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저녁 7시 10분 KBS1 방송

[문화뉴스 황동은 기자] 드넓은 동해를 앞마당 삼고 장대한 태백산맥을 두른 동네, 강원도 강릉.

아낌없이 내어주고 또 품어주는 바다처럼 궂은일도 즐거움도 함께 나누며 누구보다 굳세고 강인하게 살아온 이웃들이 있는 곳.

206번째 '동네 한 바퀴' 여정은 추운 겨울 더욱 뜨겁게 빛나는 강릉으로 떠난다.

주문진 등대에서 시작하는 강릉 한 바퀴

사진=KBS제공

주문진 등대를 둘러싸고 있는 바닷가 언덕마을, 늘 짭조름한 바다 향기가 넘실대는 꼬댕이마을로 향한다. 

알록달록한 지붕의 집들이 능선을 따라 사이좋게 붙어있고, 좁고 가파른 골목은 미로처럼 이어져 있다. 

마을을 둘러보던 이만기는 때마침 생선을 손질 중인 어머니들을 만나 동네 이야기를 들어본다.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 치열하게 살아왔다는 동네 사람들은 예부터 대부분이 어업에 종사한다. 

남편들은 배를 타고 나가 고기를 잡아 오고, 아내들은 가공공장에서 오징어, 명태 등을 손질하며 자녀들을 가르쳤다. 

매일 바다로 나갔던 사람들의 눈이 되어준 것이 바로 주문진 등대다. 

1918년, 강원도에 최초로 세워진 등대로, 오랜 시간 묵묵히 주문진 앞바다를 지키며 사람들에게 빛이 되어주고 있다. 

주문진 등대에 올라 가슴 확 트이는 겨울 바다를 내려다보며 강릉 여정의 첫걸음을 내디뎌본다.

지극한 사랑이 담긴 어머니의 약과

사진=KBS제공

어질고 현명한 어머니의 표본으로 알려진 조선 중기 여인, 신사임당. 

그녀의 고향, 강릉에서 그런 신사임당 같은 한 어머니를 만난다. 

조진희 어머니는 ‘집에 온 손님은 마른입으로 보내지 마라’는 할머니의 말씀을 여든이 넘도록 늘 가슴에 새겨왔다. 

할머니의 예쁨을 받으며 자라, 할머니의 손맛까지 빼닮은 어머니는 찾아온 이마다 정성껏 대접하며, 베풀고 또 베풀어왔다. 

어머니는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지만, 집에 온 손님들은 모두 귀한 대접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 여기며, 맛있게 먹는 얼굴만 봐도 행복했단다. 

특히 어머니의 음식 중 할머니 때부터 내려왔다는 전통 약과는 단연 최고다. 

꿀과 기름이 귀하던 시절, 약처럼 쓰였다고 할 정도로 귀한 음식인 약과. 

바삭하게 튀긴 약과를 즙청 시럽에 담가두어 켜 사이사이 진득하게 스며들면 겉은 바삭, 속은 촉촉한 약과가 나온다. 

과정을 생략 없이 전통 방식 그대로 손수 만들기 때문에 약과를 만들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최소 이틀이다. 

어머니는 그만큼 고된 과정을 거치는 약과를 50년 넘게 만들어왔다. 

그 전통을 이젠 딸, 휘림 씨가 어머니의 곁에서 함께 지켜나가고 있다.

지극한 사랑과 정성이 담긴 어머니의 약과를 맛본다.

양가 부모님이 함께 만드는 강릉살이의 꿈, 동치미비빔밥

사진=KBS제공

풍요와 자손의 번창을 가져다준다는 아들바위가 유명한 소돌 바닷가. 

한갓진 마을 골목을 걷다, 소담한 집 한 채를 발견한다. 카페 같기도 하고 가정집 같기도 한 오묘한 분위기다. 

안으로 들어서자, 마당에서 동치미를 담그고 있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런데 둘씩 닮은 모습에 물으니 젊은 부부와 양가 어머님들이라고 한다. 

부부는 어릴 때 만나 긴 연애 끝에 결혼했다.

두 사람 덕에 서로 알고 지낸 날이 길어지면서 양가 부모님들도 사위, 며느리 할 것 없이 자식처럼 아끼며, 명절도 3박 4일을 함께 보내고 해외여행도 같이 갈 정도로 허물없이 지낸다. 

같이 있을 때 행복이 배가 되는 가족들을 보며 부부가 새롭게 꿈꾸게 된 것이 있다. 

