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 안무가의 등용문, 전국안무드래프트전
젊은 춤꾼들의 자유로운 도약을 응원하다.

[문화뉴스 칼럼리스트 김윤정] 지난 3월 11일. 대구문화칭작소와 스테이지줌이 공동주최하는 전국안무드래프트전이 대구 퍼팩토리소극장에서 열렸다.

올해로 4회째를 맞이하는 전국안무드래프트전은 만 19세~25세의 젊은 무용인을 대상으로 한 경연대회로 영상으로 참가한 28개 작품 가운데 10개의 작품이 본선에 진출한다. 6개 작품은 현장 경연을 통해 진행되며 3월 4일 퍼팩토리소극장에서 촬영된 4개의 작품 가운데 2개 작품의 영상이 심사에 오른다.

심사의 공정함을 위해 심사위원단과 관객에게 안무자의 프로필은 사전에 공개되지 않았다. 프로필은 현장 경연을 마치고 심사위원단이 이동 후 공개되었으며 관객평가단 투표와 심사위원단의 점수를 합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댄스노마즈 'KNOT, 놓을 수 없는' / 안무 김유정, Kathleen Carmelita ⓒ이재봉
댄스노마즈 'KNOT, 놓을 수 없는' / 안무 김유정, Kathleen Carmelita ⓒ이재봉

1. KNOT; 놓을 수 없는 (Dance Nomads / 안무 김유정, Kathleen Carmelita)

<KNOT; 놓을 수 없는>은 나를 단단하게 묶어 가두고 있는 욕구, 욕망의 매듭에 대한 해결이자 해소의 방법으로 추는 춤이다.

흑, 백색 캐주얼 차림의 두 여자 무용수. 팔을 휘두르며 파노라마처럼 이어지는 움직임 끝에 흑색의 무용수만 무대에 남는다. 삐거덕거리는 불편한 소리가 공간에 퍼지고, 목을 조르며 괴로워하다 이내 자신을 위로하듯 온몸을 감싸고 터치한다. 하늘로 쭉 뻗어 어딘가에 매달려 몸을 가누지 못하는 모습과 공간에 무언가를 날려 보내려 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욕망의 매듭이 그녀를 묶고 있는 듯.

차갑고 서늘한 한 줄기 빛이 무대에 자리한다. 빛 중앙에 보이는 작은 꽃, 두 사람은 잡히지 않는 꽃을 어루만지고 받쳐 든다. 사이렌 소리와 함께 급변하는 무대는 강한 비트의 음악이 울리고. 하늘을 향해 드높이 뛰거나 단절되고 몸을 꺾는 움직임을 통해 복잡한 마음속 노이즈를 보여주듯 격렬하게 춤춘다. 뒤이어 무대 위 6개의 둥근 검보라색 조명 속에 펼쳐지는 춤 장면은 인간이 가지는 다양한 욕망의 덩어리를 시각화하고 있다. 

지쳐 쓰러져버린 흰색 차림의 무용수, 피아노 선율의 서정적인 노래 ‘To Let A Good Thing Die’로 분위기는 환기된다. 속삭이는 듯한 보컬에 수화를 닮은 그녀의 움직임은 슬프나 보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 새의 날갯짓, 손등을 토닥이며 달래기, 놓친 것을 쫓아가는 발걸음, 잡았다 흘려보내는 손끝, 통곡하는 모습 등 “좋았던 것을 놓아주세요.”라는 노랫말과 함께 내가 사랑한 모든 것들을 쉽게 포기할 수 없는 감정을 담담하게 풀어낸다. 그녀의 춤은 조용한 외침이다.

작품 후반의 솔로 춤은 인간이 가지는 욕망이라는 매듭에 맞서는 것이 아니라 내려놓는 서정에 초점을 맞추기에 무용수의 가녀린 피지컬이 감정 표현에 있어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애잔한 피아노 선율과 노랫말, 움직임이 자연스럽고 조화롭게 어우러져 여운이 남는다. 아쉬운 점은 장면전환에 있어 두 무용수 간의 연관성이 다소 느슨하여 흐름을 이해하는데 쉽지 않았고, 욕망의 이미지를 고려해서 선곡했겠으나 작품 중반부를 담당하는 강한 비트의 음악에 무용수들의 에너지가 묻히는 분위기다. 음악선정에 있어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보에티아트컴퍼니 'Utopia' / 안무 이화영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보에티아트컴퍼니 'Utopia' / 안무 이화영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2. Utopia (Boety Art Company / 안무 이화영)

 

작품 <Utopia>는 타인과 나, 사회와 나, 나와 나 사이에 존재하는 벽에 대한 이야기로 순수한 아이들이 보는 벽 너머의 자유와 꿈이 있는 유토피아를 그리는 작품이다.

