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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만남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살아남는 건 아니다.

어제 오늘 당신은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 누군가와 서로 눈빛을 교환하고 말을 섞었다면 훗날 그 사람에 대해 기억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한 공간에 있었다 하더라고 말을 섞지 않았다면 나중에 그 사람을 기억해내기란 여간 쉽지 않다. 원래 아는 사람이었다면 모를까 그런 게 아니라면 둘 사이의 특별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 한 그 사람이 머릿속에 남아 있을 확률은 극히 적다.

상대방 역시 마찬가지다. 당신이 상대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지 않았다면 상대도 당신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꼭 상대가 당신을 기억해야만 되는 건 아니다. 당신이 상대를 기억하고 추억하고 간직하려는 마음이 강렬하다면 당신에게 있어 그 상대는 잊지 못할 특별한 경험이고 사건이 되는 것이다.

상대가 나를 기억해주지 않아도 서운하지 않다. 어차피 그에게 있어 당신의 존재는 수많은 사람들 중 한 명에 불과할지 모르니까. 허나 중요한 건 당신이 기억한다는 거다. 그 만남이 당신에게 힘이 되고 자극이 되고 꿈이 된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나에게도 그런 만남이 있었다. 상대에겐 그저 그런 일상일진 몰라도 나에겐 그 만남이 참으로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일이다.

대학 졸업 후, 처음으로 문학이라는 걸 접하게 되었다. 내가 사는 동네에 ‘청년문학회’라는 단체가 있었는데 문학에 ‘문’자도 몰랐던 나는 마치 귀신에 홀린 듯 그곳에 발을 들여놓았다. 청년문학회는 시로 세상을 바꾸고 미래를 바꾸고자 하는 젊은 문학도들이 만든 문학단체였다.

그런데 어느 날, 그곳에 ‘연탄재 시인’으로 잘 알려진 안도현 시인이 찾아왔다.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 안도현 시인 ‘연탄 한 장’ 중에서 일부

 

안도현 시인과 문학회 사람들은 이미 예전부터 친분이 있었던 모양이다.

안도현 시인을 보니 직접 보니 무척 반갑고 행복했다.

그 당시, 안도현 시인은 어른을 위한 동화 『연어』를 펴내 많은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던 시기였다. 나 역시 그 독자들 중에 한 명이었다. 내 생에 처음으로 유명시인을 바로 눈앞에서 보게 된 것이다. 물론 안도현 시인은 그 전부터 유명한 시인이었지만 사실 나는 잘 몰랐다. 문학에 문외한이었던 나는 그 분의 시를 접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연어』를 통해서 알게 된 게 전부였다.

그날 문학회에서 안도현 시인과 청년문학회 회원들은 문학이 가야 할 길과 신간 책에 대한 반응에 대해 대화를 주고받았다. 물론 나는 감히 그 대화에 낄 수 없었다. 여전히 나에겐 문학은 잡히지 않는 안개와 같은 것이었다.

또 한 번 한 공간에 있을 기회가 또 찾아왔다.

청년문학회가 주최한 ‘열린문학까페’라는 강연회에서 안도현 시인을 모시게 된 것이다. 적당히 자그마한 키에 검은 뿔테 안경을 쓰고 힘들고 고단한 현실이지만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서 희망을 봤고 그리고 그의 어눌하지만 묵직한 말투에서 친근감과 강한 믿음을 얻었다.

강연회가 끝난 후에는 전주 경원동 근처에 예술인들이 많이 들랑날랑한다는 ‘새벽강’ 술집에서 뒤풀이가 이어졌다. 그 날의 주인공이었던 안도현 시인은 자신을 추종하는 젊은 예비 문학도들이 건네는 술잔을 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 역시 술 한 잔 드리고 한 잔 얻어먹었으면 했지만 역시나 소심한 탓에 눈빛조차 교환하지 못했다. 그때 좀 용기를 낼 걸 하고 후회가 되긴 하지만 여하튼 그 공간에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 자신이 우쭐거릴 만큼 뿌듯했다.

그 만남이 있은 후, 내 마음에 욕심이 찾아왔다.

‘그래, 나도 멋진 글을 쓸 거야. 그리고 유명해질 거야.’

나의 잠자던 감성이 눈을 떴고 세상의 사물과 사람들을 시인의 시선으로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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