바로 양가 부모님을 모시고 다 함께 강릉에서 사는 것이다. 꿈을 안고 약 2년 전, 문을 연 곳이 바로 이 식당이다. 

소중한 가족들과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게 소원인 부부는 식당 메뉴 또한 어릴 적 자신들이 먹었던 집밥들로 구성했다.

그중 아삭한 동치미를 채 썰어 올리고 각종 나물과 함께 수제 간장소스에 비벼 먹는 동치미비빔밥은 겨울철이면 늘 먹던 음식으로, 깔끔하고 시원한 맛이 특징이다. 

부부의 소원이 담긴 동치미비빔밥을 맛보며, 훗날 이들이 함께 만들어갈 유쾌한 강릉살이를 기대해본다.

함께 나누며 성장하는 관광두레 100년 방앗간 카페

사진=KBS제공

강릉 시내로 들어선 동네 지기 이만기, 일제강점기 때 관공서가 자리 잡아 일본인들이 많이 살았다는 임당동 골목을 걷는다. 

낯익고도 오래된 외관에 걸음을 멈춰보니, 4년 전 동네 한 바퀴에서 만났던 100년 방앗간이다. 

고소한 냄새가 가득했던 방앗간은 3대 할머니의 뒤를 이어 젊은 사장이 카페로 운영 중이다. 

이훈지 사장이 오랜 시간 동네를 지킨 방앗간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가게를 인수했다. 

카페로 개조할 당시, 방앗간의 모습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 오래된 수령의 목재를 사용하고, 식재료 또한 방앗간과 어울리면서도 지역 농민들과 함께 상생할 수 있도록 강릉 특산물을 사용하고 있다. 

그녀가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건 관광두레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게 운영이나 메뉴에 대해서 아는 게 없던 개업 초기에는 손님이 하루에 다섯 팀이 오면 많이 왔다고 했을 정도로 순탄치 않았다. 

메뉴 개발부터 홍보, 마케팅 등 관광두레로부터 다양한 도움을 받은 사장님.

더 나아가 관광두레의 모토인 협업과 상생을 바탕으로 인근 농가에서 재료를 공수해 메뉴를 개발하고, 강릉 예술인들의 활동할 수 있는 공간으로 카페를 빌려주며, 주민들의 거점 공간이자 지역 사랑방의 역할을 하고 있다. 

지역 주민들과 함께 나누고 성장하기에 더욱 특별한 곳, 임당동 골목을 새롭게 빛내는 100년 방앗간 카페로 가보자.

강릉의 향기를 머금은 수제 맥주

사진=KBS제공

강릉의 도심 대표 관광지, 월화거리. 

거리를 걷던 이만기는 천년의 전설이 깃든 은행나무 앞에서 작은 맥주 시음회 부스를 발견한다. 

강릉 특산물인 솔잎, 곶감 등으로 직접 균을 배양해 만든 수제 맥주로, 강릉에서만 맛볼 수 있다는 맥주는 맛도 다양하지만 전체적으로 탄산이 세지 않고 부드러운 것이 특징이다. 

김상현 대표는 6년째 강릉에서 하나뿐인 맥주를 만들고 있다. 

어릴 적 부뚜막에 놓여있던 어머니의 촛단지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그의 발효 사랑은 점점 부풀어 올라, 아내의 고향인 강릉에 오랜 꿈이던 수제 맥주 양조장을 차리게 되었다. 

수입 균이 아닌 강릉 특산물에서 직접 균주를 배양해 맥주를 만들기 때문에 시간도 오래 걸리고 실패할 확률도 높았단다. 

하지만 누군가 유럽 소도시에서 맛본 지역 맥주의 맛을 평생 잊지 못하는 것처럼, 자신도 강릉의 맛과 향기를 머금은 하나뿐인 맥주의 맛을 기억하게 하고 싶었기에 수없이 도전하고 노력해왔다. 

긴 기다림 끝에 맛보는 수제 맥주는 그에게 성취와 희열, 보람을 가져다준단다. 

맥주와 사랑에 빠진 그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주문진항 양미리 어머니들의 뜨거운 인생

사진=KBS제공

동해안의 대표 항구, 주문진항으로 향한다. 

350여 척의 어선이 드나들며 난류와 한류가 만나는 동해는 오징어, 양미리, 게 등 어족이 풍부하다. 

이른 새벽부터 풍어를 꿈꾸는 어부들과 손님맞이에 분주한 항구는 하루하루가 활기차다. 