 

서서히 밝아지는 무대, 모습을 드러낸 것은 몇 송이의 시든 꽃이 담겨 있는 수족관이다. 정적 사이로 무대를 맴도는 무용수가 보인다. 이어 상수에 등장하는 무용수, 수족관을 응시하며 들고나온 물병 속 물을 붓는다. 잠시 후 물병을 떨어뜨리며 음악과 춤은 시작된다. 괘종시계 소리를 베이스로 한 음악이 흐르고, 양팔을 무릎에 의지한 채 크게 굴신(屈伸)하며 땅을 짓누르며 걷는다. 무용수의 거친 숨소리가 무대를 감싼 채. 

 

열 개 손가락이 빠르게 움직이며 파닥거리는 무용수들. 작품 전반에 걸쳐 반복되는 이 장면은 수족관을 벗어난 물고기의 모습과 흡사하며 세상의 벽에 부딪힌 인간의 모습을 환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후 무언가를 갈구하는 분위기는 지속되고. 양손 모아 기도하는 손짓, 너울질하는 팔, 눈과 입을 가리거나, 목을 조르거나, 스타카토풍의 단절 등 다양한 몸짓으로 벗어나고 싶은 감정을 적극적으로 말하고 있다.

 

춤이 절정으로 닫는 순간, 정적이 흐르고. ‘아~아~’ 짧은 노래를 부르는 무용수, 생경하다. 수족관으로 다가선 그녀는 꽃을 부순다. 부서진 꽃잎을 들고 쓰러진 무용수의 머리 위에 뿌린 후 함께 노래 부르며 다시 시작되는 춤. 표정은 더욱 간절해지고 노랫소리는 애절하다. 몸으로, 손끝으로 서로 교감하는 무용수, 공간을 점유해나가는 전체 풍경은 추상적이나 에너지를 최대한 발휘해서 펼치는 움직임과 수시로 몰아치는 숨 가쁨은 우리의 삶이 수많은 벽에 부딪힌다는 것을 직감하게 한다. 

작품 <Utopia>는 오브제인 수족관을 통해 세상의 벽을, 시든 꽃을 통해 현실의 벽 앞에 좌절한 인간의 모습을 전달하며 공연의 의미 조성을 돕고 있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유토피아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달려 나가는 모습을 오브제와 조용하면서 변화 있는 음악, 힘과 속도감, 유연하면서도 맺고 끊음이 분명한 춤사위로 서사를 잘 이끌고 간 무대다.

 

인댄스프로젝트 '꿈 꿈' / 안무 이혜인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인댄스프로젝트 '꿈 꿈' / 안무 이혜인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3. 꿈 꿈 (In Dance Project / 안무 이혜인)

작품 <꿈 꿈>은 기계처럼 반복되는 바쁜 일상 속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와 평안함을 바라는 인간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컴컴한 무대 위, 명쾌한 거문고 소리가 들린다. 빠르고 긴박한 분위기다. 무대 중앙에 빛이 스며들고 모습을 드러내는 솔로 무용수. 퉁기고, 뜯고, 울리는 거문고 소리에 미동조차 없던 그녀는 순식간에 몸통과 팔을 꺾으며 춤이 시작된다. 

루프 스테이션(Loop Station)을 활용해 거문고 소리를 겹겹이 쌓아 연주한 <거문장난감>에 맞춰 움직임을 구사한다. 음악은 일정한 속도와 구간을 반복하는 선율 위에 술대로 거문고의 좌단(坐團)을 두들겨 내는 소리가 중첩되며 1인무에서 2인무, 4인무로 자연스럽게 전환된다.

