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MHN 서정준 기자] [문화 人] 박지연 인터뷰 ① "'빨래' 정말로 행복한 작품"에서 이어집니다.

배우 박지연이 빨아버리고 싶은 '빨래'가 있다면요?

ㄴ 편견? 나는 이렇다. 이 사람과의 관계는 이렇다. 이 사람은 이렇다. 이렇게 쉽게 판단하는 것들을 없애버리고 싶어요. 제 안에 쌓인 불순물이랄까. 그런 걸, 저를 세탁기에 넣고 돌리고 싶어요(웃음). 제가 가진 안 좋은 것들을 새롭게 리셋해서 살고 싶어요. 좋은 경험, 소중한 기억들을 그렇게 하고 싶다는 게 아니라 빨랫감이 가진 본연의 색깔을 되찾고, 더 깨끗하게 만들어서 저의 안 좋은 먼지들을 털고 싶어요.

▲ 배우 박지연

살다 보면 가지지 않으려 해도 자연스레 쌓이는 얼룩이 있죠.

ㄴ 요즘 그런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미니멀 라이프'라고도 하잖아요. 저도 그런 걸 하려고 비워내기, 불편해지기를 실천하고 있어요. 제가 비워내고 불편한 만큼, 누군가는 채워지고 편해져서 삶의 균형이 맞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죠. 그래서 '빨래'의 인물들을 볼 때 무척 안타깝기도 해요. 제 눈에 보이는 것부터, 입던 옷, 신발부터 다 기부하려고 모아놨어요.

요즘 생각하는 고민이 있다면 뭘까요.

ㄴ 저는 제 생활도 고민되지만, 막상 제 주변엔 그렇게 힘든 사람들은 없어요. 하지만 한 다리만 건너도 어려운 사람이 많죠. 정말 가까이에 그런 분들이 있는데 너무 주변을 돌아보지 않고 살아왔던 게 아닌가 싶어요.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관계가 있어야 할 것 같단 생각이에요. 또 '빨래'하면서 더 기회가 됐던 것 같아요. '빨래'란 작품을 더 많은 사람에게 보여드리고 싶어서 생각하는 것도 있고요. 그런 좋은 사건을 많이 만들고 싶어요. '빨래'가 저를 채워줬듯이 제가 다른 사람들을 채워줄 기회를요.
또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보실 수 있는 작품이라 생각해서 더 보여드리고 싶단 생각이고요. 앞으로도 배우 생활하면서 계속 작은 무언가를 실천하고 싶어요. 그걸 통해서 당장 뭔가 해내겠다는 건 아니지만, 조금씩 하다 보면 우리나라가 할머니가 아이 손을 잡고 극장에 함께 오는 일이 멀지 않다고 생각해요. 우리나란 속도가 빠르니까요. 잔잔하게나마 그런 따듯한 문화가 퍼졌으면 좋겠어요.

문화를 즐기는 건 어릴 때부터 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어릴 적에 재미 없는 공연을 보면 안 좋은 선입견이 생기잖아요. 반대로 좋은 공연을 보게끔 도와준다면 어른이 돼서도 한결 극장에 가기 쉽겠죠.

ㄴ 그래서 어떤 도움이나 기부도 대상을 명확히 해야할 것 같아요. 필요한 대상에게 필요한 것을 줘야 하니까요. 좋은 의도가 좋은 결과로 이어지긴 어렵다고 하지만,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단 낫다 싶고요(웃음). 사실 공연하는 사람들도 힘들어서 다른 사람까지 도와주는 게 잘 안되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계속 모이면 문화예술을 즐기는 사람이 많아지고 소비층도 넓어지고, 공급도 늘어나면서 선순환이 일어나야 하는데 어딘가 한 곳이 막힌 기분이에요. 제가 뭐라고 이런 생각을 하는가 싶기도 하지만, 배우들의 경우에도 출연료 미지급 사태가 일어나고 있는데 그런 많은 문제가 단순히 돈을 많이 벌어서 해결한다기보단 이런 작은 실천을 통해서 해결되리라 생각해요.

생각하는 고민과 걸어온 작품이 많이 일치하는 것 같아요. 많이 깊어진 것 같기도 하고요.

ㄴ 생각해보면 저는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제가 다른 사람에게 좋은 기운을 주진 못했던 것 같아요. 앞으론 그러고 싶은 마음이 있죠. 요즘 SNS를 하면 어린 친구들이 참 많이 메시지를 보내고, 댓글을 달고…팬카페에도 회원들이 제게 써준 편지를 읽어보면 정말 내가 나대로 사는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이 돼가고 있구나 싶어서 더 신중하고 조심스러워지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그들에게 잘 보여야겠다고 하기보단 책임감 같아요. 되도록 뭔가에 욕심내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전 항상 많이 하는 말이 '조급해하지 마세요. 지금 그대로도 괜찮아요'거든요. 저도 예전에 그랬나 싶은데 다들 조급해하고 힘들어하고 내가 가지지 못한 걸 갖고 싶어 하고, 잘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 사이에서 갈등하고요. 그런데 저는 그 모든 게 다 괜찮다고 생각해요. 잘하는 걸 하는 것도 좋아 보이고요. 저는 감사히도 조금 일찍 찾았다면 누군가는 좀 더 늦게 찾을 수도 있는 거니까요. 그래서 '그대로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우리는 이대로도 너무 괜찮고, 좋으니까 걱정하지 말자고요.

