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있는 날·예술이 있는 삶을 빛냅니다…문화뉴스] 왕이 국가의 대소사 때 출입하던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 '숭례문', 지세가 낮아 군사적으로 가장 취약했던 '흥인지문', 터로 남은 '돈의문', 경복궁의 지맥을 손상한다는 이유로 한동안 닫혀있던 '창의문'.

한양도성엔 동서남북에 4개의 정문(正門)과 그 사이에 4개의 간문(間門)이 있었다. 돈의문과 소의문는 일제강점기에 훼철됐다. 숭례문과 흥인지문은 각각 조선 시대 중층 목조건축물과 조선 후기 다포계 건축물을 대표한다. 창의문은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고, 숙정문과 광희문, 혜화문은 복원됐다.

닫으면 도성(都城)이 되고 열면 길이 되는 한양도성 성문(城門)의 세계적 가치를 집중 조명하는 시간이 열린다. 서울시가 '한양도성 성문의 상징성'을 주제로 21일 오후 1시 30분에 서울역사박물관 강당에서 '제6차 한양도성 학술회의'를 개최한다.

지난 5차례 국내·외 학술회의가 한양도성이 지닌 세계유산적 가치와 진정성에 대해 탐구하는 자리였다면, 이번 학술회의는 우리 곁에 늘 가까이 있고 친숙하지만, 그 가치를 잘 모르고 있는 숭례문, 흥인지문 등 한양도성 '성문'에 대해 집중적으로 탐구하는 자리다. 이번 학술회의는 역사도시 서울을 상징하는 성문(4개 정문, 4개 간문)이 어떻게 탄생하고 변화했는지 살펴보고, 성문 이름에 부여된 정신사적 의미, 도시의 조영 이념 속 성문의 가치 등 한양도성의 가치에 깊이를 더하고 그 상징성을 부각하기 위해 기획됐다.

학술회의 발표는 문화재청 문화재위원장인 이상해 교수를 필두로, 역사학자 홍순민(명지대학교 교수), 건축학자 한동수(한양대 교수), 조상순 나주문화재연구소 학예실장, 양보경 성신여대 교수 등 각 분야 전문가 5인이 나섰다. 기조강연으로 이상해 교수(문화재청 문화재위원장)가 역사도시를 상징하는 성문이 조선 시대부터 현재까지 시공간적으로 우리의 삶에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를 전반적으로 다룬다다. 한동수 한양대 교수는 한양도성과 비슷한 시기인 중국 청대 성곽의 중요한 시설 가운데 하나인 성문의 구조와 수량, 형식 등을 집중적으로 고찰해 한양도성 성문이 지니는 독자성에 대해서 규명한다.

조상순 나주문화재연구소 학예실장은 한양도성 문루가 가진 역사적 의미와 건축적 의의를 분석함으로써 동시대인들이 어떻게 한양도성을 인식했는지에 대해서 논한다. 양보경 성신여대 교수는 도시의 내·외부를 연결하는 도성의 성문을 통해 한양도성의 지리 공간적 가치를 재조명한다. 홍순민 명지대 교수는 풍부한 사료를 바탕으로 왕권의 상징인 도성문의 실제 관리와 운영 사례에 대해 논하고, 수도의 표상으로서 도성의 가치에 대해서 재조명한다. 주제 발표 후엔 이코모스 한국위원회 이혜은 교수의 사회로 분야별 전문가와 시민들과의 토론이 이어진다.

한편, 6백 년 넘게 한 국가의 수도와 공존해 온 한양도성과 성문은 도성 방어의 핵심이자 왕실과 국가의 존엄을 나타내는 상징이었다. 동시에, 백성들은 성문이 열리고 닫히는 시간에 맞춰 하루를 살아갔고 성문과 연결된 길은 팔도로 가는 대동맥이었기에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이는 삶의 현장이기도 했다.

국보 1호 숭례문은 한양도성의 남쪽 대문이며,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이다. 위상에 걸맞게 도성문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왕이 국가의 대·소사 때 출입하던 문이며 또한 중국 사신이 왕래하던 외교통로이기도 했다. 보물 1호 흥인지문은 한양도성의 동쪽 대문이다. 성문이 들어선 곳은 지세가 낮아 군사적으로 가장 취약한 곳이었다. 따라서 성문을 보호하고 적을 막기 위해 반원 모양의 옹성을 쌓았다. 도성의 사대문 가운데 2층 문루를 갖춘 곳은 숭례문과 흥인지문 두 곳뿐이며, 문루에는 유사시 군사를 지키는 장수들이 머물 공간이 마련돼 있었다.

돈의문은 한양도성의 서쪽 문이었다. 500년 넘게 원형을 유지해오다가 1915년 전차노선이 복선화되면서 훼철되어 건축자재로 매각됐다. 현재 돈의문 터에는 공공미술품 보이지 않는 문이 설치되어 있다. 사대문 가운데 유일하게 사라진 문, 그 자리엔 아픈 역사가 대신 남아있다. 숙정문은 한양도성의 북쪽 문이다. 백악의 동쪽 마루턱에 건설되었는데 현재 남아 있는 도성문 중에서 좌우 양쪽으로 성벽이 연결된 유일한 문이다. 숙정문은 도성의 풍속이 음란해진다는 이유로 항상 닫혀있었으나 나라에 천재가 닥쳤을 때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가뭄이 심할 때 숙정문을 열어 기우제를 지냈는데 이는 방위에 따른 음양의 조화를 끌어내 평온함을 기원한 것이다.

성문은 단순한 출입용도의 건축물로만 인식된 것이 아니라, 성문에는 조선의 정치이념이자 유교에서 말하는 인간이 갖추어야 할 네 가지 덕목(인, 의, 예, 지)이 표현됐다. 변방의 문루엔 무(武), 승(勝), 수(守), 진(鎭) 등의 글자가 사용된 것과 비교해 보면, 한양도성이 전투를 위한 성곽이 아니라 백성과 함께 살기 위한 성곽이었음을 알 수 있다.

또, 도성 중심에 있는 종루에서 새벽 4시경 종이 33번 울리면 성문을 열고, 오후 10시경 종이 28번 울리면 성문을 닫았는데, 성문 운영시간에 맞춰 백성들의 하루가 시작되고 지나갔다. 성문은 이렇듯 조선 시대 도성민의 생활리듬을 지배하는 질서이기도 했다. 성문은 실제 사람이 출입했던 아치형의 석축 위에 목조건물을 올린 구조다. 유산 자체의 의미를 넘어서 공간적·시간적·정신적으로 시민들의 삶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이창학 서울시 문화관광디자인본부장은 "이번 학술회의는 대도시 서울의 한가운데 현존하는 대표적인 도시성곽 유산이자 600년 넘게 시민들의 삶과 함께해 온 한양도성의 세계적인 가치를 공유하는 의미 있는 회의다"라며 "앞으로 도시, 마을, 경관, 공동체 등으로 주제를 지속 확대해 나가겠다"라고 전했다.

문화뉴스 이밀란 기자 pd@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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