무용수들은 시시각각 변하는 대형과 춤의 흐름 속에서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같은 동작을 반복한다. 일상의 반복과 무료함을 내포하는 듯하다. 일련의 동작들은 다음과 같다. 상체를 유연하게 그루브하며 다리를 시원하게 들어 올리거나 양팔은 직선 형태로 바깥으로 뻗어낸 후 둥그스름한 궤적을 그리며 몸 안으로 돌아온다. 힘 있게 바닥을 누르는 발디딤과 발등에 장단이 놀고, 아래위로 백이며 툭툭 떨어지다 호흡을 다잡는 덧배기 춤새에, 팔사위는 어르고 풀고 휘저으며 자유롭게 움직인다. 한국 전통춤 원리를 기반으로 한 현대적인 감각의 움직임 어법이다.

 

후반부로 진행될수록 음악과 춤은 가속화된다. 술대로 거문고의 괘를 긁거나 활로 거문고 현을 마찰시키는 소리가 덧대어지며 혼란과 초조함이라는 감정에 도달한다. 

 

감미로운 허밍 소리에 몸을 맡기는 그녀들. 일렬로 늘어선 무용수들의 연이어 잡은 팔은 잔잔한 파도가 되고, 옅은 조명 사이로 보이는 실루엣과 팔이 만들어내는 곡선은 관객에게 따뜻함을 선사한다. 바쁜 일상에 잠식당한 몸을 내려놓듯, 무릎을 꿇고 앉는 무용수. 한 손을 머리에 기댄 채 눈을 감은 그녀를 감싸듯 두 명의 무용수도 기대어 쉰다. 홀로 떨어진 무용수의 아련한 손끝에 잔잔한 피아노 선율이 화답하며 막을 내린다. 

 

작품 <꿈 꿈>은 소담한 무대 공간과 안무 경력에 비해 펼쳐지는 춤의 정경이 다채롭다. 대체로 빠르고 반복적인 움직임을 오밀조밀하게 구성하되, 가속화되는 음악에 휘둘리지 않으며 차분하고 세련되게 무대를 이끈다. 지루할 틈 없이 이어지는 무대는 무용수들의 단련된 호흡과 작품에 대한 이해, 많은 연습량이 있었기에 가능할 것이다. 한국춤과 현대춤을 넘나드는 춤꾼들의 자유로운 춤사위, 그 자체가 진정한 자유다.

 

 

 

무브먼트인리버레이션 '넋魂' / 안무 이재아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무브먼트인리버레이션 '넋魂' / 안무 이재아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4. 넋 (Movement in Liberation / 안무 이재아)

 

작품 <넋>은 죽은 영혼이 불을 통해 죄를 씻고 정화하는 ‘연옥’을 토대로 그려내는 무대이다.

연옥계, 가톨릭 교리는 실제 춤 공연에서 적극적으로 다루어지지 않는 대상이다. 신체로 표현할 수 있는 주제인가를 기준으로 삼았을 때 어려운 과제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무대를 끌고 갈 것인가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무대를 지켜본다.

 

무대는 조명을 통해 두 공간으로 분리된다. 무대 상수 조명 아래, 허리를 숙인 채 작은 나무판 위를 위태롭게 걸어가는 무용수. 나무판 끝에 다다르며 허리를 꼿꼿이 세운다. 어딘가에 들어선 느낌이다. 무대 중앙, 갈대발을 안고 있는 무용수를 업고 힘겹게 걷는 무용수. 그리고 누군가 그 뒤를 따라 기어간다. 

 

째깍째깍 시계 소리, 기괴한 구음 소리, 입으로 쩝쩝대는 소리, 한숨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린다. 두 개의 제한된 공간에서 각각 2인무로 진행되는 무대는 오브제인 나무판과 갈대발을 사이로 대치하거나 반응하며 몸을 비틀어댄다. 전체적인 풍경은 느리고 추상적이나 화려한 조명과 장치의 도움 없이 무용수들의 강한 에너지와 몰입으로 무대를 점유한다.
 
뒤이어 파도 소리와 함께 종이 여러 번 울린다. 발을 등에 지고 있는 무용수, 그 위로 다른 무용수가 올라타거나 누운 상태에서 짓누르는 상대의 무게를 버티는 장면, 나무판을 세로로 세워 얇은 기둥을 타고 위태롭게 걷거나, 바닥에 내동댕이쳐지는 등. 죄의 크기와 내용이 다름을 말하듯 각자 다른 형태로 고행을 겪는 장면은 연옥의 상황을 연상시키게 한다.

