 해석 능력과 뛰어난 감각, 상식을 뛰어넘는 실험정신을 겸비한 안무가의 힘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바람>과 같은 신선한 무대가 대중들에게 꾸준히 제공된다면 클래식 발레와 마찬가지로 팬덤을 형성하며 인기몰이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움직임에 대한 연구와 표현의 확장성을 바탕으로 발레의 대중화에 힘쓰는 안무가를 응원한다.

 

 

Dance MooE 'I am you' / 안무 김성용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Dance MooE 'I am you' / 안무 김성용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4. I am you / 안무 김성용

 <I am you>는 타인에게 비춰진 나의 모습과 편견에 속박된 인간의 시선을 춤으로 담고 있다. 

어둠 사이로 꿈틀대는 무용수가 보인다. 잠시 후, 붉은 등 하나가 무대 바닥을 비춘다. 흰옷 차림에 삭발한 여자 무용수. 맨살이 찢겨나갈 정도로 바닥에 슬라이딩하며 불빛이 허락하는 좁은 공간에서 몸을 구르고 경련을 일으킨다. 숨이 막힐 정도로 움직임은 격렬하고 즉흥적이다. 몸부림에 가까운 퍼포먼스다. 무대 시작부터 알 수 없는 누군가가 등 하나를 손에 들고 무용수를 따라다닌다. 나를 향한 시선으로 해석된다.

정적이 흐른 후, 무대에 모습을 드러낸 남녀 무용수. 엎드린 자세로 얼굴을 맞대고 대립하며 밀고 밀리기를 반복한다. 이어 서로의 신체를 탐색하듯 접촉하며 뒤엉킨다. 붉은 등은 무용수를 집요하게 따라다니는 모습에서 머리 위를 짓누르거나 공간을 좁혀 들어오는 형태로 전환된다. 편견과 시선의 속박 속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의 모습을 표출하고 있었다.

작품 중반부로 진행될수록 움직임의 양상은 빨라졌다 느려지기를 반복한다. 보통 클라이맥스를 표현할 때 음악이나 움직임이 가속화되는데 안무가 김성용은 속도를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 춤의 완급조절에 탁월한 두 무용수는 조밀하고 유기적인 컨택(contact)으로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었다. 설명과 묘사를 동반한 움직임 어법이 아니기에 신선함과 매력이 풍부한 작품이다. 

필자의 편견일 수 있겠으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등이 좀 더 밝았더라면 에너지를 품은 무용수들의 움직임과 호흡이 객석으로 더 가까이 전달되지 않았을까. 어둠 속에서 장면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애를 써야 했다.

분위기가 절정으로 치닫는 순간. 붉은 등은 고정되고 바닥에 있던 투명판이 무대 중앙에 세워진다. 타인에게 비춰진 나의 모습을 말하는 것일까. 투명판을 사이에 두고 두 무용수는 거울을 보듯 마주 보며 응시한다.

무게를 가늠할 수 없는 속박의 몸짓이 계속된다. 한 사람이 빠져나오면 다시 한 사람이 등을 올라타고 짓누르며 일련의 움직임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진다. 탈피하고자 하는 본능적 움직임이면서 얽힌 것을 풀어내려는 의지의 은유적 표현이다.

두 사람은 치열하게 붉은 투명판을 향해 돌진한다. 이때 판이 바닥을 내려치며 울리는 소리는 객석까지 전달되고 공연장은 긴장감이 휘몰아친다. 진동에 의해 물결치는 투명판 속 일그러진 무용수들의 모습에 관객도 그 안으로 흡입된다. 작품 <I am you>는 쉼 없는 편견과 시선에 반응하는 인간의 모습을 은유하기에 결론을 찾기보다 퍼포먼스 자체에 자연스럽게 몰입할 수 있었다.

다양한 안무기법을 바탕으로 하는 현대무용은 간혹 관객이 작품 이해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안무가 김성용은 오브제를 통해 관객이 느낄지도 모르는 부담감을 덜어주었다. 붉은 등과 투명판은 시선과 편견을 상징하기에 적확했다. 의미 전달에 있어 춤 외에 다른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궁합이 맞는 오브제를 선택하는 감각이 탁월한 안무가이다.

 

 

DAP Company '오라 Aura' / 안무 이이슬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DAP Company '오라 Aura' / 안무 이이슬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5. 오라 Aura / 안무 이이슬

<오라>는 다양한 사건 사고가 발생하는 현 사회, 그리고 ‘무엇이 그들을 죽음의 장면으로 내몰았는가’에 대한 의문과 애도를 무대화시켰다. 이이슬은 한국춤의 컨템포러리화에 집중하는 춤꾼으로 <오라>를 통해 2022년 한국무용제전에서 소극장 부문 최우수 안무상을 수상했다. 그녀는 유튜버이기도 하다. 한국춤을 대중적으로 알리고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을 꾸준히 해왔기에 무대가 시작되기 전부터 기대감이 컸다. 

