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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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전날, 사람들은 시청 앞 거대한 트리 앞으로 모여 들었습니다. 한해의 마무리를 축복하고 다가올 새해에 대해 희망을 품으며 사랑과 기쁨을 나누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들뜬 마음으로 환하게 웃는 사람들을 보니 부럽기도 하고 왜 우리 부부는 지금 이러고 있나 자조 섞인 한숨도 나왔습니다.

웬만하면 견뎌볼까 했지만 고통이 극에 달아 어쩔 수 없이 아내는 입원을 하고 말았습니다.

몇 해 전에도 크리스마스를 병원에서 보냈는데 다시 또 크리스마스의 악몽이 시작되었습니다.

이것저것 검사를 받고 진통제 주사를 맞은 후, 가까스로 아내는 안정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 상태가 계속 된다면 좋으련만 주사 기운이 다 떨어지면 다시 또 고통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 끔찍했습니다.

저녁 식사가 나왔고 몇 숟가락 뜨더니 이내 고개를 내저었습니다.

“왜 안 먹혀?”

아내는 옆으로 누운 채 눈을 찔끔 감았습니다. 어차피 혼자 감당해야 할 고통이라는 너무나 잘 압니다. 아내의 등짝을 보면서 힐끔힐끔 천장에 매달린 TV를 봤습니다.

TV에서는 휴먼다큐멘터리 「당신이 선물입니다」이 방영되고 있었습니다.

음향 엔지니어인 현경석씨는 교회에서 첫눈에 반한 지금의 아내에게 끈질기게 구애를 한 끝에 만난 지 6개월 만에 결혼에 골인했습니다.

그런데 신혼을 즐기기에는 이 부부에겐 감당해야 할 시련이 많았습니다. 아내는 결혼 전부터 이미 크론병에 베체트, 강직성 척추염까지 이름도 생소한 난치성 질환 세 가지를 갖고 있었습니다. 두 번의 수술을 받은 적이 있고 이번에는 염증이 장을 뚫고 나와 장을 절제하는 세 번째 수술을 앞두고 있는 상황입니다.

더 안타까운 건 현경석씨 역시 망막색소변성증을 앓고 있어 현재 남들보다 시야가 1/10밖에 되지 않고 언제 시력을 잃을 모르는 상태라는 것입니다.

이 부부에게 과연 내일이란 게 존재할까요?

어찌 보면 이들에게는 희망의 질량이 남들보다 훨씬 적은 양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희망의 질량이 적다고 해서 절망하진 않았습니다. 희망은 아주 작은 양이더라도 거뜬히 절망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있으니까요. 더군다나 비록 작은 양의 희망이지만 그 농도는 남다릅니다. 서로에 대한 애틋하고 진한 사랑이 가득하니까요.

시련이란 뭘까요? 아마도 서로 더 사랑하고 아끼라는 신의 축복이 아닐까요.

현경석씨는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자신의 온전한 맘을 담아 노래 한 곡을 만들었습니다. 그가 부르는 노래를 들으며 아내는 뜨거운 눈물을 흘렀습니다.

그대는 모르오

저 파란 하늘이 내 눈을 만지면

내 서러운 맘 모두 잊을까

저 하늘의 별이 내 안에 놓이면

내 두려운 맘 모두 버릴까

그대는 모르오 그대는 모르오

내가 그댈 얼마나 내가 그댈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댄 모르오 내 발끝에 그대 눈물이 떨어져 깨지면

나도 따라 울겠소

이게 끝이란 걸 그댄 아시오

아프지 마시오 슬프지 마시오

그대 살아도 사는 게 아닌 사람 여기 하나 있소

다가져 가시오 내 숨도 거둬가시오

그대 없는 나는 여기까지요

저 역시 그의 노래를 들으면서 어찌나 울컥하던지 눈물을 참느라 혼났습니다.

여전히 아내는 고통스러워했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손을 잡아주는 것뿐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나지막이 이 말을 전하며 저 멀리 보이는 한강대교를 바라보았습니다. 창가에 비친 아내의 눈망울이 반짝였습니다. 그 눈망울은 저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했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그렇게 우리는 크리스마스를 맞이했고 저는 또 한 번 다짐했습니다. 지치지 않기로. 지친 모습 보이지 않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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