 

종의 여음이 끝나는 순간, 라틴어 성경을 읽는 소리가 밀려온다. 무대 위 펼쳐진 발 위로 네모난 조명이 떨어지고 커트 머리의 무용수가 기이한 자세를 취한다. 앉은 채로 한 다리를 목 뒤로 감고 양손을 몸통 뒤로 꺾어 맞잡으며 그 상태를 유지한다. 마지막 고행의 자세인가, 불편한 자세임에도 불구하고 표정은 오히려 무언가를 받아들이는 듯하다. 

 

불에 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무대는 검붉은 조명으로 전환되고, 4명의 무용수는 죄를 씻어내듯 자신의 몸을 훑어낸다. 단조의 피아노 선율이 분위기를 압도하는 가운데 갈대발을 응시하며 동작을 이어나간다. 상체를 위아래로 털며 호흡을 토해내거나 빠르게 구르고 몸통을 비틀며 자기만의 동작에 홀로 몰입하는 모습이다. 정적이 흐르고, 온몸으로 경련하는 무용수만 남긴 채 세 명의 무용수는 갈대발 위에 조심스레 서 하늘 위를 응시하며 어디론가 사라진다. 

 

작품 <넋>은 공연이 끝난 후에 무용수들의 진중한 표정, 혼란과 고통 속에 쉴 새 없이 이어지는 격정적인 춤의 흔적이 무대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듯하다. 다소 다루기 힘든 주제에 적합한 선곡과 조화로운 오브제, 관객을 무대로 끌어당기는 춤의 밀도감과 몰입감이 시종일관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메타댄스프로젝트 '46cm' / 안무 이지수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메타댄스프로젝트 '46cm' / 안무 이지수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5. 46cm (META DANCE PROJECT / 안무 이지수)

 

작품 <46cm>는 퍼스널 스페이스, 즉 타인과의 적절한 마음의 거리를 통해 스스로 균형과 건강한 나만의 세계를 만들 수 있다는 의미를 무대에 그려낸다.

 

무대 위, 다부진 체격의 남자 무용수. 발끝으로 선 채 천장 위로 올라서려 하거나 한 다리를 들고 힘겹게 균형을 잡는다. 무대 벽에 비추는 그림자 속 무용수, 그 모습은 위태로움을 배가시키며 몸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떨림에 관객 모두 집중하게 된다. 

상, 하수 앞, 뒤에서 솔로 무용수를 향해 좁혀들어오는 두 명의 남녀 무용수. 세 명 사이의 공간은 빈틈조차 없다. 엉덩이를 밀착하고 서로를 경계하며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 그들, 밀치거나 당기는 움직임을 반복하다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멈춘다.

 

무대 전체가 서서히 밝아지고, 들려오는 기계 잡음 소리. 각자의 길을 걷다가 멈춰 한 다리를 들고 위태롭게 공간에 머무는 움직임이 반복된다. 이어지는 2인무의 움직임은 다가서기와 물러서기, 대치하기, 발가락 끝으로 걷기, 밀쳐내기, 잡아주기, 서로의 몸에 의지하기 등으로 전개된다. 갈등과 협력이 공존하는 춤으로 멀어지면 불안하고 가까이 다가오면 무례하게 침범당하는 인간의 심리를 묘사하는듯하다. 담백하며 집중적인 동작구를 여럿 설정하는 구도를 통해 작품은 강도를 높여나간다. 전반적으로 팽팽한 긴장감을 속도감보다 느린 톤으로 연출하여 움직임과 에너지의 응집력에 관객이 집중하게 만든다.

 

군무, 2인무, 솔로 춤으로 구성되는 움직임은 조형미, 속도, 질감으로 다양하게 변주된다. 안무가는 무용이 인간의 몸을 매개로 하는 예술임을 작품 <46cm>를 통해 확연하게 입증하고 있다. 10분 길이의 작품을 움직임만으로 끌어간 안무가와 무용수의 실력은 신인답지 않다.

