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칼럼니스트 오혜재] 기업가, 엔지니어, 발명가, 투자자. 세계 최고의 부자이자 가장 주목받는 경영자인 일론 머스크(Elon Musk)를 떠올릴 때 연상되는 이미지다. 하지만 그가 예술에도 천착한다는 사실은 잘 부각되지 않는 듯하다.

 머스크는 ‘버닝맨’(Burning Man)에 열성적으로 참가하는 ‘버너’(Burner)다. 매년 8월 미국 네바다주 사막에는 9일간 ‘블랙 록 시티’(Black Rock City)가 형성된다. 이 임시 도시에서 예술가, 과학자, 기업가 등 다양한 사람들이 아이디어를 실험하고, 예술성을 발휘하는 혁신 공동체 ‘버닝맨’에 합류해 생활한다. 또한 머스크가 샘 알트만(Sam Altman)과 2015년에 공동 설립한 인공지능 회사 ‘오픈AI’(Open AI)는 2021년 텍스트를 보고 이미지를 창작해 그리는 ‘달리’(DALL-E) 모델을 개발했다.

 머스크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서도 예술에 대해 지속적으로 피력해왔다. 지난 2022년 5월, 그는 1985년 예술가의 삶과 2022년 예술가의 삶을 비교하는 밈(meme)을 공유했다. 이 밈은 1985년과 2022년을 기준으로 두 가지 원형 차트를 보여준다. 1985년 차트에서는 ‘섹스, 마약, 로큰롤’이, 2022년 차트에서는 ‘소셜미디어’가 예술가의 삶에서 팔 할을 차지하고 있다. 반면 이들 차트 모두 ‘예술 창작’이 예술가의 삶에서 일부에 불과함을 보여준다. 4차 산업혁명의 주역인 머스크가 밈을 통해 소셜미디어의 영향력을 강조하고 싶었는지 모르겠으나, 예술가의 입장에서 밈을 보면 뭔가 씁쓸하다.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르네상스 시대 이후 예술가의 직업화가 진행되었다. 또한 유럽 내 중상주의 열풍과 제국주의 시대로의 진입을 통해, 부르주아 계급이 등장하고 자본주의가 가속화되었다. 대량 상품 유통과 소비가 만연한 오늘날, 예술가들은 생산한 제품으로 돈을 받는 노동자인 동시에 제품 판매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업가가 되었다. 예술가 데이비드 베일스와 테드 올랜드의 저서 『예술가여, 무엇이 두려운가!』에서도 예술가가 창작 활동에 집중하는 것이 녹록치 않은 현실적 아이러니가 잘 드러난다.

 “어느 한 유명한 화가가 몇 달 동안 구체적으로 기록해 보았더니, 한 달에 실제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날은 기껏해야 6-7일밖에 되지 않고 나머지 20여 일은 불가피하게 화랑 업무나 작업실 청소, 우편 업무 등과 같은 일로 소모된다는 실망스러운 결론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서의 교훈은 단순히 예술 창작 그 자체보다 예술과 관련된 업무들이 훨씬 많다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경우 오늘 만든 예술 작품이 내일이면 감상자에게 도착할 수 있는 것은 예술 교육과 투자, 평론, 출판, 전시, 공연 등을 위한 광범위한 사회적 네트워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독학 예술가로서의 내 삶도 별반 다를 게 없다. 아니, 밑천도 없이 독학으로 해내야 하기에 더 힘들다. 우선 한 주의 대부분은 직장인으로서 생업에 매진해야 한다. 이후 예술의 역사와 동향을 파악하고, 나만의 예술관을 정립하기 위해 쉼없이 검색하고 공부한다. 예술에 대한 나름의 화두를 던지고자 지속적으로 기고도 한다.

전시, 심사, 공모전 입상 등 다양한 경력이 쌓이고 있지만, 내공과 노하우는 평생 연마해야 할 과제다. 여기에 작품 판매를 위해 홍보, 마케팅, 큐레이팅 등 전방위적으로 역할을 해내야 할 때도 있다. 무엇보다 작품에 대한 평가와 그에 따른 실질적인 소득이 비례하기 쉽지 않다. 예술가 구보씨의 고민은 21세기에도 끝이 없다.  

영화배우 로버트 드 니로는 2015년, 뉴욕대 예술대학 졸업식 축사에서 강렬한 한 마디를 던졌다. “졸업생 여러분, 해냈습니다. 그리고 엿 됐습니다.”(You made it, and you’re fucked.) 그가 말한 현실은 문화평론가 김지연의 칼럼 <그 많던 미대생은 어디로 갔을까>에도 잘 드러나 있다.

“한 해에 쏟아지는 미대 졸업생은 3,000명이 넘지만 이 중 전업 작가가 되는 비율은 10%를 넘기지 못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2014년 기준 국내 미술작가는 약 4-5만 명, 수십 년 전부터 미대를 졸업한 이들 중 그 정도밖에 살아남지 못한 것이다. 그 중 작업으로 얻는 월평균 수입이 100만원 이하인 작가가 전체의 79%에 달한다. 취업한 미대 졸업생 대다수는 미술학원 강사, 일러스트레이터, 미술관의 임시직으로 최저시급에 가까운 임금을 받는다. 시간이 꽤 흘렀지만 현재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어느 시대건, 예술은 녹록치 않았다. 그래도 예술가들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 않는 것은, 결국 예술이 인간의 본능이자 존재의 이유이기 때문이 아닐까. 문화인류학자 엘렌 디사나야케(Ellen Dissanayake)는 저서 『미학적 인간 호모 에스테티쿠스』(Homo Aestheticus)를 통해,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인류의 역사를 조망했을 때 예술 본성을 잃지 않은 인간이 살아남았음을 강조한다. 첼리스트 얀 포글러(Jan Vogler)의 말처럼, “예술은 우리를 정의하고,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어 준다.” 그러니 예술가들이여. 우리 모두 마음 단단히 먹되, 꿋꿋하게 예술합시다.

필자 소개

사진=독학예술가 오혜재
사진=독학예술가 오혜재

오혜재는 대한민국의 독학 예술가(self-taught artist)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영어영문학 학사(언론정보학 부전공)와 다문화‧상호문화 협동과정 석사 학위를 받았다. 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 않고 2014년부터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려왔다. 2019년 홍콩 아시아 컨템퍼러리 아트쇼를 통해 해외에서도 작품을 선보이면서, 국내외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2020년 싱가포르 아시아예술협회(AAA)에서 주최한 코로나19 국제 자선 그림 공모전 <Fight COVID-19>에서 아티스트 부문 금상을 수상했고, 2021년에는 이탈리아 현대작가센터(COCA) 주최 <제3회 COCA 국제 공모전>의 1차 선정 작가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2023년에는 <제3회 갤러리한옥 불화·민화 공모전>에서 특선을 수상했다.

직장인이자 작가이기도 한 오혜재는 2007년부터 유네스코한국위원회에서 근무하고 있다. 예술서인 『저는 독학 예술가입니다』(2021), 『독학 예술가의 관점 있는 서가: 아웃사이더 아트를 읽다』(2022)를 비롯해 4권의 저서를 펴냈다. 다년간의 국제 업무 경험과 석사 전공을 토대로, 예술을 통한 다양한 문화 간 이해와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글=오혜재, 편집=이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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