옅은 어둠 속. SF 영화에 나올법한 음악이 흐른다. 밀착된 흰색 상의에 몸보다 훨씬 큰 오버 드레스를 입은 여자 무용수. 꽹과리를 가면처럼 쓴 채 무대 뒤 중앙에 서 있다. 아무것도 볼 수 없고 숨도 편히 쉴 수 없는 상황. ‘여기는 어디인가?’ 질문하듯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강렬한 푸른색 장갑을 낀 두 팔은 허공을 떠다닌다. 고정된 다리와 꿈틀대는 몸통, 팔은 경직된 상태로 분절되어 긴장과 이완을 반복한다. 

땅이 꺼질 듯한 소리. 붉은 조명을 입은 채 온몸으로 전율하던 무용수는 껍데기를 벗어내듯 치마 속에서 탈출한다. 낯선 곳에 착지한 그녀. 무대는 알 수 없는 광활한 공간이 되고 긴장감 속에 쉽게 발을 내딛지 못한다. 어쩌면 이유도 알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한 망자들의 상황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곧 창살 같은 조명으로 바뀌고 무용수는 꽹과리를 벗는다. 안무가 이이슬이다. 다시 조명은 세 개의 큰 원형으로 전환되며 구슬픈 아쟁 소리와 베이스 기타, 타악기의 소리가 묘하게 뒤섞여 흐른다. 긴장감, 기이함, 슬픔이 공존하는 그때. 그녀는 무표정으로 꽹과리를 밟고, 밀쳐내고, 채로 긁어대며 무대를 점유한다. 한국춤의 컨텐포러리화에 초점을 두는 그녀이기에 현대적 감각으로 풀어낸 움직임이 눈길을 끈다. 

분위기가 고조되자 아쟁의 선율 사이로 심장 소리와 같은 타악기의 공명(共鳴)이 공연장을 감싼다. 꽹과리를 두드리며 허튼춤을 추는 이이슬. 몸을 휘젓거나 가슴을 치고 공간을 잡아채는 손짓. 무용수의 일련의 모습들은 이승과 저승 사이에서 어찌할 바 모르는 망자들의 몸부림 같다.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온몸의 에너지를 공간에 뿌려낸다.

뒤이어 누군가를 인도하는 그녀의 손길에 서서히 등장하는 남자. 웃음과 울음소리가 뒤섞인 묘한 상여 소리를 낸다. 무대 공간이 확장되며 망자들의 영혼을 암시하듯 수십 개의 꽹과리가 내려오다 하늘로 사라진다. 

‘꿈이로구나. 모든 게 꿈이로구나. 왜 죽었단 말이오.’ 노랫소리가 심장을 파고든다. 이이슬의 손길에 인도된 남자는 소리꾼이었다. 애통한 곡조에 맡겨지는 무용수의 몸짓이 관객의 슬픔에 흡착될 때 한(恨)의 감정은 증폭된다. 소름을 유발하는 소리꾼은 때론 무용수보다 우위를 점하기도 했다. 춤에 있어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작품 전반부가 컨템포러리라면 후반부에서는 현대와 전통이 공존한다. 한국전통악기와 베이스기타의 라이브 연주, 한국춤의 발디딤새와 몸놀림을 응용하면서 그에 충실한 모습이 그것을 말해준다. 한국춤의 호흡을 기반으로 움직임을 다양하게 변주하는 모습이었으며 그녀의 오랜 춤 수련과 내공이 느껴졌다.

어둠을 뚫고 나온 한 줄기 조명 아래 섰다. 망자를 품고 위로하듯 손끝의 움직임은 유연하고 포근하다. 조명이 꺼진 후, 한이 서린 노래만 무대에 흐르고 객석에 여운과 잔상을 남긴다. 전통과 현대를 넘나드는 춤과 음악의 환상적인 콜라보로 관객의 잠들어있던 감각을 깨우는 작품이었다.

마무리하며

장르의 구분 없이 다양한 춤과 퍼포먼스로 메말라 있던 정서의 허기를 달래준 축제의 무대. 코로나로 인해 움츠려있던 몸과 마음에 생기를 불어넣고 멈춰있던 일상에 잠시나마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 다채로운 춤의 한상차림으로 융숭한 대접을 받은 기분에 이 시간이 오래 기억될 것이다. 시민들에게 국내외 우수한 콘텐츠를 선물해준 대구시와 대구무용협회에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더욱 풍성한 2023년 대구국제무용제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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