 

 

 

어뮤즈프로젝트 '가행-도加行道' / 안무 김나연, 김태린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어뮤즈프로젝트 '가행-도加行道' / 안무 김나연, 김태린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6. 가행-도 加行道 (어뮤즈프로젝트 / 안무 김나연, 김태린)

 

이 작품은 번뇌를 끊고 몸과 마음의 평온을 찾기 위한 과정인 가행도의 길을 춤으로 표현한다.

 

정적이 흐르는 무대, 반쯤 엎드린 검은색 차림의 무용수. 발등에 올려진 정주(전통 쇠악기)가 눈길을 끈다. 무대 중앙에 빛이 들어오고, 바이올린과 첼로 선율에 흐르는 물소리가 더해지며 평온함을 유지한다. 무대는 듀엣으로 전환되고, 태극권을 연상시키는 부드럽고 고요한 움직임과 가부좌(跏趺坐) 상태에서 손등을 겹쳐 위아래로 비틀어 하늘과 땅을 가리키는 움직임은 도를 닦는 수행(修行)의 자세를 떠올리게 한다.

 

세 번의 큰 종소리가 울리고 여음이 사라질 무렵, 정주를 들고 춤을 추는 3명의 무용수. 팔의 움직임이 변화무쌍하고 자유롭다. 위와 아래, 안과 밖, 순행과 역행, 확장과 축소, 밀고 당기기 등 쉴 새 없이 움직이나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잡는다. 나이에 비해 많은 춤 수련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정갈하고 멋있다. 동작을 익히고 내 몸이 하나 되어 자유자재로 잘 운용한다는 것은 중견 무용수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다.

 

무대는 후반부로 접어들고, 악사들의 본격적인 연주가 시작된다. 웃다리 농악의 칠채, 삼채가락으로 휘몰아치는 가운데 분위기는 고조되고. 춤꾼들의 몸짓은 크고 빠른 동작으로 자신 안의 모든 잡음과 소요(騷擾)를 떨쳐내듯 격렬하게 움직인다. 전반부가 기도하거나 도를 닦는 외부로 보이는 고요한 모습이라면, 후반부는 세상이 주는 온갖 고통과 번뇌, 내적 갈등을 떨쳐내고자 하는 복잡한 인간의 내면을 표현하는데 가깝다.

 

작품 전체에 활용되는 정주는 남도 지방 무악에서 쓰이는 금속 타악기로 ‘소리가 하늘까지 전해진다’라고 할 만큼 맑은 소리를 낸다. 후반부로 진행될수록 악사는 작은 정주에서 큰 정주로 바꾸어 연주하면서 그 소리는 더 높아지고 청아해진다. 깊고 긴 울림과 여운이 객석까지 느껴져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과 정신까지 맑아지게 하는 분위기다. 춤으로 괴로움과 어지러운 생각을 무대에 던져 놓는 무용수, 마음을 비워내게 만드는 정주의 하모니는 13분 동안 오로지 무대에 집중하게 만든다.

 

작품 <가행-도>는 화려한 의상이나 소품, 단순한 스토리텔링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움직임을 잘 다루는 무용수들의 출중한 실력과 더불어 라이브로 연주되는 음악의 힘으로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과정을 심도 있게 해석한 작품이다. 

 

 

 

아이디프로젝트 'I.D.' / 안무 김서현 ⓒ이희권
아이디프로젝트 'I.D.' / 안무 김서현 ⓒ이희권

7. I.D. Intimate Distance (I.D_project / 안무 김서현)

 

작품 <I.D.>는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로 거리를 통해 관계성을 보여주고 이를 움직임으로 표현하는 데 집중한다.

남녀 무용수가 춤춘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따라주거나 이내 거부하듯 밀쳐내며 뿌리친다. 수용적인 자세와 갈등이 공존하는 이미지다. 나란히 서 서로의 팔로 울타리를 만들고 그 안에 가두거나 빠져나오려 하는 움직임의 반복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의 모습을 표출하고 있다.

 

시시각각 변하는 춤의 흐름 속에서 무대는 4인무로 확장되고 화려한 동작과 점프, 넓은 공간을 활용한 절도 있는 동작이 시선을 끈다. 압축, 굽힘, 뒤집기, 구르기, 저항의 형태로 움직임을 변주하는 춤 실천과 대형 변화 위주로 무대를 이끌어간다.

