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혜재(독학 예술가,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선임전문관)

[문화뉴스 칼럼리스트 오혜재] 올해 4월, 해외 예술협회에서 주최한 국제 미술 공모전의 심사를 맡았다. 기실 주최 측 웹사이트를 통해 발표된 수상 결과는 그리 놀랍지 않았다. 특히 대상작과 금상작의 경우, 나 또한 탁월하다고 생각한 작품들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주최 측에서 연락이 왔다. 대상작과 금상작 모두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이 그린 작품이라며 참가자들이 문제를 제기했던 것이다. 주최 측에서는 해당 수상자들에게 작품의 독창성(originality)을 입증할 것을 요청하는 한편, 심사위원들에게도 의견을 구했다.

나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AI 예술에 대한 논쟁이 새삼스럽지 않았음에도, 정작 나에게 당면한 문제가 될 것이라고는 쉬이 생각치 못했기 때문이다. 올 것이 왔구나.

‘유엔 교육과학문화기구’, 즉 유네스코(UNESCO: United Nations Educational, Scientific and Cultural Organization)는 교육, 과학, 문화, 정보커뮤니케이션 분야를 통해 세계평화와 국제협력을 증진하는 기구로, 유엔 체제 안에서 유일하게 윤리적·지적 성찰을 도모하고 있다.

2021년 11월, 제41차 유네스코 총회에서 유네스코는 AI 윤리에 관한 최초의 국제 표준 지침인 「AI 윤리 권고」(Recommendation on the Ethics of Artificial Intelligence)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지난 수년 사이에 우리의 일상에서 AI의 존재감과 영향력이 급속도로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AI 윤리 권고」의 채택은 인권과 인간 존엄성의 수호를 위한 유네스코의 시의적절한 도전이었다.

「AI 윤리 권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국제사회의 시각에서 ‘윤리’(ethics)의 개념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흔히 한국사회에서 윤리는 지극히 개인적인 사안에만 한정되거나, ‘살인은 나쁘다’와 같이 상식적인 수준에서 옳고 그름이 분명히 판단될 수 있는 사안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AI 윤리에 함의된 국제적 윤리의 개념은 개인의 일탈이나 선악에 대한 이분법적인 판단에 기반하지 않으며, 그보다 훨씬 광범위하고 포괄적이다. 「AI 윤리 권고」는 사회 안에서 중시되는 핵심 가치를 최대한 균형있게 존중하는 방향으로 AI를 개발·활용하고, 이를 위해 어떠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하는지를 통합적으로 탐색할 것을 강조한다.

유네스코의 ‘권고’(recommendation)는 국제법인 ‘협약’(convention)보다 구속력이 약하지만, ‘선언’(declaration)보다는 구속력이 강하다. 유네스코는 「AI 윤리 권고」를 기반으로 각 회원국 정부가 윤리적 차원에서 AI를 올바르게 인식하고, 이를 문화, 교육, 과학, 젠더, 정보 등 사회 내 다양한 분야에서 지속가능하게 활용하기 위한 실질적인 정책을 도출·이행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특히 문화 분야에서 AI 예술은 특히 많은 고민과 성찰을 요하는 이슈로 꼽힌다.

유네스코는 AI가 제작한 예술작품이 원작 작가를 비롯해, 예술 작품 자체를 생산한 알고리즘과 기술 모두의 창작물을 정의할 수 있도록 작가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요구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우리가 ‘상상력이나 발명을 통해 새롭고 독창적인 콘텐츠를 생산하는 능력’으로 이해하고 있는 창의성은 개방적이고, 포용적이며, 다원적인 사회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따라서 인간의 창의성에 있어 AI가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AI는 창작을 위한 강력한 도구인 동시에 예술의 미래, 예술가의 권리와 보상, 창의적 가치 사슬의 무결성에 있어 중요한 질문을 제기한다.

우리는 불법 복제 및 표절을 독창성 및 창의성과 구별하고, AI와의 상호 작용 안에서 인간의 창의적인 작업의 가치를 인식하기 위한 새로운 체계를 고안해야 한다. 이러한 체계는 인간의 작업과 창의성에 대한 의도적인 착취를 피하고, 예술가에 대한 적절한 보상과 인정, 문화적 가치 사슬의 무결성,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문화 부문의 역량을 보장하는 데 필요하다. 

「AI 윤리 권고」가 채택되기 한해 전인 2020년, 유네스코한국위원회는 ‘인공지능 시대에 변화하는 창작 개념과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이라는 주제로 <문화다양성협약 제2차 전문가회의>를 개최했다. 각기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 제시한 다채로운 의견을 제시했지만, 이들을 관통하는 공통된 관점을 엿볼 수 있었다. 궁극적으로 AI는 인간에게 새롭게 주어진 요긴한 도구이고, 데이터의 분석과 확률적 판단에 기반한 AI가 도출한 결과물은 ‘창작’이 아닌 ‘생산’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하며, 이러한 도구를 인간이 합리적이고 현명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AI 예술과 윤리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 이를 통한 명확하고 실질적인 기준 및 법적 장치의 마련이 시급하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앞서 언급한 국제 미술 공모전의 심사 결과가 얼마 전 최종 확정되었다. 문제가 제기되었던 대상작과 금상작 모두 AI로 그린 그림이었고, 작품의 독창성을 인정받지 못해 수상은 취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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