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차별적인 상황을 갑자기 맞이하면 대응하기 어렵다.

설득이 시간낭비가 되는 현실은 나를 슬프게 했다.

“곤니찌와? 니하오? 앗살라마이쿰?” 버스에서 중학생 정도 돼 보이는 둘이 다짜고짜 건넨 말이다. 그날 나의 생일파티를 위해 한국인 친구들과 이동하던 중이었다. 그들은 우리가 한국인이라는 말을 듣고 나서도 멈추지 않았는데, 나는 기분이 나빴다. 장난을 넘어서는 시비조의 말투와 아시아인을 신기하게 여기는 듯한 태도가 마음에 안 들었다. 정말 무례한 태도였다.

 

인종차별적인 상황을 갑자기 맞이하면 대응하기 어렵다. “얘 아버지가 일본 사람이야.” “쟤가 거짓말하는 거야.” 그들은 이런 농담을 주고받았다. 농담도 참 재미없게 했다. 인종차별을 당할 만큼 당했다고 생각했는데, 끝이 없었다. 이런 상황을 맞이할 때마다 나는 궁금했다. 상대의 국적도 묻지 않은 채 다짜고짜 다른 나라의 언어를 쓰는 게 뭐가 그리 재밌을까.“

 

“먼저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물어봐. 한국에서 왔을 수도 있고, 일본에서 왔을 수도 있고, 중국에서 왔을 수도 있어. 또 다른 국적일 수도 있지. 먼저 물어본 뒤에 인사를 건넸으면 좋겠어. 아시아는 하나의 국가가 아니라 대륙이야.” 이 긴 얘기를 버스에서 하지 못했다. 내린 뒤에도 답답했다. 다음에 이렇게 말하고 싶어서, 방 안에서 혼자 영어로 중얼거렸다.

길을 걷다가 반가운 문구가 보여서 찍었다. “인종차별이 설 자리를 없게 하자(Kein Platz für Rassismus)”
길을 걷다가 반가운 문구가 보여서 찍었다. “인종차별이 설 자리를 없게 하자(Kein Platz für Rassismus)”

인종차별은 다양했다. 보험 카드를 받았다. 나의 증명사진이 보정되어있었다. 피부색은 더 밝아져 있었다. 눈의 크기가 더 커져 있었는데, 부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친구에게 설명을 들었다. 동양인에게만 눈을 크게 만드는 보정을 한다고. 인종차별은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방식으로도 가해진다. 나의 사진을 보면서 왠지 모르게 슬퍼졌다.

 

또 당했다. 한밤중에 마인강 근처를 걷고 있었다. 한 무리의 남자들이 지나갔다. 그 중 한 명이 다가와 합장하며 머리를 숙였다. “I’m not from Chinese.” 당황해서 말이 헛나온다. I’m not from China.” 또는 “I’m not Chinese.”라고 말해야 했다.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흥분 가라앉히기 어렵다. 더 화나는 이유다.

 

“인종차별을 당하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브라질에서 온 친구에게 물었다. “반응하지 않는 게 가장 좋긴 하지. 철부지를 만났다는 듯이 비웃어봐.” 그가 조언했다. 무언가를 말하거나, 화내는 모습을 보이면 그들이 좋아할 거라고 했다. 그들의 세계는 너무 좁아서, 다른 이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거라고 했다. 설득이 시간 낭비가 되는 현실은 나를 슬프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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