 

아쉬운 점은 기능적인 움직임 패턴과 모이고 흩어지는 대형의 변주에 주력한 나머지 의도와 달리, 시각적 이미지만 부각 된다. 작품 전반에 걸쳐 두 춤꾼의 신체접촉을 중심으로 전개되나 에너지의 교류 없이 진행되는 흐름에 상호 간의 관계성, 교류를 보여주기에 다소간 부족함이 있다. 주제를 구체화 할 방법에 대한 숙고를 거친 다음 무대를 기대한다.

 

 

 

장하람댄스랩 '나는 내가 없어서 너를 입었다' / 안무 장하람 ⓒ이희권
장하람댄스랩 '나는 내가 없어서 너를 입었다' / 안무 장하람 ⓒ이희권

8. 나는 내가 없어서 너를 입었다 (JangHaRam Dance Lap / 안무 장하람)

 

무대 깊은 곳에서 걸어 나오는 무용수. 뒤돌아서는 그때, 옆으로 누운 채 바닥을 끌며 따라가는 다른 무용수. 둘은 각자의 공간을 한동안 맴돌다 바닥에 몸을 누이며 무대는 시작된다.

 

이 작품은 타인과 사회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가던 나 자신을 발견하고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 달려가는 과정을 무대에 펼친다. 

저음의 피아노 소리와 바이올린 선율이 깊은 울림을 전하는 가운데, 앉은 자세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움직임은 한동안 지속된다. 일련의 동작은 진행될수록 상대보다 더 먼 곳까지 닿으려 힘껏 몸을 밀어내며, 그 모습은 집요할 정도다. 상대를 등에 업거나 어깨에 탄 채 이동하기도 하며 제압하거나 저항하는 움직임으로 일관한다. 전개되는 움직임의 형태는 경쟁 구도에 놓인 인간의 모습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아방가르드한 분위기의 경쾌한 가요로 분위기는 급변한다.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이던가, 상의를 벗어 허리에 묶는 그녀들. 다소 난해한 노랫말에 무심한 표정으로 춤춘다. 어눌한 스텝으로 시작해 술 취한 사람처럼 휘청대는 모습, 상대를 흔들어 깨우는 모습 등 정리된 움직임 속에 흐트러진 움직임이 간헐적으로 배열된다. 

 

어딘가를 응시하며 전력 질주하는 무용수와 그를 지켜보는 다른 이. 경쾌한 노래 속에 펼쳐지는 거침없는 내달림은 오히려 더 간절하고 슬프다. 어둠 속에서 거친 숨소리와 바닥을 울리는 소리만 여운을 남긴 채 무대는 마무리된다.

<나는 내가 없어서 너를 입었다>는 듀엣 무대이나 대형의 변화가 지루하지 않으며 차분한 밀도와 부드러워 보이는 수면 아래 무용수들의 묵직한 기류가 느껴진다. ‘진정한 나’를 찾는 과정을 느리고 섬세한 필치로 그려나가며 작품 전반은 미니멀하나 무용수들의 움직임과 호흡의 짜임새는 탄탄하다. 

 

파이씨스댄스프로젝트 '수향睡鄕' / 안무 최은하, 황현지 ⓒ이희권
파이씨스댄스프로젝트 '수향睡鄕' / 안무 최은하, 황현지 ⓒ이희권

 

9. 수향 睡鄕 (파이씨스댄스프로젝트 / 안무 최은하, 황현지)

 

마임과 유사한 손끝 연기, 다소 코믹하면서도 귀여운 아이 같은 표정, 부드럽고 서정적인 음악과 춤, 한 장의 스냅 사진 같은 분위기로 두 명의 무용수가 그려내는 첫 장면은 어여쁘다.

 

작품 <수향 睡鄕>은 현실에서 벗어나 자유를 향한 희망, 내가 바라는 욕망을 꿈속 세계에서라도 이루고자 하는 의지를 담고 있다.

 

두 무용수는 팔과 손끝에도 표정이 있다. 움직이며 이야기를 전달하려는 듯 동작 하나하나에 섬세함과 자연스러운 흐름이 묻어난다. 몸을 다양한 형태로 변주시키며 모호해질 수 있는 둘의 관계를 서로 돕고 지지하는 신체 컨텍(contact)을 통해 흥미롭게 풀어간다. 

