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밥상 588회, 머나먼 귀향 - 그립고 또 그립다
12월 8일 목요일 저녁 7시 40분 KBS1 방영

[문화뉴스 우주은 기자] '한국인의 밥상' 588회에서는 고향으로 돌아간 이들의 그리움 담긴 밥상을 소개한다.

1902년 12월 22일, 인천 제물포항에서 최초의 공식 이민선이 떠난 지 올해로 120년 그 후 일제강점기, 식민지 조국을 강제로, 또 어쩔 수 없이 떠밀리듯 떠나야 했고 해방 후에도 돌아오지 못한 채 망향의 한을 달래며 살아야 했던 사람들이 있다.

러시아 사할린 섬으로 끌려갔다 오지 않는 귀국선을 기다리며 무국적자로 힘겨운 삶을 살아야 했던 4만여 명의 사할린 동포들 그리고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를 해야 했던 고려인들까지 꿈에 그리던 고향으로 돌아온 이들의 긴 기다림과 그리움이 담긴 밥상을 만나본다.

오랜 기다림, 다시 부르는 고향 노래 
– 안산 고향마을 사할린 동포들의 영주 귀국

사진 = KBS 한국인의 밥상
사진 = KBS 한국인의 밥상

경기도 안산의 ‘고향마을’ 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파트 단지는 한국으로 영주 귀국한 사할린 동포들이 모여사는 곳이다. 일제강점기 사할린으로 강제동원 되었다, 해방후에도 끝내 돌아오지 못한 사할린동포들. 다시 고향에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살아온 사할린동포들의 귀국길이 본격적으로 열리기 시작한 건 90년대 이후. 한국과 일본적십자사가 함께 나섰고, 한·일 양국 정부가 지원을 하면서, 지금까지 약 4700여명의 사할린동포들이 영주귀국사업을 통해 고국으로 돌아왔고 현재 약 2800여명의 동포들이 꿈에 그리던 고향으로 돌아왔다.

오랜 세월 타국에서 살았지만 입맛은 여전히 한국식 그대로라는 사할린동포들. 장과 김치를 담아먹는 건 기본, 러시아사람들에겐 그저 잡풀인 고비, 쑥, 미나리등 온갖 나물들을 뜯어다 말려두었다 먹고, 사료로 버려지던 오징어 명태 미역 다시마등생선과 해조류까지 챙겨 먹는 한인들 덕분에 지금은 러시아사람들도 즐겨먹는 식재료들이 됐단다. 굵고 부드러운 고비를 볶아서 상에 올리고, 오징어몸통안에 속을 채워 넣어 굽거나 찐 오징어순대가 만들어지면 그날이 잔치날. 고향음식으로 그리움을 달래고, 절로 흘러나오는 도라지타령에 시름을 달래며 살아온 사할린동포들의 사연이 담긴 밥상을 만나본다.

‘슬픔의 틈새’에 갇힌 비극의 주인공
– 사할린 동포들은 왜 돌아오지 못했나? 

사진 = KBS 한국인의 밥상
사진 = KBS 한국인의 밥상

춥고 척박한 땅, 오랜 유배지였던 섬 사할린을 두고 러시아 작가 얀톤 체호프는 ‘슬픔의 틈새’라고 했다. 그 낯선 땅에서 반세기가 넘도록 돌아오지 못한채 긴 기다림의 세월을 견뎌야 했던 사할린 동포들은 왜 남겨졌고, 돌아오지 못했을까?

1938년 국가총동원법을 제정한 일본은 전쟁에 필요한 물자생산을 위해 15만명의 한인들을 강제동원했다. 당시 일본이 점령하고 있던 사할린에도 탄광, 벌목, 철도, 도로건설등에 15만명의 한인들이 강제동원 됐다. 해방 후, 패전한 일본은 한인들은 방치한채 자국민만 싣고 떠나버렸고 4만여명의 한인들이 사할린린다. 노동력이 필요했던 소련은 한인들의 귀향길을 막았고, 분단과 전쟁으로 정신없던 조국은 사할린의 한인들을 잊고 말았다. 사할린 코르사코프항구에는 오지 않는 귀국선을 하염없이 기다리던 이들의 눈물이 흘러넘쳤다. 

2012년 영주귀국한 최광호 어르신(97세)은 귀도 어둡고 기억도 가물거리지만, 1944년 강제로 끌려갔던 그 순간만큼 잊을 수가 없다. 10시간이 넘는 혹독한 강제노동에 시달리며 나라없는 설움 속에 모진 고생을 견뎌냈지만 기록 한 장 남기지 못하고 결국 돌아온 건 빈손.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건 배고픔이었다. 보리 한줌에 삶은 메주콩과 머윗대를 넣고 지은 밥 한그릇은 한 많은 긴 세월 잊혀지지 않는 음식이다. 