주문진항 부둣가를 걷던 이만기, 옹기종기 모여 그물에서 무언가 떼어내느라 분주한 어머니들을 발견한다. 

어머니들의 빠른 손놀림에 빠져나오는 건 다름 아닌 겨울철 동해안의 별미, 양미리다. 

당일 새벽 그물 한가득 양미리를 조업해오면, 어머니들은 상처 하나 내지 않고 단시간에 떼 대야를 채운다. 

큰 대야를 가득 채워야 7천 원씩 받을 수 있기에, 어머니들은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 화장실도 참아가며 종일 작업한다. 

찬 겨울바람을 맞으며 일하느라 곱던 손이 거칠어졌어도 자식들과 손주들 용돈 주는 재미에 일을 놓을 수 없다. 

자식들한테 주는 기쁨이 곧 삶의 낙이다. 

주고 또 줘도 더 주고 싶은 게 어머니들의 마음이란다. 

이 겨울 가장 추운 포구에서 누구보다 뜨거운 삶을 살아가는 어머니들을 만나본다.

집 마당에 차린 호떡집

사진=KBS제공

주문진 바닷가 마을의 후미진 골목을 걷던 이만기, 화려한 네온사인 간판이 우뚝 솟은 집을 발견한다. 

안으로 들어서자 보이는 건 다름 아닌 집 마당에 차려진 호떡집이다. 

이곳의 주인장은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노후를 위해 약 7년 전 주문진에 왔다는 이계화 어머니다. 

오랜 시간 가게 자리를 알아봤지만 번번이 기회가 어긋나고, 코로나까지 겹치면서 ‘놀면 뭐 해?’라는 심정으로 마당에 호떡집을 차렸다. 

하지만 사람의 왕래가 거의 없는 골목 안쪽이라 호떡집을 차리고도 3년간은 수입이 없어 동네 할머니들의 근심 걱정을 사기 일쑤였다. 

많지는 않더라도 꾸준히 찾아주는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해 매일 호떡집 문을 열어둔다. 

가게만큼 그녀가 만드는 호떡도 특이하다. 

당근과 사과로 만든 잼을 넣고 튀긴 호떡은 어머니가 직접 개발한 것으로, 달콤하면서도 담백한 맛이 특징이다. 

어릴 적부터 요리에 관심이 많아 이것저것 연구도 많이 했다는 어머니는 요리 내공만 30여 년이란다. 

김치, 튀김, 빵, 일식 등 분야별로 요리 레시피를 작성한 수많은 공책은 어머니가 가장 아끼는 보물 1호이다. 

주문진 바닷가 마을 골목, 은둔의 고수가 굽는 특별한 호떡을 맛본다.

바닷가 나 홀로 포장마차

사진=KBS제공

강릉 최남단, 금진해변을 걷던 이만기는 도롯가에 나 홀로 떨어져 있는 한 포장마차를 발견한다. 

동해에서 잡아 올린 싱싱한 해산물로 만든 홍게장칼국수와 가자미회무침을 대표메뉴로, 25년째 부부가 운영하는 곳이다. 

이종사촌 동생의 소개로 만나 일사천리로 결혼식을 치렀으나, 해외 근무 중 휴가를 나와 있던 남편은 다시 돌아가야 했다. 

영상통화도 할 수 없던 시절, 결혼한 지 23일 만에 이별할 수밖에 없었던 부부는 서로의 사진을 보며 그리움을 달랬다.

오랜 기다림 끝의 재회에 성공하지만 또 다른 시련이 부부에게 찾아왔다. 

갑작스러운 남편의 사고로 생계를 책임지게 된 아내는 소나무 해충 방제 작업, 수산물 가공 공장, 횟집 아르바이트 등 어떤 일이든 마다하지 않았고, 이를 두고 볼 수 없었던 남편도 아픈 몸을 이끌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 문을 연 부부의 작은 포장마차.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갈 때쯤 아내에게 예기치 않는 병까지 찾아오면서, 또 한 번의 시련을 이겨낸 부부는 더욱 끈끈해졌다. 

부부가 오후 4시면 문을 닫는 이유, 남은 인생은 고생한 서로를 위해 시간을 갖기 위해서다.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 인생 풍랑 함께 헤쳐 온 부부의 바다 내음 가득한 한 상을 맛본다.

추운 겨울 누구보다 뜨거운 마음을 가지고 치열하게 삶을 일구며, 따뜻한 온기를 나누는 강릉 이웃들의 이야기가 공개된다.

한편, KBS '동네 한바퀴'는 매주 토요일 저녁 7시 10분에 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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