 

작품 후반부에 스크린을 통해 다양한 영상이 투사된다. 구름 속 비행기, 하늘을 나는 자전거, 낙하산, 폭발하는 불길 속으로 뛰어들기, 도로 위 자동차 등 현실 세계와 꿈의 세계를 동시에 보여준다. 영상과 춤이 오버랩 되며 실제 꿈속에 빠진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작품 <수향 睡鄕>은 파트너와의 케미, 과하지 않은 호흡과 움직임, 기교적 완성도와 더불어 영상매체의 활용으로 관객이 작품에 대한 컨셉을 이해하기 수월했다. 심오함과 예술성을 강조하는 작품과 달리 감상자에게 편안함을 준다. 

 

 

 

이태상댄스프로젝트 '(주)몽' / 안무 이원재 ⓒ이희권
이태상댄스프로젝트 '(주)몽' / 안무 이원재 ⓒ이희권

10. (주)몽 (이태상댄스프로젝트 / 안무 이원재)

 

한눈에 들어오는 책상과 의자, 정장 차림의 네 명의 무용수, 반복적으로 들리는 기계 작동 소리가 이목을 끈다. 

 

작품 ‘(주)몽’은 꿈속에서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것조차 꿈이라는 설정을 ‘면접’이라는 상황을 토대로 무대를 풀어나간다. 

 

무대 중앙, 책상과 의자로 만든 무대세트가 보인다. 한 명이 종이를 건네주면 다른 한 명은 그것을 거부하듯 뒤집어 의자 위에 차곡차곡 쌓는다. 효과음과 어우러지는 움직임은 기계처럼 정확하고 표정은 냉담하다. 무대 상수에 위치한 남자 무용수, 의자에 앉아 초조한 표정으로 손을 만지작거린다. 프로그램 북에서 언급했듯 안무가는 ‘서류 제출하기와 반려되기’란 단순한 패턴의 반복과 면접 장소의 안과 밖 모습을 통해, 사회초년생들의 꿈이 현실의 벽 앞에서 무너지는 순간을 담담하지만 세밀하게 묘사한다.
 
작품 전반에 걸쳐 오브제를 활용한 움직임이 다양하다. 의자나 책상에 엎드리기, 바닥에 끌기, 중심 잡기, 어깨에 메고 걷기, 종이 뭉치 공중에 날리기, 구기기, 몸 닦기 등 시종일관 오브제와 함께한다. 후반부로 진행될수록 움직임은 격렬해지고, 날카로운 금속 소리를 베이스로 한 음악에 겹쳐지는 종이의 바스락거리는 예민한 소리는 바라던 꿈에 스크래치가 난 듯한 분위기를 만든다.

 

마지막을 예고하듯 데칼코마니 되는 장면. 에디트 피아프의 ‘Non, Je Ne Regrette Rine’ 노래가 흐르고 회사 안에서의 바쁜 일상을 그리며 무대는 마무리된다.

 

작품 ‘(주)몽’은 오브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독특한 움직임의 시도는 고무시킬만하다. 아쉬운 점은 오브제에만 집중한 나머지 작품 전반부를 제외한 장면에서 보이는 움직임의 양상은 다소 어수선하다.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와 메세지, 움직임 어법 간의 조화와 연계성에 대한 연구가 요구된다.

 

 

 

제4회 전국안무드래프트전 출연자 기념촬영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제4회 전국안무드래프트전 출연자 기념촬영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마무리하며

대상은 <넋>을 연출한 Movement in Liberation팀이 수상했다. 모든 예술가가 피해갈 수 없는 창작의 무게와 치열했던 고민을 느낄 수 있었던 전국안무드래프트전. 경연을 넘어선 무대로 완성도 높은 작품과 더불어 젊은 안무가들의 자유로운 도약을 힘껏 뒷받침해주는 대구문화창작소와 스테이지줌의 따뜻한 마음과 응원이 느껴지는 공연이었다.

춤에 대한 열정과 자부심으로 참가했던 출연자들과 침체되 있는 무용 공연계에 작은 불씨를 지펴준 기획자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 글 : 김윤정
- 사진/진행 : 대구문화창작소 이재봉, 이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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