또 한번의 강제이주, 부모의 나라에서 뿌리를 찾는 고려인들
   

사진 = KBS 한국인의 밥상
사진 = KBS 한국인의 밥상

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정책으로 연해주와 사할린등에 정착해 살고 있던 18만 명의 한인들이 중앙아시아로 강제로 쫒겨났다. 낯선 땅에 버려지듯 강제이주된 한인들은 황무지를 일구며 80년이 넘는 세월동안 고려인이라는 이름의 소수민족으로 살아왔다. 

광주광역시 월곡동, 간판마다 러시아어가 적혀있는 이곳은 약 7천명의 고려인들이 모여사는 곳이다. 대부분 새로운 일을 찾아 한국으로 이주해온 고려인 후손들. 고려인 마을의 살림꾼 신조야 씨 역시 강원도 영월에서 연해주로 떠나 우즈베키스탄으로 강제이주당한 고려인의 후손이다. 평생 할아버지의 고향인 한국을 그리워했고 2001년 한국을 찾아오게 되었다.

고려인들 사이 ‘한국엄마’로 불리는 신조야씨는  고려인 마을 살림을 도맡아하는 살림꾼이자 요리사. 세대가 몇 번 바뀌는 동안, 언어도 잃고 입맛도 많이 달라졌지만, 여전히 부모의 나라인 한국이 자신의 뿌리라고 믿고 있는 고려인들을 위해 매일 푸짐하게 음식을 차려내곤 한다. 우즈베키스탄에 살면서도 늘 어머니가 담근 장과 김치를 먹고 살았다고 잔치날이면 국수틀에 내린 면으로 국수를 말아먹곤 했다. 채썬 당근을 절여 새콤달콤 짭짜름하게 무친 당근김치(마르코프차)는 고려인들의 소울푸드란다. 큼직하게 썬 고기와 채소를 쌀과 볶아 만드는 우즈베키스탄 전통음식인 기름밥(플롭)까지, 낯선땅에서 이방인으로 살면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잊지 않고 살아온 고려인들의 삶과 추억이 담긴 밥상을 만나본다.

끝나지 않은 이별, 그리고 남은 자들의 숙제

사진 = KBS 한국인의 밥상
사진 = KBS 한국인의 밥상

오랜 기다림 끝에 고향으로 돌아온 사할린 동포들, 하지만 아직도 기다림이 다 끝난 건 아니다.  인천 남동구 사할린센터에서 만난 문정현(84세) 회장에겐 아직 매듭짓지 못한 숙제가 하나있다. 아버지의 이중징용 피해. 태평양 전쟁 막바지 해상운송 경로가 막히자 사할린 탄광에서 일하던 한인들이 일본 본토로 강제징용되어 끌려갔고, 간신히 사할린에 삶의 터전을 마련해 살아가던 이들은 다시 한번 가족들과 생이별을 해야 했다.

문회장의 아버지도 그중 하나였다. 그렇게 사할린땅에 남겨진 어머니들은 슬퍼할 겨를도 없었다. 값싼 고기통조림이 제일 요긴한 식재료였는데, 김치만 썰어넣어 넣고 끓인 수제비는 고마운 한 끼였다. 어디서나 손쉽게 구할수 있던 가자미로 담가 먹던 가자미식해도 요긴한 반찬이 되어주었다.  막걸리 넣고 발효시킨 밀가루 반죽에 고기와 채소를 다져 만든 소를 넣어 큼직하게 빚은 ‘뺜세(고기찐빵)’를 만들때면 는 남녀노소 좋아하는 간식이다. 찐빵 찌는 달큰한 냄새를 맡으면 사할린에 두고온 자식 생각이 간절해진다. 고향가는 길이라면 속옷바람으로라도 뛰어가겠다던 부모들의 간절한 바람대로 고국으로 돌아와 생의 마지막을 보낼수 있다는 것이 꿈만 같다는 사할린 동포들. 하지만, 두고 온 자식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마를날이 없다.  2021년 사할린동포 지원 특별법이 시행되면서, 2세들의 영주귀국이 시작되고 있지만, 아직 갈길이 멀기 때문이다. 여전히 남은 숙제를 안고 있지만 꿈에 그리던 고국에서 생의 마지막 여정을 보내고 있는 사할린동포들의 그리움이 가득 담긴 밥상을 만나본다.

한편 '한국인의 밥상'은 KBS에서 매주 목요일 저녁 7시 40분에 방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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