이야기를 보면 20대 여배우에게 대중들이 기대하는 부분을 넘어서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아요. 대부분 '작품의 꽃' 정도로 여기는 시선이 많았으니까요.

ㄴ 저는 다행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그런 역을 해오지 않았기도 해요. 그런데 요즘의 여자 배우들이 설 자리가 없는데 지금의 공연을 소비적인 측면으로 보면 구매자들이 더 많이 원하는 게 남자 배우들이니까 누구 탓도 아니고 그냥 그런 '현실'인 것 같아요. 관객, 배우, 스태프 누구 탓을 할 게 아니고요. 다만 우리는 그렇게 다양한 작품을 선택할 수 없어도 다음에는 선택할 수 있는 시기가 와야 하겠죠. 이런 것도 그 작은 실천의 한 부분인 것 같아요. 또 그런 의미에서 나영이는 정말 좋은 역할인 것 같아요. 진취적인 여성 배역을 원한다면 나영이를 하라고 추천해 드리고 싶어요(웃음).

이런 맥락에서 봤을 때 사실 '빨래'는 정말 트렌드한 작품이죠. 최근 이슈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들이잖아요. 혼자 사는 젊은 여자와 외국인 노동자가 주인공인 작품이니까요.

ㄴ 분명히 '빨래'도 10년 넘게 사랑받고 있으니까 이런 작품도 더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좋은 작품을 만들기까지의 시간이 부족한데 시장은 빠르고 급하게 돌아갔고요. '빨래'는 그사이에 천천히 점점 발전해서 여기까지 온 거니까요. 단발성으로 볼 게 아니라 공연을 길게 봐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창작 작품이 매력 있는 게 제가 (캐릭터를 만들며)싸워볼 여지는 있거든요. 아직 그런 여성 인물이 많지 않고 선택의 폭도 넓진 않지만 그래도 공연은 해야 하니까요. 힘들겠지만, 많이 싸워보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물론 나영이의 캐릭터는 그렇지 않아요. 만족스러우실 테니 많이 보러와주세요(웃음).

휴일에 하는 게 있다거나 평소 취미가 있다면요?

ㄴ 저는 집순이라 정말 집에만 있고요. 청소 많이 해요. 집에 있으면 쉬는 날이 쉬는 날이 아니더라고요. 뭐가 자꾸 보이는지 티도 안 나는데 계속 청소하고 천원샵 같은 데 가면 청소용품에 꽂혀서 잔뜩 사와서 집에서 써보고. 그런 거 좋아해요. 집순입니다(웃음). 저는 돌아다니고 새로운 걸 하고 그런 취미가 아니에요. 여행을 가도 계속 같은 곳에 있고, 같은 곳 또 가는 편이죠. 계절마다 가구 위치도 바꿔요. 에어컨 피해서 놓는다거나. 그러면서 대청소도 하고요.

뭐 키우는 건 없어요?

ㄴ 제가 꽃을 너무 좋아하지만 집을 늘 어둡게 하는 편이라 동식물을 키우지는 않아요. 꽃다발을 받거나 하면 집의 유일한 식물이죠(웃음).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ㄴ 어떤 위치에 있고 어떤 삶을 살건, 학생이나 입시준비생. 나영이처럼 직장인이거나. 그런 와중에 공연을 사랑해주시는 게 너무 감사한 것 같아요. 저를 사랑해주시는 것보단 공연을 사랑해주시는 분들이니까요. 그런 마음의 여유가 있는 분들이라면 주변을 한번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있으실 것 같아요. 물론 바쁜 와중에 보러 와주시는 거지만, 그래도 여유를 한 칸 정돈 더 남겨주셔서 다른 곳에 시선을 돌려봐주시면 좋겠어요. 자연에 대한 것도, 힘들어하는 사람들, 친구들을 위해서, 힘든 노동을 하시는 분들도 좋고요. 늘 한 칸 정도는 남겨두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저는 팬카페에 글을 많이 남기는 편인데 '우리 같이 살아요'라고 하고 싶어요. 가족이니까(웃음). 감사하고 공연 많이 와주시고 앞으로 잘 부탁드린다는 말보다는 이런 이야기가 더 좋을 것 같아요. '빨래'를 통해 덧붙인다면 남겨둔 한 칸은 빨래에 나오는 인물들을 봐주시면 좋겠어요. 어떤 캐릭터적이고 특별한 인물들이 아니라 정말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거든요. 폐지 줍는 주인할머니, 월세가 밀리면서 동대문에서 옷 장사를 하는 희정엄마. 나영이도 서점에서 일하잖아요. 서점에 한번 가신다면 '빨래'에 나온 캐릭터를 생각해보면서 그들에게 좀 더 친절하고 위로가 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친하지 않던 희정엄마나 주인할머니가 나영이를 한번 위로해준 것만으로도 세 명의 연대가 생기잖아요. 모르는 사람끼리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런 여유를 챙기셨으면 좋겠어요.

▲ 뮤지컬 '빨래' 공연 장면 ⓒ씨에이치수박

걸어온 길이 곧 자신을 표현한다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은 다름 아닌 박지연 자신일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맡았던 역할과 같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애틋한 마음, 주변을 돌아볼 줄 아는 여유와 지혜, 나보다 남을, 우리를 생각하는 넓은 시야를 갖고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걸어가고 있었다.

박지연이 출연 중인 뮤지컬 '빨래'는 동양예술극장 1관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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